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생활 건강
김복희 외 지음 / 자음과모음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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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시도 수필도 잘 못 쓰지만 확실히 아는 게 하나 있다. 시인들이 쓴 에세이집은 군더더기가 없고 부드럽다. 단순히 문체가 마일드하다는 뜻이 아니라, 작위적이지 않은데 영양가는 엄청난 느낌, 탈탈 털어 먹고도 혈당 걱정할 필요 없는 99.9% 두유 느낌이랄까(광고 아님🙃)


『나의 생활 건강』은 저자 라인업을 보자마자 바로 샀던 책이다. 여성 시인 10명 앤솔로지? 아ㅋㅋㅋ 이건 못참지ㅋㅋㅋ 판형도 작고 얇아서 버스나 지하철로 이동할 때 들고 다니며 읽기 좋겠다고 생각했다.


기왕이면 내가 '건강할 때'가 아니라 '건강해지고 싶을 때' 읽는 게 도움이 될 듯해서, 백신 접종하러 간 병원 대기실에서도 읽고, 혼자 미술관으로 힐링하러 가기 위해 탄 지하철에서도 읽었다.


...그동안 밖에 너무 안 나가서 이제야 완독하긴 했지만🙄 앞의 내용을 다 까먹어서 처음부터 읽으며 복희 시인님 얘기는 네 번이나 펼쳐 보긴 했지만...🙄 아무튼 무너진 마음을 붙잡아주는 문장들이 많아서 좋았다.


이 책에서 작가님들이 말하는 것처럼 나 역시 완벽히 건강한 사람이 아니고, 완벽히 건강해질 수도 없다. 혼자서는 절대 못한다. 곁에 인간이든, 반려동물이든, 예술이든 무언가가 있어야지만 계속 살아진다.


내가 붙잡을 존재는 무엇인지 아직 모르겠다. 그치만 『나의 생활 건강』을 쓴 작가님들 덕분에 늘 염두에 두며 살아갈 것 같다. 모르고 지나쳤던 일상을 자세를 낮춰 다시 관찰하면서 말이다.

최소한 내게는, 좋아하는 일을 알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무기력 대응에 큰 도움이 되었다. 좋아하는 일에 대해 의식하지 않았을 때는 무기력한 상태에 빠지지 않기 위해 여러 가지 효율적인 방도를 찾느라 무기력한 상태를 더 길게 끌었다. 무엇을 좋아하는가보다 무엇을 싫어하는가를 더 많이 생각했고 무엇을 하고 싶은가보다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가에 더 신경을 쏟았다. - P18

강한 자가 건강한 자이고 건강한 자는 약한 자(건강하지 않은 자)를 보호하기로 약속된 그 세계를 거부할 수 있게 됐다(…) 잔잔하게 망가져 있는 인간들이 사는 세계, 모두가 서로를 보호할 수 있는 알고리즘으로 이루어진 세계가 좋다고 썼다. - P22

나를 사람 구실하게 만들어준 이 멀쩡한 한 육체는 타인의 정성과 수고가 만든 것. 엄마의 토대가 아니었다면 나는 진작 비실비실 앓다 죽었을 거야. - P31

강화도에서 제일 맛있는 김밥을 싸주시는 할머니를. 곁에서 그걸 얻어먹는 엄마를. 내가 보지 못했지만, 이미 충분히 내 몸 속에 있을지도 모를 일들을 상상하는 것이 좋았다. - P98

다만 내가 아는 건, 이 알 수 없는 사랑이 나를 생활하게 한다는 것. 이 사랑이 나의 살과 기립근을 이뤄 날 일으키고 허허벌판에 홀로 서 있을 때에도 아주 혼자는 아니게 한다는 것. 그러므로 아주 먼 길을 걷는 데에도 끄떡없게 한다는 것을, 안다. - P101

주먹을 꼭 쥐고. 건너편으로 가보자. 조금만 더 가보자. 타이른다. 세계가 나를 쥐고 흔들기 시작한다. K는 점점 오기가 생긴다. 괜찮아, 괜찮아. 미안하지만 아직 안 죽어. - P121

빛의 형식이 다양할수록, 빛의 스위치가 많을수록, 방은 점점 더 많은 표정을 지을 수 있게 된다. - P135

나는 설화가 (내가 그랬던 것처럼) 잘못된 장소에 와 있다고 느끼지 않고, 자신이 있어야 할 곳에 있다고 느끼도록 해주고 싶다(…) 서로의 생활이 섞인 최선의 공간은 무엇일지 상상한다. 다음 단계의 건축하기 거주하기 사유하기가 이미 시작된 것이다. - P140

사랑의 다른 이름은 약속일 것이다. 배고프지 않게 밥을 주고, 많이 기다리지 않도록 정해진 시간이 되면 집에 들어가고, 좋아하는 것을 마음껏 하도록 해주고, 실수해도 혼내지 않고, 아프지 않게 미리 병원에 데려가고, 부드럽게 쓰다듬어주고, 따뜻하고 포근한 이불 속에서 자도록 자리를 마련해주고, 다시는 버려질 일이 없을 거라는, 네가 세상을 떠나는 순간까지 함께하겠다는 약속. 그 이후에도 너를 잊지 않을 거라는 약속. - P156

나는 반복적이고 건강한 삶만이 사회를 건강하게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 P157

가끔 회사에서도 점심시간이면 밥을 먹고 근처의 작은 갤러리를 우체국 가듯이 은행 가듯이 붕어빵이나 호두과자를 사러 가듯이 가곤 한다. - P171

예술적인 행위란 자신의 일상을, 자신의 삶을 열렬히 바라보고 사랑하는 방식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림을 보고 나오면서 나도 현실을 새롭게 각색하고 색칠하고 싶은 마음으로 충만해진다. - P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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