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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만드는 세계 위대한 도시들 2
N. K. 제미신 지음, 박슬라 옮김 / 황금가지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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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들의 고유한 에너지가 도시의 심장박동에 따라 울린다. 우리가 곧 도시야, 인간은 세계를 창의해. 그러니 세상을 주의깊게 ‘관찰’하렴. 무언가가 되려는 염원, 구분 짓고 배제하려는 혐오 같은 마음이 생각보다 많은 것을 결정한단다. 도시는 언제든지 우리의 마음에 귀기울이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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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민 토킹
미리엄 테이브스 지음, 박산호 옮김 / 은행나무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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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로치나 여성들은 읽을 줄도 쓸 줄도 모른다. 집단 성폭행을 당한 후 공동체를 떠날지 말지를 의논하는 자리에서 한 남성에게 기록을 부탁한다. 그 남성은 아우구스트, 부모 손을 잡고 공동체를 떠났다가 다시 돌아온 자로 아이들에게 숫자와 글자를 가르치는 선생이다. 이들의 회의를 아우구스트의 시선으로 아우구스트처럼 구석에서 경청하는 읽기는 꽤나 흥미로웠다. 오디오북으로 들으면 더 몰입될 것 같다. 영화로 보는 것도 좋겠다. 여성들의 최종결정은 책 표지를 펼쳐보면 알 수 있다. 여성이 말을 끄는 그림이 말해준다. “우리는 아이들이 안전하길 원해. 우리의 신앙을 지키고 싶고, 생각하고 싶어.”(182) “이곳을 떠나는 일은 우리에게 좀 더 멀리 볼 수 있는 관점을 얻게 할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용서하는 데에 필요하며, 우리가 지닌 믿음에 따라 제대로 사랑하고, 평화를 지키는 일이다.”(168)

고립된 공동체에서 살아온 여성들이 나눈 이야기는 오늘날 글로벌 페미니즘의 의제들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모든 남자가 다 그런 건 아니잖아. (중략) 아마도 문제는 남자 그 자체가 아니라 남자들의 머리와 마음을 잠식하도록 허용된 치명적인 이데올로기겠지.”(105) “우린 일원이 아니라고! 우리는 몰로치나의 여자들이야. 몰로치나라는 공동체 자체가 가부장주의의 토대 위에 쌓아 올린 거야.”(183) “그들이 권력을 추구했기 때문에. 권력을 휘두를 대상이 필요했고 그게 우리가 된 거지.”(187) “문제는 성경에 대한 남자들의 해석과 그것이 어떻게 우리에게 ‘전수됐냐는’거야.”(237) “우리는 아들들이 타인을 연민하고 존중하는 사람이 되도록 키우는 과정에서 재교육을 유기적으로 하게 될 거야.”(239) “다른 여자들이 살아남기 위해 특정 상황에서 그들이 해야 한다고 느끼는 일을 할 때, 네가 위선자처럼 굴면 안 되지.”(269) 서구 여성 작가의 시선에서 그려진 소설이기 때문에 다소 익숙한 언어들일 수 있다. 이점을 작가도 의식했는지, 아우구스트의 입을 빌려 저지대 독일어를 영어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몇몇 단어들을 상당히 의역했음을 언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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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미 - 내 이름의 새로운 철자
오드리 로드 지음, 송섬별 옮김 / 디플롯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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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드리 로드, 자미에게는 여성들과의 관계가 바로 집이었다. 제니, 진저, 비, 유도라, 뮤리얼, 아프레케테로 이어지는 사랑 연대기를 통해서 그 점을 깨닫는다. 어머니의 집을 떠나서 만난 여자들과 나눈 사랑이 오드리 로드를 자미로 키워주었다고. 자미는 서인도제도에서 레즈비언을 일컫는 말 중 하나로 “친구이자 연인으로서 함께 일하는 여성들을 부르는 캐리아쿠식 이름”(440)이다. 오드리 로드의 이 책 뒷내용의 삶이 어땠을지는 잘 모르겠으나 이 책 속에서 그는 자기의 상처와 꼭 맞는 사람들을 만난다. 그래서인지 여자들은 서로 닮아보인다. 뮤리얼에게서 제니가 겹쳐보이고, 유도라에게 오드리는 오드리에게 진저같기도 또는 비같기도 하다. 여신같이 묘사된 아프레케테에 할애된 장은 비교적 짧지만 오드리에게 “정서적인 타투”(437)로 남아 멘토 역할을 하지 않았을까 짐작해본다.

오드리 로드가 어머니의 집을 떠나기 전 내용이 책 분량의 반을 차지하지만, 내게 인상깊었고 읽는데 속도가 났던 쪽은 후반부다. 그렇지만 전반부가 좀더 ’신화‘같았다. 특히 첫 생리가 터지고 어머니의 아름답고 신비로운 절구로 사우스를 해먹는 챕터는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이 연상되어 분위기가 신비스럽다. “온몸이 강하고, 꽉 차고, 열린 느낌이었지만, 여전히 절굿공이의 부드러운 움직임, 그리고 부엌을 가득 채운 풍부한 향기, 초여름의 열기가 품은 충만함에 사로잡혀 있었다.”(136) 이 날 이후로 오드리 로드는 그 절구를 쓸 일이 없었다. 그렇기에 이 절구 빻는 행위는 생리가 시작되면서 유년시절에 작별을 고하는 ‘의식’같기도 하다. 또 가장 신화스러운 챕터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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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중의 꽃향기 - 베네치아 푼타 델라 도가냐 미술관과 함께한 침묵의 고백 미술관에서의 하룻밤
레일라 슬리마니 지음, 이재형 옮김 / 뮤진트리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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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일라 슬리마니, 좋아한다. 소설 두 권과 인터뷰집 한 권을 읽었다. 이야기 만듦새가 반듯하다. 특히 <타인들의 나라>가 그랬다. 질질 끌지도 않고 휘몰아치지도 않고, 딱 작가만의 속도가 있다.

”나는 오브제의 진부함 뒤에서 아무것도 지각할 수 없었고, 그런 내가 좀 원망스러웠다.“(56) 현대미술에 문외한인 작가가 미술관에서 하룻밤 보낸다. 혼자서!

저자의 속이 시끄럽다. 나는 그렇게 느꼈다. 미술관에 하룻밤 갇히기 전의 최후의 만찬부터 아니, 그 제안을 받아들이게 된 편집자와의 만남부터 여명에 미술관을 나서기까지 끊임없이 조잘조잘거린다. 분량 고민을 했을까? 할 말이 넘쳐났을까 아니면 채우느라 애먹었을까. 어쨌거나 슬리마니는 자기 자신과의 수다로 종이를 채워갔고, 독자는 호기롭게 따라나섰다.

글쓰는 사람은 어떤 예술품을 봐도 결국 ‘글을 쓰는 자기자신’으로 돌아가나보다. 미술관을 하룻밤 동안 돌아다니면서 끊임없이 ‘쓰기 충동’에 시달리지 않았을까? 사진을 찍었을까? 메모를 하면서 돌아다녔을까? 작가는 끝에서 모로코에서의 어린시절, 이슬람교, 이민자 정체성, 아버지가 겪었던 일을 돌아보며 글쓰기로 회복중인 스스로를 진단한다. “작가가 되지 않았어도 나는 살아남았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작가가 되지 않았어도 행복했을지는 확신할 수 없다.”(151)

”역설적으로 느껴질지 모르지만, 어떤 장소에서 떠날 가능성이 있어야만 그 장소에서 살 수 있을 것 같다.“(142) ”나는 망명자가 아니다. 누군가의 강요로, 혹은 어쩔 수 없는 상황 때문에 떠나온 것이 아니다. 나는 내가 찾고자 했던 것, 즉 내가 원하는 대로 살 수 있는 자유, 몇 시간이고 카페에 앉아 포도주를 마시고 책을 읽고 담배를 피울 수 있는 자유를 파리에서 발견했다. 나는 이민자다.“(81) 다음날 동이 트면 떠날 수 있는 미술관에서 하룻밤쯤 감금되는 건 꽤 괜찮은 자유였지 않았을까.

“”신중함의 원칙“과 ”위험 제로“를 숭배하는 우리 사회는 우연을 싫어한다. 통제할 수 있다는 우리의 꿈을 무너뜨리기 때문이다. 반대로 문학은 상처와 사고의 흔적, 이해할 수 없는 불행, 부당한 고통을 소중하게 생각한다.”(95-96) 그리고 다음 장에서 금지된 행동을 한다. 화장실에서 담배를 핀다. “아무도 내가 이러는 걸 모르리라.”(98) 그리고 그걸 글로 썼지. 위대한 작가들은 종종 문학이라는 퍼포먼스에 사로잡혀 사는 것 같다.

레일라 슬리마니라는 작가를 알아가기 좋은 책이었다. 이 작가의 발자취를 오래 함께 하고 싶은 독자라면 꼭 읽어봤으면 한다. 시간이 흘러 작가가 몇 편의 소설을 더 출간했을 때 다시 <한밤중의 꽃향기>를 읽으면 흥미롭겠다. 우리의 작가는 아직 쓸 말이 많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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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몽드 디플로마티크 Le Monde Diplomatique 2023.4 2023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브누아 브레빌 외 지음 / 르몽드디플로마티크(잡지)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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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몽드코리아로부터 제공받은 도서에 대한 서평입니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는 국제전문 월간 시사지로 한국판은 프랑스판의 번역된 기사와 한국 취재진의 기사가 실린다.

우리는 24시간 뉴스가 쏟아져 나오는 시대를 살고 있다. 일간지 소식은 너무 빨라 한 번 놓치면 휩쓸리기 망정이고 단행본으로 포장된 정보들은 양과 질이 우수하더라도 고정된 현장에 근거한다. 고로 월간지가 시사 안목을 기르기에 안성맞춤이다. 특히,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판에선 엄선된 기사들을 통해 해외이슈 속에서 국내이슈를 조명할 수 있다.

올 4월호의 키워드는 “미래”라고 생각한다. 표지에 지리 콜라르의 <허물어지는 꿈속의 궁전>이 실렸다. 과거의 꿈이었던 미래가 허물어지면서 현재는 안온한 궁전을 허물게 되었다. 그런데 누구의 궁전이었던가? 프랑스 정부는 부과식 공적연금이 자랑스러웠지만 여기서 “미래”가 그려지지 않자 적립식 연금으로 눈을 돌린다. 저축할 사정이 여의치 않은 서민과 돌봄에 진이 빠진 여성들을 외면한 채. 일본 정부는 “과거사” 수정의 달인이다. 한국의 기회주의자들은 피해자를 소외시키고 용서와 관용을 논한다. 그들이 보기에 피해자들은 “미래”를 위한 경제적 사정을 이해하지 못 하니까.

오늘날 우리 (기성)시대는 결코 미래를 낙관적으로 조망하지 않는다. 무지에 대한 공포 때문이지 싶다. 알고리즘이 뭔지 명쾌하게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그럭저럭 잘 써먹(어지)고 있다. 알고리즘의 덫에 비판적이지만 여기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어렴풋이 알지만 결국 알아내지는 못 한다. 알 것 같았는데 그새 또 새로운 지식이 되어 나타난 것들이 너무나도 많다. 그린란드는 덴마크로부터의 정치적 독립에 긍정적이지만 기후위기로 1차산업이 힘들어지고 자원 개발의 수익성은 그다지 높지 않은 가운데 경제적 자립의 경로는 확보하지 못 했다.

이 서평에서 왜 반복해서 부정형(못~, ~없다)을 썼는지 모르겠다. 우리의 미래가 계속해서 ’긍정형‘의 기대에서 어그러지기 때문일까?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판은 현재시점에서 문제의 역사를 들추어보며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나은 미래에 대해 질의하는 글들을 담았다. 모색하는 기사들을 읽으며, 지금 가능한 일과 불가능한 일을 분류하고 지난 일과 벌어지고 있는 일을 비교함으로써, 그래서 당신은 누구이며 어떤 미래를 기대하고 그것을 위해 무얼 해야 하는지 사색할 수 있는 기회다. 이제 또 다시 꿈속의 궁전을 세울 차례다. 조선식물향명집이 피지배빈의 주체성을 찾는 과정이었듯이. 다른 긍정형을 모색해보자.

하이퍼링크가 없고 현란한 광고가 자제된 종이잡지로 읽을 것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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