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보이는 어둠 - 우울증에 대한 회고
윌리엄 스타이런 지음, 임옥희 옮김 / 문학동네 / 2002년 9월
평점 :
품절
우울증에 대한 내 편견은 이 병이 퍽 고급스럽다는 느낌이었다.
얼토당토하지 않은 이 편견은 많은 작가들이 줄곧 우울하다고 말하는 그 분위기가 썩 멋져보이는 유아기적 정신상태에서 온 것이었는데, 생각해보면 우울증이 예술가들이 걸리는 몽환적인 병으로 치부했던 결과인 것 같다.
책을 읽으면서 아직까지 이 원인도 치유 방법도 제대로 모르는 치사율 20%에 달하는 이 무서운 병이 그동안 소외당하면서(말하는 것조차 금기시되면서) 또 그저 스치는 ‘감정’쯤으로 무시되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는지 생각해봤다.
그러니까 버지니아 울프나 (작가의 주장에 따르면) 알베르 까뮈도 우울증으로 세상을 떠난 것이다. 그 우울증이 최고조에 이르면 우울증 환자들은 자살을 선택하는 데 그 자살을 치유의 한 방법, 고통을 끝낼 수 있는 단하나의 방법으로 여겨지고, 울프도, 로맹 가리, 애비 호프먼도 우울증을 앓다 끝내 사망한 것이었다.
<소피의 선택>의 저자이기도 한 이 명망있는 작가는 예순살에 접어들자 우울증에 깊숙이 침수한다. 이 100페이지 남짓한 기록은 작가가 우울증 관련 심포지엄에서 발표한 것을 보완해서 펴낸 것으로 우울증의 증상, 정신과 의사와의 개별 치료, 입원(집단치료, 미술치료 등)와 결국 치유받은 과정을 소상히 밝히고 있다.
파리에 상을 받으러 갔다가 (무슨 문학상인데 이름은 잊었다..) 우울증 때문에 여러 사건을 일으키고 결국 미국으로 돌아오자마자 정신과 의사와 만나 상담하면서 실체를 보기 시작한 그 병은 자기가 가치 없는 인간임을 느끼면서 자살 충동까지 이끌어낸다.
하지만, 작가가 누차 밝혔듯이 이 책안에서 기술된 내용만으로 우울증의 증상을 판단할 수 없다는 것이 우울증의 어려움이다. 원인과 증상, 치유 방법이 너무도 다양하고 폭넓다는 것이 우울증 치료의 난제이며 시인의 10%가 앓고 있기는 하지만 인종, 종교, 성별, 직업 등을 막론하고 오래전부터 인류를 괴롭혀온 병이라는 것도 놀랍다.
사람들은 자살에 대해 단죄하며 대채 왜 그런 짓을 저지르는 거냐고 따져 물으며 우울증을 과소평가한다. 자기 자신밖에 모르는 그 지극한 병에 대한 이런 혹독한 비판은 자기 파괴에 대해 도덕적인 판단을 내리는 모든 사람들의 발명 특허라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무엇보다 깊은 우울증에 빠져 있을 때 작가가 여러 가지 자살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던 모습을 상상하면 그 병을 모르는 제3자가 보기에는 다소 우스꽝스럽게 보일 정도로 재치넘치는 글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 이 책의 장점이다.
우울증에 대한 보고이되, 책을 읽으면서 결코 우울해지지는 않는 느낌. 내 안에 있는 작은 우울증 증상들도 어떤 돌파구를 통해 이겨낼 수 있을꺼라는 희망적인 이야기를 던져주고 있는 것이다.
우울증에 대한 정신과 의사들의 매뉴얼을 이미 습득한 저자는 비정상적이고 불가사의한 화학 작용과 행동과 유전적인 요인들이 너무 복잡하게 서로 꼬여 있기 때문에 원인을 아는 것은 영원히 불가능하다고 말하며 무능하고 불쾌한 정신과 의사와의 치료과정이 별다른 효과가 없었음을 이야기 한다. 그리고 정신과 병원(미국에서 가장 시설이 좋은 곳)에 입원해서도 얼마간 치료를 받으면서 집단치료에서 받은 그 고 거만한 의사의 태도에서 느낀 경멸이나 미술치료 선생이 마치 자폐아나 정신지체 어린이를 가르치는 듯한 모습에서 느낀 모멸감도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신병원을 퇴원할 때는 빛을 보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작가 자신도 왜 치유되었는지도 모르는 게 아닐까 하는 절망적인 결과를 묵도했다.
무기력하다기보다는 오히려 기이할 정도로 바스러질 것 같은 기분.
자기 살해자인 동시에 희생자였으며, 고독한 배우인 동시에 외로운 관객으로 느껴지는 아픔.
작가는 사위어가는 저녁빛에서 에밀리 디킨슨의 명시를 떠올리며 우울증의 고통을 감내해낸다.
<기울어가는 한줄기 빛>
웃음과 재능과 한숨
프록코트와 곱슬머리
소년과 소녀들
그러면서 작가는 한가지 강조한다.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는 사람에게 물밖에서 용기를 내라고 말하는 것은 모멸감을 줄 수도 있지만 그 위로가 진심이고, 지속적이라면 빠져나올 수 있는 끈이 될 수도 있다고 말이다. 그러니까 이 병이야말로 주위 사람들이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으로 얼마든지(?) 치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우울증을 이겨낸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그래서 우리 빠져나왔도다. 다시 한번 별을 보게 되었노라."
우울증에 걸렸으면 적극적으로 치료받고, 주위에 도움을 요청하면 나을 수 있다.
용기 있는 작가의 기록에 박수를 보내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