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거닝 - 채식에 기웃거리는 당신에게
이라영 외 지음 / 동녘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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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거닝』은 크게 두 단원으로 나뉜다. 첫째 단원은 “뭐라도 하고 싶다면”, 둘째 단원은 “다르게 하고 싶다면”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다. 전자는 채식에 기웃거리는 이들을 위한 글이고 후자는 본격적으로 비건을 실천하려는 이들을 위한 글로 보아도 무방하다.


나는 첫째 단원의 「비겐의 식탁」과 둘째 단원의 「괜히 그 책을 번역해서」를 가장 인상 깊게 읽었다. 「비겐의 식탁」은 기사를 쓰기 위해 비건에 도전했다가 실패한 이야기이고, 「괜히 그 책을 번역해서」는 철학(동물해방)을 공부하며 채식을 결심한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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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겐의 식탁」의 ‘비겐’은 저자(신소윤 기자님)와 함께 술자리를 가졌던 선배의 말에서 따온 것이다.


(72-73쪽)

“요즘 건강 문제 때문에 나도 비건을 시작해보려고. …그런데 나는 비건까지는 아니고 비겐 정도인 것 같아.”

“아, 비긴-비겐-비건 중에 비겐 말하는 거지?”

비건 신청자 선배가 웃으며 그렇다고 했다.

“하하하, 무슨 그런 아재개그를……”

그때는 너무 썰렁한 농담이라며 웃어넘겼지만, 이후로 그의 말이 가끔 귓전을 맴돌았다.


육식을 즐기다가 갑자기 완전 채식을 시도하면 어려울 수밖에 없다. 저자는 ‘비건적(的)’으로 음식과 생활용품을 따져가며 사용했던 경험에서, 스스로를 옥죄는 채식은 실패하기 십상이라는 교훈을 얻는다. 하지만 단순 실패에 그치지 않았다고도 말한다.


(83쪽)

짧고 강렬했던 경험은 내 인생의 방향을 살짝 틀었다. …“알면, 알기 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나는, 다시 고기를 먹지만 조금은 주저하게 되었고, 먹는 것부터 입고 쓰는 것까지 동물의 희생을 대체할 것이 있으면 비건을 선택하는 비중이 훨씬 커졌다.


한 번의 ‘비긴’으로 완벽한 ‘비건’은 못 될지언정, ‘비겐’의 삶이라도 계속하다보면 비건에 가까워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저자는 ‘비겐’의 식탁으로 독자를 초대하고 격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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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히 그 책을 번역해서」에서 ‘그 책’은 피터 싱어의 『동물해방(Animal Liberation)』이다. 저자(김성한 교수님)은 어떤 사명감 때문이 아니라 친구의 권유로 별다른 생각 없이(!) 『동물 해방』을 번역했다가 혼란에 빠져버린 일화를 소개한다.


(92쪽)

한참 치킨을 뜯고 있는데, 누군가가 멀리서 다가와 내게 불쑥 인사를 했다. 동물의 도덕적 지위에 대한 내 수업을 듣고 있는 학생이었다. 인사를 받는 둥 마는 둥 하고서 치킨을 계속 먹었지만 나는 더 이상 맛을 느끼지 못했다. 특히 창피하다는 생각과 스스로에 대한 변명이 교차하면서 결국 멘붕이 왔다. …마침내 나는 채식을, 그것도 완전채식을 해보기로 결심했다.


저자는 윤리교육과 교수답게 ‘고기를 먹고 싶은 욕망’을 무려 공리주의와 칸트(!)의 철학으로 극복한다. 내가 채식을 결심한 것도 윤리 때문(『철학자의 식탁에서 고기가 사라진 이유』를 읽고 설득 당함)이었는데, 덕분에 공감하며 읽을 수 있었다.


(95쪽)

이 세상의 고통을 없애고 행복을 증진하라는 공리주의의 기준으로 판단하자면 가축들이 살아가는 현실은 우리에게 그들의 고통에 관심을 둘 것을 요청하고 있었다.


(96쪽)

아무리 애를 써도 채식의 윤리적 정당성을 반박할 수 없었다. 문제는 고기를 먹고자 하는 나의 욕구였다. …문득 칸트가 말하는 자유의 의미가 떠올랐다. 칸트가 말하는 진정한 자유란 우리가 원초적 욕망에 휩쓸리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욕망을 극복하면서 도덕 법칙에 따르는 것을 말하는데, 이러한 기준에서 진정한 자유를 누리고자 한다면 나는 고기를 먹지 않고 오히려 채식을 해야 한다.


이후 저자는 완전채식에 대한 부담을 덜고자 페스코(어류까지 허용) 채식을 시도했고 강박에서 벗어나 비교적 편안한 마음으로 식사를 할 수 있었다고 한다. 「비겐의 식탁」에서도 말했듯이, 처음부터 비건이 되려면 너무 어렵기 때문에 타협적인 페스코부터라도 시도하는 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된다.


나의 페스코 채식은, 가난한(?) 자취생으로서 매 끼니마다 완전 채식하기는 버겁기 때문에 선택한 일종의 타협안이다. 이 지점에서 죄책감을 가지고 있었는데, 『비거닝』을 통해 완전 채식을 실천하지 못했다는 무거운 마음을 덜어내고 다시 비건을 향해 달려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비건까지는 아니고 비겐 정도인 것 같아." - P72

아무리 애를 써도 채식의 윤리적 정당성을 반박할 수 없었다. 문제는 고기를 먹고자 하는 나의 욕구였다. …문득 칸트가 말하는 자유의 의미가 떠올랐다. 칸트가 말하는 진정한 자유란 우리가 원초적 욕망에 휩쓸리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욕망을 극복하면서 도덕 법칙에 따르는 것을 말하는데, 이러한 기준에서 진정한 자유를 누리고자 한다면 나는 고기를 먹지 않고 오히려 채식을 해야 한다. - P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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