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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후에 오는 것들 (츠지 히토나리) 사랑 후에 오는 것들 (개정판)
츠지 히토나리 지음, 김훈아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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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랑 후에 오는 것들]은 한일 우호의 해를 기념해 진행된 한입 합작 프로젝트를 통해 출판된 소설이다. 한국의 공지영 작가가 여자 주인공 시점으로, 일본의 츠지 히토나리 작가가 남자 주인공 시점으로 진행된 작품을 집필하여 두 권이 발간됐다. 두 권을 모두 읽어야지만 책의 내용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한 쪽을 먼저 읽게 되면 자연히 반대 시점의 이야기에도 호기심이 든다. 모자람은 없지만 흥미는 불러일으킨다. 두 편의 소설의 완성도를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두 권을 모두 읽게하는 것이 이 한일합작 프로젝트의 의도였다면, 그것은 확실히 성공적이었다.

한일 우호의 해를 기념하여 출판된 책이니만큼 작품은 단순한 연애소설이 아니다. 한국인 여자와 일본인 남자의 연애라는 소재는 그냥 연애, 혹은 국제 연애와는 확실히 차별화되는 요소를 끌어낼 수 있던. 길고 깊은 한국과 일본의 역사적인 갈등 말이다.
한국과 일본은 지리적으로 매우 가깝고, 한국인과 일본인은 얼핏 보면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로 비슷한 외모를 가졌다. 같은 한자 문화권이기에 언어에도 공통점이 많고, 여러모로 한국과 일본은 서로가 서로에게 다른 어떤 국가보다도 가까운 이웃나라이다. 하지만, 동시에 가장 먼 나라이기도 하다. 기나긴 역사적 갈등, 침략과 찬탈로 얼룩진 과거는 아직까지도 두 나라 사이에서 굳건히 버티고 있다. 그렇게 쌓인 두 국가 사이의 감정은 두 연인의 갈등을 통해 나타난다.
사랑할 땐 서로 닮은 점만을 봤다. 닮아있는 외모와 언어. 거기서부터 시작해 계속 거슬러 올라가, 종국엔 우리 모두가 같은 별의 파편이었다는 결론으로 도달한다. 하지만 그 별의 파편들이 지금은 제각기 다른 모습이 된 것처럼, 사랑이 흔들리자 현실이 드러났다. ‘우리’는 ‘너’와 ‘나’가 되었고 ‘너’는 ‘너희 나라 사람‘이 되었다. 한국 여자 홍과 일본 남자 준고는 연인이라면 누구나 겪을 문제를 겪었을 뿐이지만 두 사람의 국적은 그 문제를 더 확대시켰다.
이런 두 사람을 연결하는 소설 속 매개체는 바로 시인 윤동주였다. 한국의 독립 운동가이지만 일본에서 유학했던 윤동주의 시를 통해서 준고는 홍의 고독을 체감할 수 있었다. 윤동주가 그랬던 것처럼 홍 역시 일본이라는 외국에서 고독을 느꼈고, 자신이 그녀의 고독을 이해해주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한국인과 일본인의 국제 연애에서 일본에서 유학하며 독립운동을 한 윤동주의 시가 두 사람을 연결한다는 그 설정은 작품의 발간 계기인 한일 우호의 해의 취지와 완벽하게 부합한다.

다만, 작품의 결말에 대해서는 큰 아쉬움이 남는다. 결말에 다다르기까지 그 과정이 너무 매력적이었기에 더 그렇다. 소설은 홍과 준고가 우연한 재회를 한 현재와 두 사람이 사랑하던 과거를 계속 교차해서 보여주는데, 시점이 계속 바뀜에도 불구하고 그 전환이 너무나 자연스러웠기에 깊은 몰입을 할 수 있었다. 마치 독자가 소설 속 준고가 된 듯한 묘사가 그의 감정선에 깊게 닿을 수 있게끔 한 것이다. 그러나 몇 번을 읽어도 결말의 감정선을 이해할 수가 없다. 공지영 작가가 쓴 홍 시점의 [사랑 후에 오는 것들]을 읽어도 똑같이 이해가 안된다.
분명 두 사람이 마지막 통화를 했을 때 홍은 약혼자와 결혼한다는 거짓말을 했고, 준고는 꼭 행복하라며 홍을 보냈다. 그랬는데 바로 다음 날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준고는 또 홍을 찾아가고, 두 사람은 다시 사랑을 이어나가기로 하고 소설은 끝이 난다. 필자의 독해가 부족했던 것일 수도 있지만 이런 결말을 내려면 차라리 준고가 아닌 홍이 상대를 찾아갔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실 결혼한다는 것은 거짓말이었다고, 나도 아직 너를 잊지 못했다는 고백을 하면서.
두 주인공은 작품이 끝날 때까지도 서로 완전히 속을 터놓고 대화한 적이 한 번도 없는데 결말에선 재결합한다. 얼렁뚱땅 해피엔딩으로 마무리지어진 것 같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사랑 후에 오는 것들]은 사랑 후에 회한, 교훈, 그리고 다시 사랑이 온다는 것을 보여줬지만 설득력 있게 마무리짓지는 못했다. 차라리 두 사람을 끝내 이별하는 것으로 마무리하되, 재회의 여지를 남겨두는 열린 결말로 마무리했으면 어땠을까. 한일 우호의 해를 위해서 조금은 억지스러운 해피엔딩을 내야한 게 아닌가 싶다. 결국 이 작품은 사랑 이후에 무엇이 오는지를 묻지만, 그 질문에 충분한 시간을 들이지는 못한 채 답을 서둘러 제시해버린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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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순 - 개정판
양귀자 지음 / 쓰다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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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제목만으로는 내용을 전혀 짐작할 수 없는 작품들이 있다. 그리고 다 감상한 이후에 그 제목이 과연 알맞은 것이었는가를 판단했을 때, 조금의 의심도 없이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다면 아마도 그 제목은 최고의 선택이 될 것이다. 그 제목이 독자에게 어떠한 스포일러도 주지 않으나 내용 전반을 완벽히 아우르고 있으니 말이다.
이 책이 그렇다. 책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각자의 모순을 갖고 산다. 그 모순은 삶을 파괴하기도 하지만 때론 삶의 동력이 되기도 한다는 점에서 작가가 소설의 제목과 소재를 모순으로 삼은 이유를 느낄 수 있었다.

‘모순‘이라는 제목을 가장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인물을 꼽으라면 역시 주인공 진진의 어머니와 이모이다. 두 사람은 한날한시에 태어나 쏙 빼닮은 외모를 가진 쌍둥이지만, 그 두 개의 삶은 완전히 다른 방향을 향한다. 바르고 성실한 남자를 만나 단란한 가정을 꾸려 안정적인 삶을 산 이모. 나약하고 불안정한 남자와 결혼해 평생 버텨내고 지켜내는 삶을 산 어머니. 진진의 어머니는 언제나 그런 동생에게 열등감을 느끼며 괴로워했다.
하지만 행복해 보이기만 했던 이모는 안정이라는 울타리에 갇혀 평생을 괴로워했고, 진정으로 삶을 ’살아내던‘ 언니를 동경했다. 어떻게든 그 울타리를 벗어나고 싶었지만 주변 사람들까지 다치게 할 수 없었던 그녀는 결국 유일하게 파괴할 수 있던 것을, 자기 자신을 파괴하기로 마음 먹는다. 문제될 것이 아무것도 없었던 이모의 삶은 그 자체가 문제였고, 그 모순은 결국 이모의 삶을 끝내버린 것이다.
어머니는 이모와 달랐다. 남편과 아들의 문제는 평생 그녀에게 시련을 가져다 주었지만 동시에 어머니는 그들을 미치도록 사랑했다. 그랬기 때문에 결코 포기하지 않으며 끊임없이 노력을 쏟아붓고, 아이러니하게도 그것은 어머니의 삶의 원동력이 되었다. 부족할 것이 없었기에 공허했던 이모와 달리, 너무 많았던 어머니의 결핍은 어머니에게 살아있다는 생동감을 불어넣은 것이다.

어머니의 손에 자랐고 어머니보다 이모를 더 사랑한 진진은 두 삶의 모순을 목격했다. 생각보다 훨씬 빨랐던 이모의 마지막까지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진은 역시 이모를 더 사랑했던 것일까. 진진은 어머니가 아닌 이모의 모순을 이어간다.
결말에서 진진은 진짜 사랑한다고 믿었던 김장우가 아닌 안정된 삶을 보장해줄 나영규를 택한다. 이모와 비슷한 길을 가기로 한 것이다. 진진은 그런 선택을 한 것에 대해 독자는 처음에는 이마를 짚게 된다. 지금까지 쌓아온 김장우와의 감정선과 안정적인 남자를 택한 이모의 비극적인 결말, 이 두 가지 요소는 진진의 선택에 대해 “왜?”라는 의문을 불러일으킨다. 답은 간단하다. 결국 진진이 보고 살아온 것은 이모가 아닌 어머니의 삶이기에, 진진은 자신에게 없었던 것을 선택한 것이다. “삶의 어떤 교훈도 내 속에서 체험된 후가 아니면 절대 마음으로 들을 수 없다”는 작품 속 문장처럼, 결국 진진은 결말에서 끝내 모순을 택한다.

이 결말은 우리의 삶은 어떻게든 모순에서 벗어날 수 없지만 그 모순이 꼭 비극만은 아니라고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 같다. 삶의 모순을 비극으로 마무리한 이모의 전철을 진진은 그대로 밟는 것 같지만, 그렇게 단순하게만 생각할 수는 없다. 어쩌면 그 반대이다.
진진은 이모와 달리 평생 자신에게 없었던 것을 향해, 경험해보지 못한 삶을 향해 과감히 발을 내딛었다. 표면적으론 이모와 비슷해보이는 삶을 선택했지만, 그것은 결국 진진에게는 이모와 다른 삶의 시작이 된 것이다.
또한 진진은 김장우에게는 늘 더 나은 모습만을 보여주고 싶었지만 나영규 앞에선 치부까지도 솔직하게 드러냈다. 이 대목에서 독자는 과연 진짜 진진을 행복하게 해줄 사람이 꼭 김장우인가?라는 의문을 품게 된다. 설사 진진이 자신의 진짜 사랑은 김장우라고 생각했다고 해도 말이다. 누군가는 좋은 모습만 보여주고 싶은 사람이 아닌 모든 부분을 보여줘도 괜찮은 사람이 진짜 사랑이라고 정의할 수도 있으니.
이러한 작품의 디테일한 요소들은 진진의 삶이 이모와 달리 비극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작은 기대를 품게한다.

출판된지 30년 가까이 된 소설이 현재에도 베스트셀러를 차지하고 있는 이유를 납득할 수 있을 만큼, 솔직히 두드러지는 아쉬운 점이 없다. 굳이 꼽자면 본문이 끝나고 나오는 작가 노트에 나오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읽어주었으면‘하는 작가의 의도가 실현된 것 같지는 않다는 점이다. 필자는 소설을 읽을 때 쉽게 길을 잃어서 독서를 멈추는 일이 잦은데, 이 작품을 읽을 때는 거의 그러지 않았다. 또한 후반으로 갈수록 늘어지기는커녕 더 높아지는 몰입감은 독서 속도를 오히려 더 빠르게 했다. 마치 내리막길에서 자전거를 타는 것처럼, 주체할 수 없는 속도에 불안간과 쾌감을 동시에 느끼면서. 작가의 바람과는 반대로, 필자는 이 책을 빠르게, 다른 책보다도 더 빠르게 읽어버렸다. 이 노트가 머리말에 실려있었다면 어땠을까. 그랬더라도 금세 읽고 소설에 빠져들었을까? 그 부분까진 어떻게 할 수가 없겠다.

진진이 이모처럼 평탄한 삶이 주는 답답함에 짓눌려 죽어갈지, 어머니처럼 끝없는 시련과 늘 싸우며 버텨내는 삶을 살지, 혹은 완전히 다른 삶을 살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모순 투성이인 그 삶을 응원하고 싶다. 나의 삶 역시 모순으로 점철되어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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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차창에서
호시노 겐 지음, 전경아 옮김 / 민음사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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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부시도록 밝고 착한 이에게 느껴지는 위화감이 있다. 나는 이렇게나 꼬여있는데 당신은 참으로 해맑구나. 당신의 삶에도 과연 시련이라는 것이 존재했을까? 이런저런 부정적인 감정을 느낄 때가 있다. 명백히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되는 사람을 만나도 긍정적인 감정만을 느끼기는 어렵다는 말이다.
그래서 신기하다는 생각을 했다. 호시노 겐의 에세이에서 느껴지는 그 다정함과 따뜻함에는 거부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다는 그 사실이 신기했다. 필자의 인격적 성숙이 그새 이뤄졌을 리는 만무하니, 결국 그건 작가의 힘이겠지.

[생명의 차창에서]는 일본의 가수이자 배우, 작가인 호시노 겐의 에세이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작품 전반에는 호시노 겐 특유의 다정함이 깔려 있다. 모든 이야기가 말랑하게, 부드럽게 읽힌다. 하지만 이 책은 평화롭고 즐거운 내용만을 말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도입부터 심각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지주막하출혈이라는 질병으로 머리를 여는 대수술을 받았고 그로 인해 아직까지도 흉터와 상처 자국이 느껴진다는 이야기. 이런 내용조차 따뜻하게 다가오는 것은 역시 작가의 표현 방식 덕이다. 수술 때문에 생긴 머리 쪽 흉터에는 지금도 머리카락이 자라지 않기 때문에 극단적으로 짧은 헤어스타일을 하면 꽤 재미있을 거라든가, 이마에 난 상처 속에 조그마한 자기 자신이 들어가 몸이라는 탈것을 조종하고 있는 느낌이라든가 하는 표현들. 빈말로도 사소하다고 할 수 없는 심각한 일을 그는 가볍게 털어낸다.
물론 부정적인 내용을 한결같이 재치있게만 표현하는 것은 아니다. 작품 속에서 작가는 때론 그리움에 눈물을 흘리기도, 분노에 싸여 제법 잔혹한 생각을 하기도 한다. 부정적인 감정을 다양하게 표현해내는 이 방식은 독자로 하여금 인간미를 느끼게 한다. 그렇기 때문에 위에서 언급했던 ‘좋은 사람에게 느껴지는 위화감‘을 느낄 수 없었다.

긍정적인 이야기를 담은 부분은 반대로 한결같이 표현되어 있다. 자신이 좋아하는 대상에 대해 어떤 부분이 어떻게 훌륭한지 최대한 구체적이고 섬세하게 표현해낸다. 어느 것 하나 그냥 흘려버리지 않은 채로. 그렇기에 그가 누군가에게 보내는 찬사에는 진정성이 가득 느껴진다. 불편해지지 않기 위해 적당히 정중한 빈말들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이런 진심어린 칭찬은 새삼 귀하다.
호시노 겐의 에세이에서 느껴지는 가장 큰 매력이 바로 이 부분이었다. 단순히 이 책을 재밌게 읽은 것으로 끝나지 않고, 호시노 겐이라는 작가에 대해 인간적 호감을 불러일으킨다는 것. 한국어로 번역 출판된 그의 저서가 [생명의 차창에서] 하나뿐이라는 사실이 통탄스러울 정도였다. (호시노 겐의 저서는 일본 현지에서는 총 9권이 출판된 바 있다.)

아쉬운 점은, 본문에 포함된 옮긴이 주가 조금 더 구체적이었다면 좋지 않았을까 싶었다. 작가의 본업이 가수, 배우이기 때문에 이 책에는 그의 동료 연예인들이 상당히 많이 등장한다. 그 동료 연예인들에 대한 설명이 아주 조금만 더 구체적이었다면 읽는 이에게 좀 더 재미를 줄 수 있었으리라고 느꼈다. 예를 들면 초반에 등장하는 ‘후루타 아라타‘의 경우 호시노 겐의 대표작인 [도망치는 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에 함께 출연한 배우인데 그런 부분에 대한 언급이 있었다면 더 읽는 재미가 있었을 것이다. 이 책을 국내에서 번역 출판하기로 결정했을 때 예상 독자는 분명 연예인 호시노 겐의 팬들로 설정되었을 텐데, 팬들이 읽었을 때 흥미롭다고 느낄 법한 요소를 좀 더 추가했다면 좋았겠다.
번역은 전반적으로 자연스럽고 좋았지만 굳이 아쉬운 부분을 꼽자면 일본식 영어를 그대로 발음만 음차해서 옮겨놓는 경향이 약간 강하게 느껴지는 게 아쉬웠다. 예를 들면 자몽을 ‘그레이프프루트’라고 번역한 부분. 일본에서는 grapefruit를 그대로 일본식으로 발음해서 부르지만 한국에서는 자몽이라고 부르는데, 그걸 그대로 그레이프프루트로 옮겨놓은 것은 자료조사가 부족했지 않나 싶다.

에세이는 소설에 비해 더 직접적으로 작가를 드러낸다. [생명의 차창에서]에 드러난 작가 호시노 겐, 좋다. 그의 책이 한국어로 더 번역 출판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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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생활은 계속된다
이나가키 에미코 지음, 김미형 옮김 / 엘리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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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과 감탄을 동시에 자아내는 일은 무척이나 어렵다. 타인에게서 나와는 다른, 정확히 말하면 뛰어난 모습을 보았을 때 우리는 존경심을 느낀다. 하지만 공감은 완전히 반대의 영역에 있다. 타인에게서 나를 느낄 때 공감은 발생한다. 그렇기에 존경과 공감은 동시에 존재하는 것이 본질적으로 어렵다.
그 어려운 일을 책의 저자는 어느 정도 해냈다. 저자의 생활은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불가능에 가까웠음에도 [그리고 생활은 계속된다]는 존경뿐만 아니라 공감까지도 이끌어냈다.

일상을 영위하는 일에 필수적인 요소라고 할 수 있는 전기 에너지를 포기하고 살아가는 저자의 삶은, 동일본대지진이 그 계기였다. 동일본대지진이 일깨운 원자력 발전의 위험성은 모든 일본인에게 죽음의 공포를 가져다줬고, 그 중에서도 저자는 더 강렬한 감정을 느꼈다.
그는 신문기자로 일하던 시절 원자력 발전소의 위험을 문제 삼는 시위를 취재한 적이 있다. 그때 그는 원자력 발전소의 위험성에 대해 깊이 파고들 기회가 있었음에도 뉴스거리가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적당히 그 이슈를 외면하고 다른 특종을 찾아 발길을 옮겼다. 그러나 동일본대지진이 발생하고 후쿠시마의 원자력 발전소가 폭발하던 순간, 그는 언론인으로서 책임 소재를 추궁해야 했으나 그 순간 깊은 자기혐오를 느꼈다고 했다. 눈 앞에서 문제를 보고도 모른 척했던 자신이 과연 그럴 자격이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원자력 발전이 주는 혜택을 거부하기로 한다. 전기 에너지를 포기하고 사는 삶을 선택한 것이다. 청소기, 냉난방기구 등 비교적 사소한 가전제품부터 시작해 냉장고에 이르기까지. 조금씩 전기를 사용하는 물건들을 버려 나가기 시작했다.
처음 책을 펼쳐 머리말을 읽었을 땐 걱정을 했다. 과연 이 책의 내용에 조금이라도 나는 공감할 수 있을까? 전기를 사용하지 않는 일, 더 나아가 에너지를 사용하지 않고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게 과연 가능한가? 의문만이 가득했다. 그러나 생각보다, 하나씩 ‘필수라고 여겨진 것들‘을 버리는 작가의 생활이 그렇게 비현실적이지는 않다고 느꼈다. 청소기 대신 빗자루와 걸레를 사용하고, 냉난방을 줄이니 점차 몸이 그것에 적응하여 남들보다 훨씬 더위와 추위에 둔감해지고, 냉장 대신 건조를 통해 음싣을 보관하는 일. 당연히 어렵지만 그렇다고 터무니없다고 할 수는 없다.
또한 저자는 이런 삶을 살아가면서 자신이 겪었던 실패와 고뇌 역시 고스란히 드러낸다. 즐거운 취미였던 요리와 맛있는 음식을 포기하게 된 것, 추위를 많이 타는 체질 탓에 난방 없이 겨울을 보내는 일의 어려움, 때론 신념과 현실 사이에서 적절한 타협을 보려했던 일까지. 이러한 어려움까지도 솔직하게 드러내는 태도는 절약과 환경 보호를 위해 애쓰지만 늘 여러 실패에 부딪히는 이들로 하여금 공감을 자아낸다. 역시 어려운 일이 맞구나, 내가 특별히 의지박약은 아니었구나하는 공감을.

다만, 자신과는 다른 대부분의 사람들이 전기 에너지를 사용하는 일에 대해 몰이해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은 아쉬웠다. 존경과 공감을 동시에 이끌어내는 데 ‘어느 정도‘는 성공했다고 언급한 이유도 그것이다. 물론 책에서도 저자는 자신의 삶이 극단적이라고 언급하고, 결코 자신의 삶을 강요할 생각은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저자는 독신으로 사는 삶과 가정을 이루고 사는 삶이 가진 엄청난 간극을 다소 가볍게 치부하는 듯 보인다. 가정을 책임지는 주부의 가사노동량은 1인가구의 가사노동량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을 텐데, 자신의 경험을 이유로 가전제품이 가사노동에서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는 결론은 꽤나 빈약하게 들린다. 저자의 삶이 터무니없이 비현실적인 것은 결코 아니나, 결국 그런 삶이 가능했던 것은 그가 혼자 사는 독신이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은 책을 덮는 순간까지도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 책이 주는 가치는 명확하다. 당연하다고 여겼던 것들을 다시 돌아볼 계기를 준다는 것. 그것이다. 어쩌면 저자의 말대로 꼭 필요하다고 여겼던 것들은 그렇지 않았을 수 있고, 반대로 필요치 않다고 여겼던 것이 필요했던 것일 수도 있으니까. 당연하다고 생각한 것들을 내려놓음으로써 평안함을 찾을 수 있다면, 시도해볼만 하다. 하나씩 내려놓아보는 일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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