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와 할머니의 실루엣 창비시선 172
신경림 지음 / 창비 / 199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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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와 할머니의 실루엣:

실루엣, 그림자, 흐릿한 그림: 순서도 어머니가 먼저고 할머니가 나중이다. 어머니에 대한 기억이 그만큼 더 생생하고 할머니에 대한 기억은 그만큼 더 멀다. 실루엣을 말하는 것은 추억을 말하는 것이요 과거를 회상하는 것이다. 왜 시인은 회상하는가? 인간의 가슴속에는 평생을 살아오면서 겪고 느낀 온갖 것들이 가을 단풍잎처럼 물들어 있다. 그것을 꺼내 보여주는 행위만으로도 시쓰기 작업의 첫 걸음은 이루어진 것이다. 문학이 자연스럽게 꺼내진 추억, 회상 속에 독자의 심금을 울릴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언제나 판단은 독자의 몫이다. 시인은 논문을 쓰는 사람이 아니다. 말하기 쉽게 누구나 그렇다면 대안이 무엇인가? 하고 묻는다. 일단은 현실 직시가 아닐까?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그 가림없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문학은 큰 역할을 하는 게 아닐까?

혹, 대안이 있다. 유토피아, 그리스 말로 '어디에도 없는 곳'이라는 말. 이거 쉽지 않다. 꿈이다. 신기루다. 차라리 현실에 코를 박아라! 흙 냄새, 땀냄새를 맡아라. 인간의 모든 판단은 개인적인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통시적으로, 공시적으로 눈길을 들어 한 번 보라. 자기의 생은 어떤가.

온갖 색깔, 온갖 멜로디, 온갖 숨결로 삶의 모습을 서정적으로 그려낼 줄 아는 신경림 시인이 있어 별이 뜨지 않는 겨울 하늘에서도 반짝임을 보고 냉기어린 방에서도 푸근함을 느낀다.

신경림의 문학적 화두는 사실 사랑이다. 사랑이 대안이다. 사랑에는 이성이 말을 듣지 않는다. 브레이크 역할을 못한다. 사랑은 감정에 충실하다. 감정은 엑셀레이터! 사랑이 좋은 이유? 사랑은 가속도가 붙으니까.

추억하는 자의 즐거움. 실루엣! 어린시절의 흑백사진도 아니다. 시골집 창호지에 어른대는 부모님의 실룻엣. 내 마음에도 실루엣이 어린다. 내 머리가 살아 있고, 가슴에서 추억이 흐르는 한 나를 아는 사람은, 내가 알던 사람은, 이 세상에 있거나 이미 세상을 떠났거나, 모두 실루엣으로 살아 있다.

추억하기 위하여! 사랑을 추억하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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