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 순양함 무적호 민음사 스타니스와프 렘 소설
스타니스와프 렘 지음, 최정인.필리프 다네츠키 옮김 / 민음사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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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니스와프 렘, 그가 이 소설을 어떻게 썼을지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된다. 1964년에 발표된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외계 행성과 과학 기술에 대한 묘사는 섬뜩할 정도로 정교하다. 인류가 한 번도 닿아보지 못한 레기스 3 행성의 황량한 풍경과 거대 기계들의 질감을 이토록 시각적으로 구현해 낸 것을 보면, 그는 분명 그 행성에 직접 가본 것이 틀림없다. <우주 순양함 무적호>는 SF라는 장르가 도달할 수 있는 가장 서늘하고도 지적인 정점에 서 있는 작품이며, 그의 경이로운 상상력은 시대를 앞선 예지력에 가깝다.


이러한 정교함의 근저에는 렘의 압도적인 지성이 자리 잡고 있다. IQ 180으로 알려진 그의 천재성은 작품 속 다양한 분야의 과학자들이 나누는 대화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외계 행성에서 벌어지는 기묘한 현상을 두고 생물학자, 물리학자 등 각계 지성인들이 펼치는 논리적 가설과 치열한 논쟁은 그 자체로 흥미로운 문학적 체험이 된다. 복잡한 과학적 설정들을 한 치의 오차 없이 조율해 낸다. 그의 뇌가 그려낸 지적 설계도 앞에서는 그저 깊은 존경심을 보낼 수밖에 없다.


렘은 이 소설을 통해 SF의 익숙한 문법을 단호히 거부한다. 그는 미지의 존재를 인간의 논리로 해석하려는 시도 자체가 얼마나 무모한 ‘인류 중심적 허상’인지를 서늘하게 증명해 낸다. 인류는 거대한 우주 앞에서 한 톨의 모래보다 작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실감하게 만드는 것이다. 특히 미지의 존재에 접근하는 그의 방식은 독보적이다. 지능이 결여된 대상에게 ‘복수심’을 품고 사투를 벌이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통해, 지능이 없는 존재가 어떻게 지능을 가진 인간을 무력화시키고 인식론적 붕괴로 몰아넣는지를 명징하게 보여준다. 그것은 흡사 자연재해에 대항해 복수를 꿈꾸는 무력한 몸짓과도 같다.


무적호 대원들이 겪는 좌절은 물리적 패배보다 근원적인 고립감에 기인한다. 미지의 존재는 인간을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반응’하거나 ‘배제’할 뿐이다. 소통의 의지조차 거세된 그 압도적인 타자성 앞에서 인류의 모든 과학과 언어는 무력한 소음으로 전락한다. 우주가 인간을 위해 설계된 무대가 아니라는 진실은 렘의 문장을 타고 독자의 내면을 파고든다.


이 차가운 하드 SF 걸작을 통해, 우리는 우주를 탐사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거대한 거울을 들고 우리 자신의 반영을 찾고 있을 뿐이라는 고독한 진실과 마주하게 된다. <우주 순양함 무적호>는 렘의 천재성이 빚어낸 독보적인 역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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