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적의 단어들
이적 지음 / 김영사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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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이적을 오랜 시간 흠모해왔다. 그의 목소리와 음악, 그리고 무엇보다도 아름다운 그 노랫말들. 어떤 문학 작품보다도 더 위로가 됐던 그의 단어들을 평생 아끼고 사랑했다. 그래서 이 책에 너무 큰 기대감을 품었는지도 모르겠다.
[이적의 단어들]은 이적이 sns에서 포스팅한 글들을 묶어 낸 산문집이다. 그의 sns는 오래 전부터 팔로우해왔고, 그가 포스팅하는 짧은 산문들을 읽을 때마다 감탄해 마지않았다. 어쩌면 이렇게 짧으면서도 통찰력 있고 감동적인 글들을 써내는 것일까. 그렇기 때문에 이적의 산문집이 발매된다는 소식에 정말 기뻤다. 책을 열어 읽어보기 전까지.

책을 출간하기 위해 새로 써진 글들도 물론 적지 않게 있었으나 절반 이상의 내용이 이미 그의 sns에서 확인할 수 있는 글들이었기 때문에 신선함이 너무 떨어졌다. sns에 올린 글들을 엮어 책을 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책으로 묶이기에는 이렇게 기존에 공개된 내용의 비중이 높으면 안된다고 느꼈다. 산문의 내용들은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도 많았지만 쉽사리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었고,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이 글이 쓰여진 배경이나 해설이 달려있기를 바랐다. 해석은 독자의 몫으로 남겨둬야 하는 거라지만 이적의 sns만 봐도 알 수 있는 내용들이 대부분인 책을 독자가 돈을 내고 구입해야 하는 이유가 있는가?

책의 표지에는 “상상에 시동을 거는 101편의 이야기 꾸러미”라고 적혀있다.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것, 그래 좋다. 하지만 그러려면 sns에 노출되어있는 기존의 내용보다도 더 많은 새 글들을 더 엮어서 넣었어야 한다고 본다. 이미 대중에게 노출된 내용이 절반 이상인 산문집을 통해 어떤 상상력이 자극될 수 있을까?
상상력을 자극하고 싶었으면 더 많은 새로운 글을 엮었어야 하고, 그럴 여건이 안됐다면 이적의 글을 관심있게 읽을, 읽어 온 독자들과 팬들을 위해 그가 쓴 산문에 대한 읽을거리를 충분히 제공했어야 한다. 예를 들면 이 글은 어떤 계기로 쓰였는지,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이야기 말이다.

책에 수록된 산문 101편 중 약 70편 정도를 이적의 sns에서 읽어볼 수 있다. 산문에 대한 작가의 어떠한 코멘트도 하나 없으며, 새로운 글은 30%가 채 안되는 이 책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작가 이적의 산문 자체는 훌륭하다. 인간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을 보여주지만 그럼에도 사랑의 가치를 잊지 않고 읽는 이를 감싸안아주는 듯한 따스함까지. 하지만 이런 식의 출간기획은 어떤 연유로 이루어졌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다. 이 책을 돈 내고 샀을 때 얻을 가장 큰 효용은, 책으로 예쁘게 인쇄된 이적의 글을 사진 찍어 인스타그램에 올릴 수 있다는 일인 것 같다. sns 과시용 양산형 에세이로 소비될만한 글이 아닌, 철학적이고 무게감이 있는 훌륭한 산문을 과연 이런 식으로 기획할 수밖에 없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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