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역사의 쓸모 - 합리적이고 품위 있는 선택을 위한 20가지 지혜 역사의 쓸모
최태성 지음 / 프런트페이지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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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리적이고 품위 있는 선택을 위한 지혜가 필요하다면 <다시, 역사의 쓸모>

“꿈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여야 한다.”

독립운동가 박상진은 1910년 판사 시험에 합격해 평양 법원으로 발령까지 받았으나 우리나라가 국권을 상실하자 사표를 던졌다. 그의 꿈은 판사가 아니라, 법을 몰라 늘 당하고만 사는 평범한 이에게 도움을 주고 정의가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역사의 쓸모>로 처음 마주한 이 통찰은 내게 강렬한 울림을 남겼고, 아직 진로를 결정하지 못한 아이들을 만날 때마다 들려주는 이야기가 되었다. 이처럼 역사의 쓸모를 제대로 알게해준 전작이 있었기에 <다시, 역사의 쓸모>의 출간이 반가웠고 폭풍 밑줄을 그으며 깨달았다. 혹시나 형만 한 아우 없다는 속담이 딱 들어맞으면 어쩌나 하는 생각은 괜한 기우였음을.

차이가 있다면 전작은 한국사 위주였고 이번에는 세계사까지 영역을 확장했는데 난 이 점도 마음에 든다. 인간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지혜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공통됨을 알려줌으로써 역사를 배워야 하는 이유나 역사의 쓸모를 재차 일깨우는 장치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인물도 한국인이 아닌 1912년,
우리나라로 의료 봉사를 자원했던 미국인 간호 선교사 서서평이다. 그녀의 본명은 엘리자베스 요한나 셰핑. 3.1운동 당시 부상자들을 치료하고, 여성 교육에 앞장서고, 모두가 두려워하고 기피하던 한센병 환자들을 보살피며 그들의 처우 개선을 위해 애쓴 사람.

매일 최소한의 음식으로 허기만 채우며 봉사활동을 이어가다 끝내 영양실조로 숨진 그녀의 유품은 오직 담요 반 장이었다고 한다. 그나마 가지고 있던 담요 한 장도 어려운 사람에게 절반 찢어주었고, 숨지기 직전엔 자신의 시신까지 병원에 기부했다고… 침대 머리맡에 “Not Success But Service(성공이 아닌 섬김으로)”라는 문구를 붙여두고 기도했다는 서서평은 세상에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떠났으나 그녀가 나눈 사랑만큼은 분명한 역사로 남아있다.

지극히 범인인 내게 서서평은 신화적 인물이고 감히 닮고 싶단 생각조차 들지 않는다. 그래도 다음은 명심하고 실천하며 살아가려 한다. 그 정도는 할 수 있고, 해야만 한다.
20대 대선 당시 내 선택에 죄책감을 안고 살아온 지난 2년을 생각하면 더더욱. 그렇다고 윤석열 뽑았나보네라는 모욕적인 오해는 금물. 그건 아님. 아무튼 아님. 국짐당 당원들 정신차려요, 제발.

📚 세상은 위인에 의해서만 좌우되지 않습니다. 하나하나의 물방울이 모여 거대한 물결을 이루듯,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한 사람 한 사람의 건강한 시대정신이 결국 역사를 바꾸거든요.(중략) 나 그리고 우리의 행동이 곧 역사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내 존재가 작아 보이더라도 나 역시 역사의 구성원이자 주체라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어요.-p.30

📚 남이 한 번으로 능하거든 나는 백 번을 하고, 남이 열 번으로 능하거든 나는 천 번을 하라. 과연 이러한 도에 능하게 된다면, 비록 우둔하더라도 반드시 명석해지고 비록 유약하더라도 반드시 강해질 것이다.- 중국의 사서오경, <중용> 중에서

📚 가끔은 ‘남들도 다 이렇게 살아’라는 말이 마법의 문장처럼 느껴져요. 기본이나 정도를 지키려는 마음을 무력화하는 마법을 부리는 거죠. 하지만 남들이 사는 대로 사는 게 과연 나를 위한 선택일까요? 그건 자기 존엄성을 스스로 해치는 일 같아요. 결국 자기를 위한 선택이 아닌 거예요. 그러니 계산기를 두드리기보다 그저 올바른 일을 하나씩 해나가는 것이 나의 존엄을 지키는 길일 것입니다.-p.119

📚 구체적인 내용을 알 수 없는 크고 원대한 목표에 사로잡혀 소박한 오늘의 행복을 외면하지 말 것, 나의 삶은 나 혼자 만드는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의 도움을 받으며 비로소 완성되는 것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 것, 그리고 하루를 정성스럽게 사는 일을 게을리하지 말 것-p.2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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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목 박완서 아카이브 에디션
박완서 지음 / 세계사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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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 작가가 각별히 애정한 데뷔작.
✅️한국 전쟁 중, 동료로 만났던 박수근 화백과의 인연을 바탕으로 한 자전적 작품.

#스포주의
소설에 한해선 사전 정보를 최대한 차단하는 내겐 이 두 가지 정보가 전부였다. 그래서 박완서 작가의 분신처럼 여겨지는 주인공 경이가 제 아버지뻘이자 다섯 아이의 아버지이며, 아내와의 사이도 원만한 유부남이자 박수근 화백이 모티브라는 화가 옥희도 씨와 사랑에 빠지는 전개에 퍽 당황했다. 특히나, 아무것도 모르는 옥희도 씨의 아내를 향한 경이의 언행들은 무례함을 넘어 돼먹지 못했단 생각에 기가 차기도 했다. 경이의 이기적 면모를 보며 작가님의 글이 의외로 푸근하지 않고 차가우리만치 현실적이라던 선배의 말에도 수긍했다. 그런데...

🍂 나목 : 잎이 지고 가지만 앙상히 남은 나무

경이가 밉긴커녕 애처로웠다. 내겐 경이가 나목 같았다. 전쟁의 한복판에서 자신의 제안 때문에 두 오빠가 처참히 죽었다는 죄책감과 어머니의 원망, 무관심 속에서 ‘나목’이 되어버렸음에도…자신을 포기하지 않고 스스로 생명을 불어 넣으려 발버둥치는 스무 살 짜리를 어찌 미워하랴. 아빠가 그리웠으리라. 마음을 기댈 곳이 필요했으리라. 전쟁이 남긴 상흔을 일순이라도 잊고 싶었으리라. 한 순간이라도 살아있음을 느끼고 여자의 삶을 누리고 싶었으리라.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그렇게라도 버틴 경이가 장했다.

어디까지가 박완서의 삶인지는 모른다. 만일 이것이 내 어머니의 글이라면 한 인간이자 여자로서의 그녀를 편린이나마 알 수 있음에 남다른 감정과 존경심이 샘솟을 것 같다. 그리곤 못 참고 묻겠지.

👩‍💻 '엄마, 그래서 박수근 화백이랑은 어디까지가 진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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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보니, 시간 - 바로 지금에 관한 이야기 33한 프로젝트
이권우 외 지음, 강양구 기획 / 생각의힘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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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보니, 시간>


책태기에도 권할 수 있는 과학책이랄까.

<살아 보니, 시간>은 세 친구(과학책방 갈다의 대표이자 천문학자인 이명현, 과학의 대중화에 앞장서고 있는 이정모, 도서 평론가 이권우)의 공동 환갑 기념으로 기획되었으며 물리학자 김상욱과 함께 ‘시간’을 주제로 나눈 대화를 정리한 것이다.

‘바로 지금에 관한 이야기’라는 부제에 끌려 읽은 책인데 다음의 한 마디로 귀결된다고 볼 수 있다.

“살아 보니, 과거에 연연하는 것만큼이나 바보 같은 일이 없더라고요. 아픔과 상처, 아쉬움과 머뭇거림, 이 모든 걸 잊고서 지금, 오늘에 집중했으면 좋겠어요.”-p.125

물리학자와 함께 시간을 얘기한다니 어려울 줄 알았고 실제로 ‘여는 글’은 잘 안 읽혔지만 막상 본문 들어가니 술술 잘 읽힐 뿐 아니라 내용도 아주 흥미로웠다. 최은영 작가의 <밝은 밤>도 재발견도 좋았고, 분량도 150페이지 미만이니 부담없이 읽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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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은 날씨를 바꾼다 철학은 바꾼다
서동욱 지음 / 김영사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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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철학이 날씨를 바꾼다>는 무슨 뜻?

<철학이 날씨를 바꾼다>는 인간이 날씨에 관해선 예측조차 영원한 좌절을 친구로 삼을 만큼 무력하지만, 마음의 날씨만큼은 생각(철학)으로 바꿀 수 있단 뜻이다. 날씨를 알려줄 뿐 아니라 파산한 이를 위로하며 옷을 따뜻하게 입어라, 우산을 잊지 말라는 조언까지 덧붙이는 일기예보 스크립트 같은 글을 작성하고 싶었다는데 목표는 충분히 달성하신 것 같다.

2. 시간적, 심리적 여유가 없을수록 강추! 이유는?

미숙한 독자이자 철학에 문외한인 나 같은 독자는 몇날며칠 붙잡고 읽어야 할 책이다. 하지만 시간이나 심리적 여유가 없을수록 일독할 가치가 차고 넘친다고 강조하고 싶다. 미처 돌아보지 못한 나의 과거 언행을 이해하고 표현해내는 데도 도움이 되고 (예를 들면 '철학자와 계몽군주'란 글을 통해 얼마 전의 내 분노의 원인이 복종의 요구였음을 깨달음), 향후 같은 상황에 놓인다면 좀 더 이성적으로 대처할 수 있을 것 같단 위안까지 얻을 수 있어 없던 여유가 생기기 때문이다. 읽다보니 프롤로그에서 '여기서 그냥 쉬라'고 한 이유를 알겠더라. 급할수록 돌아가라더니 역시...

3. 저자가 진정한 한국인인 까닭

한국인 부모 아래 태어났단 소리가 아니다. 모든 글이 완벽한 미괄식이란 점에서 '찐' 한국인이다. 소장가치가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면 서점에서 글 몇 편의 마지막 문단이나 문장을 읽어보길. 어딘가 신형철 평론가가 연상되는 다정한 통찰과 명문들, 표지 그림까지 더없이 훌륭하다! #취향저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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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그리고 저녁
욘 포세 지음, 박경희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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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노벨문학상 수상자, 욘 포세의 소설 <아침 그리고 저녁>은 2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에서는 주인공 요하네스의 탄생을, 2부에서는 죽음을 그린다. 주인공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는 거의 다루지 않고, 탄생보다는 죽음에 큰 비중을 두었다. 적은 분량으로 꽤 깊은 여운을 남기니 포세 입문작으로 권할만하다.

이 작품에는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는 특이점이 두 개 있는데 하나는 같은 말의 반복이 많은 것이고, 또 하나는 마침표를 (거의) 쓰지 않았단 점이다. 이에 몇 마디 남겨보려 한다.

동어 반복은 글에 운율감을 부여하기 마련이다. 이 작품도 모든 문장이 노래 가사 같다거나 아름다운 한 편의 장편 시 같다는 평가를 많이 받았던데 문학적 수사보다는 서사에 집중하는 편인 내겐 사족처럼 느껴질 때가 많았다. 반복 때문에 장편 턱걸이한 것 같은...중역의 한계도 의심해 본다.

#스포주의

문장과 문장 사이에 마침표 대신 사용한 쉼표는 삶의 이어짐을 의미하겠거니, 마침표는 주인공이 삶에 종지부를 찍을 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등장하겠거니 싶었는데 그렇게 뻔하진 않았다. 포세의 마침표는 예상치 못한 순간들에 은밀하게 숨어있었고 마지막 쉼표는 죽음과 사후세계에 대한 포세의 신념을 비춰주었는데 그 부분이 꽤 마음에 들었다.

숨은 마침표 찾기 후, 사용된 순간들의 공통점까지 찾아보면 좋을 듯. 독서모임을 한다면 옮긴이와는 또다른 견해들이 나오겠지. 재미있겠다!

👩‍💻 사는 게 다 그렇지... 죽음 이후의 세상은 정말 존재할까? 영혼은? 당신의 생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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