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3월에 읽은 세 번째 책

 

 바트 어만 교수와 그의 스승 브루스 메츠거 교수가 공저한 책인 것을 알고 기대감에 샀던 책이다. 일부 새롭게 알게 된 정보들이 흥미롭긴 했으나 결코 일반인이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책은 아닌 것 같다. 다 읽기까지 좀 힘들었다. 사본관련 세부적인 설명들은 매우 지루하기도 했다. 바트 어만 교수의 단독 집필 책들에서 느꼈던 흥미로움은 없다. 학술서적임을 뼈저리게 느꼈다. 그러나 다 읽은 후의 보람은 나름대로 있다. 일시적인 성취감 같은 것이겠지. 교과서를 통독하고 나서 느낄 수 있는 감정이 이와 비슷하려나? 나는 아직도 지적 허영심에서 자유로워 지려면 멀었다. ‘나 이런 책도 읽은 사람이야! ㅋㅋㅋ.’

 바트 어만 교수의 책들을 먼저 읽은 덕에 그나마 읽을 수 있었던 듯. 어만 교수가 자신만의 생각들로 사기친 것이 아니라는 생각도 이 책 읽으면서 들었다. 메츠거 교수의 다른 책들도 장바구니에 넣어두긴 했는데 …… 망설여진다. 또 이렇게 재미없으면 어쩌지? 막연하게 종교학을 동경하기도 했으나 이런 내 자신을 보면 아무래도 사본학이라는 종교학의 분과에 대해서 만큼은 내 체질이 아닌 듯 싶다.

 줄 친 내용들 정리해 본다.

 

신약성경 각 책에 본문비평을 적용해야 할 필요성 …… 1. 원본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다는 것과 2. 현존하는 필사본들이 서로 다르다는 것이다. 본문비평은 다양한 사본들 가운데 어떤 본문 형태가 원문에 가장 가깝다고 간주되어야 하는지를 확인하려는 작업이다.’(7)

 

‘2세기 초(또는 1세기 말경)에 교회에서는 코덱스 또는 나뭇잎 모양의 책의 형태가 사용되었다.’(33)

 

코덱스 형태를 일찍이 도입하고 대중화한 것은 기독교인들인데, 그들은 거룩한 책을 만드는 데 있어 두루마리보다 코덱스 형태를 선호하였다 …… 두루마리를 사용하는 것보다 코덱스 형태를 사용할 때 절감되는 파피루스의 가격이 약 44% …… 두루마리에서 코덱스로 바꾸는 것은 파피루스와 필사 작업에 대한 비용을 합하여 약 26% 정도 절감효과 …… 그레코-로만 시대의 기록 재료로서 파피루스 가격은 가난한 계층에게 매우 비싼 것이었다고 하였다.’(35)

 

양피지는 파피루스보다 훨씬 단단하고 오래가는 재료다 …… 유세비우스는 자신의 저서 [콘스탄틴의 생애]에 로마 제국이 양피지 필사본 50권을 요구했던 것에 대한 정보를 덧붙였다.’(35)

 

고대에는 두 종류의 헬라어 서체가 일반적으로 사용되었다. 하나는 서적체이고 다른 하나는 흘림체이다.’(38)

 

소문자체를 사용할 경우의 이점 …… 보다 촘촘하게 기록할 수 …… 적은 양의 양피지를 사용 …… 큰 사본보다 다루기에도 편리 …… 빨리 기록하는 것이 가능하여 결과적으로 보다 빠르게, 저렴하게 생산할 수 있었던 것이다.’(41)

 

‘9세기의 학자들은 오래된 대문자체의 책들을 새로운 서체로 옮기는 작업에 열정적으로 착수했다 …… 소문자체의 보급은 일반적으로 문화의 발달, 특별히 성경이 널리 보급되게 하는 데 있어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43)

 

원래 있던 기록을 긁어내고 씻어서 표면을 다시 부드럽게 만들었다. 이렇게 재활용되는 재료 위에 새로운 문학 작품들이 필사되었다. 이러한 책을 팔림세스트(palimpsest, 재활용 양피지 사본, 재사본)라고 한다.’(43)

 

고대 서기관들이 헬라어를 기록할 때 보통 단어 또는 문장 사이에 어떤 공간도 남겨 두지 않았는데(이런 종류의 쓰기를붙여쓰기’[scriptio continua]라 한다) …… 그렇다고 해도 …… 모호함이 헬라어에서 매우 자주 일어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 ‘붙여 쓰기가 읽기에 특별한 어려움을 보인다고 생각해서는 안 되는 것은 분명 고대에서는 습관적으로 혼자 있을 때조차도 큰 소리를 내서 읽었기 때문이다.’(45)

 

‘1세기 동안 기독교인의 수가 빠르게 증가하였기에 새로운 개종자나 새로 탄생한 교회들이 추가적으로 성경 사본들을 찾게 되었다.’(47)

 

‘4세기에 이르러서 기독교가 국가적 차원의 공인을 받자 필사실(scriptoria)에서 상업적인 책 제작자들이 신약성경의 사본을 생산하는 것이 더 흔한 일이 되었다 …… 필사실에 고용된 서기관들은 그들이 기록한 행의 수에 따라 보수를 받았을 것이다.’(48)

 

복음서의 필사본에서 가장 자주 나타나는 어구 측정의 통계는 마태복음의 경우 2600, 마가복음은 1600, 누가복음은 2800, 요한복음은 2300이다.’(49)

 

필사행위는 네 개의 기초적인 작업을 수반한다. 1. 복사할 본문의 행 또는 절을 스스로에게 읽어 준다(고대에는 의심의 여지없이 중얼거리듯 읽었다). 2. 이 내용을 자신의 기억 속에 각인시킨다. 3. 이 내용을 자신에게 암송해 준다(조용히 아니면 중간 정도의 소리로). 4. 손을 움직여 필사한다 …… 실수를 하기도 했다.’(50)

 

필사 행위는 그 자체로 고되고 피로한 일 …… 오늘날 우리에게는 이상해 보일지 모르지만 …… 중세 초기까지 서기관들이 서 있거나, 아니면 두루마리나 코덱스를 무릎에 놓고 걸상이나 긴 의자(심지어는 땅바닥)에 앉아 작업했음 …… 책상이나 필사용 탁자에 앉아 작업하는 것보다 훨씬 더 피곤했음 …… 매달 하루에 6시간씩만 일하도록 했던 것.’(52)

 

고대 서적을 필사하는 데 수반되는 어려움을 볼 때, 대다수 서기관들이 얻는 성취도가 매우 높다는 사실은 더욱 놀라운 일이다. 대부분의 필사본들이 글자의 크기와 서체의 흐름이, 심지어는 긴 문서에서조차 놀랍도록 통일성을 이루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54)

 

우리에게 알려진 가장 오래된 장 구분 체계는 4세기의 바티칸 사본의 여백에 보존된 것 …… 또 다른 장 구분 체계는 대부분의 다른 헬라어 사본에서와 같이 5세기의 알렉산드리아 사본.’(59)

 

프렌드는 복음서 저자들을 묘사한 초기의 모든 초상화들은 각각 네 개의 초상화로 된 두 종류로 나누어진다고 하였다. 하나는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제논, 에피쿠로스 등 네 명의 철학자이고, 다른 하나는 유리피데스, 소포클레스, 아리스토파네스, 메난더 등 네 명의 희곡작가이다.’(71)

 

두 개의 언어로 기록된 아주 다양한 신약성경 사본들이 현존하고 있는데, 가장 많이 남아 있는 사본은 헬라어와 라틴어로 된 것이다.’(73)

 

성서일과(lectionary : 성구집, 일과표). 회당의 관습에 따르면 매 안식일 예배마다 율법과 선지자의 글 일부를 낭독하였는데, 기독교 교회도 예배 때 신약성경 본문을 읽는 관습을 받아들였다.’(74)

 

명명법의 표준화를 위한 첫 단계는 1751-2년 암스테르담에서 훌륭한 2권짜리 헬라어 신약성경을 출판했던 스위스의 학자 베트슈타인에 의해 이루어졌다. 그는 여기서 대문자 사본을 표시하기 위해 대문자를 사용했고, 소문자 사본을 표시하기 위해 아라비아 숫자를 사용하였다. 현재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체계는 19세기 말에 그레고리가 정성 들여 만들었다.’(76)

 

도자기 파편과 부적을 무시하고 현재(2003) 공식적으로 분류된 신약성경 사본의 주요 범주는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파피루스116, 대문자 사본310, 소문자사본2877, 성서일과 2432, 총계 5735.’(78)

 

만일 신약성경의 증거를 기독교 초창기에 기록된 다른 고대 저자들의 현존하는 본문 자료들과 비교한다면, 이 증거가 얼마나 풍부한지 평가할 수 있다 …… 타키투스 …… [역사] 14권 중 단지 4권 반이 남아 있으며, [연대기] 16권 중 10권이 온전하게 보존되어 있고 2권은 일부가 보존되어 있다 ……. 본문은 두 개의 개별적인 사본에 의존하고 있는데, 하나는 9세기의 것이고, 하나는 11세기의 것이다.’(79)

 

헬라어 신약성경 …… 대부분의 파피루스 필사본들은 비교적 파편화되어 있고 약 60개의 사본만이(이중 시내 사본만이 유일한 대문자 사본이다) 신약 성경 전체를 포함하고 있다.’(80)

 

신약성경의 본문을 확정하는 데는 세 부류의 증거가 활용된다. 그 증거들은 헬라어 사본, 다른 언어로 번역된 고대 역본, 초기 교회 저술가들의 신약성경 인용문이다.’(81)

 

신약성경의 중요한 헬라어 파피루스 …… P52 …… 필적에 기초하여 이 단편을 2세기 초반의 것으로 추정(하드리안 통치기나 심지어 트라얀 시대에 기록되었을 가능성) …… 2세기 초반에 요한복음의 전통적인 저작 장소로 알려진 소아시아의 에베소에서 매우 멀리 떨어진 나일 강변의 시골 지역에 제4복음서가 존재했고 거기서 이 복음서가 사용되었다는 것을 증명해준다.’(87)

 

‘”네로 황제가 히브리어 철자로 기록될 경우 이 어구에 대한 수는 666이라는 점을 기억하는 것은 흥미롭다.’(93)

 

신약성경 헬라어 대문자 주요 사본 …… 19세기 중엽 시내산에 위치한 성 캐더린 수도원에서 티센도르프가 발견한 4세기 헬라어 성경 사본 …… 시내 사본이라고 명명되었다. 전체 성경을 모두 수록.’(94)

 

모든 헬라어 성경 사본에서 가장 가치 있는 사본 중의 하나가 바로 바티칸 사본.’(101)

 

베자 사본은 제네바 교회의 지도자로서 후에 깔뱅의 후계자가 된 저명한 프랑스 학자였던 베자가 1581년에 캠브리지대학 도서관에 기증한 거이다. 5세기의 것으로 추정 …… 특별한 특징은 단어나, 문자 심지어 사건들을 자유롭게 첨가한다는 것(경우에 따라서는 생략하기도 한다)이다.’(105)

 

신약성경 헬라어 소문자 주요 사본 …… MS.61. …… 신약성경 전체를 수록 …… “세 신적인 증언자와 관련된 단락(요일5:7-8)을 수록하고 있는 최초의 헬라어 사본이다. 에라스무스는 바로 이 단 하나의 후대 증거에 기초하여 위조된 것이 분명한 이 단락을 요한일서 본문에 삽입하였던 것이다.’(129)

 

주목할 만한 다른 사본 …… 가장 작은 사본(아마 시리아어 원본에서 헬라어로 번역된 것으로 보이는 마니의 전기)은 성냥갑만한 크기로, 각각 1 3/4 * 1 3/8인치인 양피지 192장으로 이루어진 사본이다.’(137)

 

가장 큰 성경 사본은 소위 기가스 사본(거인사본)으로서 현재 스톡홀름에 있는데, 펼쳤을 때 두 페이지의 가로 길이가 40인치, 높이가 36인치에 이른다. 이 사본을 만들기 위해서 160마리의 나귀 가죽이 필요했다고 전해진다.’(138)

 

신약성경에 대한 고대 번역본 …… 신약성경 본문비평에 역본을 활용하는 것은 일정한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번역본 가운데 일부는 헬라어 능력이 완벽하지 못했던 자들에 의해서 번역되었을 수도 있고, 헬라어 구문과 어휘가 가진 어떤 특징들이 번역으로 옮겨질 수 없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라틴어에는 정관사가 없으며, 시리아어는 헬라어의 단순과거와 완료 시제를 구별할 수 없고, 콥트어에는 수동태가 없기 때문에 완곡어법을 사용해야만 한다.’(139)

 

모종의 언어로 번역된 역본의 필사본들은 종종 해당 역본이 처음 만들어질 때 사용한 헬라어 사본이 아니라 이와는 다른 역본이나 헬라어 사본에 비추어 수정되기도 하였다.’(140)

 

교부들의 신약성경 인용문 …… 매우 방대해서 신약성경 본문에 대해서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을 위한 모든 다른 자료가 파기된다 하더라도 실제로 이 인용문만으로도 전체 신약성경의 재구성이 충분할 정도이다. 교부들의 인용문이 중요한 이유는 이들 인용문이 헬라어 사본과 역본의 일기와 본문 유형의 지리적 위치와 시기를 결정하는 데 기여하기 때문이다.’(182)

 

교부의 증거를 활용하기 이전에 우리는 그 교부의 진정한 본문이 전달되었는지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신약성경 사본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교부들의 논문도 필사 과정에서 수정을 거치기 때문이다.’(183)

 

교부들이 당대에 알려져 있던 사본 간의 이독과 관련하여 명시적인 언급을 하기도 한다. …… 고대의 증거와 현존하는 증거를 서로 비교해 보면 이전 세기에 존재했던 사본 증거가 보존되거나 소실되는 데 얼마나 많은 계기들이 작용했는가를 알 수 있다.’(185)

 

메소포타미아 출신의 시리아인 타티안 …… 그는 오직 한 명의 복음서 저자가 보존한 독특한 표현을 다른 복음서 저자가 보존한 다른 표현과 결합시킴으로써, 복음서의 몇몇 단락을 단일한 서사로 배열하였다 …… 그의 작품의 서명은 디아테사론으로 이는 (복음서)를 통하여라는 의미의 헬라어에서 온 것이다 …… 조화복음서.’(189)

 

타티안이 말년에 이단으로 정죄 …… 오늘날 디아테사론에 대한 온전한 사본은 하나도 남아 있지 않다 …… 타티안이 디아테사론을 매우 공을 많이 들여 구성하려고 했다 …… 의심할 여지 없이 때로는 이 복음서에서, 때로는 저 복음서에서 각 구절을 하나로 엮어 가면서 자신이 필사하고 있는 사본의 각 구절을 하나씩 지워갔을 것이다 …... 의심할 여지 없이 일부 사본에 수록되어 있는 복음서 본문에 대한 적지 않은 조화의 예들은 타티안의 영향 탓으로 여겨야 한다.’(193)

 

구텐베르크의 발명 이래로 첫 번째 헬라어 신약성경이 출판되기까지 대략 60여 년의 시간이 경과된 이유 …… 두 가지 요인 …… 우선 적절한 크기의 책을 인쇄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헬라어 글꼴의 활자를 만들어 내는 것이 매우 어려웠으며, 동시에 많은 비용이 소요되었기 때문이었다 …… 결정적인 요인은 의심할 여지 없이 제롬의 라틴어 성경이 구가하고 있던 명성이었다 …… 헬라어 신약성경의 출판은 두 언어 모두에 능통한 학자들에게 교회의 공적인 라틴어 성경을 비판하고 교정할 수 있는 도구를 제공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마침내 1514년에 인쇄본 헬라어 신약성경이 대역성경의 일부로 출판되었다.’(199)

 

헬라어 인쇄술에 있어서 콤플루텐시아 신약성경의 헬라어 글꼴의 발명은 스페인의 유일하고도 고유한 기여로 남아 있다.’(202)

 

처음으로 인쇄된 헬라어 신약성경은 콤플루텐시아 본문이지만 처음 출판된(시장에 유포된) 헬라어 신약성경은 독일의 저명한 학자이자 인문주의자였던 로테르담의 에라스무스에 의해 준비된 판이었다 …… 에라스무스는 유명한 인쇄업자인 프로벤과 …… 논의 …… 작업에 대한 대가로 에라스무스에게 그 누구보다 많은 금액을 지불하겠다는 약조.’(203)

 

편집되었다기보다는 급박하게 만들어진 것 …… 가장 실수투성이인 책 …… 에라스무스는 헬라어 신약성경 전체를 포함하는 사본을 구할 수 없었기 때문에 신약성경의 여러 부분에서 각기 다른 사본을 활용하였다 …… 바젤 수도원 도서관에서 확보한 대략 12세기의 것으로 추정되는 두 개의 다소 열등한 사본에 의존 …… 두세 가지 다른 사본과 비교한 후 …… 요한계시록에 대해서는 …… 12세기의 것으로 추정되는 단 하나의 사본밖에 보유하고 있지 않았다 …… 계시록의 마지막 여섯 절이 …… 누락 …… 라틴어 불가타에 기초해서 누락된 절을 헬라어로 번역하였다. 그러한 절차에 비추어 충분히 예상되는 바와 같이, 에라스무스가 손수 번역한 헬라어 본문 여기저기에는 …… 어떤 헬라어 사본에서도 발견되지 않는 읽기들 …… 이 존재한다.’(205)

 

이렇게 에라스무스의 헬라어 신약성경 본문은 여섯 개 소문자 헬라어 사본에 기초하고 있다 …… 에라스무스 본문은 비평적인 가치에 있어서 콤플루텐시아 본문에 비해 열등하지만, …… 저렴하고 보다 편리한 형태를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활용도가 높았.’(211)

 

파리의 유명한 인쇄업자요, 출판업자였던 에스티엔느-라틴어로는 스테파누스-가 네 가지 헬라어 성경 판본을 출판 …… 스테파누스 제4(1551)은 주목할만한데, 그것은 이 판에서 처음으로 본문이 숫자가 매겨진 절로 나누어졌기 때문이다.’(214)

 

깔뱅의 친구이자 후계자이면서 출중한 고전학자요 성경학자였던 베자 …… 시리아어 신약성경을 대조한 첫 번째 학자.’(215)

 

‘1624년 라이덴의 출판 동업자였던 보나벤투라와 엘제비어는 작고 사용하기 편리한 헬라어 성경을 출판하였는데, 이 성경의 본문은 주로 베자의 1565년 작은 소형판에서 가져온 것 …… 그 판을 선전하는 우연한 광고(현대의 출판업자들이 아마 과장된 광고라고 했었을)였던 것에서 수용 본문”, 또는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졌다는 의미에서 표준 본문이라는 명칭이 생겨나 …… 이 본문은 흠정역을 비롯하여 1881년 이전에 유럽어로 번역된 모든 표준적인 개신교 번역본의 대본이 되었다 …… 하지만 그 본문의 본문상의 기초는 본질적으로 무턱대고 수집된 얼마 되지 않는 후대의 소문자 사본들이며, 열두 개 단락에서는 그 의미가 그 어떤 헬라어 사본으로부터도 지지를 받지 못한다.’(217)

 

벵엘 …… 오랜 연구 끝에 생각했던 것보다 이독이 적으며, 그러한 이독도 복음적인 교리의 어느 항목을 훼소한 것은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 본문 …… “동류, 가족, 종족, 국적으로 분류되어야 한다는 점을 간파하였다 …… 벵엘은 이독을 평가하기 위해서 비평의 기준을 마련하였는데 …… 필사자는 이미 쉽게 기록된 것을 더 어렵게 만들기보다는 어려운 구조를 보다 쉽게 풀어쓰려는 경향이 더 많다는 사실에 대한 인식에 기초하고 있다. 간결한 라틴어 문장으로 정형화된 벵엘의 그 기준은 (이해하기 어려운 읽기가 더 쉬운 읽기보다 선호된다)이다.’(226)

 

‘18세기 후반기 동안에는 독일의 학자 그리스바흐가 이후에 이어질 헬라어 신약성경 본문에 관한 모든 작업의 기초를 놓았다 …… 그리스바흐가 고안해 낸 15개의 본문비평 기준 …… 짧은 읽기(오래되고 가치 있는 사본의 권위를 전적으로 결여하지 않았다면)가 보다 장황한 읽기보다 선호되어야 한다 …… 신약성경 본문비평에 있어서 그리스바흐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이다.’(238)

 

수용 본문과 완전히 결별한 것으로 인정되는 최초의 학자는 베를린의 저명한 고전 및 독일 문헌학자였던 라흐만 …… 그는 사본을 비교함으로써 잃어버린 것의 원조나 원형, 그것의 상태 및 면수에 대한 추론이 어떻게 가능한지를 증명해 보여 주었다 …… 1831년 베를린에서 수용 본문과 상이한 구절의 목록이 수록된 헬라어 본문을 출판하였다.’(243)

 

현대의 신약성경 본문비평에 가장 큰 공헌을 한 사람은 의심할 여지 없이 그 어떤 학자보다도 더 많은 사본을 찾아내어 출판하고, 더 많은 헬라어 성경 비평본을 발간한 티센도르프 …… 그가 펴낸 여러 신약성경 판본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대비평본 제8판으로서 1864년부터 11부로 나누어져 출판되었으며, 후에 두 권으로 출판되었다 …… 2판이 출판되자마자 중풍 증세.’(246)

 

‘19세기 중엽 영국에서 가장 성공적으로 영국인들이 더 이상 수용 본문을 선호하지 않도록 만든 학자는 트레겔레스 …… 라흐만의 비평 원칙을 전혀 알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 놀라울 만큼 평행을 이루는 비평 원칙을 개발 …… 오직 하나의 판본만을 출판하였다.’(247)

 

‘1881년은 이제까지 영국 학자에 의해 출판된 책 중 가장 주목할 만한 비평판 헬라어 성경이 출판된 해로 꼽힌다 …… 웨스트코트 …… 호르트가 …… 두 권짜리 책을 출판하였다. 1권은 헬라어 본문을 수록 …… 2권에는 …… 비평 원칙이 호르트에 의해 자세하게 제시되어 있으며, 문제가 될 만한 구절이 논의되고 있다 …… 웨스트코트나 호르트는 사본을 수집하는 데 관심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비평 장치를 제공하지도 않았다 …… 이전에 수집되어 있던 이독을 활용 …… 여러 학자들이 개발한 비평 방법론을 개량하여 그것을 엄격하지만 판별력을 가지고 신약성경 본문 증거에 적용하였다.’(249)

 

읽기의 내적 증거에만 근거한 절차가 배태하고 있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 본문비평가들은 문헌의 내적 증거도 함께 활용해야 한다.’(249)

 

이미 20세기 초에 신약성경 판본의 수는 1,000개가 넘었을 것으로 보인다.’(274)

 

아리스토파네스는 고대 그리스에서 아마도 가장 탁월한 철학자였으며, 헬라어 악센트와 그 외에 발음을 구별하는 표시를 발명 …… 자신의 일리아드와 오디세이 판본에서 …… 다양한 비평 기호를 도입 …… 1990년까지 사본 전승의 수가 일리아드는 703, 오디세이는 236개에 달했다.’(278)

 

지리적으로는 알렉산드리아에, 작품에 있어서는 호머의 서사시에 집중되어 있긴 했지만, 고대에도 매우 잘 발달된 학문적인 본문 및 문학 비평 원리가 존재했다. 필로와 많은 교부들이 알렉산드리아에서 통용되던 철학적인 학문의 영향을 받아 자신들의 성경 해석에 우의적인 방법을 활용했는데, 이러한 우의적인 방법은 호머의 서사시에 포함되어 있던 신이나 여신의 이야기에 적용되던 방법이었다.’(279)

 

당대의 가장 근면하고 박식한 학자 중의 한 사람인 알렉산드리아와 가이사랴의 오리겐이 히브리어로 된 모든 구약성경과 몇몇 헬라어 번역에 대한 본문비평적인 연구를 시작했다 …… 6개 국어 대역성경.’(280)

 

현대의 표준에 의거하여 판단해 본다면, 제롬은 오리겐에 비해 훨씬 명민한 본문비평가로, 사본을 옮겨 적으면서 발생하는 다양한 오류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다.’(282)

 

아우구스티누스도 경우에 따라 본문과 관련된 문제에 있어서 명민한 비평적인 판단을 보여 주었다.’(283)

 

교정은 모든 가용한 자료를 다 조사한 후에 본문의 기초로 삼을 수 있는 가장 신뢰할 만한 증거를 선택하는 것이며, 수정은 심지어 가장 좋은 사본에서도 발견되는 여러 가지 오류를 제거하려는 시도를 말한다.’(287)

 

사본의 계도, 또는 계통도를 구성하는 과정 이면에 놓인 기본적인 원리는 …… 이문의 일치는 기원의 일치를 의미한다는 것이다.’(289)

 

역사는 우리에게 본문 전달 과정에서 주요한 단절이 없기는커녕 오히려 콘스탄틴의 박해 이전 시기에 제국의 법에 의해 신약성경 사본들이 색출되어 불태워졌음을 말해준다 …… 가이사랴에 있던 방대한 모음집 …… 이마저도 638년에 무슬림에 의해서 파괴되었다 …… 신약성경의 본문 전달 과정에서 주요한 단절이 발생했다는 경험적인 증거 …… 최소한 한 번 이상 교부들이 당시에는 널리 알려져 있었지만 오늘날에는 단지 소수의 사본에서만 발견되거나 그 어떤 사본에서도 발견되지 않는 여러 이독을 언급하고 있음.’(306)

 

비평가는 추정적인 수정을 하기 전에 반드시 저자의 문체나 사상에 철저하게 정통해야만 하며, 그 결과 변칙적인 것이 저자의 의도에 부합하는지 여부를 반드시 판단해야 한다 …… 추정적 수정은 …… 두 가지 기본적인 기준을 만족시켜야 한다. 그 기준은 1. 본질적으로 적절해야 하며, 2. 개악된 읽기나 전달된 본문의 다른 읽기들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315)

 

일부 학자들은 새로운 기술에 위협을 느끼기도 했으며, 또 어떤 학자들은 명백히 (인간의) 사유와 추론을 요하는 근거에 기초하여 본문비평적인 판단이 내려져야 함에도, 이독이 나타나는 곳에서 컴퓨터가 본래적인읽기에 관한 판단을 내릴 것이라는 생각에 대해 분노를 느끼기도 하였다.’(332)

 

잘못 봄으로 인해 발생하는 오류 …… 로젠은 안경이 14세기 초 이탈리아에서 발명되었다고.’(348)

 

잘못 들음으로 인해 발생하는 오류 …… 기독교 시대의 초기 몇 세기 도안 헬라어의 일부 모음과 이중 모음은 그것만의 독특한 음가를 상실하고 오늘날 현대 헬라어에서와 마찬가지로 서로 유사하게 발음이 되었다.’(353)

 

필사자들이 철자, 문법, 역사적인 사실에 대한 실제적 또는 추정된 오류의 자극을 받아 자신들이 옮겨 적고 있던 본문에 의도적으로 변경을 가했다는 것은 본문 비평 장치를 조금만 살펴보아도 명백하게 드러난다.’(362)

 

수도사들은 일반적으로 성경의 상당 부분을 암기하고 있었기 때문에, 성경의 다른 부분에 대해 어느 정도의 친밀감을 느끼는가에 따라 서로 일치하지 않는 병행 구절이나 인용문을 조화시키고자 하는 유혹을 강하게 받곤 했다.’(363)

 

마태(27:9)가 선지자 예리미야에서 온 것으로 인용하고 있는 인용문이 실제로는 스가랴(11:12 이하)에서 온 것이기 때문에 일부 필사자들이 이를 정확한 이름으로 대체하거나 아예 삭제함으로 오류를 교정하려고 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몇몇 필사자는 요한복음 19:1463”(이는 막15:25에 나타남)로 수정함으로써 수난 순서에 대한 요한의 설명을 마가복음에 있는 설명과 조화시키려 하였다.’(366)

 

신약성경 사본은 교리적으로 수용하기 어렵거나 부자연스럽다고 간주되는 것을 삭제하거나 수정하는 것과 선호하는 신학적인 교의나 관행을 위한 증거를 성경에 도입하는 것이라는 두 종류의 교리적인 수정 흔적을 보존하고 있다.’(369)

 

신약성경에서 이름이 거명되지 않은 채 언급되고 있는 인물이 누구인가에 대한 독자의 자연스러운 호기심은 필사자로 하여금 고유명사를 첨가하도록 자극하였다.’(373)

 

후대의 필사자들은 …… 자신들이 저자의 지위나 명성에 걸맞다고 여긴 여러 가지 방식으로 책명을 윤색하였다 …… 가장 길고 장황한 명칭은 아토스 산에 있는 한 사본에서 발견되었다. “영광스러운 복음서 저자이자 [예수의] 친애하는 친구이며, 동정남이자, 그리스도의 사랑받는 자요, 살로메와 세베대의 아들이지만 하나님의 어머니 마리아의 양자가 된 천둥의 아들 신학자 요한의 계시록.’(374)

 

변경에 대한 여러 가지 예로 인해 모든 필사자가 신약성경의 고대 사본을 전달하면서 계획적이고 변덕스러운 자세를 가졌을 것이라는 인상을 받지 않기 위해서 수많은 신실한 필사자들이 보여준 사려 깊고 지난한 작업에 대한 이와 다른 증거가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375)

 

신약성경 각 권은 어느 정도 고유한 본문 역사를 가지고 있다.’(377)

 

많은 학자들은 고린도후서가 둘 또는 그 이상의 서신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각의 편지는 서로 다른 시기, 서로 다른 상황에서 쓰어졌고, 단지 후대에 우리가 보유하고 있는 하나의 편지로 조합되었을 뿐이라고 여겨 왔다. 게다가 고린도후서에는 본래 편지()의 일부가 아니었다가 후대의 손길로 말미암아 고린도후서에 삽입된 것으로 보이는 단락(6:14~7:1)이 적어도 하나 나타난다. 이러한 삽입의 예는 아마 바울서신의 다른 단락에도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378)

 

복음서에 이르면 상황은 훨씬 더 복잡해지는데, 이들은 더 이상 독립적인 접근이 불가능한 구두 전승이나 문서 자료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이다.’(379)

 

많은 학자들이 우리가 현재 보유하고 있는 바울서신의 모든 사본은 궁극적으로 바울이 만든 원문에서 온 것이 아니라 1세기 말의 어느 시기에 만들어진 바울 저작 모음집으로부터 온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문제는 훨씬 더 복잡해진다. 만일 그렇다면 그 모음집에서 제시되는 본문을 넘어 그보다 약 40년 전에 만들어진 원문으로 소급하기는 사실상 어려울 것이다.’(380)

고대에 책이 출판된다는 것은 바로 다른 이들이 읽을 수 있도록 하나 또는 그 이상의 사본(각 사본은 개별적으로 수작업에 의해 제작되었음)을 제공하는 것을 의미한다.’(380)

 

가장 초기의 필사자들은 생계 수단으로 삼을 만큼 사본 제작의 전문적인 기술을 훈련 받지 못했을 것이며, 단지 해당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글을 읽고 쓸 줄 알며, 시간이 가용하고 그 정도의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 아마추어들 이었을 것이므로 …… 상대적으로 많은 양의 실수를 범한 오류들이 본문에 들어가게 되었을 것이다. 원본은 유포된 이후에 곧 유실되거나 파괴되었을 가능성이 있는데, 생각하건대, 남아 있는 모든 사본은 아마도 해당 책의 유포가 시작된 초기 단계에 만들어진 모종의 오류의 가능성이 있는 단일한 사본으로부터 온 것일 개연성이 높다.’(381)

 

우리는 본문 전달 단계 초기 몇 십 년 동안 유포되던 본문에 다양한 변화가 일어났음을 보여 주는 충분한 증거를 가지고 있다 …… 중세의 보다 통제된 환경 속에서 만들어진 후대의 사본보다 가장 초기 사본 서로간에 훨씬 더 현저한 차이를 보이는 것 …… 초기 교부들의 신약성경 인용문은 본문 전달 역사의 가장 초기 단계에서부터 이미 본문상의 이독이 광범위하게 포진되어 있었음을 분명하게 보여 준다.’(382)

 

사실 서방 본문이란 명칭이 그리 적절한 명칭은 아닌데, 그 이유는 이 본문 유형이 로마제국의 서방 지역 이외의 곳에서도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 대부분의 학자들은 서방 본문을 …… 2세기의 사본 전통이 일정한 규율 없이 있는 그대로발전된 결과라고 생각한다 …… 서방 본문 읽기의 가장 주요한 특징은 알기 쉽게 바꾸어 쓰는 것을 선호한다는 점이다.’(384)

 

알렉산드리아에서는 신약성경 각 권을 필사하는 데 있어서 의식적이고 면밀한 틍제가 이루어졌다는 분명한 증거가 있다.’(384)

 

그러므로 2세기와 3세기에 우리는 두 가지 주요 사본 유형, 즉 알기 쉽게 바꾸어 쓴 경향이 있는 다소간 통제되지 않은 서방 본문과, 세심하게 보존되고 상대적으로 본래적인 알렉산드리아 본문에 대한 증거를 가지고 있는 셈이다.’(385)

 

비잔틴 본문 …… 본문 전달 역사의 후기 단계에서 발전된 본문으로 본다 …… 서서히 발달된 전통을 대변 …… 어느 한 사람이나 한 공동체에 의해 만들어진 본문상의 교정본이 아니었다 …… 명료함과 온전함이라는 특징 …… 비잔틴 제국(이 제국 내에는 헬라어가 보존되어 있었다) …… 7세기 이래로 헬라어 본문 전통을 지배하게 된 것이 바로 이 본문이었으며, 그 결과 오늘날 남아 있는 사본 가운데 상당 부분이 이 본문 유형에 속한다는 것은 그리 놀랄 만한 일이 아니다 …… 그것이 원문을 확정하는 데 있어 비잔틴 본문의 우월성을 담보해 주는 것은 결코 아니다.’(387)

 

서방 본문과 특히 알렉산드리아 본문이 오늘날 대부분의 학자들에 의해 훨씬 우월한 것으로 간주되고 있다.’(388)

 

요컨대 본문비평학계의 중요한 전환점 가운데 하나는 본문 전달의 역사가 본문 해석의 역사에 기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한 것이었다 …… 이는 필사자들이 때때로 필사하던 본문에 가했던 변경이 그들이 작업을 수행했던 시대의 사회사적인 맥락을 반영하는 것이기 때문이다.’(389)

 

초기 기독교에 대한 선구자적인 연구는 1934년에 발표된 바우어의 고전적 연구 논문 최초 그리스도교의 정통 신앙과 이단이었다. 바우어는 2세기와 3세기에 정통이 기독교의 본래적이고 보편적인 지배 형태가 아니었으며, (다양한 형태의) 이단이 정통과 거리가 있는 파생적인 분파가 아니었다고 논증하였다. 오히려 초기 기독교는 다수의 경쟁적인 신앙과 관행 형태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여러 가지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이유로 인하여 종국에 지배권을 획득하게 되었다. 승리를 획득한 정통파는 자신들의 최종 승리에 의거한 교회사를 다시 기록하였으며, 이러한 정통 교회가 로마의 신실한 자들에 의해 수용된 기독교 형태였다는 것이다.’(390)

 

지난 40년 이전부터 학자들은 초기의 이념적인 갈등이 신약성경 본문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충분히 인지하게 되었다 …… 초기 기독교 운동이 겪었던 내부 갈등 보다는 유대인-그리스도인간의 관계와 더 많이 관련.’(392)

 

신약성경의 일부 구절은 예수가 신성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을 보다 엄밀하게 강조하기 위해서 수정되었다 ……. 알렉산드리아 사본 ……. “아버지의 품속에 있는 유일하신 하나님” …… 예수의 신성을 강조하고자 했던 알렉산드리아 필자들에 의해서 생겨난 것으로 보인다.’(395)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더라”(22:44) …… 대다수의 알렉산드리아 사본을 포함한 가장 오래된 양질의 사본 중 일부에는 이 구절이 나오지 않는다 …… 저스틴, 이레니우스, 히폴리투스 …… 이들은 모두 이 구절을 사용하여 예수가 인간의 고통을 온전히 경험한 참된 인간이 아니라고 주장했던 기독론적 관점에 반대하였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구절은 아마 가현설적인 기독론을 주장하던 자들에 반대하는 이유로 본문에 추가되었을 것이다.’(396)

 

고린도전서 14:34~35 …… 여성으로 하여금 교회에서 잠잠할 것이며 동시에 복종할 것을 명하고 있다. 많은 학자들은 이 단락이 바울의 것이 아니라 아마도 (위경적인?) 디모데전서(2:1~10)의 저자에 의한 삽입문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논증해 왔다.’(399)

 

우리는 4세기와 4세기 이후 문학 자료에서 신약성경 사본이 액막이 마술 …… 을 위해서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지난 50년간 발견되거나 분석된 파피루스 중 일부는 의심할 여지없이 부적으로 제작되어 사용된 것들이다 …… 대개 악령을 물리치거나 치유 효과를 내는 데 유용하다고 여겨지는 주기도문 또는 치유 이야기 등의 본문이 새겨져 있었다.’(409)

 

일부 그리스도인들은 성경 사본 자체에 특별한 능력이 있다고 여겼음에 틀림없다. 성경 사본은 액막이 마술(부적)을 위해서뿐만 아니라 누군가의 미래에 영향을 주거나 최소한 그것을 예견할 목적으로 사용되었을 것이다.’(412)

 

이독을 평가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기준은 다른 것의 기원을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읽기를 선택하라는 단순한 격언일 것이다.’(413)

 

우리가 본능적으로 기본적인 것이라고 인정할 수 있는 또 다른 기준은 이독에 대한 역사를 재구성 하는 것이 이독에 대한 판단을 내리는 것보다 우선적으로 선행되어야 한다는 사실이다.’(414)

 

한 가지 방법만을 고수하는 교정자는 한 가지 약품만을 가진 의사만큼이나 어리석은 사람일 따름이다.’(419)

 

다른 사람에게 본문비평학자가 되는 법을 가르치는 것은 시인이 되는 법을 가르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 적용하는 것은 학자 자신.’(420)

 

초기의 것이며, 동시에 광범위한 지역으로부터 온 사본의 지지를 받은 읽기가 그들에게 유리한 모종의 우선권을 가지게 된다. 다른 한편 코이네 또는 비잔틴 증거에 의해서만 지지를 받는 읽기는 거의 확실하게 이차적인 것으로 제외시킬 수 있다 …… (코이네 본문 유형이 수반되는 수정 내용과 더불어 희랍 정교회의 수용 본문으로 받아들여졌……), 이 본문 유형의 기원이 이차적인 것임을 고려하면 전체적으로 볼 때 코이네 증거가 수적으로 월등하다는 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421)

 

웨스트코트와 호르트는 서방 본문을 거의 대부분 변경된 것으로 간주하여 서방 본문 중에서 그들이 서방적인 비삽입문이라고 불렀던 것만을 본래적인 것으로 수용하였다.’(425)

 

대부분의 학자들은 펜의 사소한 실수를 제외할 경우 바티칸 사본이 거의 변경되지 않은 원문을 담고 있다고 보았던 호르트의 낙관적인 관점을 포기하긴 하였지만, 그들은 여전히 알렉산드리아 본문을 전반적으로 가장 양호한 고대의 교정본이며, 원문에 가장 근접한 본문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430)

 

자신의 직무에 종사하는 본문비평가는 행성의 움직임을 관찰하는 뉴턴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그는 벼룩을 좇는 개와 훨씬 더 흡사하다. 만일 개가 장소와 개체 수에 대한 통게에 기초하고 있는 수학적인 원리에 의거하여 벼룩을 좇는다면 우연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결코 한 마리의 벼룩도 잡지 못할 것이다. 벼룩들은 개별적으로 다루어져야 한다.’(434)

 

누가는 예수가 70명의 제자를 파송했다고 말하고 있는가? 아니면 72명의 제자를 파송했다고 말하고 있는가? …… 본문비평학자는 확신을 가지고 두 가지 중에서 하나를 결정할 수 없다는 점을 그저 인정할 수 있을 따름이다.’(470)

 

결론 삼아 본문비평학자가 기계적으로 따를 수 있는 단일한 사본이나 하나의 사본 그룹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다시 한 번 강조해 둔다. 이제까지 알려진 모든 신약성경 사본은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모두 혼합된 본문이며, 가장 초기의 몇몇 사본조차 터무니없는 오류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4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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