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내게 오시네
아룬다티 로이 지음, 민승남 옮김 / 문학동네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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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여름 능소화가 피기 시작할 때 읽었는데.. 그냥 읽어놓기만 하려다가 몇 자 끄적여본다. 크루엘라 쇼츠 보다가 문득 떠올라서.

좋았다. 초반에는 에세이라기 보단 소설로 다가왔다. 뒤늦게 소개말을 확인하고서야 내가 지금 읽고 있는 게 에세이구나 인지했다. 글이 재밌었다. 재능 있는 사람이 쓴 글 다웠다. 첫 소설에서부터 자기가 모르는 언어로 번역되어 훨훨 날아갈 만했다. 그녀의 삶 역시 그랬다. 특별하기 그지 없다. 문장을 안 쓸 수가, 못쓸 수가 없는 인생을 살았더라. 아룬다티 로이는 교육받았고, 사랑을 했고, 영화를 만들었고, 정치 격동 속에 살았고, 글을 썼다.

폭군이었던 엄마, 자기에게 재능을 물려준 엄마를 생각하고 그리워하고 사랑하는 글이다. 여왕의 그늘에서 제발로 걸어나온 공주는 여전히 그녀의 딸이다. 엄마는 딸을 긴장 속에 살게 했다. 딸은 엄마가 얼마나 어떻게 자기 맘을 해쳤는지 알고 있다. 그치만 그녀는 그의 엄마다. 그가 사랑하는 사람이고 그가 사랑받고 싶은 사람이다.

나는 애증의 부모 자식 관계가 주요 플롯이면 별로 손이 안 간다. 몇 작품 읽어봤으니 됐다 싶다. 또 다분히 개인적인 디테일에는 약간의 피로감까지 느껴진다. 나도 부모님께 불만 많았던 시기가 있었는데... 원망이 어느덧 눈녹듯이 씻겼다. 한동안 질퍽한 거리를 헤매야 했지만, 부모님은 할 만큼 하셨고 앞으로의 내 인생은 나의 몫이라는 자각이 들었다.

아룬다티 로이도 자기 몫을 해냈다. 엄마는 여전히 제멋대로였지만 아룬다티는 그런대로 그녀 곁을 지켰다. 그녀를 향한 자기의 사랑을 저버릴 수 없었던 것 같다. 마지막에 그녀가 제일 사랑했던 사람이 자기라는 메시지를 받고 얼마나 복잡한 맘이 들었을까.

잔인한 엄마가 버린 사악한 크루엘라는 엄마를 똑닮은 재능으로 엄마를 애타게 하고 결국 엄마의 명예를 말살시켜 복수한다. 아룬다티 로이는.. 그럴 의도는 아니었겠지만, 경험한 일 아니면 쓰지 않는 작가들은 종종 자기네 인생을 고발함으로써 주변 사람들에게 복수하는 것 같다. 그래도 이 책에선 복수보다 사랑이, 미움보다 애정이 더 읽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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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 - 2025년 부커상 수상작
데이비드 솔로이 지음, 송예슬 옮김 / 서해문집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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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뭐야이게뭐야이게뭐야이게뭐야

이거 도대체 뭔 소설이지????? 뭘 말하고 싶은 거지??? 혹시 말하고 싶은 바가 없나??????

(이 문단 강강강 스포!!!!!!) 헝가리에서 런던으로 런던에서 다시 헝가리로. 헝가리에서 싱글맘과 살던 소년이 이웃집 아줌마랑 첫 섹스하고 아줌마 남편 죽여 소년원에 갔다가 군대 갔다가 어떤 아저씨 목숨 구해주고 취업했다가 부잣집 사모님한테 낚여 부자 생활하다가 다 잃고 다시 헝가리에서 경비일 하는 이야기.

뒷 표지의 찬사들이 하나도 납득가질 않는다. 헤밍웨이를 소환한다고? 그래, 진득한 감정 묘사가 없긴 하다. 그렇다고 부재로 인해 채워지는 것이 있는 건 아니다. 주인공은 섹스로 엮인 관계가 아니면 감정 교류가 아예 불가능한 캐릭터다. 그마저도 여자에게 키를 줘버리고, 그냥 끌려다닌다. 내가 기억하기론 이 사람이 소신을 가지고 지키려 했던 순간은 딱 한 번. 아들내미가 학교에 괴롭히는 친구 피해 전학가겠다고 하자 그건 항복하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극구반대했던 순간. 주인공의 아들이나 의붓아들이나 자기가 원하는 걸 똑바로 설명하지 못하는 건 주인공과 똑 닮았다. 이들은 스스로가 뭘 원하는지 그 자체를 모르는 것 같기도. 속내는 모르겠으나 주변 사람들한테는 어떻게 되든 상관없단 식으로 굴고 있다. 속이 조용해서 독자들에게 여지를 남긴다기 보다, 정말로 별 생각이 없는 캐릭터같다. “모르겠는데요.” “알겠습니다.” 앵무새처럼 대답한다.

요즘 이상하게 읽고 싶은 책들은 아껴 보고, 뉴스 보듯이 세상사 팔로우업하는 느낌으로 읽는 ‘유명세 탄‘ 책들은 끼고 살고 있다. 포모 때문이다. 도서관에서 선점하지 못하면 대출 순번이 한참이나 밀리니까 우선적으로 읽게 된다. 샐리 루니 <인터메초> 절반 가량 읽다가 감정과잉에 녹초가 되어 도망쳤었는데 여기는… 한껏 망가져가며 나 좀 알아줘!!!!! 내 감정 알아차려줘!!!!! 발악하는 것 같다. 샐리 루니네가 감정의 바다에 빠져 허우적대는 쪽이라면 데이비드 솔로이의 <살>은 피부를 찢으며 속에 든 것을 보여주는 지진같다. 아무 말 없이 요란하다. 겁나게 흔들기만 한다. 짜증난다. 어쨌든 난 이 작가의 고고한 의미를 알아봐주고 싶지도 않다. 너어어무 고독해서 속마음을 묘사할 옹알이조차 배우지 못한 캐릭터 설명을 섹스로 퉁치는 게 참… 게으르다. 남자가 몸을 감각하는 경로는 오직 섹스뿐....이라는 편견을 심어준다.

딱 하나, 단일한 몸과 존재 사이의 괴리를 다루는 묘사는 좋았다. 자기 몸에서 비롯된 욕망을 제삼자의 것 보듯이 관찰자 입장에서 인식할 때가 있다는 것을 주인공이 인식하는 장면은 인상깊었다. 어쩌면 이 책은 거기서 비롯되었을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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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8 타이완 여행기 - 2026 부커상 인터내셔널 수상작, 2024 전미도서상 번역부문 수상, 2024 일본번역대상 수상, 2021 타이완 금정상 수상
양솽쯔 지음, 김이삭 옮김 / 마티스블루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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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보 일본인 소설가의 대만 미식 탐방. 알잘딱깔센 대만인 통역사가 하드캐리하는. (철 지난 유행어들이죠? 저는 요즘말은 잘 모르는 소강기에 접어들었답니다.)

처음에는 소설가가 심중과 먹성을 2000% 이해하는 와이프를 얻었다며, 맘속으로 비꼬면서 읽었다. 나중에는 약혼자 버리고 자기랑 내지(일본)로 가자고, 거기서 너 하고픈 거 해라는 ‘친구’로서의 제안을 낼름 하는 모습에 답답했다. 소설의 끝자락에서야 이야기의 배경, 식민지 타이완을 의식했다. 미식은 딱히 와닿지 않았다. 활자로 묘사된 이국음식안 별로 궁금하지 않았다. 그래도 근래에 온사케를 즐겼던 건 이 소설 영향이긴 해.

위계가 내포되어 있는 애정 관계에선 한쪽이 다른 한쪽에게 위치로 상처를 주는 플롯 별로 안 좋아한다. 여자 남자 관계에서는 특히. 왜냐하면 난 자꾸 가난한 여자주인공에게 이입을 해서 공감성 수치? 공감성 굴욕?을 느낀다. 그런데 이 여자들 사이에선, 대만에 잠깐 여행 온 그러므로 떠날 힘이 있는 일본인 소설가에게 이입을 해버렸다. 마치 이들 관계가 연장되기 위해선 그의 제안이 타당했다고 생각하며.

그런데 정말로 한 번도 안 물어봤네. 보호받고 싶냐고, 수호천사가 되어도 괜찮냐고. 둘은 어느 여학교에 방문했을 때 그들처럼 친밀한 내지인-본섬인 여학생들을 소개받는다. 나중에 통역사는 소설가에게 두 여학생의 관계에 빗대어 둘의 관계를 이해시킨다. 대만인 친구를 지켜주고 싶은 일본인..

여권 신장 의식도 있고 일본의 제국주의에 대한 반감도 있는 깨어있는 지식인인 소설가는 무심코 일본이 대만에게 선사한 문명에 대해 감탄한다. 벚꽃, 철도, 음식... 여기에 통역사는 침묵한다. 그리고 재차 노멘 가면을 쓴다. 기민한 소설가는 친구가 가면을 덧쓸 때마다 알아차리지만 혼자서는 그 이유를 알아내지 못했다.

시간이 흘러 두 여자의 딸들이 이 여행기를 출판하고 번역했다는 설정이다. 1938의 기록이 21세기로 넘어와 우리 독자들을 만났다니, 가슴이 아리더라. 진짜 막 있었던 일 같고...ㅋㅋㅋ 나는 통역사의 남편이, 소설가가 통역사에게 선물한 옷을 버렸다는 얘기를 그 딸이 번역 후기에 지나가듯이 남김으로써, 둘의 이야기가 사랑으로 매듭지어졌다고 생각한다. 남편이 굳이 친구가 맞춰준 아내의 옷을 버린다? 아니지, 전 연인의 선물이니 거슬린 거지. 기모노라서 그랬을 수도 있지만.. 난 남편이 뭔갈 느꼈다고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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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식자들의 시간
줄리아노 다 엠폴리 지음, 이세진 옮김 / 을유문화사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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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자(저자에 따르면 보르자형 인간)가 먹히는 세상이고, 빅테크 수장들은 암것도 모르는 정치권 인사들을 업신 여긴다.

표지 상의 네 남자들 차례대로 일론 머스크, 도널드 트럼프, 제프 베이조스, 샘 올트먼 맞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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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제국: 권력, 자본, 노동 - 샘 올트먼과 오픈AI의 빛과 그림자
카렌 하오 지음, 임보영 옮김 / 생각의힘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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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우매우매우 재밌게 읽었다. ai 관련 책들이 우후죽순으로 쏟아져 나오고 있는데 개중에서 뭘 읽어야 할지 잘 모르겠다면 아묻따 이 책부터 읽어보시길. ‘오픈AI’ 탐사기다. 생성형 인공지능의 대중화의 포문을 연 회사의 발자취를 따라가면서 테크업계 안팎의 파벌과 이슈에 감잡을 수 있다. 샘 올트먼 축출 사건을 프롤로그로 삼았는데 책 전체를 읽고 나면 그 사건의 진의가 보인다. 샘 올트먼은 나르시시스트다. 회사 이익보다 개인의 이익을 더 우선시하며 자기 입맛대로 사람을 굴리기 위해 이간질도 서슴치 않는다. 근데 문제는 이게 당한 사람들만 알 수 있는 미묘한 지점이라 공개적으로 논하기는 거시기해서 결국 샘 올트먼은 왕좌에 복귀하고 만다.

책은 우선 통제광 머스크와 젠틀한 올트먼이 손을 잡고 오픈AI를 차리는 것부터 시작한다. 인공지능 산업은 1등 아니면 무의미한 업종인데 나쁜 놈들 손에 이 기술이 들어가면 세상이 망하기까지 한다. 그래서 둘은 인공지능의 혜택이 모두에게 공평하게 돌아가는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자기들이 선두에 서기로 한다. 마치 돈 욕심 없어 보이는 ‘비영리 조직’이란 틀을 쓰고. 대외적으로는 그럴싸 한데 실은 그냥 지들 입맛대로 판을 (다시) 짜고 싶었을 뿐이다. 액수에 집착하지 않을리가 있나. 지금 인공지능 산업은 폭주기관차다. 신규/기존 투자를 유치하려면 성과가 있어야 한다. 돈을 최대한 끌어와야 한다. 일단 수급이 몰리고는 있다.

인공지능을 발전시키려면 학습 자료인 데이터 세트가 있어야 하고, 연산 능력이 개선되어야 하며, 그걸 감당할 수 있는 슈퍼 컴퓨터와 데이터센터가 있어야 한다. 또한, 인공지능이 엇나가지 않게 사람의 노동, 데이터 어노데이션도 필수다. 승자 독식의 산업계에서 살아남으려다 보니 질서, 도덕을 따질 새 없이 일처리가 진행되곤 한다. 인공지능 학습 자료에 저작권법을 어겼거나 질이 낮은 데이터 세트가 포함되기도 하고, 상대적 빈국에 대충 기부금 던져주고 광활한 자연을 파괴하여 데이터센터를 짓는가 하면 케냐, 베네수엘라 같이 저임금이어도 노동자가 몰리는 나라를 골라 저질스러운 이미지 가려내는 작업을 시킨다.

큰일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단다. 데이터센터는 반드시 효율을 높일 것이며, 생성형AI가 기후문제의 방안을 마련할 것이고, 언제가는 도래할 AGI가 모든 문제를 단번에 해결할 것이란다. (강림하신 AGI가 인간에게 미쳤냐, 카운트다운이 끝나가는데 생각해낸 게 겨우 인공지능이냐, 인공지능은 너무 비효율적이다, 인간이 살 수 있는 지구를 유지할 아이디어는 있어도 그동안 기계 개발하느라 자본과 자원을 때려박아서 실행할 방법이 없다라는 결론을 내리면 세상은 어떻게 될까?) 재밌는 게 인공지능 산업 내부에서도 비관론자 두머(doomer)과 낙관론자 부머(boomer)로 나뉜다. 어느 쪽이든 자기네가 먼저 AI를 개발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안 그러면 세상은 망한다고. 두머는 효과적 이타주의(EA) 철학을 많이 참고하는데, 여기 발상은 선민의식의 끝판왕이다. “내가 잘 되어서 남을 도와야지.”

샘 올트먼이 치하하면서 말한 바인데, 오픈AI 내부에서도 위와 같은 파벌이 존재한다. 수츠케버를 선두로 한 탐색적 연구파, 아모데이 남매로 대표되는 안전파, 브로크만이 지휘하는 스타트업파. GPT의 더 나은 버전을 출시하기까지 회사 내부에서 이 파벌들은 많이 부닥쳤다. 나중에 아모데이는 이 회사와 결별하고 ‘앤트로픽‘을 차린다. 그리고 수츠케버는 나중에 올트먼 축출 사건에서 컴백 요청 받았다가 컴백 요청에 대한 취소 요청까지 받는다. 시간에 쫓겨 안전성 검사는 하는 둥 마는 둥 해서 안전파 사람들을 극대노하기도 했지만, 해보고 “아..씁…이건 공개치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세상에 문제를 일으킬 여지가 많습니다…”라며 한 발 물러나기도 했다.

프랑켄슈타인과 달리 자기의 피조물의 위험성을 명확히 인지한 척, 컨트롤 할 수 있는 척 액션을 취한 것은 가히 감탄할 만하다. (근데 궁금점, ‘비공개 결정‘은 포장일 뿐 사실은 미완성 아닌가?) 오픈AI가 늘 고고하게 굴 수 있었던 건 아니다. 앤트로픽이 곧 챗봇을 공개한다는 소문에 못이겨 세상에 내놓은 게 chatGPT다. 이게 아주 일반인들에게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켜 나같이 인공지능 산업계에서 멀찍이 떨어져 있는 사람에게도 닿았는데, 챗지피티의 효과를 예상치 못한 오픈AI는 행정업무에 아주 애를 먹었다. 그전에도 API 신청 리스트 관리에도 명확한 기준이 없어 얼레벌레 굴러갔었던 ’작은’ 회사였기 때문이다.

생각보다 체계가 탄탄한 곳이 몇 없다. 세상은 요지경. 체계란 것도 과거의 헛짓거리에서 배운 것들을 바탕으로 쓸데없는 소모적인 과정을 쳐내고 일의 능률을 높이기 위해 세운 것인데, 변화무쌍한 AI 산업계에서 체계를 세울 시간이 어딨나? 업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파악할 수 있는 사람도 몇 없는 것 같다. 저마다의 목적이 있을 뿐. 그런 의미에서 저자에게 깊은 감사를 표한다. ’확률적 앵무새‘가 전해주는 말로 사태를 쫒아가다가는 가랑이 찢어진다. 인공지능의 헛소리를 ‘환각’이라고 하는데, (저자였는지 저자가 인용한 어떤 전문가의 말이었는지는 기억 안 난다) 이는 인공지능의 (해결 가능한)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 (고유한) ‘특징‘이라고 꼬집는다. 그렇다고 해서 인공지능의 활약을 무시할 수 있는 처지는 아닌 것 같다. 이미 우리는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 어쩌면 근미래의 인간의 교양은 인공지능의 헛소리를 구분할 수 있는 능력일지도. 일단 나는 관련 자료, 농담, 담론들을 부지런히 찾아서 읽어보려고 한다. 이러다간 언제나 한발자국 늦게 세상을 알아차리는 게 아닐지 걱정되긴 하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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