대화 - 한 지식인의 삶과 사상
리영희, 임헌영 대담 / 한길사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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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는 책이 두꺼운 데 비해 실속은 좀 모자란다는 느낌이다.
강준만의 <한국현대사의 길잡이 리영희>에 비해 구성력이나 자료도 떨어진다.
다만 중반까지는 지루하던 내용이 400페이지가 넘어가면서 흐름을 잡는 것 같더니 맥이 짚히기 시작했다.

전체적으로 임헌영 선생이 연대기적 서술을 위해 질문을 던지고 리영희 선생이 회고하는 방식이긴한데, 대화로 기록된 것이어서 사소한 오기도 눈에 간혹 띄었을 뿐더러 리영희 선생의 '내 스스로 이런 말 하기 뭣하지만...'이라던가 '별로 한일도 없는데..'는 말씀은 듣는 사람이 민망할 정도의 겸양이었다.
자기 이야기를 스스로 하는 사람의 그리고 선생처럼 치열한 삶을 사는 사람의 태도일지 모르나, 선생의 글로 인해 그동안 닫혀 있던 사고를 깨고 의식화된 많은 사람들에게는 (물론 나는 그 축에도 끼지 못하지만 나까지도) 당혹함이었다.
그래서 더욱 평전이 아쉬웠다.

리영희 선생은 베트남, 한미관계, 중국연구에 획기적인 장을 연 분이며 이제 자신이 할일은 마쳤으니 쉬고 싶다는 뜻을 '조광조를 보내고 이퇴계를 맞는..'이라는 말로 표현했다.
이런 의미에서 90년대에 들어선 선생의 더뎌 보이는 행보보다는 후학들의 작업에 대한 평가가 필요했다는 생각이다.
리영희 선생님의 업적은 그분의 작업 자체뿐 아니라 영향력이다. 그 영향력이 어떤 형태로 작용했는가를 살피는 작업도 별도로 필요하지 않았나 싶다.

리영희 선생의 인간적인 면모를 단지 임헌영 선생의 개인적 기억에만 의지하는 것도 아쉬웠다.
기자 대부분이 정치권에서 주는 촌지에 의존해 흥청망청 살때도 박봉에 시달리며 부업으로 고되게 번역을 하며 '나는 저러지 말아야지...'하는 심정만 되새겼다는, 그래서 첫 아들도 변변한 치료한번 못해보고 잃었다는 것이 평범한 사람에게서 나오는 강직함은 아닐 것이다.
필화사건에 연루되 해직당하고 인텔리가 아닌 육체노동자로 살겠다 결심하며 양계장을 할 생각을 하다가 못하고, 택시기사를 하려다 못하고, 결국 책 외판을 하며 생계를 꾸려간 것도 그렇다.
베트남 인민들에 대한 미안한 마음에 월맹 참전 전사자의 아이들 중 한명에게 학비를 대주겠다고 나선 것도 리영희 선생의 뜨거운 마음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었다.

술과 담배를 좋아하고 선비적인 삶을 살지 못했다고 자신의 성정을 탓하는 대목까지도 성찰적 지식인의 면모를 볼 수 있는 것이었다.

가슴이 저릿한 이런 감동적인 일화를 본인 스스로 겸연쩍어하면서 말하는 것이 어쩌면 더 효과적일지는 모르겠으나, 아쉽다.

연대기적 구성도 다소 갈팡질팡이다.
베트남전에 대한 이야기는 책 여기 저기서 나오는데 상당한 부분이 겹쳐서 지루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여러 아쉬움 속에서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면서는, 이다지도 치열한 삶을 단 700페이지로 읽어치운 것이 죄송스러울 정도였다.
그런데 왜 이런 분을 이렇게 밖에 못드러냈느냐 이것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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