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의 폭력 - 고대 그리스부터 n번방까지 타락한 감각의 역사
유서연 지음 / 동녘 / 2021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시각의 폭력』은 오늘날 벌어지고 있는 디지털 성폭력의 근원을 탐색하며 낱낱이 고발하는 책이다. 나는 여태까지 불법촬영이나 성착취를 일삼는 이들을 경멸하기만 했는데, ‘시각’이라는 감각에 집중하여 뿌리를 찾으려는 저자의 시도가 신선하게 느껴졌다. 결론부터 먼저 말하자면 디지털 성폭력이 만연하게 된 저변에는 서양의 근대적·시각중심적 ‘이성’이 있었다.


(41쪽) 끝없이 나타나는 여성에 대한 폭력적 이미지들의 범람과, 그 뒤에서 하나도 놓치지 않고 끝없이 소비하겠다는 수천, 수만, 수억 개의 광기어린 눈들. …디지털 성폭력의 저변에는 여성의 시각적 대상화와 시각중심주의의 광기라는 매우 오래된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그 근원에는 여성을 비롯한 타자들과 소수자들을 눈앞에 두고 시각적으로 대상화하고 통제하려는 서양의 근대 시각중심주의적 이성이 있다.


저자 유서연은 고대 자연철학자들과 플라톤부터 시작해서, 근대를 연 데카르트와 근대의 도구였던 렌즈, 원근법, 카메라 옵스큐라 등을 ‘시각’으로 엮으며 텍스트를 전개한다. 서양철학에서 ‘빛’과 ‘시각’의 개념은 다분히 남성적이며 또한 신적인 것으로 생각되었다. 이 흐름은 18세기 계몽주의까지 이어져서 “계몽과 이성의 시선은 인식의 원천으로서의 눈과 태양을 동등하게 간주”할 만큼, 시각을 특권화하고 절대시했다(78쪽).


저자는 이처럼 신과 같이 모든 것을 한눈에 보려고 하는 경향이 바로 ‘근대(남성)의 광기’라고 명명한다. 이 근대적 광기는 제러미 벤담이 설계하고 미셸 푸코가 『감시와 처벌』에서 말한 ‘파놉티콘’에서 실현된다. 자신의 존재는 드러내지 않고 눈앞의 대상을 철저히 감시할 수 있다는 자만을 함축하고 있는 근대적 광기는 관음증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호프만의 소설 『모래 인간』(국내에서는 주로 ‘모래 사나이’로 출간됨), 키에슬로프스키의 영화 <사랑에 관한 짧은 필름>, 아커만의 영화 <갇힌 여인>은 위에서 말한 근대적 광기를 가진 관음증적 주체가 경악, 공포, 파멸로 귀결할 수밖에 없는 결과를 그려냈다. 『시각의 폭력』에서 내가 가장 마음에 들었던 부분은 바로 이 지점인데, 문학 텍스트나 영화를 예시로 들며 자칫하면 딱딱하게만 읽힐 수 있는 철학을 잘 풀어냈다는 점에서 좋았다.


관음증적 시각은 카메라의 발명으로 더욱 심화되는데, 특히 디지털 기기가 일상화된 오늘날 정점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카메라로 인한 불법촬영과 디지털 성폭력의 구조에서, ‘보는’ 가해자와 ‘보여지는’ 피해자는 전혀 다른 가치관으로 살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149쪽) 디지털 시대에 접어들어 여성의 몸은 단 몇 번의 클릭으로 과거와 미래도 없고 영혼도 없는, 그래서 실재하지 않고 단지 이미지나 형상으로만 존재하는 비틀리고 파편화된 몸으로 끝없이 재현된다. 그 여성의 의식 속에 살아 숨 쉬던 과거와 그 지평 아래 펼쳐질 미래에는 아무도 관심이 없다.


(156쪽) 누군가가 나를 빤히 쳐다볼 때 느끼는 감정은 내가 타자의 시선에 따라 객체화될 때 느끼는 수치심일 것이다. …디지털 성폭력은 바로 누군가가 내가 모르는 사이에, 내가 확인할 수 없는 공간에서 나를 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데서 느끼는 인간의 원초적인 수치심과 공포를 극대화한다.


(157쪽) 반면 어떤 남성들의 경우… 옆에서 인기척을 내는 그 누군가가 친구이고 지인일 경우, 그것을 권하고 공유한다. …이 대목에서 사르트르가 예로 든, …수치심을 느끼는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 듯하다. 그들은 누군가의 시선 아래 객체화되는 대신, 동영상 속 여성들을 노리갯감으로 공유하는 힘 있는 시선의 주체가 되기를 권한다.


이 지점에서 나는 그동안 불쾌하다고 느끼기만 했던 디지털 성폭력 가해자들의 사고방식을 이해할 수 있었다(공감한다는 게 아니다). 『걸어간다, 우리가 멈추고 싶을 때까지』(현암사, 2021)에서도 여성을 인격이 아닌 대상으로 여기는 상황에 대해 쓴 글을 읽기도 했는데, 『시각의 폭력』에서 ‘주체’와 ‘객체’ 그리고 권력으로 현상을 분석해주어서 좀 더 명확하게 알게 되었다.


그렇다면 이런 수치심이 부재하는 가해자의 카메라를 누가 부수고 전복할 수 있을까? 저자는 ‘여성 광인’의 계보를 잇는, 새로운 세대의 ‘렌즈를 깨는 여성들’을 소개한다. 우리에게 좀 더 익숙한 단어로 옮기자면 그들은 바로 ‘제트 세대 페미니스트’이고, 가부장제에 포섭될 수 없는 태생적으로 ‘저주받은 여성’들(194쪽)이다.


요즘 들어 ‘메갈’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긴 했지만, 나는 그런 ‘래디컬 페미니스트’가 없었다면 다른 여러 분야의 페미니스트들이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이 훨씬 적었으리라고 생각한다. 저자 역시 래디컬 페미니스트의 남성혐오와 과격함을 밝히기보다 그들이 등장한 배경에 주목하자고 권한다. 그리고 직접 렌즈를 송곳으로 깨트림으로써 디지털 성범죄에 사용되는 카메라의 눈을 부순 ‘소라넷 고발 프로젝트’,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추적단 불꽃’ 등의 여성단체들을 소개한다.


『시각의 폭력』은 서양 철학에서 비롯된 ‘시각’을 다루기 때문에 철학사를 잘 모르는 독자들에게는 어려운 텍스트로 다가올 수도 있다. 하지만 오늘날 가장 문제적인 디지털 성폭력을 비롯한 젠더 이슈를 이해하기엔 좋은 참고서라고 생각한다. 현장에서 일어나는 폭력의 참상에 감정적으로만 반응하지 않고, 그 이면에 숨은 배제적인 시각을 발견하는 것은 분명 중요하다. 여태까지 지배적이었던 시각 대신 ‘포용적인 촉각’ 등의 대안을 모색할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덧붙여 이 책의 마지막 부분에 언급된 뤼스 이리가레의 ‘여성성’과 ‘여성적 글쓰기’는 내게 아직 생소한 개념이지만 ‘새로운 카메라의 시선’으로 여성을 바라보는 연습을 계속 해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243쪽) 새로운 카메라의 시선은, 위계화된 시선의 권력을 통해 지금, 여기, 눈앞에 현전하는 성애화된 이미지의 여성 형상과 모양새만을 응시하는 시선이 아니다. 그것은 여성의 영혼과 정신이라는 내부와 접촉하고 공감하는 능력 속에서 만개하는 시선이리라.

끝없이 나타나는 여성에 대한 폭력적 이미지들의 범람과, 그 뒤에서 하나도 놓치지 않고 끝없이 소비하겠다는 수천, 수만, 수억 개의 광기어린 눈들. …디지털 성폭력의 저변에는 여성의 시각적 대상화와 시각중심주의의 광기라는 매우 오래된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그 근원에는 여성을 비롯한 타자들과 소수자들을 눈앞에 두고 시각적으로 대상화하고 통제하려는 서양의 근대 시각중심주의적 이성이 있다. - P41

디지털 시대에 접어들어 여성의 몸은 단 몇 번의 클릭으로 과거와 미래도 없고 영혼도 없는, 그래서 실재하지 않고 단지 이미지나 형상으로만 존재하는 비틀리고 파편화된 몸으로 끝없이 재현된다. 그 여성의 의식 속에 살아 숨 쉬던 과거와 그 지평 아래 펼쳐질 미래에는 아무도 관심이 없다. - P149

새로운 카메라의 시선은, 위계화된 시선의 권력을 통해 지금, 여기, 눈앞에 현전하는 성애화된 이미지의 여성 형상과 모양새만을 응시하는 시선이 아니다. 그것은 여성의 영혼과 정신이라는 내부와 접촉하고 공감하는 능력 속에서 만개하는 시선이리라. - P24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