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몽드코리아로부터 제공받은 도서에 대한 서평입니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는 국제전문 월간 시사지로 한국판은 프랑스판의 번역된 기사와 한국 취재진의 기사가 실린다.
우리는 24시간 뉴스가 쏟아져 나오는 시대를 살고 있다. 일간지 소식은 너무 빨라 한 번 놓치면 휩쓸리기 망정이고 단행본으로 포장된 정보들은 양과 질이 우수하더라도 고정된 현장에 근거한다. 고로 월간지가 시사 안목을 기르기에 안성맞춤이다. 특히,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판에선 엄선된 기사들을 통해 해외이슈 속에서 국내이슈를 조명할 수 있다.
올 4월호의 키워드는 “미래”라고 생각한다. 표지에 지리 콜라르의 <허물어지는 꿈속의 궁전>이 실렸다. 과거의 꿈이었던 미래가 허물어지면서 현재는 안온한 궁전을 허물게 되었다. 그런데 누구의 궁전이었던가? 프랑스 정부는 부과식 공적연금이 자랑스러웠지만 여기서 “미래”가 그려지지 않자 적립식 연금으로 눈을 돌린다. 저축할 사정이 여의치 않은 서민과 돌봄에 진이 빠진 여성들을 외면한 채. 일본 정부는 “과거사” 수정의 달인이다. 한국의 기회주의자들은 피해자를 소외시키고 용서와 관용을 논한다. 그들이 보기에 피해자들은 “미래”를 위한 경제적 사정을 이해하지 못 하니까.
오늘날 우리 (기성)시대는 결코 미래를 낙관적으로 조망하지 않는다. 무지에 대한 공포 때문이지 싶다. 알고리즘이 뭔지 명쾌하게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그럭저럭 잘 써먹(어지)고 있다. 알고리즘의 덫에 비판적이지만 여기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어렴풋이 알지만 결국 알아내지는 못 한다. 알 것 같았는데 그새 또 새로운 지식이 되어 나타난 것들이 너무나도 많다. 그린란드는 덴마크로부터의 정치적 독립에 긍정적이지만 기후위기로 1차산업이 힘들어지고 자원 개발의 수익성은 그다지 높지 않은 가운데 경제적 자립의 경로는 확보하지 못 했다.
이 서평에서 왜 반복해서 부정형(못~, ~없다)을 썼는지 모르겠다. 우리의 미래가 계속해서 ’긍정형‘의 기대에서 어그러지기 때문일까?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판은 현재시점에서 문제의 역사를 들추어보며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나은 미래에 대해 질의하는 글들을 담았다. 모색하는 기사들을 읽으며, 지금 가능한 일과 불가능한 일을 분류하고 지난 일과 벌어지고 있는 일을 비교함으로써, 그래서 당신은 누구이며 어떤 미래를 기대하고 그것을 위해 무얼 해야 하는지 사색할 수 있는 기회다. 이제 또 다시 꿈속의 궁전을 세울 차례다. 조선식물향명집이 피지배빈의 주체성을 찾는 과정이었듯이. 다른 긍정형을 모색해보자.
하이퍼링크가 없고 현란한 광고가 자제된 종이잡지로 읽을 것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