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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생활은 계속된다
이나가키 에미코 지음, 김미형 옮김 / 엘리 / 2018년 2월
평점 :
존경과 감탄을 동시에 자아내는 일은 무척이나 어렵다. 타인에게서 나와는 다른, 정확히 말하면 뛰어난 모습을 보았을 때 우리는 존경심을 느낀다. 하지만 공감은 완전히 반대의 영역에 있다. 타인에게서 나를 느낄 때 공감은 발생한다. 그렇기에 존경과 공감은 동시에 존재하는 것이 본질적으로 어렵다.
그 어려운 일을 책의 저자는 어느 정도 해냈다. 저자의 생활은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불가능에 가까웠음에도 [그리고 생활은 계속된다]는 존경뿐만 아니라 공감까지도 이끌어냈다.
일상을 영위하는 일에 필수적인 요소라고 할 수 있는 전기 에너지를 포기하고 살아가는 저자의 삶은, 동일본대지진이 그 계기였다. 동일본대지진이 일깨운 원자력 발전의 위험성은 모든 일본인에게 죽음의 공포를 가져다줬고, 그 중에서도 저자는 더 강렬한 감정을 느꼈다.
그는 신문기자로 일하던 시절 원자력 발전소의 위험을 문제 삼는 시위를 취재한 적이 있다. 그때 그는 원자력 발전소의 위험성에 대해 깊이 파고들 기회가 있었음에도 뉴스거리가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적당히 그 이슈를 외면하고 다른 특종을 찾아 발길을 옮겼다. 그러나 동일본대지진이 발생하고 후쿠시마의 원자력 발전소가 폭발하던 순간, 그는 언론인으로서 책임 소재를 추궁해야 했으나 그 순간 깊은 자기혐오를 느꼈다고 했다. 눈 앞에서 문제를 보고도 모른 척했던 자신이 과연 그럴 자격이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원자력 발전이 주는 혜택을 거부하기로 한다. 전기 에너지를 포기하고 사는 삶을 선택한 것이다. 청소기, 냉난방기구 등 비교적 사소한 가전제품부터 시작해 냉장고에 이르기까지. 조금씩 전기를 사용하는 물건들을 버려 나가기 시작했다.
처음 책을 펼쳐 머리말을 읽었을 땐 걱정을 했다. 과연 이 책의 내용에 조금이라도 나는 공감할 수 있을까? 전기를 사용하지 않는 일, 더 나아가 에너지를 사용하지 않고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게 과연 가능한가? 의문만이 가득했다. 그러나 생각보다, 하나씩 ‘필수라고 여겨진 것들‘을 버리는 작가의 생활이 그렇게 비현실적이지는 않다고 느꼈다. 청소기 대신 빗자루와 걸레를 사용하고, 냉난방을 줄이니 점차 몸이 그것에 적응하여 남들보다 훨씬 더위와 추위에 둔감해지고, 냉장 대신 건조를 통해 음싣을 보관하는 일. 당연히 어렵지만 그렇다고 터무니없다고 할 수는 없다.
또한 저자는 이런 삶을 살아가면서 자신이 겪었던 실패와 고뇌 역시 고스란히 드러낸다. 즐거운 취미였던 요리와 맛있는 음식을 포기하게 된 것, 추위를 많이 타는 체질 탓에 난방 없이 겨울을 보내는 일의 어려움, 때론 신념과 현실 사이에서 적절한 타협을 보려했던 일까지. 이러한 어려움까지도 솔직하게 드러내는 태도는 절약과 환경 보호를 위해 애쓰지만 늘 여러 실패에 부딪히는 이들로 하여금 공감을 자아낸다. 역시 어려운 일이 맞구나, 내가 특별히 의지박약은 아니었구나하는 공감을.
다만, 자신과는 다른 대부분의 사람들이 전기 에너지를 사용하는 일에 대해 몰이해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은 아쉬웠다. 존경과 공감을 동시에 이끌어내는 데 ‘어느 정도‘는 성공했다고 언급한 이유도 그것이다. 물론 책에서도 저자는 자신의 삶이 극단적이라고 언급하고, 결코 자신의 삶을 강요할 생각은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저자는 독신으로 사는 삶과 가정을 이루고 사는 삶이 가진 엄청난 간극을 다소 가볍게 치부하는 듯 보인다. 가정을 책임지는 주부의 가사노동량은 1인가구의 가사노동량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을 텐데, 자신의 경험을 이유로 가전제품이 가사노동에서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는 결론은 꽤나 빈약하게 들린다. 저자의 삶이 터무니없이 비현실적인 것은 결코 아니나, 결국 그런 삶이 가능했던 것은 그가 혼자 사는 독신이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은 책을 덮는 순간까지도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 책이 주는 가치는 명확하다. 당연하다고 여겼던 것들을 다시 돌아볼 계기를 준다는 것. 그것이다. 어쩌면 저자의 말대로 꼭 필요하다고 여겼던 것들은 그렇지 않았을 수 있고, 반대로 필요치 않다고 여겼던 것이 필요했던 것일 수도 있으니까. 당연하다고 생각한 것들을 내려놓음으로써 평안함을 찾을 수 있다면, 시도해볼만 하다. 하나씩 내려놓아보는 일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