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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관없는 거 아닌가? - 장기하 산문
장기하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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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장기하의 산문집을 읽어보고 싶었던 이유는 간단하다. 평소 그의 음악을, 특히 가사를 좋아했기 때문이다. 그는 직접 곡을 만드는 뮤지션이므로 그의 글이 궁금해진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동시에 이런 생각도 들었다. 그럼 ‘장기하’라는 인물에 대해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선뜻 고르지도 않을 것이고, 어쩌다 읽더라도 감흥을 느끼지 못할 것인가? 내가 그런 사람이 아니기에 객관적인 판단은 어렵지만 그렇지는 않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차별과 비교가 난무하는 험난한 세상이다. 각자의 사정은 모두 다르다지만 누구에게나 나름대로 위로가 필요할 것이다. 이 책은 ’나름대로의 위로‘라는 점에서 제법 보편적인, 동시에 개성적인 위로를 건넨다.
그 위로가 보편적인 이유는 특정 누군가를 겨냥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와 같은 뮤지션이 아니더라도, 그와 비슷한 연령대가 아니더라도, 더 나아가 그와 조금의 공통점도 없는 사람이라도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할 법한 자기 자신에 대한 의심과 불만을 이 책은 담백하게 풀어놓는다. 자기 연민에 빠지지 않으면서, 또 정신 승리의 느낌을 줄 정도의 과한 자기위로도 하지않으면서. 설사 나의 모든 것이 조금 잘못되었다 해도, 그게 나의 삶을 통째로 무너트리지 않았다면 그것으로 된 거 아닌가?하는 담백한 위로와 공감의 메시지를 보낸다.
그 위로가 개성적이었던 이유는 위로를 의도하고 쓰인 글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한 작품 안에서 글이 진행되고 있음에도 작가의 생각이 계속 변화하는 것이 여실히 느껴지기 때문이다. ‘앞장에서는 이렇게 얘기했지만 사실 또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라는 공감을 자아내는 태도는 독자로 하여금 피식 웃음짓게 한다. 그의 위로가 의도된 것이었다면 억지로라도, 최소한 해당 작품 안에서라도 같은 스탠스를 유지했을 텐데 그런 기색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본문에서도 그런 내용은 언급된다. 나의 음악은 오로지 나 자신을 위로하기 위해서 그저 하고싶은대로만 만들었을 뿐인데, 내 음악이 누군가에 위로가 되었다는 말을 들으면 너무나 비현실적이라서 감격스럽다고.

다만, [낮]과 [밤]으로 나뉜 차례의 대단원이 어떤 의도로, 어떤 기준으로 그렇게 나뉜 것인지 명확히 전달되지 않는 것은 아쉬운 점이다. 낮 부분의 이야기와 밤 부분이 이야기가 어떤 차이가 있는지를 잘 모르겠다. 낮 부분이 모두 낮의 이야기 혹은 밝은 이야기로만 이루어진 것은 아니라고 느꼈다. 밤 부분도 마찬가지고. 과연 그 두 대단원이 필요했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는다. 차라리 대단원의 구분 없이 소제목으로만 이루어졌어도 상관없지 않았을까?

때론 절친한 친구가 아니라 다시 만날 일 없을 생면부지 남에게 더 위로를 받을 때가 있다. 그 사람이 마찬가지로 완전한 남인 나에게 어떠한 결심을 하고 위로하려 했을 확률은 0에 수렴하겠지만,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로 인해 나의 상태가 나아졌다는 사실이다.
이 책은 마치 그런 때와 같다. 딱히 위로하려 하지 않지만 위로가 된다. 그리고 그런 위로는 제법 강한 효과를 발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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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관없는 거 아닌가? - 장기하 산문
장기하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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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장기하의 산문집을 읽어보고 싶었던 이유는 간단하다. 평소 그의 음악을, 특히 가사를 좋아했기 때문이다. 그는 직접 곡을 만드는 뮤지션이므로 그의 글이 궁금해진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동시에 이런 생각도 들었다. 그럼 ‘장기하’라는 인물에 대해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선뜻 고르지도 않을 것이고, 어쩌다 읽더라도 감흥을 느끼지 못할 것인가? 내가 그런 사람이 아니기에 객관적인 판단은 어렵지만 그렇지는 않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차별과 비교가 난무하는 험난한 세상이다. 각자의 사정은 모두 다르다지만 누구에게나 나름대로 위로가 필요할 것이다. 이 책은 ’나름대로의 위로‘라는 점에서 제법 보편적인, 동시에 개성적인 위로를 건넨다.
그 위로가 보편적인 이유는 특정 누군가를 겨냥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와 같은 뮤지션이 아니더라도, 그와 비슷한 연령대가 아니더라도, 더 나아가 그와 조금의 공통점도 없는 사람이라도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할 법한 자기 자신에 대한 의심과 불만을 이 책은 담백하게 풀어놓는다. 자기 연민에 빠지지 않으면서, 또 정신 승리의 느낌을 줄 정도의 과한 자기위로도 하지않으면서. 설사 나의 모든 것이 조금 잘못되었다 해도, 그게 나의 삶을 통째로 무너트리지 않았다면 그것으로 된 거 아닌가?하는 담백한 위로와 공감의 메시지를 보낸다.
그 위로가 개성적이었던 이유는 위로를 의도하고 쓰인 글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한 작품 안에서 글이 진행되고 있음에도 작가의 생각이 계속 변화하는 것이 여실히 느껴지기 때문이다. ‘앞장에서는 이렇게 얘기했지만 사실 또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라는 공감을 자아내는 태도는 독자로 하여금 피식 웃음짓게 한다. 그의 위로가 의도된 것이었다면 억지로라도, 최소한 해당 작품 안에서라도 같은 스탠스를 유지했을 텐데 그런 기색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본문에서도 그런 내용은 언급된다. 나의 음악은 오로지 나 자신을 위로하기 위해서 그저 하고싶은대로만 만들었을 뿐인데, 내 음악이 누군가에 위로가 되었다는 말을 들으면 너무나 비현실적이라서 감격스럽다고.

다만, [낮]과 [밤]으로 나뉜 차례의 대단원이 어떤 의도로, 어떤 기준으로 그렇게 나뉜 것인지 명확히 전달되지 않는 것은 아쉬운 점이다. 낮 부분의 이야기와 밤 부분이 이야기가 어떤 차이가 있는지를 잘 모르겠다. 낮 부분이 모두 낮의 이야기 혹은 밝은 이야기로만 이루어진 것은 아니라고 느꼈다. 밤 부분도 마찬가지고. 과연 그 두 대단원이 필요했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는다. 차라리 대단원의 구분 없이 소제목으로만 이루어졌어도 상관없지 않았을까?

때론 절친한 친구가 아니라 다시 만날 일 없을 생면부지 남에게 더 위로를 받을 때가 있다. 그 사람이 마찬가지로 완전한 남인 나에게 어떠한 결심을 하고 위로하려 했을 확률은 0에 수렴하겠지만,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로 인해 나의 상태가 나아졌다는 사실이다.
이 책은 마치 그런 때와 같다. 딱히 위로하려 하지 않지만 위로가 된다. 그리고 그런 위로는 제법 강한 효과를 발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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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류 오늘의 젊은 작가 40
정대건 지음 / 민음사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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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종류의 상처는 너무 깊어서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흉터로 남는다. 상처는 낫고 흉터만 남았음에도 그걸 눌러보면 계속 미묘한 통증이 남는 경우도 있고, 신경이 완전히 죽어버려 그 자리에 아무 감각이 느껴지지 않을 수도 있다. 너무 깊은 상처는 아무리 애를 써도 결코 그 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는 비가역적인 상태로 남는 것이다.
하지만 상처가 깊고, 완전히 회복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해도 그것을 그냥 내버려둘 수는 없다. 아프더라도 제대로 마주하고 약을 바르던 붕대를 감던 치료하지 않으면 그것은 흉터가 아니라 더 큰 상처가 될 것이다.

주인공 도담과 해솔은 그런 상처를 겪었다. 둘은 서로를 사랑했지만 과거의 상처 때문에 온전히 서로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한다. 그 과정에서 도담은 도담대로 해솔은 해솔대로 다른 연인을 만나기도 하지만 두 사람이 사랑했던 것은 오직 서로뿐이었기에 종국에는 두 사람이 이뤄지는 결말로 끝이 난다.
두 주인공이 자신의 상처를 빌미로 다른 사람을 그저 외로움을 채워줄 수단처럼 대하는 면모는 독자들에게 호불호가 갈렸다. 사랑하지도 않는 사람과 연인 관계를 유지하다가 관계의 마지막엔 사실 자신이 사랑한 사람은 늘 다른 사람이었다고 고백하는 것은 상대에 대한 철저한 기만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두 주인공의 태도는 독자의 공감을 이끌어내지 못했고, 비판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책에 대한 여러 리뷰를 살펴보면 그 부분에 대해 가장 많은 비판이 있다. 상처를 권리처럼 여기는 나르시즘 환자 두 명이 정상인을 정신병자로 만들었으니 제발 서로 방생하지 말고 백년해로했으면 좋겠다는 그런 얘기들.
독자들이 어떤 의미로 그런 이야기를 하는지는 충분히 이해가 간다. 필자 역시도 두 주인공이 자신들의 다른 연인을 대했던 태도가 미성숙하고 이기적이었다는 점에 격하게 동의한다. 다만 이 작품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주제의식이 “상처를 피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바라보아야 그것을 극복할 수 있다”라고 생각했기에, 서로의 상처에 대해 진심으로 소통한 적이 없는 두 사람이 그럼 미성숙한 태도를 보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고 느꼈다. 그렇기 때문에 마침내 서로 마음을 다 열고 진심으로 소통한 뒤 두 주인공이 트라우마를 극복해내는 결말에는 감동을 느꼈다.

다만 이 이야기에서 단단한 설득력이나 참신함은 느낄 수 없었다. 주인공 두 명을 제외한 나머지 캐릭터들은 모두 두 주인공의 서사를 완성시키는 장치 그 이상의 역할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특별히 눈길이 가지 않았고, 완성된 두 주인공의 서사도 딱히 특별함은 느껴지지 않는다. 과거의 상처, 엇갈림, 재회, 상처를 극복하지 못하고 다시 헤어짐, 다시 재회, 밝혀지지 않았던 그날의 진실, 해피엔딩. 어디선가 본 것 같은 이야기들이 조금도 예상을 벗어나지 않고 전형적으로 전개된다. 작품이 전달하는 주제의식이 좋았고 간결한 문체 덕분에 가독성도 훌륭했지만, 이 정도의 베스트셀러가 될 만큼인지는 모르겠다. 깊이 있지도 신선하지도 않은, 그냥 나쁘지 않은 이야기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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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적의 단어들
이적 지음 / 김영사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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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이적을 오랜 시간 흠모해왔다. 그의 목소리와 음악, 그리고 무엇보다도 아름다운 그 노랫말들. 어떤 문학 작품보다도 더 위로가 됐던 그의 단어들을 평생 아끼고 사랑했다. 그래서 이 책에 너무 큰 기대감을 품었는지도 모르겠다.
[이적의 단어들]은 이적이 sns에서 포스팅한 글들을 묶어 낸 산문집이다. 그의 sns는 오래 전부터 팔로우해왔고, 그가 포스팅하는 짧은 산문들을 읽을 때마다 감탄해 마지않았다. 어쩌면 이렇게 짧으면서도 통찰력 있고 감동적인 글들을 써내는 것일까. 그렇기 때문에 이적의 산문집이 발매된다는 소식에 정말 기뻤다. 책을 열어 읽어보기 전까지.

책을 출간하기 위해 새로 써진 글들도 물론 적지 않게 있었으나 절반 이상의 내용이 이미 그의 sns에서 확인할 수 있는 글들이었기 때문에 신선함이 너무 떨어졌다. sns에 올린 글들을 엮어 책을 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책으로 묶이기에는 이렇게 기존에 공개된 내용의 비중이 높으면 안된다고 느꼈다. 산문의 내용들은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도 많았지만 쉽사리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었고,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이 글이 쓰여진 배경이나 해설이 달려있기를 바랐다. 해석은 독자의 몫으로 남겨둬야 하는 거라지만 이적의 sns만 봐도 알 수 있는 내용들이 대부분인 책을 독자가 돈을 내고 구입해야 하는 이유가 있는가?

책의 표지에는 “상상에 시동을 거는 101편의 이야기 꾸러미”라고 적혀있다.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것, 그래 좋다. 하지만 그러려면 sns에 노출되어있는 기존의 내용보다도 더 많은 새 글들을 더 엮어서 넣었어야 한다고 본다. 이미 대중에게 노출된 내용이 절반 이상인 산문집을 통해 어떤 상상력이 자극될 수 있을까?
상상력을 자극하고 싶었으면 더 많은 새로운 글을 엮었어야 하고, 그럴 여건이 안됐다면 이적의 글을 관심있게 읽을, 읽어 온 독자들과 팬들을 위해 그가 쓴 산문에 대한 읽을거리를 충분히 제공했어야 한다. 예를 들면 이 글은 어떤 계기로 쓰였는지,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이야기 말이다.

책에 수록된 산문 101편 중 약 70편 정도를 이적의 sns에서 읽어볼 수 있다. 산문에 대한 작가의 어떠한 코멘트도 하나 없으며, 새로운 글은 30%가 채 안되는 이 책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작가 이적의 산문 자체는 훌륭하다. 인간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을 보여주지만 그럼에도 사랑의 가치를 잊지 않고 읽는 이를 감싸안아주는 듯한 따스함까지. 하지만 이런 식의 출간기획은 어떤 연유로 이루어졌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다. 이 책을 돈 내고 샀을 때 얻을 가장 큰 효용은, 책으로 예쁘게 인쇄된 이적의 글을 사진 찍어 인스타그램에 올릴 수 있다는 일인 것 같다. sns 과시용 양산형 에세이로 소비될만한 글이 아닌, 철학적이고 무게감이 있는 훌륭한 산문을 과연 이런 식으로 기획할 수밖에 없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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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땅 문지클래식 4
임철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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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땅]은 동명의 단편을 포함한 여러 단편소설이 수록된 작품이다. 수록된 11편의 단편은 독립된 이야기이지만 모두 과거의 사건에 지금까지도 영향을 받고 있는 인물들을 그린다. 그리고 그 중 대부분은 한국전쟁과 이념대립의 피해자들이다. 작가는 6.25 전쟁과 남북의 분단이라는 비극이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를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소설은 다루고 있는 인물들의 상처에 대해 별다른 말을 하지 않는다. 그들이 상처를 잊거나 극복하는 그림을 그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비극으로 마무리되는 경우가 많았다. 감히 위로할 엄두조차 나지 않을 만큼 끔찍한 상처들이 있다. 아무런 말도 얹을 수 없어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는. 작가는 그런 상처에 대해 어줍잖은 위로와 극복의 메세지를 던지는 대신 있는 그대로 표현하여 세상에 알리는 방식을 택했다.

다만, 직접적인 위로와 극복을 전하지는 않으나 간접적인 장치들을 통해 작가가 비극 속 인물들을 조용히 응원함과 동시에 비극을 만들어낸 시대를 비판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 점은 수록된 단편 중 하나이자 책의 제목이기도 한 [아버지의 땅]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주인공 이 병장의 아버지는 이념 대립으로 인해 그가 어린 시절 가정을 떠나야 했고, 수십년이 지나도록 생사조차 모르는 상태이지만 그의 어머니는 여전히 아버지를 기다리고 있다. 군 복무 중이던 이 병장은 훈련 중에 신원 미상의 유골을 발견하고 마을의 한 노인에게 시신에 관해 조언을 구한다. 노인은 이 마을에서 그런 유골이 나오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답하며 담담히 과거 마을에서 일어난 전투에 관해 말해준다. 그럼 이 유해의 주인 역시도 빨갱이였을 거라는 군 간부의 말에 노인은 일침을 놓는다. 죽어 누운 다음에까지 이쪽이니 저쪽이니 따지는 게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유해를 수습한 후 노인과 돌아오던 이병장은 노인에게도 전쟁으로 잃어버린 형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혹시 오늘 그 유해가 노인의 형의 것은 아닌가 묻지만 이제 와서 그걸 알아볼 수는 없을 거라는 답변만 받는다.

위의 내용을 통해, 독자는 시대의 피해자들인 노인과 이병장이 발견한 유해가 혹시 그들의 가족 중 한 명은 아니었을까, 이제라도 가족의 시신을 수습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일말의 희망을 품게 된다. 또한 노인의 말을 통해, 작품 속 인물들은 모두 시대의 비극이 만들어낸 피해자들일 뿐이며 이념대립 같은 것은 다 부질없는 짓이라는 비판의식도 엿볼 수 있다.
1984년에 출판된 이 책이 담고 있는 메시지는 불행히도 2026년 현재에도 여전히 유효한 듯하다. 작품 속에서 죽은 뒤에도 ‘이쪽’과 ‘저쪽’을 가르는 이념의 잔혹함은 과거의 일로만 남지 않았다. 오늘날에도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기보다 진영으로 구분하고, 말과 생각에 낙인을 찍으며, 보이지 않는 선을 긋는다. 전쟁은 끝났지만 분단은 지속되고 있고, 총성은 멎었지만 적대의 언어는 여전히 살아 있다.
[아버지의 땅]이 보여주는 것은 단지 한국전쟁의 상처가 아니라, 그 상처가 세대를 건너 지금까지도 현재를 응시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과거의 비극은 역사책 속에서 정리된 사건이 아니라, 아직 끝나지 않은 문제로 우리 곁에 남아 있다. 그렇기에 이 소설은 과거를 회고하는 작품이 아니라, 지금의 우리를 조용히 돌아보게 하는 작품이다.

그러나 작품에서 나타나는 세밀한 시각적/ 청각적 묘사가 감정을 끌어올리는 역할을 한 것은 분명하나 때론 그 묘사가 너무 길게 이어져서 내용 이해에 피로를 주는 점은 아쉬웠다. 또한 11편의 단편이 독립된 이야기인 것은 맞지만 <뒤안에는 바람소리>와 <그 밤 호롱불을 밝히고>, <사평역> 같은 단편은 내용이 어느 정도 연결되어 있는 느낌을 주는데, 정말 같은 세계관을 공유하고 있는 작품들이었다면 세 편이 쭉 이어지게끔 편집했다면 이해에 더 도움이 되었을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어깨에 멘 소총이 수통과 부딪치며 쩔렁쩔렁 소리를 냈다. 나는 어깨로부터 전해오는 그 섬뜩한 쇠붙이의 촉감과 확실한 중량을 새삼스레 확인하고 있었다. 그리고 항상 누구인가를 겨누고 열려 있는 총구의 속성을, 그 냉혹함을, 또한 그 조그맣고 둥근 구멍 속에서 완강하게 똬리를 틀고 앉아 있는 소름끼치는 그 어둠의 깊이를 생각했다.“
임철우- [아버지의 땅]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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