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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고 일하고 사랑을 하고 ㅣ 창비시선 472
최지인 지음 / 창비 / 2022년 3월
평점 :

어떤 시집은 타인의 목소리를 빌려 불현듯 삶 속으로 들어온다. 가수 이승윤이 읊조리던 시구와 노랫말로 승화된 '1995년 여름'의 잔상에 이끌려 펼쳐 든 최지인의 시집 <일하고 일하고 사랑을 하고>. 직접 돈 주고 산 첫 시집이다.
최지인의 시선은 현대사회의 주변부로 밀려난 청년 세대의 어두운 실존을 비추는 조명탄이다. 반복되는 노동의 굴레 속에서 일하고, 일하고, 또 일하지만 끝내 손에 쥐어지는 것은 없는 곤궁한 현실. 시인은 이 황량한 생존의 터전을 고발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 마모된 일상의 틈바구니에서 기어이 '사랑'이라는 단어를 길어 올린다. 그의 시가 짙은 절망 속에서도 완전히 침몰하지 않는 이유는 그 자신이 이 혹독한 계절을 맨몸으로 버텨낸 한 사람의 생존자이기 때문이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동 세대의 언어로서 이 시집은 유독 묵직한 공명을 남긴다. 텍스트 안에는 안이한 감상주의나 무책임한 긍정의 위로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시인은 섣부른 희망을 기저에 깔지 않은 채, 청년들이 마주한 사회적 조건과 앙상한 현실의 단면을 담담하고 서늘하게 기록한다.
치열하게 일해도 온전히 뿌리내리지 못하는 불안정한 삶 속에 우린 갇혀있다. 시인은 아주 얕은 호흡으로 겨우 생존하면서도 역설적으로 타인을 향해 깊이 사랑을 건넨다. 값싼 구원을 약속하지 않기에 더욱 진실하게 다가오는 이 시집. 척박한 세계를 견디며 각자의 하루를 밀고 나가는 청춘들에게 건네는 정직한 동행의 기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