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 만세 - 100%의 세계를 만드는 일
리베카 리 지음, 한지원 옮김 / 윌북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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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관한 책'은 애서가들에게 피할 수 없는 유혹이다. 보장된 향락과 같은 이런 주제의 책들을 어찌 지나칠 수 있으랴. 좋아하는 출판사의 편집장이 집필한 책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펭귄 출판사의 편집장 레베카 리가 우리에게 책 이야기를 늘어놓는 이 책이 바로 그런 유혹의 결과물이다.


우선 한 가지 짚고 넘어갈 점이 있다. 저자는 각주를 사랑한다고 고백하며, 실제로 이 책에는 각주가 남발된다. 개인적으로 각주를 싫어하지 않지만, <편집 만세>의 각주들은 대부분 유쾌하지 않았다. 작가의 사소한 사담을 털어놓느라 흐름을 뚝뚝 끊기 때문이다. 잦아도 너무 잦다. 작가가 현실에서 얼마나 수다스러운 사람일지 눈에 선할 지경이다.


이 책은 출판 실무를 가르쳐주는 친절한 매뉴얼도, 현대 콘텐츠 산업의 미래를 조망하는 분석서도 아니다. 그저 아날로그 텍스트의 조각들을 붙잡고 평생을 씨름해 온 한 인간의 '덕질 기록'에 가깝다. 바로 이 지점에서 책의 명확한 한계가 드러나며 독자의 호불호도 극명하게 갈린다.


냉정하게 말해, 이 책에서 묘사되는 일부 실무적 고충은 현대 디지털 작업 환경의 관점에서 볼 때 비효율적이며 심지어 시대착오적이다. 이미 출판 편집 프로그램과 다양한 보조 프로그램이 존재하는 2020년대에 이러한 노동집약적 고통을 출판업의 숭고한 업보인 양 포장하는 것은 기술적 무지를 아날로그적 낭만으로 세탁하는 것에 불과하다.


작가는 책의 제작 과정이라는 거시적 흐름 대신, 철자법 논쟁이나 쉼표, 마침표의 역사 같은 지극히 파편화된 디테일에 수많은 페이지를 할애한다. 여기에 쓸데없는 각주들이 추가되면서 지루함은 배가 된다. 본문보다 긴 각주를 채워 넣으며 혼자 즐거워하는 저자의 모습은, 마치 자기만 재밌는 이야기를 늘어놓는 직장 상사의 독백을 억지로 듣고 있는 듯한 피로감을 준다.


그런데도 이 책을 쓰레기통에 던져버릴 수 없는 이유는, 역설적으로 그 ‘지독한 폐쇄성’에 있다.

확실히 이 책은 모두를 위한 책이 아니다. 하지만 글자 하나, 띄어쓰기 하나를 붙잡고 밤을 지새우는 ‘정신 나간 장인들의 세계’를 이토록 생생하게 보여주는 책도 드물다. 효율성을 최우선으로 두는 독자에게는 비효율의 극치이자 지루한 훈계로 들리겠지만, 누군가에게는 멸종해 가는 아날로그 장인 정신에 대한 향수와 소소한 지적 쾌감을 자극할지도 모른다.


작가의 참신한 시도 역시 언급하고 싶다. 레베카 리는 독자들에게 책의 폰트, 글꼴 효과, 각인 등을 설명하면서 이를 자신의 책에 직접 적용해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멋진 방식을 취했다. 이런 부분들은 보면서 감탄이 나왔던 부분이다. 지루해지기 쉬운 책의 초반부에 흥미를 유지하게 하는 훌륭한 장치로 기능한다.


개인적으로 흥미롭고 재밌는 부분도 분명 있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쓸데없이 장황하고 갈피를 못 잡는 이야기들에 지치는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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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트노이의 불평
필립 로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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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 로스의 <포트노이의 불평>을 읽는다는 건, 잘나가는 정치인이 술에 만취해 자신의 부끄러운 성적 판타지를 확성기로 폭로하는 장면을 직관하는 것 같다. 발간 당시 미국 전역을 뒤집어놓았던 이 작품은 문학이라는 우아한 장르가 보여줄 수 있는 가장 품격 있고 지적인 ‘야설’이다. 로스는 도덕과 교양이라는 단단한 가면을 가차 없이 찢어버린다. 그 자리에 인간이 숨기고 싶어 하는 가장 찌질한 본능을 날것 그대로 전시한다.


이야기의 구조는 단순하다. 엘리트 변호사 포트노이가 정신과 의사 소파에 누워 쏟아내는 거대한 고백록이자 넋두리다. 내용은 절대 심플하지 않다. 유대인 가문의 숨 막히는 과보호에 질려버린 주인공이 스트레스를 기괴하고 문란한 성적 집착으로 배설하는 과정이 쉴 새 없이 펼쳐진다. 로스는 주인공이 겪는 리비도의 폭발을 필터링 없이 묘사하는데, 이 상스러운 이탈의 궤적들을 이토록 세련되고 현란한 문장으로 세공해 냈다는 사실 자체가 이 소설이 가진 최고의 반전이자 유머다.


이 작품이 삼류 포르노 소설을 넘어 위대한 고전으로 살아남은 이유는, 그 문란함의 이면에 도사린 '눈물겨운 생존 투쟁'을 포착했기 때문이다. 포트노이의 지칠 줄 모르는 방탕함은 사실 쾌락을 위해서라기보다, 자신을 옥죄는 종교적 율법과 사회적 시선이라는 거대한 밀실을 부수기 위한 처절한 발악에 가깝다. 로스는 가해자이자 피해자인 주인공을 섣불리 위로하지 않는다. 그저 죄의식과 수치심이라는 지옥 속에서 자신을 파괴해 가는 인간 본연의 이기심을, 냉소적이면서도 배꼽 잡는 블랙코미디로 관조한다.


고결한 척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뒤통수를 후려치는 가장 발칙하고 예리한 비수 같은 작품이다. 독자는 불쾌함과 해방감이 묘하게 뒤섞인 카타르시스를 목도하게 된다. 이 소설은 우리가 딛고 선 이 견고한 도덕적 일상이 사실은 얼마나 나약한 인간의 본능 위에 아슬아슬하게 부유하고 있는지를 폭로한다. 유쾌하고 완벽한 심리 해부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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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엄마 찬양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지음, 송병선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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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의 <새엄마 찬양>은 탐미주의의 극단에서 피어난 지독하게 아름답고도 서늘한 심리극이다. 작가는 에로티시즘이라는 원초적인 캔버스 위에 문학적 서사와 서양 미술의 명화들을 정교하게 중첩시켰다. 이 작품이 지닌 본질은 단순한 금기의 위반이 아니다. 시각적 질감과 인간의 은밀한 욕망을 포착한 고도의 지적 게임이다.


작품을 지배하는 공기는 모순적이게도 극도로 투명하고 정제되어 있다. 부부가 나누는 관능의 세계는 추잡함이 거세된, 마치 하나의 완벽한 예술품을 감상하는 듯한 숭고한 미학적 결을 유지한다. 여기에 매 장마다 삽입된 명화들은 인물들의 내면을 비추는 입체적인 거울로 기능한다. 소설의 산문을 공감각적인 회화의 영역으로 격상시킨다. 요사는 인간의 성적 욕망과 살결의 촉각, 그리고 그 틈새로 스며드는 시선들을 무서울 정도의 정밀함으로 작성해냈다.


이 완벽해 보이는 미학적 유토피아에는 가장 순결한 존재의 얼굴을 한 소년 '알폰소'가 부르는 기묘한 균열이 도사리고 있다. 천사의 미소 뒤에 숨은 이 미지의 존재는, 인간 본성의 근원적인 모순과 모호함을 폭로하는 거대한 수수께끼다. 요사는 이 관계의 서사를 섣불리 단죄하거나 윤리적으로 훈계하지 않는다. 그저 철저히 중립적인 관찰자의 시선에서, 유려한 환상 밑에 숨은 인간의 이중성과 이기심을 건조하게 응시할 뿐이다.


인간의 가장 은밀한 욕망의 지도 위에서 선과 악, 순수와 타락의 경계가 얼마나 허망하게 허물어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예리한 비수. 유혹의 축제가 흐르는 자리, 독자는 한동안 책을 내려놓지 못한 채 자신이 외면해 왔던 내면의 비루한 그림자를 물끄러미 목도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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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ㅣ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12
나쓰메 소세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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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세키의 펜은 인간 본성의 가장 은밀한 죄의식을 추적하는 해부학자의 메스 같다. 부채감으로 평생을 자책하면서도, 끝내 아내에게는 그 진실을 은폐함으로써 자신만의 고결함을 유지하려 했던 선생의 이중성은 인간이라는 존재가 지닌 근원적인 모순을 폭로한다. 소세키는 인간을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의 캔버스에 가두지 않는다. 대신 추악함과 나약함, 이기심과 수치심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마음의 지도를 있는 그대로 그려낸다. 그 정밀한 지도 위에서 독자는 타인의 비극을 관람하는 구경꾼이 아니라, 언제든 가해자가 될 준비가 되어 있는 자기 자신을 목도하게 된다.


타인의 내면은 영원히 해독할 수 없는 암호표와 같다. <마음>은 서로를 완벽하게 이해한다는 인간의 믿음이 얼마나 알량한 기만인지를 서늘하게 폭로한다. 100년이라는 물리적 시간의 간극조차 소세키의 텍스트 앞에서는 무력해진다. 소세키는 에도 시대의 유물과 근대의 개인주의가 충돌하던 메이지의 끝자락에서, 인간이라는 존재가 필연적으로 품고 살아가는 ‘에고이즘’의 심연을 정교한 메스로 도려내어 활자 위에 펼친다.


작품 속 '선생'이 품은 원죄는 거창한 악의에서 비롯되지 않았다. 그것은 생존과 욕망 앞에서 타인을 짓밟고 마는 인간 본연의 얄팍한 이기심이다. 자신의 실수에서 평생을 죄의식 속에 유폐된 채 살아간 선생의 삶은, 타인이라는 지옥 속에서 자신을 파괴해 가는 과정과 다르지 않다. 소세키는 이 파멸의 궤적을 섣불리 단죄하거나 연민하지 않는다. 그저 인간의 밑바닥에 똬리를 튼 비루한 생존 본능과 짙은 고독을, 감정이 철저히 배제된 메마른 산문으로 관조한다.


끔찍한 비극은 인물들이 끊임없이 서로에게 닿기를 갈구함에도 끝내 그 거리를 좁히지 못한다는 사실에 있다. ‘나’는 선생의 그림자를 좇으며 그의 내면에 닿으려 하지만, 그에게 돌아온 것은 결국 타인의 피비린내 나는 고백이 담긴 두꺼운 유서 한 통뿐이다. 활자로 박제된 과거의 고백은 결코 온전한 이해가 될 수 없다. 결국 인간은 타인의 마음을 들여다본다고 착각하지만, 실상은 타인의 상실을 거울삼아 자신의 고독을 재확인할 뿐이라는 이 냉혹한 진실이 독자의 숨통을 조인다.


소세키 문학의 위대함은 그것이 철저하게 정제된 ‘건조한 산문’의 형태를 취한다는 점에 있다. 100년 전 쓰인 이 텍스트가 지금의 우리를 여전히 관통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인류가 우주의 구조를 탐측하고 세계를 촘촘하게 연결한 시대에도, 우리는 여전히 타인의 마음이라는 1센티미터의 장벽조차 넘지 못한 채 각자의 밀실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독자는 자신의 견고해 보이던 일상이 사실은 누구와도 진정으로 연결되지 못한 채 부유하는 고립된 섬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소세키가 묻어둔 100년 전의 낡은 편지는,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의 뼈아픈 실존을 명중시키는 가장 예리한 비수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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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사르의 마지막 숨 - 우리를 둘러싼 공기의 비밀
샘 킨 지음, 이충호 옮김 / 해나무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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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카이사르가 마지막 순간 내뱉은 숨 일부를 지금도 들이마시며 살아간다. 얼핏 과장된 수사처럼 들리는 이 문장. 샘 킨의 <카이사르의 마지막 숨>을 완독하고 나면 놀랍도록 첨예한 현실로 변모한다. 공기는 사라지지 않는다. 그저 대기라는 거대한 스크린 위를 떠돌고, 섞이고, 끊임없이 순환한다. 우리가 처음 세상 밖으로 내뱉은 첫 비명 같은 숨 역시 언젠가 시공간을 넘어 누군가의 폐 속으로 흘러 들어갈 것이다. 보이지 않는 무색무취의 기체들이 사실은 지구의 탄생부터 인류의 종말까지 모든 역사를 기억하는 ‘가장 거대한 기록 보관소’임을 증명해 내는 서사이다.


샘 킨은 과학을 오만하게 설명하는 관찰자가 아니다. 과학과 기꺼이 짝이 되어 끝없이 수다를 떠는 다정한 이야기꾼에 가깝다. 그는 화학과 물리, 역사와 인간의 비루한 욕망을 한데 뒤섞는다. 공기라는 투명한 존재 안에 얼마나 많은 서사들이 숨어 있는지를 끊임없이 찾아낸다. 그 솜씨가 어찌나 정교한지, 마치 공기 자체가 오래 참아온 비밀스러운 역사를 이제야 인간에게 털어놓으려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다.


기원전 44년, 칼에 찔린 카이사르가 마지막으로 내뱉은 숨결 속 분자들이 지금, 이 순간 나의 폐부로 흘러 들어올 확률이 존재한다는 낭만적인 가설로 시작하는 이 책은, 딱딱한 화학적 지식을 가장 문학적이고 극적인 서사로 세공해 내는 저자의 탁월한 스토리텔링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480페이지에 달하는 묵직한 분량은 이상할 만큼 가볍게 넘어간다. 샘 킨의 문장이 지닌 힘은 단순히 지식을 주입하기보다 독자의 마음에 호기심을 전염시키는 데 있기 때문이다. 그는 과학을 범접할 수 없는 것으로 두는 대신, 유쾌한 술자리 잡담처럼 편안하게 풀어낸다. 놀랍게도 그 잡담의 이면에는 인간 문명의 흥망성쇠와 우주의 역동적인 구조가 자연스럽게 스며 있다. 원소 하나를 설명하다가도 어느새 전쟁과 연금술, 우주 탐사와 철학의 영역으로 매끄럽게 미끄러져 들어가는 방식은 기교를 넘어선 재능이다. 덕분에 독자는 과학책을 읽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인류가 대기를 개척해 온 거대한 모험담을 경험하게 된다.


이 책이 지닌 가장 큰 미덕은 거시적인 지구사와 미시적인 분자의 세계를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정교한 시선에 있다. 화산 폭발이 바꾼 기후의 대재앙부터 방사능 기체가 예고하는 인류의 디스토피아적 미래까지.


인상적인 것은 이 책이 일상의 '공기'를 완전히 다른 존재로 재인식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우리는 공기를 가장 흔하고 당연한 것으로 여기며 의식조차 하지 않은 채 살아간다. 샘 킨은 그 투명한 익숙함 속에 인간의 역사와 죽음, 사랑과 재앙, 그리고 우주의 거대한 시간이 켜켜이 쌓여 있음을 증명해 낸다. 대기는 단순한 기체의 집합이 아니다. 그것은 누군가의 마지막 숨결이자, 지나간 시대가 남긴 잔해이며, 인류 전체가 실시간으로 공유하고 있는 보이지 않는 기록물이다. 샘 킨은 우리가 모두 '역사의 호흡'을 공유하는 연대의 존재임을 속삭이는 것이다.


우리는 같은 공기를 나누고, 같은 역사를 들이마시며, 같은 세계를 조금씩 통과하고 있는 가장 아름다운 동반자들이기 때문이다. 책을 덮고 문득 내쉬는 한 자락의 숨결이, 이전과는 전혀 다른 무게로 폐부에 감겨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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