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도 티비도 음악도 실패했던 적이 있다. 보고 들으면서도 사라지지 않는 머리 속 잡념 그 걱정거리들은 치명적 스트레스라는 이름으로 육체의 병을 더욱 깊게 만들어 갔고 의학박사님들은 이구동성 생각을 버리라고 말했었다.나에게 생각을 버리는 현실적 방법은 하얀바탕에 이미지 없이 나열된 텍스트. 그걸 눈으로 읽고 머리 속으로는 이미지를 그려내는 그것 밖에 없었다. 간단한 방법 같아 보이지만 복식호흡 연습보다 훨씬 힘들다. 문단 간격이 넉넉한 편집. 광활한 중원 억새를 가로지르는 일진광풍이 떠오르는 분위기가 잡힌다면 그날은 성공이었다. 그렇게 도달한 숙면은 하늘을 날아 천국으로 향하는 위대한 모험으로 꿈을 짓는다.나의 병은 그렇게 안정되어가고 있는 듯하다. 상상하기를 상상하는 것. 그것이 정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