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 -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
조이스 캐롤 오츠 지음, 공경희 옮김 / 포레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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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이스 캐롤 오츠의 <좀비>는 얇지만 불쾌하게 오래 남는다. 읽는 동안의 긴장 때문이 아니다. 책을 덮은 뒤에도 그 서늘한 잔상이 뇌리에서 휘발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소설은 잔혹해서 충격적인 것이 아니라, 비명이 거세된 채 너무나 건조해서 소름 끼친다.


<좀비>는 한 연쇄살인범의 1인칭 기록 형식을 취한다. 주인공은 자신을 특별한 존재로 여기지 않는다. 그에게는 지적 과시도, 악마적인 카리스마도 없다. 대신 그 자리를 채우는 것은 타인을 ‘완전히 소유하고 싶다'라는 지독하고도 공허한 열망이다. 그는 자신에게 절대적으로 복종하는, 의지가 박탈된 존재인 '좀비'를 원한다.


오츠는 인간의 근저에 있는 비루한 욕망을 극한으로 증폭시킨다. 여기서 공포는 선명한 선혈이 아니라, 일그러진 사고의 구조 그 자체에서 기인한다. 타인을 독립된 인격체로 인정하지 못하는 정신, 관계를 상호성이 아닌 일방적 소유로 이해하는 태도. 그리하여 <좀비>는 연쇄살인 기록이면서도, 동시에 뒤틀린 ‘사랑’에 관한 기괴한 보고서처럼 읽힌다.


문득 김영하의 <살인자의 기억법>이 겹쳐 보인다는 점은 흥미롭다. 두 작품 모두 살인자의 1인칭 독백이라는 형식을 빌려 독자를 범인의 내면에 강제로 유폐시킨다. 감정을 배제한 건조한 문장, 그리고 신뢰할 수 없는 화자라는 장치를 통해 독자의 인식을 교란하는 방식은 놀라울 정도로 닮았다.


이 작품엔 구원의 가능성도, 서사적 미화의 여지도 없다. 소설은 철저히 불편하고 서늘하며, 끝까지 인간을 변명하지 않는다. 사이코패스의 뇌를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오츠는 그들의 사유 체계를 첨예하게 분해한다.


<좀비>가 이토록 인상적인 이유는 명확하다. 이 소설은 범죄를 구구절절 설명하려 하거나 이해시키려 들지 않는다. 그저 보여줄 뿐이다. 괴물은 선천적인 도태의 결과인가, 아니면 우리가 외면해 온 욕망의 그림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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