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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홀니스 - 나를 완성하는 다섯 가지 깨어남
켄 윌버 지음, 추미란 옮김 / 판미동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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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연하게 한 인간이 이르게 되는 깨달음의 단계까 인류의 발전사랑 닮아있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켄 윌버는 비슷한 아이디어를 제대로 이론화했다.

하필이면(?) 현대에,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 이르러서 ‘통합’된 버전이 등장해, 인간이 점점 완성되어가는 존재라는 뉘앙스를 풍긴다는 점에서 다소 근대적인 사고 같긴 하다만. 이건 내가 아직 뒷 내용을 읽지 않아서 얄팍한 이해로 가진 단상일 수도 있다.

그래도 이 책을 읽으면 내 인생이 조금 달라질 줄도 모르겠단 느낌이 든다. 다이나믹하진 않아도 적어도 사람을 보는 안목이 좀 생기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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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온 미래 - AI 이후의 세계를 경험한 사람들
장강명 지음 / 동아시아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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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장강명이 AI피바람이 분 바둑계를 조망하다.

문학계라면? x% 예술적인 문장입니다, 따위의 인공지능이 상륙할텐가, 따위의 고뇌를 엄청 많이 한다. 솔직히 조금 유치한 상상같다만.

제목 잘 지었다. 바둑계야말로 인공지능의 위력을 가장 먼저 체감한 사람들일 터. 그들의 경험을 들어보는 것이 앞으로 생성형 인공지능이 활개를 펼치는 사회를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되겠다.

강 인공지능이 비로소 도래한 세상을 그린 글들 중 겁주려고 쓰였나 싶을 정도로 불빛 뒤에서 그림자를 크게 부풀린 것들이 있다. 하지만 이제 장강명의 작업 덕분에 사람들이 현실로 나타난 현실적인 미래를 바탕으로 상상하게 될 것 같다.

그런데 경우의 수가 우주의 원자 수보다 많다면, 오히려 큰 수의 법칙을 적용하기 좋은 거 아닌가? 그러니까 바둑이 실은 무한한 계산만 가능하다면 확률 따지기 딱 좋은 주제 아니었나. 애초에.

출판계 사람들이 유독 많이 읽는 것 같은데 왤까. 암튼 나도 핫하대서 읽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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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포비아를 넘어서 - 4자녀 엄마 기자가 해부한 초저출산 대한민국
이미지 지음 / 동아시아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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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가질 것으로 기대되는 나이가 되어갈수록 ‘나의 아이를 낳아 기르는 삶’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얼마나 먼 미래일지, 정말로 겪게 될 일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일단 생각하기 시작했다는 것에 스스로가 신기하다. 전에는 정말 하나도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한 친구가 내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넌 너에게 스스로가 너무 소중한 사람이라, 아이를 낳지 않을 것 같아“라고 말했다. 그럴지도 모르지.

만약 내가 아이를 낳게 된다면, 갖추고 싶은 선결조건이 있다. 첫째, 나이스한 파트너. 둘째, 탄탄한 재정. 셋째, 내가 엄마라는 정체성을 받아들일 준비가 됨. 이왕 자식이 생길거면 잘 키우고 싶고 자식 있는 내 삶도 잘 꾸리고 싶다. 번식본능이 있는 웬만한 인간들이 다 그럴 것이다. 그런데 저자가 조목조목 짚어주듯 한국사회는 이미 육아포비아에 물들었다. 1부, 2부는 아이가 갈수록 적어지는 우리 사회를 널리 관찰하고 기록하였는데 어렸을 적부터 ‘저출산 고령화’를 귀에 딱지 앉을 정도로 듣고 자란 내겐 다소 식상한 내용이었다. 저출산은 심각한 문제고, 돈 문제, 가부장적 분위기, 핵가족이라는 환상이 근본적 원인이라는 점.

반면, 출산 경험이 없는 사람으로서 3부는 꽤나 새로운 내용이었다. 저자가 생각하는 해결책의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어서 제도의 맹점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었다. 대응책이라고 마련한 다자녀 지원 정책 등도 ”일단 낳으라“는 주의여서 아이가 성장하는 단계별로 적절한 지원은 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또한 하도 저출산저출산저출산 노래를 불러서 젊은 세대에게 이미 친숙한 문제로 자리매김해 그 경각심이 잘 발동하지 않는다고.

한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왜 저자가 저자로서 ’저출산’이라는 용어를 선택했는지를 설명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페미니즘은 ‘저출산’은 그 책임이 여성에게 가중될 수 있기에 ‘저출생‘이라는 표현을 제안했고 설득력 있는 제안인 만큼 ‘저출생‘이 널리 사용되고 있는 걸로 안다. 짐작건대, ‘육아포비아‘ 현상에 관심 있는 독자라면 ’저출생‘에 익숙할 것이다. 만약 출산의 주체로서의 여성의 입장을 강조하고 싶었더라면 ‘저출산’이 마땅한 선택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2부의 “여전히 시월드라는 공포”란 부제의 장과 3부에서 클라우디아 골딘을 인용하며 “사회가 오랫동안 만들어 온 성 역할과 성별 분업, 가정 내 권력 구조 탓에 조정하고 포기하는 쪽이 되는 건 대체로 여성이다.”(229)라고 지적한 부분을 제외하고는 그다지 여자로서 엄마로서의 고충을 다루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육아에 있어서 어느 한 성별의 책임이 부각되는 것을 지양하고 싶었다면 ’저출생’이라는 용어가 더 적합하지 않았을까.

게다가, 동기들은 여자가 훨씬 많은데 막상 교수 임용되는 건 남자가 더 많다는 인터뷰에 관해 저자가 단 코멘트가 다음과 같다. “진원 씨 역시 박사 과정 동기들과 교수 임용 자리를 두고 치열한 경쟁을 벌인 7년간 피임하면서 ‘겨울나무처럼’ 버텨왔다고 할 수 있다. 어쩌면 남자 동기들 역시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육아와 취업, 학업을 병행하는 건 아이 아빠에게 쉬운 일은 아니다.”(104) 그럴 것이다. 그런데 여성으로서의 경험을 이야기하는 와중에 남자도 힘들었을 것이라고 굳이 덧붙이는 건 좀 아쉽다. 실컷 가부장적 문화를 지적하고(155) 요즘에는 일과 육아로 고단한 아빠의 모습이 흔해졌다고(156) 균형을 맞출 것까지는 없지 않을까.

솔직하게 말하자. 임신, 출산, 육아에서 여성의 압도적인 비중과 희생은 현재완료형이다. 원래 여성의 몫이라서가 아니라 그렇게 여성들이 키워졌다. “남성과 동일한 교육을 받고 자라 사회적 지위, 성공에 대한 욕구도 높고 저돌적인 도전 정신을 지닌 강한 여성”(144)들이 등장했어도 “낮은 여성고용률”(71)이 현실이며 저자가 229쪽에서 지적했듯이 아이에 관한 긴급한 상황에서 직장에서 달려나가는 쪽은 여성이다. 또한 나는 명절에 시댁 먼저 가는 문화나 시댁에서 닭을 삶을 때 며느리만 빼고 다리를 준다거나 하는 것이 ”아주 사소하고 작은 차별“(154)이라는 저자의 의견에 동의할 수 없다. 은근하고 찌질한 차별일수록 더 곱씹게 되고 속상하다. 그것을 작고 사소하다고 치부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육아를 권하지 않는 사회는 단순히 새 생명을 반기지 않게 된 것이 아니다. 인간이 다른 인간을 대하는 태도에서부터 문제가 생겼기 때문이다. 누구를 존중하지 않는지는 조금만 생각해봐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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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우 유튜브에서 아들을 구출해 왔다 교양 100그램 8
권정민 지음 / 창비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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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이 낭만인게 쿨한 태도라니, 나때는 박근혜 탄핵에 적극 찬성하는 게 쿨한 거였단 말이다. 나랏일에 관심 가지고 민주시민으로서 도리를 하는 것처럼 보였단 말이다. 그래서 나도 아는 척 좀 하고 그랬단 말이다. 그런데 10대 남성들의 극우화로… 힙한 것의 내용물이 질적으로 많이 달려졌나보다.

십대들이 쿨 추앙자인 게 문제가 아니라 극단주의를 쿨해보이게끔 하는 극우화되는 세상이 문제다. 혐오를 몰아주는 대화법이 통하려면 이를 주도하는 부모가 우선 혐오에 경각심을 가지는 사람이어야 하는 것처럼. 그리고 아이와 ’대화’를 하는 사이여야 한다.

대화법의 핵심은 우선 공감해주며 아이가 마음을 열 수 있게끔 유도하고, 아이가 직접 보고 듣고 느낄 수 있는 가까운 사례를 들어 극단주의 생각을 몰아내기. 가장 의외였던 점은 바로 팩트폭격은 그다지 도움되지 않는다는 것. 확증편향의 자세로 오히려 기존의 생각을 더 굳히는 계기가 될 수 있으므로 사실관계를 밝히는 것은 토핑처럼 마지막에 쓰윽. 그리고 평소에 ‘토론‘을 자주할 것.

아이 키우기 정말 힘들다….. 좋은 것만 보여주고 들려주고 입히고 먹이고 했는데 어느날 갑자기 “엄마, 여가부는 폐지되어야 해”라는 도대체 어디서 함부로 듣고와서 지껄이는지 모르는 개소리를 시전한다면 정말 가슴이 철렁할 것 같다. 나도… 비슷한 경험이 있지. 사랑하는 사람이 나와 다르다 못해 한쪽으로 치우쳐진 생각을 보일 때, “왜 그렇게 생각해?” 이 한마디만 던지고 입을 다물어버렸었는데 앞으로는 그러지 말아야겠다.

역시 사랑은 인내하는 것. 요즘 preaching the choir만 해서인지 우물 안의 개구리가 되는 느낌이었는데 그렇다고 혐오의 온상과 대화를 시도하자니 스트레스 지수가 폭발한다.. 저자도 아이가 아닌 어른과 대화할 때는 논리로 냉정하고 치열하게 밀어붙여도 좋다고 하지만, 가끔 그들이 유치원생보다 어린 것처럼 보일 때도 있단 말이다. 딱 한 사람을 설득해야 할 때는 온힘을 다해 그 사람을 품에 안아야 할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이것도 빌어먹을 나의 착한 모성, 여성성 때문인가?

#극우유튜브에서아들을구출해왔다 #대화법 #권정민 #교양100그램 #그램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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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밀한 사이
케이티 기타무라 지음, 백지민 옮김 / 문학동네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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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와 문화가 여러 갈래인 사람들은 그 나뉘어진 길 위를 정처없이 헤메면서 자기가 누구인지 알고 싶어한다. 단 하나의 세계에 속한 사람도 자기 정체성을 고민한다. 그러다 대개 떠난다. 그리고 돌아온다. 하지만 이미 떠나옴 위에서 시작하는 이들은 돌아갈 곳이 없어 여러 갈래의 선택지와 그 무엇도 선택하지 않는 선택지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그 자신의 서사와 장소를 기어이 발명해내고야 만다.

케이티 기타무라, 일본계 미국인이라는 본 저자의 정체성이 이 소설의 분위기를 주름잡는 것 같다. 아마 중국은 아닐 아시아계 여성인 주인공은 중립국인 네덜란드의 재판소에서 통역가로 일한다. 야나라는 미술관 큐레이터 친구가 있고, 아드리안이라는 아직 결혼생활 중인(애도 있다) 연인이 있고, 그 아드리안을 고깝게 보는 케이스라는 변호사는 직장에서 마주치고, 직장에서는 반인도적인 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기소된 범죄자들의 말을 통역해야 한다. 언어 사이에 탈출구가 없게끔 하는 작업을 업으로 삼은 이답게 주인공은 사람들이 대화 속에서 고의로 누락시키는 것들에 예민하게 반응한다. 아냐가 그와 아드리안을 집으로 초대한 상황에서 나눈 대화를 두고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그녀는 아드리안에게 그의 일, 그가 거주하는 지역에 관해 몇 가지 물었는데, 그녀가 이미 답을 알고 있는 무해한 질문들이었다. 그녀는 잠재적으로 낯 뜨거워질지 모를 영역 가까이로는 감히 발을 들여놓지 않았다.”(94)

이렇듯 선, 거리, 균열지점을 정확히 짚을 줄 아는 주인공은 언어와 언어 사이의 진공, 사람과 사람 사이의 진공을 더욱 절감하게 되는 사건이 연이어 발생한다. 친구 아냐는 일로 바쁘고, 연인 아드리안은 전처랑 문제 해결하겠다고 리스본으로 떠나고, 아냐의 소개로 엘리너라는 새로운 이와 가까워지지만 그의 내밀한 사정을 알아버리는 바람에 더 가까워지지 못한다. 주인공이 여러 대화에서 적극적이라기보다, 참여하면서도 대화 자체를 관망하는 느낌을 받았다. ‘통역사’이기 때문일까. 한편 어느 아프리카 국가의 전직 대통령의 말을 통역하게 된 주인공은 양가적인 경험을 통해 분열을 겪는다. 그의 말을 옮기는 과정에서 끔찍한 짓을 저지른 그의 관점에 저도 모르게 입각한다든지, 그의 말을 고지곧대로 옮겨야 하는 가운데 그를 경멸하는 어조가 담겨버린다든지. 결국 자기는 “기질”적으로 이 일과 맞지 않다고 판단해서 승진 제안을 거절한다. “내면의 희생”이 너무 크기 때문에.

나라면 내가 옮기는 말들에서 나의 의견과 감정을 분리해낼 수 있을까? 대변해야 하는 입장도 아니고 그저 전달하기만 하면 되는데도 분리하기 힘들까? 난 가능할 것 같다. 이 문장을 지웠다고 다시 쓴다. 버스에 오르고 내리는 동안 고민했다. 가능할 것 같다. 그러면 글은? 인용부호 잔뜩 쓰면 가능할 것 같다. 아니다, 글은 오히려 힘들 것 같다. 나는 늘 나 중심적으로 글을 쓰기에, 나와 상관없는 글을 쓸 수 없다. 그래서 글에선 중의적이기 힘들다. 왜 말에선 가능할까. 고민해볼 일이다. 그리고 범죄자의 평정은 못 견디고 연인의 멀끔한 얼굴(잘생겨서 그런가?)은 견뎌보려는 주인공을 어떻게 이해해볼 수 있을까. 난 오히려 반대일 것 같은데. 내가 옮기는 말은 나를 관통하고 내가 듣는 그의 거짓말, 침묵, 회피, 혹은 진실은…. 모르겠다.

사실 이 소설 전반부부터 너무너무 재밌었던 나머지 원서를 장바구니에 담아뒀다. 번역도 참 매끄러워서 거슬릴 게 없었지만 그래서 더 원어가 궁금해졌다. 후반부로 갈수록 작가가 흩뿌려뒀던 잔잔한 캐릭터들의 서사도 완성되고 주인공 역시 운명과 선택을 향해 달려가지만 뭔가 전반부와 정보의 비대칭성을 이뤄서 그런가 후반부는 맥이 빠지는 느낌이다. 안톤은 왜 그렇게 주물럭대는 놈으로 결판났는지, 혹 여지껏 정제된 대화들과 대비를 이루기 위함인지, 케이스와 아드리안, 개비는 어떤 도파민 도는 썰을 가지고 있을지, ‘해변‘은 결국 주인공 마음속에 자리잡을 고향같은 장소가 될지 등등 머릿속을 스쳐지나가는 감상이 많다. 그래서 꼭 언젠가 영어로 다시 읽어보려고 한다. 킨들을 사든 원서 종이책을 구하든.

마지막으로, 나는 모르고 저자 혼자 박식한 예술작품에 대해서 소설에서 함부로 묘사하는 걸 싫어하는데, ‘유딧 레이스터르’를 소개받아서 좋았다. “그 그림은 어떤 분열을 중심으로 작용하며, 화합할 수 없는 두 개의 주관적인 입장을 대변했다. 이 장면을 정열과 유혹의 장면이라고 믿었던 남자, 그리고 공포와 치욕의 상태에 내던져진 여자. 그제야 나는 깨달았다. 그 분열이야말로 캔버스에 생동감을 불어넣는 진정한 불일관성이자,레이스터르의 시선에 담긴 진정한 그림의 대상이라는 것을.” 주인공이 끊임없이 겪는 ‘분열‘을 단적으로 상징하는 소재로 쓰여 작품의 깊이감을 더해준다. 이 소설은 잘 쓰인 브이로그 같다. 주인공의 일상이 다소 예쁘다. 저자가 감각적인 사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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