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랑한 은둔자
캐럴라인 냅 지음, 김명남 옮김 / 바다출판사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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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있는 밤에 한 챕터씩 아껴 읽고 있는 책. 작가는 부정적인 감정을 술로써 회피하던 과거를 떠올리면서, 그런 부정적인 감정조차 직접 겪어내야만 성장할 수 있다고 말한다.

"우리가 술을 마셔서 ㅡ 혹은 굶어서, 먹어서, 도박을 해서, 살을 찌워서 ㅡ 감정을 몰아낼 때, 우리는 그 감정을 이해할 기회를 스스로 박탈하는 셈이다. 자신의 두려움과 자기 의심과 분노를 이해해볼 기회를, 마음속에 묻혀 있는 감정의 지뢰들과 제대로 한 번 싸워볼 기회를." p224

이론적으로는 머리로는 이 문장을 이해할 수 있지만, 역시 너무 높고 어려운 경지인 것 같다.

"나는 가끔 내가 감정에 대해서 공포증을 겪는 게 아닌가 싶을 때가 있다. 그날 거실에 우두커니 서 있노라니, 감정이 마치 오래되고 익숙한 적처럼 슬금슬금 다가오는 게 느껴졌다. 공허함과 슬픔이 내 안의 무언가를 잡아당기는 듯도 했고, 그것들이 전쟁터의 탱크처럼 나를 향해 굴러오는 듯도 했다. 내 첫 반응은 본능적이고 공포가 밴 반응이었다. 무기를 집어 들고 이 감정을 어떻게든 처치해버리자. 달아나자. 도망치자. 이 감정을 없애버리자. 그것은 ㅡ 느끼지 말고 움직이자는 것은 ㅡ 철저히 중독적인 반응이었다. 나는 내가 지닌 의지력을 몽땅 발휘하고서야 간신히 예전에 애비가 우리집 소파에서 그랬던 것처럼 견뎌낼 수 있었다. 슬픔이 내게 덮쳐오기를 기다리면서 가만히 앉아서 감정을 느꼈다." p222

불안함을 이겨내기 위해 술에 의존하다가 중독이 되고, 자유롭기 위해 중독에서 벗어났지만 여전히 문제의 원인이 된 불안은 남아있을 때.

"어려운 부분은 '살아가는' 부분이다. 이것은 내면과 관련된 일이다. 우리가 술로 끊임없이 무디게 하고 가릴 때는 잘 몰랐지만 그러지 않으면 금세 나타나는 의문들, 선택들, 감정들과 관련된 일이다. 이것이 진짜 중요한 문제다. 새벽 3시에 잠 못 들고 천장을 바라보면서 생각하게 만드는 문제다. 나는 정말로 어떤 사람일까? 나는 정말로 시간을 어떻게 쓰고 싶을까? 나는 어떤 삶을 살 수 있는 사람일까? 내게 적합한 삶은 무엇일까? 자아에 관한 이런 고민들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20대에 묻기 시작하는 질문들이다. 그러니 서른일곱에 문득 내가 이 나이를 먹도록 이런 질문들에 대답하기는 고사하고 제대로 물은 적도 없다는 것을 깨닫는 것은 덩말 심란한 일이다." p195

"오랜 세월을 술 마시는 데 쓰다가 몇 년 동안 술 마시지 않는 법을 배우는 데 쓰고 나면, 다음에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이제 뭘 하지? 결혼? 아이들? 다른 도시? 다른 직업? 정말 모를 일이잖아?" p197

정말 모를 일이잖아? 이렇게 앞날이 무정형으로 열려있다는 생각을 하면 덜컥 막막하다.

"이런 질문들은 물론 기본적인 정보가 있어야만 답할 수 있는 인생의 큰 질문들이다. 그리고 나는 금주 3주년을 맞은 지금까지도 여태 자신에 대한 가장 기초적인 질문들에 답하려고 애쓰면서 데이터를 모으고 있다." p197

원인(불안)을 해결하기 위해 나를 더 알아가고 자신과 더 편안한 사이가 될 필요가 있다는 뜻이겠지?

"나는 문득 성인이 된 뒤 대부분의 기간을 혼자 살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좀 놀란다. ... 하지만 사실 나는 이유가 있어서 이렇게 살아왔던 게 아닌가 싶가. 내가 선택한 고독의 수준이 어떤 면에서든 내게 좋았기 때문에, 나와 내가 잘 맞았기 때문에 그래 왔을 것이다." p46

인용문의 시기적 선후관계는 일관되지 않지만, 마지막 인용문을 쓴 1998년 무렵에는 작가님이 나름대로의 내적 화해에 이른 것 같은 느낌이 물씬 난다. 평화롭고 만족스러운 문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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