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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메초
샐리 루니 지음, 허진 옮김 / 은행나무 / 2026년 1월
평점 :
인정. 인정한다. 샐리 루니가 우리 시대의 작가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두 형제가 각자의 결핍과 상황 속에서 구렁텅이에 빠져드는 선택을 할 때마다 병신이라고 욕하면서 읽었다. 감정과 생각과 동작의 나열에 지치기도 했다. 이거 너무 과잉이야. 마치 유튜브에서 만담을 틀어놓고 쇼핑몰 앱 세 개를 들락거리며 식사를 하는 나를, 일일이 텍스트로 ‘쓸데없이‘ 기록하는 느낌이었다. 3부에 이르러서야 인물들이 치고박고 감정과 사정이 폭발하면서 몰입감이 올라갔다. 졸려죽겠었는데 잠들면 안 될 타이밍이라 끝까지 읽었다. 마지막 마무리가, 놀랍게도 내가 늘상 중얼거리던 그 말이라서, 쫌 울었다. 공명하는 작가를 만났다.
독자로서 나는 캐릭터들을 무자비하게 평가한다. 그들의 일생 혹은 그 일부와 함께 등장한 인물을 내가 일생동안 다져온 도덕관념과 성질머리를 활용해 나의 이해범주 안에 넣으려고 한다. 피터-실비아, 피터-나오미, 아이번-마거릿, 피터-아이번 모두 정신차리라고 말해주고 싶은 관계들이었다. 끝까지 읽기 전까지 이들의 관계는 그저 서로에게 toxic한 것 같았다. 누구네는 절대 솔직하게 굴지 않고, 누구네는 세상의 편견과 풍파에 맞서 싸우느라 곧 지칠 것 같았고, 또 누구네는 그냥 건널 수 없는 강을 사이에 둔 것 같았다. 그런데 이들끼리 서로 어긋나게 조우했을 때 마법이 벌어졌다. 작가가 좀 이상화한 감도 없지 않지만, 생각보다 서로를 마음에 들어하고 상대방이 괜찮은 사람인 것 같다는 인상을 받으며… 용서를 구하고 화해한다.
내가 보기에는 절단, 손절, 단절, 고립이 각자를 살리는 길이었다. 그런데 또 거미줄을 쳐서 인생들을 엮이게 만들다니. 이들이 낯선 조우를 할 때 이미 관계맺은 사람에게서 전해들은 바로 눈앞의 누구를 재단하지 않는 태도를 보였기에 그 마법이 일어난 것 같다. 나오미-실비아, 나오미-아이번, 마거릿-피터의 만남에서 서로는 “말씀 많이 들었던” 그 인물이 그렇게 부덕하지도, 그렇게 막나가지도 않는 체온 있는 사람이란 걸 알게 된다. 더불어 방해꾼으로 여겨졌던 사람이 오히려 관계를 다른 국면으로 접어들게 한다. 오해가 접히고 인물은 고립되지 않는다. 현재에 집중한다. 나는 그 변화가 썩 마음에 든다. 막판에 엄마가 너무 엄마다웠고 마거릿이 홀리한 여신 느낌이 나는 all is well 마무리도 납득할 수 있다. 다른 가정의 엄마가 되어도 여전히 그들의 엄마 역할을 해내고, 동생의 나이 차이 많이 나는 애인이 좋은 사람이라는 게 이제는 그의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니.
사실 샐리 루니 신작 나왔단 소식을 들었을 때 시큰둥했었다. <노멀 피플>을 재밌게 읽긴 했으나 그게 다였다. 그런데 최근에 읽은 <왜 나의 다정함이 당신을 상처입힐까 >에서 아주 중요했던 니체의 어느 구절을 똑같이 중요하게 다루는 소설이길래.. 읽어보자 결심했다. 그 철학교양서를 반만 이해한 것 같은데 이 소설을 읽으면 남은 반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해서. 그래서 얻었냐면, 시도해보겠다. 같은 단어 속에 서로 다른 의중을 담은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면? 파국에 치닫을 수 있다. 그런데 중요한 건 둘이 대화를 한다는 거다. 그러니까 대화에 참여하게 만드는, 알리고 싶은 어떤 ‘마음‘이 있다는 거다. 한 수 앞을 내다보려다가 마음을 무시하게 될 수도 있다. 그러면 그 게임은 망한다…. 언젠가는. 억압된 것은 돌아온다. 마음이 시한폭탄이 되지 않게 잘 돌보아야 해.
아니면 그냥 그 폭탄을 터뜨리는 것도 방법이다. 아버지라는 역장이 두 형제의 역할과 행동을 고정시켜놓고 있었다. 아버지의 장례식에서 시작되는 이 소설은 그 역장이 사라지면서 내면의 분노를 터뜨리게 된 두 형제를 그린다. 둘 다 애정관계에서 자극을 받는데 결과적으로 잘 풀린다. 부모의 품이 석연찮던 두 형제는 연인이라는 괜찮은 안식처를 찾고나서 서로에게 너그러워진다. 문제가 속시원하게 해결되는 양상은 아니다. 그냥, 마주한다. 그리고 앞으로도 마주하기로 한다. 어쩌면 그게 다다. 근데 이거 사실 무지 어려운 거다. 나는 마주해도 상대는 모르쇠로 일관할 수 있고 반대로 나는 묻어두고 살고 있는데 갑자기 누가 들쑤시면 괴롭지. 이 소설의 묘미는, 내가 괜찮아지기로 결심한 게 상대방에게 적절히 읽혔다는 것. 상대방이 슬쩍 마음을 열어줬다는 것. 각자가 각자의 문을 열었다는 것. 마법이다.
요즘 애착 유형으로 사람을 안정형, 불안형, 회피형 등으로 분류하는 걸 많이 봤다. 그리고 ‘정병‘이란 유행어는 나도 아주 유용하게 쓰고 있다. 심리학 용어가 대중화되고 밈이 되면서 사람들이 마음 상태는 그럭저럭 진단하는 것 같다. 이제 그 다음 단계인 화해와 용서로 나아가기 위해선 무얼해야 하나. 내 생각엔 버티기 같다. 우리는 알고리즘, 쇼츠, 차단 문화 속에서 견디기 힘든 건 치워버리는 훈련을 자주하니까, 그 반대가 필요한 시점이다. 버티는 건 괴롭다. 그 버티기에 문학이 도움된다.정병 온 주인공들의 행적을 눈으로 좇아가며 이런저런 훈수두다 보면 자기 인생을 돌아보게 되고 위로도 받고 용기도 생긴다. 그러니 다들, 인터메초에 문학으로 도망치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