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 튤립의 땅, 모든 자유가 당당한 나라
주경철 지음 / 산처럼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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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에 관한 평이한 안내서로서 기능할 수 있는 책이다. 가끔씩 묻어나오는 저자의 속내가 재미나기도 하고.  그런데 10년 이상 지난 책이라는 게 함정.

잘못된 내용이 있어 우선 지적한다. 191쪽에서 막시밀리안이 1493년에 사망했다는 말이 나오는데 이건 도데체 어떻게 들어가게 된 내용인가? 그냥 오자 수준이 아니라 그가 그 때 죽었기 때문에 그 아들인 필립이 실질적인 지배자가 되었다고 나오던데 말이다. 이건 단순 오자가 아니라 내용전개를 고려했다는 거 아닌가? 심지어 바로 2쪽만 앞으로 가면 프리드리히 3세가 1493년에 죽고 막시밀리안이 1519년에 죽었다는 내용이 나온다. 개정판이 더 나올 수 있는 여력이 있는 책 같지는 않지만 혹 나온다면 꼭 빼버려야 할 내용이다. 이런 건 책 값어치 확 떨어지게 만든다.

그리고 뒤쪽에 나오는 연표는 어디까지 믿어야 할 지 모르겠다. 364쪽에는 2차대전이 1940년에 시작되었다고 나온다. 1939년이라고 나만 알고 있는건가? 또 슬로히테른에서 대규모 천연가스 발견이 1960년이라고 나온다. 346쪽에서는 분명히 1959년이라고 언급했다. . 정말 격 떨어지는 실수들이다.  교정 좀 열심히 봅시다.

여하튼 기억하고 싶은 부분들을 밑줄 쳐서 정리해 본다.

왕실은 아직도 신화와 꿈과 환상의 요소를 심어주고 있다. 익히 아는 바이지만 꿈과 환상은 헛되기만 한 것이 아니라 현실을 움직이는 강한 힘을 발휘하기도 한다. 그것이 더욱 강하게 유지되기 위해서는 철저하게 이미지를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현대의 신화는 언론에 의해 만들어진다.(50)

의무병제일 때 이 나라 역시 양심적 군 거부 문제를 겪었다. 군 거부자 중에도 두 종류가 있다. 일반적인 군 거부자는 민간 분야에서의 대체복무를 받아들인다. 이와 달리 완전거부자는 대체복무마저 거부함으로써 2년 동안 수감생활을 한다. 이들의 주장에 의하면 대체복무라는 것은 자신이 직접 군 복무를 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그 대신 다른 누군가가 결국은 살상 행위를 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이마저 전적으로 거부한다는 것이다.(61)

부자들은 그들 주위에 가시가 많이 돋혀 있다는 것을 기억하도록 하라. 그리하여 가시에 찔리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라.” 칼뱅의 이 말은 그대로 부에 대한 네덜란드인들의 태도를 말해준다.  …… 천박하게 부를 자랑했다가는 곧 극심한 경멸을 당하게 된다.(86)

페르죄일링 ….. 지주화 …… 종교나 정치적 성향에 따라 사람들의 친분관계가 형성되어서 이것을 사람의 중요한 기둥으로 삼는다는 것이다. 개신교도들은 개신교도들끼리, 가톨릭교도들은 그들끼리 만난다. 그들끼리만 학교를 다니고 그들만의 스포츠클럽을 이용하며 그들만의 문화클럽을 만드는 식이다.(89)

방의 커튼을 항상 열어두어서 바깥에서 지나가는 사람이 보더라도 청결해야 하는 것이 이 나라의 관습이다. …… 일종의 쇼윈도 속에서 살아가는 식이다. 이것 역시 칼뱅주의 전통과 관련이 있다. 부지런히 집안을 깨끗하게 살아가되 겉으로 드러나는 것만이 아니라 내적으로도 집안에 죄스러운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행인들에게까지 공개한다는 의미이다.(99)

1960년대 이전에는 동거나 혼전 성경험 가은 것이 수치스러운 일이었다. 네덜란드 사회의 혁명적인 변화는 바로 1960년대에 있었다. …… 지주, 즉 동질적 집단에 대한 소속감이 없어지고, 교회와 세속 당국에 대한 존경심이 사라지면서 행동과 사고의 규범이 크게 바뀐 것이다.(104)

안락사라는 말 자체가 대단히 상징적이다. 이 말은 원래 히틀러가 인종말살을 획책하면서 썼다고 한다.(114)

딸이 초경을 하면 어머니는 즉시 성교육을 하며 동시에 피임법을 숙지시킨 다음 피임기구를 챙겨준다고 한다. 사람들은 섹스를 일상적인 일로 여긴다. 이 나라에서 섹스는 일종의 스포츠와 같다는 느낌을 준다. 어쩌면 그보다 더해서 마치 이 닦는 것처럼 흔한 일로 여기는 것 같기도 하다. 우리는 성과 관련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어쩐지 민망한데, 네덜란드에서는 섹스에 대해 아무 때나 아무하고 거침없이 대화를 한다.(120)

섹스는 인간이 누려야 할 소중한 권리이며 이것을 박탈당할 위험에 처한 사람들에게는 국가가 복지정책 차원에서 도와주어야 한다는 것이 이들의 생각이다. 이를 몸소 실천하는 사람들 중에 가장 주목할 사람들은 중증장애인들의 성생활을 돕는 자원봉사자들이다.(123)

마약을 구할 수 있는 곳을 속칭 커피숍이라고 부른다. …… 정확하게 말하면 커피가게는 커피하우스이고, 마약을 파는 가게는 커피숍이라 한다. …… 하드 드럭 사용자는 체포하지 않으며, 다만 대량으로 매매하는 상인들만 구속한다. …… 헤로인 중독자들을 구제하기 위해 대응 마약인 메타돈을 제공하는 메타돈 버스를 들 수있다. 일정한 시간, 정해진 장소에 버스가 와서 한 시간 반 정도 중독자들에게 메타돈을 나누어주는 것이다.(126)

절대적 진리를 자처하는 종교가 권력을 쥐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를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의 하나가 칼뱅의 제네바 통치이다. 신의 뜻을 구현한다는 명목으로 칼뱅은 심지어 어린아이까지 사형에 처했다.(129)

루돌프 사슴은 1939년에 시카고의 한 백화점이 만들어낸 캐릭터인데, 이것이 크게 성공을 거두어서 전세계에 퍼져나간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원래의 크리스마스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20세기 미국의 발명품이다.(141)

샤를마뉴 …… 신성로마제국이라는 희한한 꿈의 제국이 탄생했다. 누구도 이 제국이 예전으 로마제국과 똑같다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마치 로마 제국의 후신인 것처럼 그림자연극을 했다.(183)

중국에서는 황제체제가 실질적으로작용하였다. 그러나 유럽에서는 황제의 지배권이란 그야말로 자기가 직접 다스리는 지방에만 한정되어 있었다.(184)

네덜란드인들이 지배 군주에게 반란을 일으키고 독립을 쟁취하기 까지는 물론 여러 요인들이 작용하였으며 따라서 그 양상이 대단히 복잡하게 전개된다. 그렇지만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요인은 무엇보다도 종교적인 것이었다. 네덜란드 지역에서는 오래 전부터 종교 문제에 대해서 교회을 가르침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늘 이의를 제기하고 교회의 개혁을 요구하는 전통이 강했다.(196)

네덜란드의 반란은 이렇게 귀족들의 주도로 시작되어서 일반 민중과 시민층으로 확산되었다는 저이 특징이다.(198)

이시대(16c)만 해도 일반인들에게는 국왕에 대한 믿음이 워낙 강해서, 왕은 현명한데 그 주위의 간신배들이 왕의 눈을 흐리게 한다는 식으로 생각하였다. 흔히 국왕의 압제에 대항해 봉기를 일으킨 사람들이 국왕에게 하소연하러 가다가 잡혀서 처형당하는 일이 이런 심리구조에서 일어나는 것이다.(208)

동유럽 …… 이 지역의 농업체제는 대귀족이 지배하는 장원제 …… 외국에 수출까지 하지만, 농민들의 처지에서는 착취와 기근에 시달리고 있었던 것이다. ….. 말하자면 네덜란드(또는 서유럽)자본주의발달은 폴란드(또는 동유럽)농노제와 내적으로 연관되어 발전 …… 그렇다면 자본주의는 그 초기부터 지배와 종속, 불평등이 기본 속성이었다.(226)

황금기 네덜란드는 경제의 팽창기였고, 사회에 부가 넘쳐났다. 그러면 모든 사람들이 부자가 되고 다들 행복했을까? 그렇지는 않다. 자본주의 질서는 결코 그런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부의 증대는 부의 집중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지, 모든 사람들이 공평하게 부유해지는 법은 없다. 부자들이 존재하려면 그 밑에 훨씬 더 많은 수의 빈민들이 있어야 한다.(230)

사회질서란 결국 불평등의 유지인 것이다. 다수의 가난한 사람이 가난한 상태로 계속 존재하면서 열심히 일해야만 부자와 권력자들이 존립 가능하지 않겠는가.(233)

사실은 모자이크 바이러스라고 불리는 병균에 감염되어서 그처럼 강렬하고 다양한 색상을 가지게 되었다는 점이 튤립의 역설이다.(237)

자본주의 사회에서 법은 어떤 기능을 하는가? 힘있는 자들을 보호하는 것이다.(242)

17세기를 두고 과학혁명의 시대라 하는데, ……. 이 당시 네덜란드의 과학계에서는 해부가 널리 유행하여 지식인들, 혹은 더 일반적으로 중산층 신사들의 교양필수처럼 되었다.(244)

야코부스 엘리자 요안네스 카피테인은 노예 출신의 흑인이었다. …… 그의 전 주인과 친구들이 그에게 교육을 시켜서 급기야는 레이덴 대학에 입학하여 신학박사 학위까지 받았다. 아마도 그가 최초의 흑인 박사일 것이다. 그가 발표한 박사 논문의 내용은 성경에 따르면 노예제는 정당하다는 것이었다(!). 그의 논문은 그 후 라틴어와 네덜란드어로 여러 판을 거듭하며 출판되었고, 노예제와 노예무역 옹호자들에 의해 많이 인용되었다. 게다가 서인도회사의 배려로 그 자신이 아프리카의 엘미나에 목사로 파견되었다. 그는 흑인들에게 도대체 어떤 내용의 설교를 하였을까?(289)

자유주의 개혁세력이 미국 독립운동을 지지하는 이면에는 경제적 이해관계도 무시할 수 없는 요인이다. 상인들은 미국 독립운동 세력에 각종 군수품들을 판매함으로써 큰 이익을 챙겼다.(297)

네덜란드인들은 전체적으로는 오히려 나치에 순응적이었다. …… 네덜란드 유대인 중 75퍼센트가 죽었는데, 이것은 유럽 국가들 가운데 가장 높은 비율이다. …… 여기에서 네덜란드 지주제의 강점과 약점이 명백히 드러난다. …… 네덜란드인들은 사회적으로 서로 관용으로 대하고 국가 전체로 보면 콘센서를 찾으려 한다. 그런데 그것은 결국 통치집단에 대해서 강하게 저항하기보다 순응적인 태도를 취하는 결과를 낳곤 했다. …… 예컨대 네덜란드 공무원들은 그들 자신이 유대인 박해에 찬성한 것은 결코 아니었으나, 유대인 인구조사, 명부 작성 등의 업무 지시에 순순히 따랐고, 유대인들을 보호하기 위해 한곳에 모아 기차로 이송시킨다는 나치의 의심스러운 주장에 대해 일절 의문을 제기하지 않은 채 그대로 따랐다.(327)

언제나 희생양을 매도하는 목소리는 인기를 얻게 마련이다. …… 사회가 어려워지면 대중들은 그런 불합리한 주장을 받아들이며 때로는 불합리하면 할수록 따지지 않고 믿으려는 경향도 생겨난다.(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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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영어두뇌 - 국내 유일 영어두뇌 전문가가 밝히는 영어의 해법
박순 지음 / 엘도라도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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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5월에 읽은 두 번째 책.

 

사자마자 한 번 다 읽고 연이어 한 번 더 읽었다. 저자의 책들은 뇌과학에 별로 관심이 없는 사람도 끌어들이는 흡인력이 있음이 분명하다. 아이가 없는 나 같은 사람에게도 이런 류의 책들은  자기계발서로서 손색이 없다. 물론 읽는 내내 내 자신의 어린 시절을 되돌아보며 헛된 상상을 하는 (그때 이러 저러 했더라면 같은 류의 상상들 말이다.) 시간도 더러 있었지만 이 책의 주된 독자층이 될 부모들에겐 자녀들의 영어교육에 다가서는 삶의 자세에 훌륭한 지침에 될 것임에 틀림없을 듯 하다. 책 곳곳에서 자녀들에게 아낌 없는 사랑을 베풀어주는 저자의 마음이 푸근하게 느껴졌다. 나 또한 죽는 순간까지 최선을 다해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다시금 해 본다.  

 

 

두뇌에 대한 올바른 이해 …… 나이가 들면서 두뇌의 특기와 관심사가 변하고 있다고 이해해야 옳다 …… 두뇌는 쓰면 쓸수록 발달한다. 학습 능력이 필요하면 자꾸 시도하면 된다.(19)

 

‘fMRI(기능성 자기공명 영상)’ …… 활성화된 사진은 그저 두뇌가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오히려 능력이 뛰어난 두뇌라서 활성화가 필요 없는 경우도 있다.(20)

 

단언컨대 부모가 아이를 무릎에 앉혀놓고 직접 영어책을 소리내어 읽어주는 것만큼 효과적인 영어학습법은 없다 …… ‘무릎 영어’(21)

 

이마 안쪽에 기저전뇌핵(basal forebrain)’ …… 특별한 주의집중력을 기울이지 않고도 두 살에서 여섯살 정도 된 아이의 두뇌가 기적과도 같은 수많은 정보를 흡수할 수 있도록 해주는 물질인 BDNF(Brain Derived Neurotorphoc Factor)가 샘솟는다.(34)

 

인간의 두뇌는 그 관심도에 따라 특기도 변한다. 얻는 것이 있지만 잃는 것도 생기는 셈이다. ‘지식의 저주라고 불러야 할까?(39)

 

사이트워드(sight words)’ …… 자동적으로 알아볼 수 있는 단어를 말한다 …… 자주 같은 단어들을 보면 두뇌에 자동으로 단어를 인식할 수 있는 회로가 형성되어 글자 단위가 아니라 단어 전체를 한눈에 0.3초 정도면 척척 읽고 이해까지 할 수 있게 된다.(47)

 

어른이라면 두렵거나 불안해 감정적으로 긴장상태일 경우 손바닥에 땀이 난다 …… 아기들은 불안하거나 흥분하면 젖을 빤다.(54)

 

아무리 외국어에 능통한 사람도 모국어는 반드시 단 한 개라고 한다. 엄마의 뱃속에 있을 적부터 익숙해진 모국어가 아닌 다른 나라 말은 그 유창성과 무관하게 모국어보다 결코 더 편할 수 없다.(56)

 

모든 언어는 …… 높낮이 자체도 다르다 …… 즉 주파수로 나타낼 수 있다.(56)

 

가능하면 어린 시절부터 영어의 높낮이 즉 음조에 친숙해지도록 하는 것이 외국어를 습득하는 데 매우 효과적이다 …… 생후 6개월을 기점으로 언어의 자음과 모음 소리를 받아들이는 방식이 거의 확정된다 …… 개별언어는 평균적으로 40개의 음소만 사용한다 …… 다시 말해 생후 6개월까지는 세계에 존재하는 어떤 언어의 음소든지 쉽게 익힐 수 있지만 불과 1년 만에 모국어 음소를 거의 완벽하게 익히고 나면 다른 언어의 음소에 대한 습득 능력이 빠른 속도로 줄어든다. 이 단계를 넘어서면 엄마의 언어가 아닌 외국어에 대해 일단 불편함과 불안감을 느끼게 된다.(60)

 

자전거 교육’ …… 뒤에서 잡아줘야 한다 …… 부모가 전면에 나서 모든 것을 결정하기보다 뒤에서 보살펴줘야 한다 …… 부모가 아이들을 절대로 압도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는 것도 모르는 척해서 아이가 스스로 최선의 방법을 찾아내도록 유도했다.(66)

 

아이들의 방에 칠판이 설치 …… 주된 용도는 아이들이 배우고 익힌 내용을 부모들 앞에서 칠판에 써가며 직접 발표해보도록 하는 것이었다.(67)

 

언어는 기본적으로 남과 의사소통하기 위한 수단이므로 대인관계가 좋으면 그만큼 언어 발달도 일취월장할 수 있다.(68)

 

우리 두뇌가 오랜 세월 발달하며 선택한 핵심 원리 중 하나가 있는데 느리지만 거의 옳은 것보다 가끔씩 틀리지만 빠른 게 낫다이다.(88)

 

영어 독서 수준은 국어 독서 수준을 넘을 수 없다.(116)

 

아이와 함께 책을 읽고 소리내어 책을 읽어주는 행위는 부모와 자식 사이의 유대를 강화할 뿐만 아니라 학습 효과도 크다.(117)

 

모든 언어는 소리가 우선이다. “듣지 못하는 것은 소리 낼 수 없다는 원칙이 있다 …… ‘귀의 아인슈타인이라고 불리는 알프레드 토머티스 박사다.(124)

 

음악을 처리하는 두뇌 부위와 언어를 처리하는 부위는 실제 서로 겹친다.(129)

 

일상대화의 99%는 불과 2,000개 이내의 단어로 이뤄진다.(134)

 

라틴어나 한자책, 조선시대 한글의 경우에서 볼 수 있듯 불과 얼마 전까지도 문자 기록에서 띄어쓰기가 이뤄지지 않았었기 때문에 소리내어 읽지 않고서는 글의 의미 단위를 파악하기가 대단히 어려웠다. 구술 언어 중심의 문화에서는 언어 정보를 기억에 의존해 전달한다 …… 과거 몇날 며칠이 걸리는 엄청난 분량을 암송해내는 사람이 존재할 수 있었던 비결은 소리내어 읽었기 때문이다.(146)

 

세상에 존재하는 지식의 95% 이상이 영어로 되어 있다.(151)

 

아이는 읽어서 알고 있지만 부모가 그 내용을 모르면 아이는 책 속에서 읽은 것이 현실에서는 쓸모가 없다고 느낀다 …… 어린왕자와 친구가 된 여우가 …… 진리를 말해준다. “네 장미가 그토록 중요한 존재가 된 것은 네 장미에 들인 너의 시간 때문이란다.”(152)

 

일반적으로 잘 알려진 방식은 글자-단어-스토리 순서로서 파닉스와 같은 글자 수준의 교육을 먼저 하는 것이지만 그 반대 순서가 훨씬 더 효과적이다. 늘 스토리가 먼저다 …… 1 5,697행이나 되는 <일리아드> 1 2,110행 짜리 <오디세이>처럼 길디긴 장시를 며칠에 걸쳐 줄줄 외우는 구전문학 구술자들이 있었고 지금도 그러한 능력을 자랑하고 있는 생존자들이 있다.(160)

 

마태효과(Matthew Effect). 1968년 컬럼비아대학의 로버트 킹 머튼 교수가 만들어낸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뜻하는 사회학적 용어. 신약성경 마태복음 25 29절의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는 구절로부터 착안했다 …… ‘마태효과라는 용어를 읽고 쓰는 능력 습득에 관해 도입한 사람은 캐나다 토론토대학교에서 연구하고 있는 키스 스타노비치다.(167)

 

영어 어휘 교육의 권위자 폴 네이션 …… 구어체 텍스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6,000~7,000단어를 알아야 하고 어려운 글인 문어체 텍스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8,000~9,000단어가 필요하다.(170)

 

일단 국어책을 즐겨 읽어야 한다 …… 배경 지식과 그로 인한 이해력 때문이다 …… 요네하라 마리도 모국어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결국 외국어를 배운다는 것은 모국어를 풍부하게 하는 일이며 모국어를 배운다는 것도 외국어를 풍부하게 하는 일입니다.”(171)

 

존 스튜어트 밀은 이렇게 맗했다. “ 할 수 없는 것을 하도록 요구받은 적이 없는 아이는 할 수 있는 것도 결코 해내지 못한다.” 이 문장에서 아이두뇌로 바꿔도 좋다.(172)

 

말은 날아가도 글은 남는다라는 라틴어 명언처럼 글을 지배하는 자는 역사에 이름을 남길 확률이 높고 세상에 지속적인 영향력을 발휘할 가능성이 분명 올라간다.(173)

 

본인이 능숙하더라도 말로 설명하려고 하면 곤란해지는 형태의 스킬을 절차적기억이라고 하며 …… 말로 설명할 수 있는 형태의 지식을 서술적기억이라 한다 …… 발걸음을 의식적으로 생각하는 순간 다리가 꼬여 넘어졌던 경험이 있는가? …… 문법을 배우고 공식처럼 암기하는 상황 …… “문법이란 따로 배우기보다 몸에 배는 것이다. 문법이 몸에 배는 것은 마치 감기에 걸리는 것과도 같아서 영어에 노출되어 패턴을 모방하는 식이어야 한다.”(181)

 

두 종류의 교세포(중추신경계는 핍돌기세포, 말초신경계는 슈반세포)가 이 테이핑의 임무를 맡는다.(205)

 

미엘린으로 축삭이 감싸는 현상이 일어나는 가장 중요한 원인은 얼마나 자주 얼마나 많은 신경신호가 축삭을 따라 흐르느냐에 달려 있다. , 특정 뉴런을 쓰면 쓸수록 미엘린막이 두꺼워지고 두꺼워진 미엘린막은 전기신호 손실을 더욱 줄여준다.(207)

 

불과 1~2년 만에 아기의 머리는 태어날 때 크기의 4배 정도로 부풀어 올라 소위가분수체형을 갖게 된다.(208)

 

후두엽 끝부분에 있는 1차 시각피질 …… 귀 바로 안쪽에 있는 측두엽 청각피질 …… 이해한 정보 및 대답할 정보는 측두엽 및 두정엽을 전두엽의 브로카 영역과 연결시켜주는 신경다발인 궁형속을 타고 급송된다 …… 궁형속의 신경다발은 …… 양방향성.(212)

 

우리나라 학생들이 영어 듣기에는 상대적으로 능해도 말하기 능력은 다소 부족하다 …… 브로카 영역에는 영어 소리가 제대로 새겨져 있지 않고 …… 궁형속의 미엘린화 정도가 낮아 이해와 표현 기능이 자연스럽게 소통되지 않기 때문에 발생한다고 해석할 수 있다.(213)

 

베르니케-게슈빈트 모델에는 왼쪽 대뇌(대뇌 좌반구)만 나와 있으나, 오른쪽 대뇌(대뇌 우반구)도 말소리의 높낮이, 세기, 리듬을 조절해 표현하는 언어에 감정을 불어넣고 다른 사람의 말 속에 들어 있는 감정을 읽는 데 참여한다 …… 언어는 사람의 두뇌 좌우반구 모두에서 처리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214)

 

인류가 가장 빠른 속도로 인식하는 시각적 대상이 무엇일까? 바로 얼굴이다.(216)

 

해마 …… ‘기억 요리사’ …… 배우고 감각한 정보를 두뇌 껍질(신피질) 각 부위에 저장하도록 기억을 가공한다. ‘처리한 곳에 저장한다는 핵심 원리에 따라 서술적 기억은 대뇌 각 부위에 저장된다.(231)

 

절차적 기억과 서술적 기억을 이해하기 위해서 하이브리드 자동차를 떠올려보는 것도 도움이 될 것 같다 …… 엔진과 …… 전기모터 …… 이상적인 하이브리도 자동차라면 운전자가 모를 정도로 자연스럽게 2가지 구동 시스템이 전환되어야 마땅하다 …… 새로운 단어의 뜻을 외우는 ….. 서술적 기억 형성과 …… 소리내어 연습하고 대화하는 절차적 기억 형성이 동시에 진행되어야 하는 과정이어야 바람직하다.(233)

 

해마 근처에 위치한 편도체도 비서술적 기억 형성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 아몬드를 닮아서 편도(아몬드)라 이름을 붙인 이 기관의 약 70%공포감정을 처리한다는 사실이다.(234)

 

종이책과 전자책은 마치 운동화나 구두 등 상황에 따라 여러 종류의 신발을 신고 직접 지면을 발로 느끼며 걷느냐, 아니면 똑같은 소파에 앉아 똑 같은 화면 위로 띄워지는 풍경을 구경하느냐와 비슷하다.(253)

 

서술적 기억은 처리된 곳에 저장된다. , 어떤 단어를 제대로 배우면 한 개의 개념에 그치지 않고 시작, 청각, 촉각, 후각, 미각, 운동감각 등의 모든 감각 개념이 두뇌 여기저기에 분산 저장된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의 얼굴과 목소리는 기억나는데 이름은 도저히 떠오르지 않는 경험을 누구나 해봤을 것이다. 대상에 대한 기억이 두뇌의 한 부분에 몰려있지 않고 다양한 부위에 걸쳐 간직된다는 증거 중 하나다 …… 동시계발의 원리란 영어학습 초기에는 많은 두뇌 영역을 활성화시키는 것이 좋다는 뜻.(277)

 

작업기억 …… 대뇌 전두엽에 분포 …… 이 영역에 잠시 저장된 정보는 몇 초나 몇 분 뒤에 소멸한다.(2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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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들어진 신 - 신은 과연 인간을 창조했는가?
리처드 도킨스 지음, 이한음 옮김 / 김영사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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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5월에 읽은 첫 번째 책.

 

 소문으로만 듣던 도킨스의 그 책을 드디어 읽게 되었다.

 유신론자들 특히 크리스천들 이마에 핏발 세우게 하기 충분한 내용이라고 생각된다. 상당한 세월에 걸쳐서 마음의 준비를 차근차근히 해 온 이후에 보게 된 덕분인지 내게 그다지 충격적인 내용은 없었다. 그저 내가 안주하며 살아가는 사이에 세상의 다른 한 쪽에서는 전혀 다른 방향의 왕성한 연구들이 이루어지고 있었음을 깨달으며 다시금 스스로를 채찍질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을 뿐이다.

 셔머나 도킨스의 책을 통해서 접하게 되는 통계는 실로 신선한 것이었다. 누구는 세상이 구원받기에 합당하지 않은 무리로 가득 차 있고 오직 자신이 속해있는 조직의 소수만이 진리 안에 있음을 감사해 하며 사는 반면, 누구는 세상이 합리적이지 않은 신자들로 가득 차 있음을 지적한다. 특히 미국이라는 나라의 통계가 정말 충격적이다. 아들 조지 부시의 그 또라이 같은 언행들도 그 나라의 환경을 생각하니 이해가 갈 정도이다.

 누구나 일정부분은 자기만의 세상에 살아간다. 내 생각의 스펙트럼이 어느 부분에서 맴돌고 있는지 굳이 규정하지는 않으련다. 계속 방황하며 많은 주장들을 접해볼 생각이다.

 

현재 미국에서 무신론자의 지위는 50년 전 동성애자의 처지와 다를 바가 없다 …… 무신론자와 불가지론자는 조직화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영향력이 거의 전무하다. 사실 무신론자들을 조직화하는 일은 고양이 떼를 모으는 일에 비유되어왔다. 그들은 독자적으로 사고하고 권위에 순응하지 않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13)

 

종교가 전문 분야라고 주장할 만한 고유의 영역이라고 해도, 그것이 이의를 제기해서는 안 되는 분야라는 의미는 아니다. 그 사제는 아마 요정의 날개 모양과 색깔에 정통했다고 주장하는 요정학자의 전문성을 존중하지는 않았을 것이다.(30)

 

범신론은 매력적으로 다듬은 무신론이다. 이신론은 물을 타서 약하게 만든 유신론이다.(33)

 

나더러 동성애자를 모욕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내 편견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다라는 말로는 무사히 넘어갈 수가 없다. 하지만 내 종교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다라는 말로는 무사히 넘어갈 수 있다. 둘 사이에 무슨 차이가 있을까? 어쨌든 여기서도 종교가 모든 것을 이긴다.(42)

 

H.L.. 멘켄 …… “우리는 동료의 종교를 존중해야 하지만, 자신의 아내가 아름답고 아이들은 영리하다는 그의 이야기를 존중하는 것과 같은 의미에서 그리고 그런 정도로만 존중해야 한다.”(47)

 

윈스턴 처칠의 아들 랜돌프 처칠은 성서를 읽어보지 못한 상태로 성년이 되었다 …… 큰 소리로 성경을 읽거나 허벅지를 찰싹 두드리면서 신이라, 뭐 이따위가 다 있어!’라고 웃어대곤 했다. 랜돌프 처칠보다는 성경을 좀더 읽었던 토머스 제퍼슨도 비슷한 견해를 지니고 있었다. “기독교의 신은 잔인하고 복수심 많고 변덕스럽고 불공평한, 끔찍한 성격을 지닌 존재다.’(51)

 

가톨릭 공동체 포럼에서 성인 5120명의 목록과 그들의 전문 분야(배앓이 환자, 학대 희생자, 식욕 감퇴자, 무기 거래상, 대장장이, 접골원장, 폭탄 기술자, 소화기 장애 환자 등등)에 관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57)

 

아버지 부시 …… “아니오, 나는 무신론자들을 시민으로 봐야 할지도 모르겠고 그들을 애국자로 봐야 할지도 모르겠군요. 이곳은 신이 다스리는 나라입니다.”(70)

 

신은 명사보다 부사를 사랑한다는 청교도의 격언.(71)

 

간디(“나는 힌두교도며, 이슬람교도며, 유대교도며, 기독교도며, 불교도다!”)와 무신론자 네루 …… 인도를 비롯한 각지에서 종교, 하여튼 조직 종교라고 불리는 것의 현란한 모습을 보고 나는 공포에 질렸고.(73)

 

폐하, 제게는 그 가설이 필요 없었습니다.” 유명한 수학자인 라플라스는 나폴레옹이 어떻게 신을 전혀 언급하지 않고 책을 쓸 수 있는지 묻자 그렇게 대답했다.(74)

 

불가지론이라는 용어의 창시자인 토머스 헨리 헉슬리 …… 그 말을 처음에 어떻게 생각해냈는지 설명했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어떤 영적인 직관(gnosis)’에 이르렀다고 즉, 존재의 문제를 푸는 데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었다고 확신했다. 반면에 나는 그렇지 않다고 확신하며, 그 문제가 해결 불가능하다는 아주 강한 확신을 갖고 있다. 그리고 흄 및 칸트와 같은 편에 서 있기에, 내가 그 견해를 확고히 유지한다고 해도 주제넘다고 할 수는 없다 …… 따라서 나는 생각한 끝에 불가지론자(agnostic)’라는, 맞는 용어를 창안했다.”(79)

 

우리가 무언가의 존재를 증명하거나 반증할 수 없다고 해서 그것이 존재와 비존재가 동등한 입장에 서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 그럼에도 우리는 신의 존재 문제가 원칙적으로 대답할 수 없는 것이라는 전제로부터 그의 존재와 비존재가 동등한 확률을 갖는다는 결론으로 건너뛰는 오류를 흔히 접하게 된다.(83)

 

버트런드 러셀의 찻주전자 우화 …… 많은 사람들은 이미 수용된 독단적 견해는 독단론자들이 아닌 회의론자들이 반증해야 하는 것처럼 말한다. 물론 그것은 잘못이다. 내가 지구와 화성 사이에 타원형 궤도를 따라 태양을 도는 중국 찻주전자가 하나 있다고 주장하면서 그 찻주전자가 우리의 가장 강력한 망원경으로도 보이지 않을 만큼 아주 작다는 단서를 신중하게 덧붙인다면, 아무도 내 주장을 반증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내 주장이 반증될 수 없다고 해서 그것을 의심하는 것은 인간 이성에 대한 용납하기 어려운 억측이라고까지 내가 말한다면 그건 헛소리로 여겨져야 옳다. 하지만 그런 찻주전자가 존재한다고 옛 서적에 명확히 나와 있고, 일요일마다 그를 신성한 진리라고 가르치며, 학교에서도 그를 아이들의 정신에 주입시킨다면, 그 존재를 선뜻 믿지 못하는 것은 괴짜라는 표시가 될 것이고, 이를 의심하는 자는 계몽시대의 정신과의사나 그 이전의 종교 재판관의 이목을 끌게 될 것이다.(83)

 

물론 러셀의 찻주전자는 상상할 수는 있지만 반증할 수는 없는 무수한 존재들을 상징한다 …… 비행 스파게티 괴물(스파게티와 미트볼을 합친 모양을 한 초자연적인 창조자로서, 기독교의 지적 설계론을 비꼬기 위해 창시된 종교 단체가 받드는 신) …… <비행 스파게티 괴물 복음서>라는 책까지 나와 있다 …… 신이 증명될 수도, 반증될 수도 없다고 해서 신의 존재 확률이 50퍼센트라고 가정할 이유도 명백히 없다.(87)

 

기도하다라는 동사에 대한 앰브로즈 비어스의 재치 만점의 정의를 떠올려보자. “지극히 부당하게 한 명의 청원자를 위해서 우주의 법칙들을 무효화하라고 요구하는 것.”(97)

 

다윈의 사촌인 프랜시스 골턴은 기도가 효험이 있는지를 과학적으로 분석한 최초의 인물이었다. 그는 일요일마다 영국 전역의 교회에 모인 군중들 전부가 왕실의 건강을 비는 공개 기도를 한다는 점에 주목했다 …… 자신이 기도의 혜택을 받았다는 것을 안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더 심한 합병증에 시달렸다 …… ‘성취 불안이라고 표현했다.(102)

 

평범원리는 우리가 살아가는 이곳이 특별할 이유가 전혀 없다는 주장(코페르니쿠스, 허블 등의 과학자들을 통해 알려진 불편한 역사적 교훈의 산물)이다 …… 인본 원리는 우리 태양계가 사실상 우주에서 유일한 행성계이며, 이곳이 바로 그런 문제들에 골몰하는 우리가 살아가게 되어 있는 곳이라는 주장이다.(114)

 

아서 클라크가 <3의 법칙>에서 말한 것 …… “충분히 발전한 기술은 마법과 구분할 수 없다.” …… <가짜 세계>를 쓴 대니얼 갤로이 같은 과학 소설 작가들은 대단히 우월한 문명이 만든 컴퓨터 시뮬레이션 속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것일지 모른다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그리고 내게는 그것을 반증할 방법이 도저히 떠오르지 않는다).(118)

 

13세기에 토마스 아퀴나스가 주장한 다섯 가지 증명 …… 처음 세 개의 증명은 같은 것을 그저 달리 말한 것으로 하나로 묶어서 생각할 수 있다. 그것들은 모두 무한 회귀를 수반한다. 1.부동의 원동자. 그 어느 것도 선행 원동자 없이는 움직이지 않는다. 2.원인 없는 원인. 자체가 원인인 것은 없다. 3.우주론적 논증. 그 어떤 물체도 존재하지 않았던 때가 있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 이 세가지 논증 …… 신 자신이 회귀로부터 벗어나 있다는, 전적으로 부당한 가정을 한다 …… 논리학자들은 전능과 전지가 상호 양립할 수 없다는 점을 놓치지 않았다. 신이 전지하다면, 그는 자신이 전능을 발휘하여 역사의 경로에 개입하여 어떻게 바꿀지를 이미 알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그가 개입하겠다고 이미 마음먹은 것을 바꿀 수 없다는 의미이며, 따라서 그가 전능하지 않다는 뜻이다.(123)

 

4.정도 논증 …… 인간은 선하면서도 악할 수 있으므로, 최대 선은 우리 안에 있을 수가 없다. 따라서 완벽성의 기준이 될 다른 어떤 최대값이 있어야 하며, 우리는 그 최대값을 신이라고 한다 …… 이것이 논증이란 말인가? ….. 비교할 특성을 다른 것(ex.냄새)으로 바꾸어도, 마찬가지로 아둔한 결론이 도출된다.(125)

 

5.목적론적 논증 또는 설계 논증 …… 다윈의 설계 논증 타파만큼 대중 신앙을 철저히 패배시킨 탁월한 추론은 없을 것이다 …… 자연선택을 통한 진화는 복잡성과 우아함을 경이로운 수준으로 올려 놓음으로써 설계되지 않은 것도 설계된 것처럼 보이게 한다.(126)

 

아퀴나스의 다섯 가지 증명은 …… 귀납적 논증들이다. 연역적 논증들 즉, 순수한 공론적인 추론에 의존하는 논증들 중 가장 유명한 것은 1078년 캔터베리의 성 안셀무스가 제시하고 그 이후로 수많은 철학자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개작한 존재론적 논증이다 …… 안셀무스는 더없이 위대한 존재를 상상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무신론자라도 그런 최상의 존재를 상상할 수는 있다. 현실 세계에 그런 존재가 있다는 사실은 부정하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 논증은 현실 세계에 없는 존재는 바로 그 없다는 사실 때문에 완벽하지 못하다고 주장한다. 그것은 모순이므로 우리는 재빨리 신이 존재한다고 말해야 한다는 것이다! …… 러셀은 젊을 때 잠시 그 논증에 설득당한 적이 있었다 …… 존재론적 논증을 가장 결정적으로 논박한 공로는 철학자 데이비드 흄과 이마누엘 칸트에게 돌아간다. 칸트는 안셀무스가 사람들을 속이기 위해서 소매 속에 숨긴 카드가 존재가 비존재보다 완벽하다는 모호한 가정임을 간파했다.(131)

 

개인적 경험 논증은 그런 경험을 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는 설득력이 있다. 하지만 그것은 다른 사람에게는 가장 설득력이 없는 논증이며, 심리학에 식견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더욱 그렇다.(140)

 

흄이 말한 기적 검증법 …… “증언이 입증하려는 사실보다 그것의 부정이 더 기적적이지 않다면, 어떤 증언도 기적을 입증하기에 충분치 못하다.”(145)

 

C.S. 루이스의 일반 논증에 따르면 스스로를 신의 아들이라고 주장한 예수는 옳거나 미쳤거나 거짓말쟁이임에 분명하다고 한다 …… 삼자택일(trilemma)을 하라는 요구는 어이없을 정도로 부당하다. 굳이 거론할 필요도 없을 만큼 뻔히 보이는 네 번째 가능성이 있다. 바로 예수가 오해를 받았다는 것이다.(147)

 

다윗이 실존인물이라면 그는 마리아와 요셉보다 거의 1000년 전 인물이다. 도대체 로마인이 요셉에게 1000년 전의 먼 조상이 살았던 동네로 가라고 할 필요가 어디 있단 말인가?(149)

 

인간 게놈 프로젝트의 창시자이자 내 친구인 제임스 왓슨 …… “저는 우리가 무언가를 위해 존재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단지 진화의 산물일 뿐입니다. 그러면 누군가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지요. ‘저런, 목적이 없다고 생각하다니 당신의 인생은 참 황량하겠소.’ 하지만 나는 맛있는 점심을 먹을 기대감에 차 있습니다.”(159)

 

위대한 프랑스 수학자 블레즈 파스칼은 신이 존재할 확률이 아무리 낫다고 해도, 잘못 추정했을 때 닥칠 대가가 훨씬 더 크다고 판단했다. 따라서 신을 믿는 편이 더 낫다는 것이었다. 당신이 옳다면 영원한 행복을 얻을 것이고, 당신이 틀리다면 아무런 변화도 없을 테니까. 반면에 당신이 신을 믿지 않았을 때, 당신이 틀리다면 영원한 천벌을 받을 것이고 옳다면 아무런 변화도 없을 것이다. 언뜻 생각하면 쉽게 결정을 내릴 수 있을 듯하다. 신을 믿어라 …… 파스칼의 내기는 신을 믿는 척하는 것에 관한 논증이 될 수 있을 뿐이다. 그리고 당신이 믿는다고 주장하는 그 신은 전지한 신이 아닌 편이 더 낫다. 그렇지 않다면 사기를 꿰뚫어볼 테니까.(165)

 

신정론’(악이 존재함에도 신의 섭리를 옹호하는 것) …… 일종의 초자연적인 지성을 믿는, 더 노련한 사람들에게는 악의 문제를 극복하는 것이 유치할 정도로 쉽다 …… 별도의 악한 신을 창안하여 그를 사탄이라고 부르고 그가 세계의 악을 위해 선한 신에 맞서 우주적인 싸움을 벌인다고 비난하면 된다. 아니면 더 복잡한 해결책이 있다. 신이 인간의 고뇌에 호들갑을 떠는 것이 아니라 더 원대한 일을 한다고 가정하는 것이다. 혹은 고통에 무심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질서와 법칙이 있는 우주에서 자유 의지를 위해 지불해야 하는 대가로 간주하는 신을 상정하는 것이다. 신학자들은 이 모든 합리화들이 입맛을 당긴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172)

 

누가 신을 만들었나?” …… 생각이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스스로 그 질문을 발견한다. 설계자 신은 조직화한 복잡성을 설명하는 데 이용할 수 없다. 무언가를 설계할 수 있는 신은 그 자체가 같은 종류의 설명을 요구할 만큼 복잡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172)

 

다윈 이전에도 흄 같은 철학자들은 생명의 비개연성이 반드시 생명이 누군가에 의해 설계되었다는 의미는 아니며, 그저 대안을 떠올릴 수 없다는 의미임을 간파했다.(176)

 

오스트레일리아와 뉴질랜드에서 남극이 위를 향한 세계 지도를 살 수 있다 …… 북반구 교실의 벽에 붙여놓으면 …… 매일 아이들은 이 원래 위쪽이 아닌, 임의로 설정된 위쪽임을 되새길 것이다.(179)

 

워치타워바이블 출판사와 트랙트협회가 익명으로 출간하여 16개 언어로 1100만 부를 찍은 <생명-어떻게 여기에 있기 되었는가?>는 사람들이 대단히 좋아하는 책이 분명하다. 세계 각지의 호사가들이 그 1100만 부 중 무려 여섯 권을 요청하지도 않았는데 내게 보냈으니 말이다.(185)

 

다시 말하지만 지적 설계는 우연의 적절한 대안이 아니다. 자연선택은 경제적이고 설득력 있고 우아한 해답일 뿐 아니라, 지금까지 제시된 것들 중 제대로 작동하는 유일한 대안이다 …… 지적 설계는 문제를 더 악화시킨다 …… 그것은 설계자 자신의 기원이라는 더 큰 문제를 제기하기 때문이다.(187)

 

일반적으로 말해 종교가 미치는 진정으로 나쁜 효과 중 하나는 몰이해에 만족하는 것이 미덕이라고 가르친다는 점이다.(196)

 

화석이 아예 없는 경우도 있겠지만, 그렇더라도 분자유전학과 지리적 분포 같은 다른 원천들로부터 얻은 압도적일 정도로 강력한 진화의 증거들이 있다. 한편으로 진화론은 …… 예측을 내놓는다.’(198)

 

더 이상의 논증도, 정당화도 없이 족제비개구리(또는 폭탄먼지벌레 등)가 설계를 보여준다고 그냥 주장하는 것 …… 그것은 과학을 하는 방법이 결코 아니다 …… 지적 설계 이론의 바탕에 깔린 추론은 게으르고 패배주의적이다 …… 숟가락을 구부리는 마술을 보고서 그것이 초자연적인 현상이라는 결론으로 비약하는 바보들과 마찬가지다.’(201)

 

가상의 지적 설계 이론가가 과학자들에게 떠들어댈 법한 말을 소개한다. “무언가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도 걱정하지 마세요. 그냥 포기하고 신이 했다고 말하면 되지요.” ……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노골적으로 말했다. “더욱 위험이 큰 또 하나의 유혹이 있다. 바로 호기심이라는 병이다. 자연의 비밀들, 우리의 이해 범위를 넘어서며 우리에게 아무 소용도 없고 어느 누구도 알고 싶어하지 않을 비밀들을 탐구하여 규명하라고 우리를 충동질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206)

 

다윈주의는 다른 식으로 우리의 의식을 일깨운다. 진화한 기관들은 뛰어나고 효율적이지만 종종 결함도 보인다. 그것은 그 기관들이 진화된 것일 경우 예상되는 일이며, 설계된 것일 경우에는 예상할 수 없는 것이다.(209)

 

행성들의 궤도가 다 그렇듯이 지구의 공전 궤도도 정확히 말하면 타원형이지만(1월에 태양에 가장 가까이 다가가고 7월에 가장 멀리 떨어진다. 각주. 이 말이 놀랍다면, 당신은 앞서 말한 북반구 우월주의에 사로잡혀 있을 수 있다.)(212)

 

우리 행성이 유달리 생명에 우호적인 이유를 놓고 두 가지 설명이 제시되어 있다. 설계 이론은 신이 세계를 만들었고 지구를 골디락스 영역에 놓았으며 우리에게 이롭도록 모든 세세한 사항들을 꼼꼼하게 설정했다고 말한다. 이와는 전혀 다른 인본적인 접근 방법은 다윈주의적인 느낌을 희미하게 풍긴다. 우주의 행성들 중 대다수는 골디락스 영역에 있지 않아서 생명체가 생존하기에 적합하지 않다. 그 대다수의 행성에는 생명이 없다. 그러나 생명이 존재하기에 딱 맞는 조건을 지닌 행성들의 수가 아무리 적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반드시 그 소수의 행성 중 하나에 존재하고 있어야 한다. 우리가 여기서 그 생각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213)

 

인본 가설은 통계적이다 …… 우리 은하에는 10~300억개의 행성들이 있고 우주에는 약 1000억 개의 은하가 있다고 추정 되어왔다. 통상적으로 하듯이 0을 몇 개 떼어내고 보수적인 추정값을 취하면, 우주에 있는 쓸 만한 행성의 수는 1(10억의 10억배)개가 된다. 이제 생명의 기원 즉, DNA에 상응하는 무언가의 자발적인 출현이 진정으로 있을 법하지 않은 사건이었다고 가정해보자 …… 10억분 의 1의 확률이다. 그렇게 터무니없을 정도의 낮은 확률일지라도 생명이 출현할 행성은 10억 개는 된다. 물론 지구도 그 중 하나다 …… 생명이 한 행성에서 자연적으로 출현할 확률이 10억 분의 1이라고 해도, 그렇게 경이로울 정도로 있을 법하지 않은 사건은 10억 개의 행성에서 일어날 것이다.(215)

 

생명이 자연적으로 발생할 확률을 가장 비관적으로 추정한 값을 받아들인다고 해도, 이 통계적 논증은 설계가 그 틈새를 채운다는 가정을 철저히 무너뜨린다.(216)

 

행운이라는 요소는 …… 지구에 사는 복잡한 생물들의 다양성을 결코 설명할 수가 없다 …… 생명의 진화는 생명의 기원과 전혀 경우가 다르다. 종이 자신의 환경에 적응하는 양상은 수없이 많다.(217)

 

왜 이곳이 생명에 친화적인지를 설명해주는 두 가지 이론 …… 하나는 생명이 행성이 제공하는 조건들에 맞게 진화했다는 것이다. 그것은 자연선택 때문이다. 또 하나는 인본 원리다. 우주에는 무수히 많은 행성이 있고, 진화에 우호적인 행성이 아무리 적다 해도 우리 행성은 그 중 하나임에 분명하다는 것이다.(220)

 

마틴 리스는 <여섯 개의 수>에서 근본 상수 여섯 가지를 나열한다. 우주 전역에 적용된다고 여겨지는 것들이다. 이 여섯 개의 숫자가 조금만 달랐어도 아마도 우주는 생명의 비우호적인 형태가 되었을 것이다 …… 언제나 그렇듯이 유신론자의 대답은 몹시 불만족스럽다. 그것은 신의 존재를 설명하지 않은 채 놓아두기 때문이다.(223)

 

앤더스 톰슨 …… 우리 모두가 무생물을 행위자로 인격화하는 심리적 성향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톰슨에 따르면, 우리는 강도를 그림자로 착각하기보다는 그림자를 강도로 착각하는 성향이 더 강하다 …… 유신론자가 비개연성 수수께끼에 보이는 반응은 주로 얼버무리기이다.(224)

 

대붕괴(Big crunch)’ …… 일부 대붕괴 모형들은 그 다음에 우주가 다시 팽창하며, 그런 식으로 200억 년을 주기로 무한히 반복된다고 본다.(226)

 

근본적인 오류는 신이 논리적으로 단순하다고 가정하는 것이다 …… 그러나 신이 불가분이면서도 내부적으로 복잡하다고 가정하는 것은 아주 일관성이 있다.(233)

 

설계자 가설은 즉시 설계자는 누가 설계했는가?”라는 더 큰 문제를 제기.(245)

 

종교 신앙이 스트레스와 관련된 질병들로부터 사람을 보호해준다는 증거가 조금 있다 …… 조지 버나드 쇼는 이렇게 말했다. “신자가 회의주의자보다 더 행복하다는 말은 술 취한 사람이 멀쩡한 사람보다 더 행복하다는 말과 별 다를 바가 없다.”(254)

 

미국의 코미디언 캐시 래드먼은 말한다. “모든 종교는 똑같다. 종교는 기본적으로 축제일이 서로 다른 죄의식이다.” 아무튼 플라세보 이론은 종교가 전 세계적으로 퍼져 있는 현상을 …… 보조적인 설명은 되어도 주된 설명이 되지 못한다.(256)

 

자연선택은 아이의 뇌에 부모나 다른 어른이 어떤 말을 하든 믿는 경향을 심어놓았다 …… 그러나 믿고 따르기의 이면에는 노예처럼 속기가 있다 …… 아이가 좋은 조언과 나쁜 조언을 구분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 모든 종교 신앙들은 그 안에서 양육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기이해 보인다.’(271)

 

심리학자 폴 블룸은 아이들이 본래 이원론 쪽으로 기우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한다. 그가 볼 때 종교는 그런 본능적인 이원론의 부산물이다 …… 심리학자 데보라 캘러먼이 <아이들은 직관적인 유신론자인가>라는 논문에서 말하듯이, 아이들은 모든 것에 목적을 갖다 붙이기를 좋아한다 …… 아이의 목적론은 종교를 받아들이게끔 우리를 설정해 놓는다. 모든 것이 목적을 지닌다면, 그것은 누구의 목적인가? 물론 신의 목적이다.(277)

 

호랑이와 마주쳤을 때 당신은 지체없이 호랑이의 예상 행동을 예측해야 한다 …… 지향적 입장은 적어도 저차원에서는 설계적 입장과 마찬가지로 생존에 극히 중요할지 모를 시간을 절약해준다. 따라서 자연선택은 지향적 입장을 지름길로 삼도록 뇌를 형성했다. 우리는 우리에게 중요한 행동을 하는 실체에게 의도를 갖다 붙이도록 생물학적으로 프로그램되어 있다.(280)

 

종교 신앙이 사랑에 빠지는 것과 같은 특징을 지니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 종교는 많은 긍정적인 강화 작용을 일으킨다. 위험한 세계에서 사랑과 보호를 받는다는 따스하고 편안한 느낌, 죽음에 대한 두려움의 상실, 어려운 시기에 기도에 응답하는 높은 곳에 있는 자의 도움 등이 그렇다.(284)

 

생물학자 루이스 울퍼트 …… 그의 요지는 비합리적인 강한 확신이 마음의 변덕을 막는 감시자라는 것이다. “인간이 목숨을 구하는 데 도움이 되었던 믿음을 굳게 간직하지 않았다면, 초기 진화과정에서 불리했을 것이다. 한 예로 사냥을 하거나 도구를 만들 때 마음을 계속 바꾼다면 심히 불리할 것이다.” 울퍼트의 논증은 적어도 일부 상황에서는 설령 새로운 증거나 추론이 변화를 선호한다고 할지라도 그냥 비합리적인 믿음을 고수하는 편이 낫다는 의미를 함축한다.(286)

 

로버트 트리버스는 <사회적 진화>에서 …… 자기기만은 다른 사람들에게 진실을 더 잘 숨기기 위해 자신의 의식에게까지 진실을 숨기는 것이다. 우리는 의식적으로 속이고자 할 때 수반되는 긴장을 드러내는 힐끔거리는 눈, 땀이 밴 손바닥, 갈라진 목소리를 간파한다. 무의식적으로 사기를 치게 되면, 사기꾼은 관찰자에게 이런 신호들을 숨길 수 있다. 그나 그녀는 사기를 칠 때 수반되는 초조함을 느끼지 못한 채 거짓말을 할 수 있다.(286)

 

인류학자 라이어넬 타이거도 <낙천주의:희망의 생물학>에서 비슷한 말을 한다. 우리가 방금 논의한 이런 형태의 건설적인 비합리성은 트리버스의 지각 방어’(유쾌한 자극은 받아들이고, 불쾌한 자극은 무시함으로써, 위협적인 아이디어, 대상, 상황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려는 현상)를 다룬 대목에도 언급된다. 인간은 자기가 보고 싶은 것을 의식적으로 보려는 경향이 있다. 인간은 말 그대로 긍정적인 함의를 지닌 것들은 더 수월하게 볼 수 있는 반면 부정적인 것들은 잘 보지 못한다. 예를 들어 개인의 역사 때문이든 실험상의 조작 때문이든, 불안을 불러일으키는 단어들은 더 두드러지게 표현해야만 지각한다. 이것이 종교의 갈망하는 사고와 관련이 있다는 것은 굳이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287)

 

진화 모형이라고 해도 거기에 반드시 자연선택이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생물학자들은 유전자가 좋은 유전자여서가 아니라 단순히 운이 좋아서 집단 전체로 퍼질 수도 있음을 인정한다 …… 분자유전학에서 이른바 중립이론이라는 형태로 널리 받아들여진 상태다. 한 유전자가 돌연변이가 일어나서 다른 형태가 되어도 미치는 효과는 동일하다면, 그 차이는 중립적이며 어느 한쪽을 선호하는 선택은 일어나지 않는다.(289)

 

문화적 대응물 …… 언어는 준생물학적인 방식으로 진화하며, 진화방향은 무작위적 부동과 흡사할 정도로 방향이 없어보인다 …… 나는 언어와 마찬가지로 종교가 지극히 임의적인 것에서 출발하여 현재와 같은 당혹스러울 (때로는 위험할) 정도로 풍성한 다양성을 생성하기까지 대단히 무작위적으로 진화한다고 추측한다.(290)

 

마르틴 루터는 이성이 종교의 가장 큰 적임을 인식하고, 그 위험을 자주 경고하곤 했다. “이성은 신앙의 가장 큰 적이다. 그것은 영적인 것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으며, 신으로부터 흘러나오는 모든 것을 경멸함으로써 신의 말씀에 맞설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 “모든 기독교인은 마음속에서 이성을 파괴해야 한다.”(291)

 

종교에서 진리는 그저 살아남은 견해를 지칭한다. – 오스카 와일드(292)

 

조직 종교들은 사람들이 조직한다 …… 그렇다고 사람들이 그 종교를 창안하고 설계했다는 뜻은 아니다. 종교가 권력자의 이익을 위해 이용되고 조작되는 지역도 있었지만, 각 종교의 세세한 형태는 주로 무의식적인 진화를 통해 형성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 거의 모든 것이 설계된 종교는 사이언톨로지교 …… 전적으로 설계된 종교의 또 다른 후보는 모르몬교다 …… 종교들은 대부분 진화한다. 우리가 종교에 관해 어떤 진화 이론을 채택하든, 그 이론은 적절한 조건이 주어지면 종교가 경이로운 속도로 진화할 수 있음을 설명해야 한다.(307)

 

도덕과 실제로 아무 연관성이 없는 다른 주제들에 대해 종교인들이 보이는 태도의 배후에 도덕적 이유가 놓여 있다.(318)

 

이기적 유전자이론은 선함과 화합이 안되지 않을까? 그렇지 않다. 이것은 그 이론에 대한 흔한 오해 중 하나다 …… 이기적 유전자가 강조할 부분을 제대로 표시한 것이다. 말하자면 그것은 이기적 생물이나 이기적 종과 대조되기 때문이다 …… 이기적 유전자라는 개념은 자연선택의 단위(, 이기주의의 단위)가 이기적 생물도, 이기적 집단이나 이기적 종도, 이기적 생태계도 아니라 이기적 유전자임을 드러낸다.(327)

 

개체들이 서로에게 이타적이고 관대하고 도덕적이 되려는 타당한 다윈주의적 이유를 네 가지 알고 있다. 첫째, 유전적 친족 관계라는 특수한 경우가 있다. 둘째, 호혜성이 있다. 받은 호의에 보답을 하고, 보답을 예견하면서 호의를 베푸는 것이다. 여기에서 나오는 것이 셋째, 관대하고 친절하다는 평판을 얻음으로써 누리게 되는 다윈주의적 혜택이다. 넷째, …… 과시적 관대함은 속일 수 없는 진정한 광고의 역할을 한다.(333)

 

익히 알려져 있듯이, 이마누엘 칸트는 이성적인 존재를 동의 없이 어떤 목적(설령 그 목적이 남들에게 혜택을 주는 것이라고 해도)을 위한 수단으로 사용해서는 결코 안 된다고 그 원리를 명쾌하게 설명했다.(340)

 

종교인들과 무신론자들의 도덕적 직관이 다른지 살펴본 대목 …… 우리의 도덕이 종교로부터 나온 것이라면, 양측의 도덕은 분명히 서로 달라야 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듯하다 …… 무신론자와 종교인의 판단에 통계적으로 의미 있는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선하거나 악하기 위해서 신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지닌 견해와 들어맞는 듯하다.(343)

 

아인슈타인의 말처럼, “오로지 처벌이 겁나서 그리고 보상을 바라기 때문에 사람들이 선한 것이라면 우리는 정말로 딱한 존재가 아닐 수 없다.” …… 도스토예프스키가 그런 견해를 가졌던 것으로 여겨진다. 아마 그가 이반 카라마조프의 입을 빌려서 그런 말을 했기 때문인 듯하다.(345)

 

모든 절대론이 종교에서 유래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종교가 아닌 다른 것을 토대로 절대론적 도덕을 방어하기는 아주 어렵다. 내 생각에 유일한 경쟁자는 애국심, 특히 전시의 애국심이다 …… 사람들은 양심적 거부자를 경멸했다. 설령 그가 적국의 국민이라고 해도 말이다. 애국심에 절대적 가치를 부여했기 때문이다.(353)

 

사실 성서의 권위에 집착하는 사람들은 자기 경전의 (대개는 심히 의심스러운) 역사적 기원에 대해서 딱할 정도로 호기심을 갖지 않는다.(354)

 

성서가 도덕이나 인생법칙의 원천이 되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십계명처럼 직접 지시를 하는 것이다 …… 또 하나는 사례를 드는 것이다 …… 성서의 이 두 경로를 충실하게 따른다면 종교인이든 아니든, 현대 문명인이라면 누구라도 불쾌함을 느낄 도덕 체계가 조장된다.(356)

 

우리는 성서에서 어느 부분은 골라서 믿고, 어느 부분은 상징이나 우화로 간주한다 …… 우리 인간은 자신의 하찮은 를 우주적인 의미를 지닌 것으로 확대시키면서까지 으스대고 있다!(359)

 

신은 아브라함에게 애지중지하는 아들을 번제물로 바치라고 명령했다 …… 현대의 도덕주의자는 그런 심리적 외상을 아이가 어떻게 극복할 수 있었는지 궁금해하지 않을 수 없다 …… 아동 학대이자, 비대청적 권력 관계에서 발생하는 핍박이자, 뉘른베르크 전범 재판 때 나오는 것 같은 변명이 처음으로 기록된 사례다. “나는 명령에 따랐을 분이다.”(365)

 

우리는 경전에서 멋진 부분만 취사선택하고 불쾌한 부분은 거부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느 것이 도덕적인 것인지를 판단하는, 어떤 별도의 기준을 지녀야 한다. 그 기준은 어디에서 나오든 경전 자체에서 나올 수는 없으며, 우리가 종교인이든 아니든 이용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366)

 

입다는 딸을 불태웠다. 신은 이번에는 말리지 않았다.(367)

 

성서에 나온 이야기로부터 유추할 수 있는 것은 불운한 미디안인들이 자기 고장에서 대량 학살된 희생자들이라는 것이다.(369)

 

내가 입증하고자 하는 것은 현대의 도덕이 어디에서 나오든 간에 성경에 나오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 취사선택한 성서 대목을 곧이곧대로가 아니라 상징적으로 해석하는 기교를 부린다고 할지라도, 과연 어떤 기준으로 어느 대목을 상징적으로, 어느 대목을 글자 그대로 받아들일 것인가? …… 여호수아가 예리코를 파괴한 이야기를 비롯하여 약속의 땅을 침략하는 과정을 담은 성경의 이야기는 히틀러의 폴란드 침략, 사담 후세인의 쿠르드족과 습지 아랍인 대량 학살과 도덕적으로 구분할 수 없다. 성경이 인상적이고 시적인 소설 작품일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당신이 자식들에게 도덕을 함양하라고 줄 만한 책은 아니다.(372)

 

생각해보면 특정 종교가 고문 및 처형 기구를 신성한 상징으로 채택하고, 그것을 때로 목에 걸기도 하다니 놀랍기만 하다. 레니 브루스는 이를 제대로 꼬집었다. “만일 예수가 20년 전에 죽었다면, 가톨릭 신자들은 목에 십자가 대신 작은 전기의자를 걸고 다닐 것이다.”(379)

 

‘scrupming’ …… 그것은 사과, 오직 사과를 훔친다는 의미다 …… 사실 <창세기>는 그 과일이 사과라고 구체적으로 명시하지 않지만, 전통적으로 사과라고 여겨져왔다.(379)

 

아담과 이브의 죄는 부계를 따라 전달된다고 여겨진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정액으로 전달된다고 보았다 …… 스스로 죄에 관해 일가견이 있다고 여겼던 아우구스티누스가 바로 원죄라는 말을 만든 인물이다. 그 이전에는 그것을 조상의 죄라고 했다.(380)

 

대작 소설 <왕 예수>를 쓴 로버트 그레이브스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은 가롯 유다의 배신이 우주적 계획의 필수적인 일부였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역사적으로 부당한 대접을 받았다고 생각했다 …… 예수가 우리 모두를 대속하기 위해 배신당하고 처형당하고 싶어 했다면, 속죄를 받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대로 유다와 유대인들에게 보복한다는 것은 좀 부당하지 않을까?(381)

 

네 이웃을 사랑하라라는 말은 원래 우리가 현재 생각하는 의미가 아니었다. 그것은 오로지 다른 유대인을 사랑하라는 뜻이었다. 미국의 의사이자 진화인류학자인 존 하텅은 그 점을 통렬하게 지적한다.(383)

 

12세기의 대단히 존경받던 랍비이자 의사인 모세스 마이모니데스는 너희는 살인하지 말라라는 말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상세히 설명한다. “누군가가 이스라엘인 한 명을 죽이면, 그는 부정적인 계명을 위반한 것이다 …… 이교도를 죽인다면 처형되지 않는다.”(385)

 

8~14세의 이스라엘 아이 1000여 명에게 <여호수아서>에 나온 예리코 전투 장면을 읽어주었다 …… 66퍼센트는 전적으로 찬성 …… 여호수아의 대량 학살을 정당화하는 근거는 어느 모로 보나 종교적이다 …… 흥미로운 대조집단을 설정했다. 168명의 이스라엘 아이들로 된 별도의 집단에 <여호수아서>의 같은 대목을 읽어주면서 여호수아라는 이름 대신에 린 장군’, ‘이스라엘대신에 ‘3000년 전의 중국 왕조를 넣었다 …… 75퍼센트는 반대했다. 다시 말해 유대교라는 요소를 고려 사항에서 제외시키자, 대다수 아이들은 현대인의 다수가 지닌 도덕적 판단과 일치하는 의견을 냈다.(389)

 

하텅은 봉인된’(여호와의 증인 같은 일부 종파들은 그것을 구원된이라고 해석한다) 사람의 수가 14 4000명이라고 한정 …… 선택된 14 4000명이 여자에게 더럽혀지지 않았다라는 점을 지적하면서, 그것은 그들 중에 여자는 전혀 없다는 의미라고 말한다.(390)

 

종교는 분명히 분열을 조장하는 힘이며, 그것이 종교에 가해지는 주된 비난 중 하나다. 그러나 전쟁, 그리고 종교 집단이나 종파 사이의 다툼이 실제로 신학적 견해 차이에 관한 것인 경우는 거의 없다 …… 대물림되는 상호 복수 과정 …… 종교가 없었으면 누가 누구를 억압하고 누구에게 복수를 할지 판단할 꼬리표도 없었을 것 …… 북아일랜드의 진짜 문제는 그 꼬리표들이 오랜 세대에 걸쳐 대물림된다는 것이다.(392)

 

종교인이든 아니든, 무엇이 옳고 그른가에 관한 우리의 태도는 크게 변해왔다. 이 변화의 본질은 무엇일까? 그리고 그것의 추진력은 무엇일까? …… 독일어에서 유래된 시대정신이라는 말.(400)

 

지난 수십 년 사이에 뭔가가 변했다. 그것은 우리 모두에게 일어난 변화였으며, 그 변화는 종교와 아무 관계가 없다. 설령 있다고 해도 그것은 종교 때문에가 아니라 종교에도 불구하고에 해당한다.(405)

 

무신론자는 악한 짓을 할지 모르지만, 그때에도 무신론을 들먹이지는 않는다 …… 종교 전쟁은 실제로 종교의 이름으로 하며, 역사적으로 끔찍할 만큼 빈번하게 일어났다. 그러나 나는 무신론의 이름으로 벌어진 전쟁이 있었다는 소리는 못 들었다.(420)

 

내가 뉴질랜드가 남반구에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할 때 근본주의자가 아니듯이 진화가 사실이라고 말할 때에도 나는 근본주의자가 아니다. 우리는 증거가 진화를 뒷받침하기 때문에 진화를 믿으며, 그것을 반증하는 새 증거가 나오면 단번에 그것을 버릴 것이다.(428)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의 내무장관이 환경 정책에 대해 한 재림이 임박했으므로 우리는 환경을 보호할 필요가 없다등 주옥 같은 말.(437)

 

탈레반 치하의 아프가니스탄에서 동성애에 대한 공식적인 처벌은 사형이었다. 산 채로 묻은 뒤 그 위에 벽을 쌓는 고상한 방법을 써서 말이다 …… 영국에서도 동성애는 1967년까지 범법 행위로 취급되었다.(439)

 

테레사 수녀는 노벨 평화상 수락 연설에서 평화의 가장 큰 파괴자는 낙태다라고 말했다 …… 독실한 척하는 위선적인 테레사 수녀에게 속아 넘어갈 것 같은 사람은 크리스토퍼 히첸스의 <선교사의 위치 : 이론과 현실의 마더 테레사>를 읽어봐야 한다.(445)

 

결과론자들은 미끄러운 비탈논리를 내세울 수 있다. 아마 배아는 고통을 겪지 않겠지만, 인간의 생명을 거두는 것을 용납하는 사회는 더 심한 상황으로 나아갈 위험이 있다 …… 안락사 반대 논리도 미끄러운 비탈 논리를 통해 구성할 수 있다 …… 그러나 낙태의 종교적인 적은 미끄러운 비탈에 별 신경쓰지 않는다. 그들이 볼 때 문제는 훨씬 단순하다. 배아는 아기이고, 그것을 죽이는 것은 살인이다. 그것이 다이다. 논쟁 끝. 이 절대론적 태도로부터 많은 것이 파생된다.(448)

 

신경계가 없는 초기 배아는 고통을 겪지 않을 것이 분명 …… 낙태된 배아가 고통을 겪는다고 해도 비록 모든 고통은 슬픈 것이지만 그것은 그들이 인간이기 때문에 겪는 고통이 아니다. 얼마만큼 자랐든 인간의 배아가 같은 발달 단계에 있는 소나 양의 배아보다 더 고통을 겪는다고 가정할 이유는 전혀 없다.(454)

 

위대한 베토벤 오류 …… “임신 중절에 관한 견해를 듣고 싶습니다. 아버지는 매독 환자이고 어머니는 결핵에 걸렸습니다. 이미 자식을 넷이나 낳았는데, 첫째는 맹인이었고, 둘째는 사산했고, 셋째는 농아였고, 넷째는 결핵에 걸렸지요. 당신이라면 어찌했겠습니까?” “임신 중절을 시켰겠지요.” “그러면 당신은 베토벤을 살해한 겁니다.” …… 그것은 창작된 것이 분명하며, 전적으로 틀렸다. 사실 베토벤은 …… 장남이었다. 엄밀히 말하면 둘째지만, 첫째가 유아 때 죽는 바람에 그렇게 되었다 …… 그의 부모가 매독에 걸렸다는 증거도 전혀 없다. 비록 그의 어머니가 나중에 결핵으로 죽은 것은 사실이지만 당시에는 그런 사례가 많았다.(457)

 

이 어리석은 임신 중절 합법화 반대 논리에 따르면 번식 능력이 있는 개인의 성교 요구를 거절할 때마다 잠재적인 아이를 살해하는 셈이다! 심지어 강간에 저항하는 것도 잠재적인 아기를 살해하는 것으로 비칠 수 있다 …… 명확히 알 수 있겠지만 베토벤 논증은 정말로 아주 나쁜 논리다 …… 위대한 베토벤 오류는 우리 정신이 종교적인 절대론에 현혹될 때 빠지는 논리적 혼란의 전형적인 사례다.(459)

 

온건한종교의 가르침은 비록 그 자체로는 극단적이지 않아도 극단주의로 이어지는 공개 초청장이 된다 …… 조국애나 민족애에도 나름대로 극단주의가 비집고 들어올 수 있지 않은가? 그렇다 …… 그러나 종교 신앙은 합리적인 계산을 침묵시키는 데 특히 강력한 효과를 발휘한다 …… 이슬람교와 마찬가지로 기독교도 아이들에게 의문을 품지 않는 믿음이 미덕이라고 가르친다 …… 코란 …… 평화를 원한다면 당신은 평화로운 구절들을 찾아낼 수 있다. 전쟁을 원한다면 호전적인 구절들을 찾아낼 수 있다.(469)

 

전체 가족에게 그렇게도 중요한 의식치고는 놀랍게도 가톨릭교회는 누구라도 아무에게나 세례를 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지금도 그렇다). 반드시 사제가 세례를 할 필요는 없다 …… 왜 교황령에 사는 유대인들은 위험을 무릅쓰고서 가톨릭 하인들을 고용한 것일까? …… 유대인들은 안식일에 일하는 것을 금지하지 않는 종교를 지닌 하인이 필요했던 것이다 …… 당시 하인을 고용할 여유가 있던 볼로냐의 유대인 집안들이 가톨릭 하인을 고용한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었다.(477)

 

성적 학대 …… 전 세계의 가톨릭교회는 보상금으로 10억 달러 이상을 지출해왔다.(483)

 

가톨릭 집안에서 자란 40대의 미국 여성 …… 일곱 살 때 ……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지옥에 갈 것이라는 생각에 무서워서 잠을 못 이루는 적은 많았어요.(484)

 

배타적 형제들(Exclusive Brethren)이라는 꽤 불쾌한 종파 …… 어찌나 불쾌한 종파인지 거기에서 탈출한 사람들을 돌보는 일을 전문으로 하는 사이트(www.peebs.net)까지 있을 정도다 …… “벗어나는 과정이 정말로 어려워요. 사회 전체, 자신이 성장한 사회 전체를 떠나는 거니까요. 자신이 오랫동안 간직했던 신념 체계도 버리고요. 가족들과 친구들을 떠나야 할 때도 많고요 …… 사실상 그들에게 자신은 존재하지 않는 인물이 되는 거지요.”(491)

 

중요한 점은 자신들이 무엇을 생각할지 판단하는 것은 아이들의 특권이지, 부모의 특권이 아니라는 것이다.(498)

 

브라이츠(The-Brights.net)’(동성애자들이 자신들을 가리키는 명칭을 게이로 바꾸는 데 성공했듯이 무신론자들에 대한 명칭도 명석자’[Brights]’로 바꾸자고 주창하는, 한 미국 단체의 웹사이트)(516)

 

<옥스퍼드 사전>에는 게이라는 말이 1935년 미국 죄수들의 속어에서 유래했다고 나와 있다.(516)

 

왕당파는 북아일랜드의 신교도를 완곡하게 표현한 단어이며, 가톨릭교도를 가리키는 민족주의자라는 단어도 그렇다.(518)

 

미적 관점에서 볼 때 성경을 비롯한 경전들을 우리 교육 과정에서 제외시키는 것이 결코 정당하지 않다는 사실 …… 그리고 물론 우리는 유대교나 성공회나 이슬람교의 문화적, 문학적 전통들을 충실히 보존할 수 있고, 역사적으로 그 전통들과 함께 해온 초자연적인 신앙을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혼례식이나 장례식 같은 종교식 행사에도 참석할 수 있다. 우리는 소중히 아껴온 유산을 버리지 않고서도 신앙을 포기할 수 있다.(527)

 

종교는 인간 삶에서 네 가지 주요 역할을 해왔다고 여겨진다. 설명, 훈계, 위로, 영감이 그것이다.(531)

 

위로자나 상담자 역할을 하는 신은 일종의 심리적 유형진화 …… 유형진화는 유년기의 특징이 성년기까지 보존되는 것이다. 페키니즈 개는 유형진화한 얼굴을 지닌다. 즉 다 자라도 강아지 얼굴이다.(536)

 

내가 아는 무신론자 대다수가 경건한 겉모습 뒤에 무신론을 숨기고 있다고 말해도 과장이 아니다. 그들은 초자연적인 것을 믿지 않지만, 비합리적인 믿음에 대한 모호한 애착심을 간직하고 있다 …… 그저 인간의 감정에 비하면 그 진리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 어떤 무신론자들은 행복하다. 일부는 불행하다. 마찬가지로 어떤 기독교인, 유대인, 이슬람교도, 힌두교도, 불교도는 불행한 반면, 행복한 사람들도 있다.(541)

 

셰익스피어가 말한 인간의 일곱 단계들 하나하나는 다음 단계로 서서히 넘어감에 따라 죽는다’ …… 마크 트웨인 …… “나는 죽음이 두렵지 않다. 나는 태어나기 전 영겁에 걸친 세월을 죽은 채로 있었고 그 사실은 내게 일말의 고통도 준 적이 없다.”(542)

 

여론 조사 결과, 미국인의 약 95퍼센트가 죽은 뒤에도 삶이 있다고 믿었다 …… 진정으로 그렇게 믿는다면, 왜 그들은 앰플포스 대수도원장처럼 행동하지 않는가? 배즐 흄 추기경이 자신이 죽어간다고 말하자, 대수도원장은 기뻐했다. “축하합니다! 아주 희소식이네요. 당신과 함께 가고 싶었는데.” …… 왜 그녀의 침대 옆에 모인 독실한 문병객들은 먼저 떠난 사람들에게 전해달라고 이것저것 떠들어대지 않는 것일까?”(545)

 

오스트레일리아의 한 친구는 나이가 들수록 종교에 귀의하는 경향이 높아지는 것을 멋지게 표현했다. 질문을 할 때처럼 끝을 높이면서 말해보라. “막판에 벼락치기?”(548)

 

연옥이라는 교리는 신학적 정신이 터무니없는 방식으로 작동한다는 것을 폭로한다 …… 면죄부를 사면 연옥에 머무는 기간이 줄어든다고 했고 교회는 말 그대로(어처구니없을 만큼 뻔뻔스럽게) 며칠이 줄어드는지 구체적으로 적은 공인된 면죄부를 발행했다 …… 1903년 교황 피오 10세는 지위에 따라 연옥에 머무는 기간이 얼마나 단축되는지를 표로 만들었다. 추기경은 200, 대주교는 100, 주교는 겨우 50일이었다.(549)

 

<가톨릭 백과사전>에서 연옥 항목을 보면 증거라는 절이 있다. 연옥이 존재한다는 핵심 증거는 이것이다 …… 우리는 죽은 사람을 위해 기도를 한다. 따라서 연옥은 분명 존재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기도는 무의미할 것이다! 증명 끝.(551)

 

우리는 전자를 양성자와 중성자라는 더 큰 공들의 집합체 주위를 도는 작은 공으로 시각화한다. 하지만 실제 전자는 전혀 그렇게 생기지 않았다. 전자는 작은 공처럼 생기지 않았다. 전자는 우리가 인식하는 그 어떤 것과도 닮지 않았다.(558)

 

믿음이 위로를 준다고 그 진리값이 커지는 것은 아니라는 말을 다시 한 번 해야겠다.(587)

 

분명히 예외가 있긴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종교에 집착하는 주된 이유는 종교가 주는 위로 때문이 아니라 교육에 따른 무의식적인 수용, 그리고 대안(믿지 않음)에 대한 인식 부재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5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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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탄생 - 왜 우리는 종교에 의지하는가
마이클 셔머 지음, 김소희 옮김, 이정모 감수 / 지식갤러리 / 2012년 11월
평점 :
절판


2014 4월에 읽은 네 번째 책.

 제목만 보고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뇌과학을 비롯한 자연과학적 내용이 많이 담겨있는 책이었다. 후기에서 저자가 한 말대로 통합적인 과학책인 듯 싶다. 스티븐 로의 책들을 통해 정립하게 된 사전 지식들이 내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나는 그 쪽 언저리를 전공했음에도 왜 자연과학적 내용이 나오면 좀 지루해지는 지 모르겠다. 그러나 다방면에 걸친 조사와 연구의 노력이 물씬 묻어나오는 책임에는 분명하다. 2007년 퓨 포럼의 설문조사에 대한 내용은 약간 고개가 갸우뚱했다. 그 조사대로라면 신을 믿지 않는 복음주의자, 몰몬교도, 여호와의 증인도 있다는 말인데, 이건 뭥미? 그러나 그런 조사를 개인적으로 더 알아보기는 귀찮다. 하여튼 세상에는 내가 모르는게 정말 많다. 열심히 살아야지.

 

내가 회의론자를 자처 하는 이유는 믿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라 제대로 알고 싶기 때문이다 …… 2009 2203명의 미국 성인들 …… 진화론을 믿는 사람(45%)보다 천사(72%)와 악마(60%)를 믿는 사람이 더 많았다.(9)

 

믿음의 변화는 개인의 마음가짐과 더 심오한 시대정신의 사회, 문화적 전환의 혼합에서 나온다.(12)

 

우리는 가족, 친구, 동료, 문화, 사회에 의해 형성된 환경의 맥락에서 다양한 주관적, 개인적, 정서적, 심리적인 이유로 믿음을 만든다. 믿음이 형성된 후에는 수많은 지적 이유, 날카로운 주장, 이성적 설명으로 믿음을 합리화한다. 요컨대, 믿음이 우선이고 믿음에 대한 설명이 뒤를 따른다.(13)

 

어쩌면 환경적 스트레스와 뇌의 일시적인 기이한 장애의 조합일 수도 있다. 가령 무작위적인 뉴런 발화나 가벼운 측두엽 발작을 들 수 있는데, 특히 후자는 초종교성 행위와 함께 환청과 환각을 일으킨다고 과학적으로 입증되어 있다 …… 믿음은 뇌가 만들어내는 것이다.(34)

 

실험 대상이 된 정신과 의사나 직원들 가운데 이것이 실험임을 알아차린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들은 정상인들을 한결같이 비정상인으로 취급했다 …… “그들은 내가 미쳤다고 결정한 뒤 내 신상을 들여다보며 그 관점을 뒷받침할 것을 찾았습니다 …… 진단적 믿음에는 편향이 만연했다 …… 정신건강계 전문가들이 환자에게 하는 진술은 종종 환자보다 자신에 대해 더 많은 것을 말해줍니다 …… “정신병원에서는 정상인과 비정상인을 구별하지 못하는 게 분명하다. 병원 자체가 행동의 의미를 쉽게 오해하는 특수한 환경의 역할을 한다.” 당신은 믿는 대로 본다. 진단명이 행동을 판단한다. 이론이 데이터를 형성한다. 개념이 지각을 결정한다.(39)

 

나 같은 유물론자에게 마음따위는 없다 …… 신경전달물질과 뉴런 발화로 귀결된다. 실제로는 뇌다.(40)

 

의사 프랜시스 콜린스 …… 의학박사이며, 미국국립보건원의 현 책임자이자 인간 게놈프로젝트의 책임자였다. 또한 대통령 자유훈장을 받았으며, 미국국립과학아카데미와 교황청 과학원의 저명한 회원 …… 새벽녘에 신의 현시를 경험한 이후 노골적인 복음주의(구원의 수단으로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한 속죄와 개인적 귀의를 강조하는 프로테스탄트 분파) 기독교인으로 다시 태어났다(45)

 

당신이 일단 믿음의 가능성에 마음을 열면, 설명은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는다 …… 콜린스 …… 신의 존재에 대해 마음이 열려 있다면, 그 결론에 일치하는 우주의 측면을 지적할 수 있다. 설명과 믿음의 순서가 역전되려는 순간이었다.(47)

 

DNA AREs …… 는 게놈의 여러 위치에서 자신을 복제해 삽입한 뒤 점프하는 유전자로부터 생겨나며, 대개는 어떤 기능도 하지 않는다 …… 인간의 게놈과 쥐의 게놈을 나란히 배열하면 동일 유전자와 많은 AREs가 같은 위치에 있음을 볼 수 있다. 콜린스 …… “신이 우리를 혼란스럽게 하고 오도하려고 일부러 무력한 AREs를 이런 위치에 두었다는 입장(콜린스는 신의 성품상 그럴 리가 없다고 봄)을 받아들이지 않는 한, 인간과 쥐의 조상이 같다는 결론은 사실상 불가피하다.’(52)

 

시비를 객관화하는 신이 있다고 해도 우리가 옳고 그름이 무엇인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성서를 통해? 기도를 통해? 대체 어떻게 알 수 있죠?/ 내면의 작은 소리를 통해서 입니다./ 그래요. 저도 그런 소리를 들었습니다. 제 질문은 이겁니다. 그 원천은 무엇인가요?/ 제게 내면의 도덕적 소리의 원천은 신입니다./ …… 그럼 결국 절대적인 미지의 존재로 귀착되는 건가요?/ 네 그렇습니다.(57)

 

그렇다면 기본적인 불확실성 아래에서 인생의 의미는 어디에 있을까? 신도든 회의론자든 간에 인생의 의미는 바로 여기, 지금 이 순간에 있다.(58)

 

근거 없는 통설 …… 지능이 높아지면 미신이나 마법에 대한 믿음이 낮아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 지능은 대개 믿음의 요인이 아니다. , 예외적으로 일단 믿음을 수용하면 똑똑한 사람일수록 그 믿음을 합리화하는 데 더 뛰어나다. 그래서 똑똑한 사람들이 이상한 것을 믿는 것이다. 현명하지 않은 이유로 도달한 믿음을 방어하는 데 남들보다 뛰어나기 때문이다.(59)

 

우리가 믿음을 형성하는 방식 …… 세상에 대한 팩트는 우리가 살면서 축적한 세계관, 패러다임, 이론, 가설, 어림짐작, 예감, 편향, 편견의 다채로운 렌즈로 걸러진다. 우리가 이미 믿고 있다고 확인한 것들은 선별하고, 우리의 믿음에 반하는 것들은 무시하거나 합리화해버린다 …… 믿음이라는 말의 입에 이성의 재갈이 물려 있다. 고삐를 잡아당기고, 방향을 정하고, 달래거나 구슬리고 감언이설로 꾀어 유인해도, 결국 말은 자기의 길을 갈 것이다.(59)

 

중요한 종교적,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믿음치고 단독 결정 요인으로 돌릴 수 있는 것은 드물다. 인간의 사상과 행위는 원인 측면에서 언제나 거의 다변수다. 믿음도 예외가 아니다.(61)

 

사교적인 문제에 대한 한 가지 해결책은 또래집단의 범위를 같은 성향의 신도들로 좁히는 것이다 …… 고등학교 친구 프랭크 …… 그는 여호와의 증인이었다.(63)

 

기독교인 이외에도 다양한 사람들과 어울리자 무엇이든 회의적인 것에 대한 사교적 처벌은 없었다 …… 내 기독교 신념이 갈기갈기 찢긴 것은 진화론을 배웠기 때문이 아니다. 심리적 상실이나 사회적 보복에 대한 걱정 없이 그 어떤 믿음에 도전해도 괜찮았기 때문이다. 물론 다른 요인도 있었다.(65)

 

나는 대학원에서 공부하던 중 조용히 나의 종교적 믿음을 포기하고 목에 걸던 은으로 된 익투스ichthus(그리스어로 물고기라는 뜻으로 주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기도 함)를 버렸다 …… 내가 종교를 버리자마자 가장 먼저 깨달은 것은 다른 신념을 지닌 주변인들에게 계속 전도함으로써 그들을 얼마나 불편하게 했을까 하는 점이었다. 그런 태도는 자기만이 유일한 진짜 종교를 갖고 있다고 믿는 데서 나오는 논리의 산물이다.(67)

 

결국, 나를 회의론으로 이끈 것은 악마 문제였다. 신이 모든 것을 알고 전지전능하고 선하다면, 왜 좋은 사람들에게 나쁜 일이 일어날까?(69)

 

에우튀프론의 딜레마 …… 플라톤이 그의 대화편 <에우튀프론>에서 처음 설명한 것 …… “경건하거나 성스러운 것이 신들에게 사랑받는 이유는 그것이 성스럽거나 경건하기 때문인가, 아니면 신들에 의해 사랑받기 때문에 경건하고 성스러운 것인가?”(71)

 

리버테리언(보수와 진보의 이분법으로 구분하기 어려운 유권자들) …… 소설가이자 철학자인 아인 랜드의 <아틀라스> …… 포스트모던(기능 중심의 합리성에 대해 감성의 자유로운 표현이나 놀이의 요소를 도입한 사고방식이나 표현 수법. 근대주의의 다음에 오는 것이라는 뜻) ……. 컬트의 특성은 객관주의 신도들이 믿는 것과 꽤 들어맞는 듯하다. 그들은 리더를 숭배하고, 리더의 무오류성과 전지전능함을 믿으며, 그러한 믿음체계에서 정의된 절대적 진실과 도덕에 헌신한다.’(74)

 

한 철학의 창립자에 대한 비난 자체가 그 철학의 일부에 대한 부정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아이작 뉴턴 경은 대개 자아도취적이며 오만하고 자기중심적이라고 평가된다. 하지만 빛과 중력과 우주의 구조에 대한 그의 이론은 독보적이다.(75)

 

환원주의자(철학에서 복잡하고 높은 단계의 사상이나 개념을 하위 단계의 요소로 세분화하여 명확하게 정의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83)

 

전체론자(세계는 기계적으로 구성된 요소들의 집합체가 아니라 여러 가지 상호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그물과 같다고 보는 입장)(84)

 

인지상의 제1종 오류 …… ‘긍정 오류’ …… 그렇지 않은 데도 그렇다고 믿는 것을 말한다 …… 인지상의 제2종 오류 …… ‘부정 오류’ …… 실제로 그런데도 그렇지 않다고 믿는 것이다 …… 우리의 뇌는 믿음 엔진이다. 뇌는 우리가 자연에서 봤다고 생각한 패턴으로부터 의미를 만들어내고 단편적인 사실에서 결론을 도출하는 진화된 패턴 인식 기계다.(90)

 

패턴성은 단편적 사실에서 결론을 도출하고 A B를 연결해 패텬을 추구하고 찾는 과정이다.(91)

 

영국의 저명한 진화론 생물학자 윌리엄 해밀턴의 이름을 딴 해밀턴 법칙(혈연 등으로 연관이 있는 집단을 도움으로써 얻는 총체적 이익이 지불하는 비용보다 클 때 동물에게 이타적 행동이 나타날 수 있다는 법칙)(92)

 

포스터와 콕코는 거짓 패턴을 진짜 패턴으로 믿을 때 드는 비용이 그렇지 않을 때 드는 비용보다 적을 때마다 자연선택이 패턴성을 선호한다는 것을 증명했다 …… 진화론적 관점에서 우리는 기이하지 않은 것을 믿어야 하는 진화적 필요 때문에 사람들이 기이한 것을 믿게 되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94)

 

각인’ …… 회색기러기는 보통 생후 13~16시간의 중요한 시기에 쳐다본 대상을 어미로 뇌에 각인한다 ……. 역각인의 형태는 인간의 근친상간 터부에서 찾을 수 있다. 아동기의 중요한 시기에 근거리에서 자란 두 사람은 성인이 되었을 때 성적으로 끌리기 어렵다 …… 의붓 형제자매나 유전적으로 관련 없는 사람과도 함께 자라면 그렇게 된다.(100)

 

해발인(동물의 특정 행동을 유발하는 소리, 냄새, 몸짓, 색채 등의 자극)(101)

 

‘1회 시도 학습이라고도 하는 잘 알려진 혐오효과가 있다. 심한 욕지기와 구토를 어떤 음식이나 음료와 짝지으면 그에 대한 장기적 혐오로 이어진다.(109)

 

자신이 환경을 통제하고 있다고 믿는 정도 …… 심리학자들은 이것을 통제 위치(사회심리학에서 통제 위치는 개인이 사건을 통제해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정도를 말한다)’라고 부른다. 내부적 통제 위치의 점수가 높은 사람들은 자신이 일을 만들어내고 환경을 통제한다고 믿는 경향이 있다. 반면 외부적 통제 위치의 점수가 높은 사람들은 자신이 환경을 통제할 수 없으며 일은 닥쳐오는 것이라고 믿는 경향이 있다.(112)

 

착각 상관’ …… 전혀 존재하지 않는 두 세트의 변수들 사이에서 인과관계를 지각하거나 두 변수 간의 연결을 과대평가하는 것이다.(120)

 

건강과 웰빙에 분명한 효과를 준 것은 통제감각이었다. 볼테르가 <캉디드>의 끝 부분에서 ……. 우리는 자신의 정원을 가꾸어야 합니다.”(121)

 

본질주의(철학이나 과학이 절대진리에 도달할 수 있고 그것을 표현한다는 관점)’ …… 아이들은 태양이 생각할 수 있고 그들을 따라다닌다고 여긴다. 그래서 태양을 그리라고 하면 그것에 행위자성을 불어넣기 위해 종종 웃는 얼굴을 더한다 …… 장기를 이식받은 환자들의 3분의 1이 기증자의 성격이나 본질이 장기와 함께 이식된다고 믿는다 ……. 심장 이식 …… 악의 본질이 이식받는 사람에게 일부 전이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 본질주의의 가장 깊숙한 진화적 기반은 무엇인가? …… 자신을 고립된 개인이 아니라 …… 부족의 구성원으로 보는 것이라고 주장했다.(128)

 

5세기 전에는 악마가 이 세상을 사로잡았다. 잠든 사람들과 성교하기 위해 돌아다닌다는 남자 악마 인큐버스와 여자 악마 서큐버스말이다.(129)

 

로렌티안대학교의 신경학자 마이클 퍼싱어 …… 변형된 오토바이 헬멧(때때로 신의 헬멧으로 불림)안에 전자석을 사용해 측두엽에 과도전류를 발생시켰다. 귀 바로 위에 측두엽 부분 …… 퍼싱어는 우리의 자아인식이 좌반구 측두엽에 의해 유지되기 때문이라고 주장.(130)

 

1995…… CIA가 지난 25년 간 미군과 함께 스타게이트라는 일급비밀 심령 스파이 프로그램에 2000만 달러를 투자했다는 것이다 …… 영국의 탐사 보도 저널리스트 존 론슨이 쓴 <염소를 노려보는 사람들>이라는 책에 기반을 둔 영화 <(민망한)능력자들>에 행위자성의 한 형태인 CIA의 스타게이트 이야기가 다시 나왔다.(136)

 

ohm(불교의 진언 가운데 가장 위대한 것으로 여겨지는 신성한 음절)(137)

 

행위자성으로 인해 감지된 존재를 경험하는 것은 도대체 어떻게 해서 일어나는 것일까? …...

1. 물리적, 사회적 환경에서 우리와 다른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감지의 확장이다 …… 나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수년이 지났지만, 내가 자란 집에 사시는 아버지를 방문할 때마다 어머니가 언제 어디서든 나타날 것 같은 압도적인 느낌을 받는다 …… 새까만 개 허드슨 …… 내가 집에 들를 때마다 허드슨은 항상 인사하기 위해 달려왔다. 개가 죽은 후에도 나는 여전히 그 녀석이 문으로 달려올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

2. 통제된 이성이라는 높은 도로와 자동적 정서라는 낮은 도로 사이의 갈등이다 …… 통제적 프로세스는 주로 뇌의 앞부분(안와전두엽)에서 발생한다 …… 자동적 프로세스는 주로 뇌의 뒤(후두엽), (정수리), (관자놀이)부분에서 발생한다. 편도체는 특히 두려움과 같은 자동적인 정서 반응과 관련 있다 …… 산소 박탈, 수면 박탈, 극한의 기온, 아사, 고갈 …… 신체는 기본적인 생존에 필요한 낮은 기능을 보존하기 위해 높은 기능을 꺼버린다 ……. 낮은 수준의 자극에서는 정서가 조언자 역할을 하며, 뇌의 고차원 피질로부터의 입력과 더불어 의사결정 영역으로 추가 정보를 전달한다. 중간 수준의 자극에서는 높은 도로인 이성 중추와 낮은 도로인 정서 중추 사이에서 갈등 …… 높은 수준의 자극에서는 (극단적 환경과 육체적, 정신적 소진처럼) 낮은 도로인 정서가 높은 도로인 인지 과정을 장악 …… 합리적 결정을 내리지 못하게 한다 ……

3. 뇌는 우리의 신체 도식[자신의 신체에 대한 표상 내지는 공간상. 사람은 자기를 지각할 때 외적 자극(시각, 청각, 촉각 등)과 내적 정신과정(기억, 사고, 공상, 소망 등)의 양자가 관여한다]이나 자아 감각 내의 갈등으로 또 다른 당신이 있다고 생각하게 한다 …… 말하지만, 명상과 기도는 신체 도식과 세상 간의 불일치를 만들어낸다 …… 환각지 …… 환자들은 마치 팔이 시멘트에 묻혀 있거나 얼음 덩어리 속에 얼어붙어 있는 것 같다고 보고한다 ……

4. 마음 도식이나 심리적 자아 감각 내의 갈등은 우리에게 또 다른 마음이 있다고 생각하게 한다. 우리의 뇌를 구성하는 독립적인 수많은 신경 네트워크가 일상생활의 다양한 문제에서 작동한다. 하지만 우리는 자신을 네트워크 덩어리라고 생각하지 않고 뇌 안에 하나의 마음이 있다고 느낀다.(154)

 

신경학자들은 우리의 자아 감각이 주로 좌반구 측두엽에 있다고 믿는다 …… 2 6000피트에서 산소 박탈, 심한 추위, 동상의 고통, 버려졌거나 혼자라는 느낌 등이 뒤섞여 프레드 뇌의 좌측 측두엽은 다른 자아를 탄생시켰다. 뇌는 오직 하나의 신체와 하나의 마음이라는 도식이 있기 때문에 두 번째 자아는 신체 외부에 있는 또 다른 것, 즉 근처에 있는 감지된 존재로 지각된다.(156)

 

마음은 뇌가 하는 행동이다 …… 뇌가 없으면 마음도 없다 …… 뇌출혈이나 암, 부상, 수술로 뇌 일부가 파괴되면 그 영역이 하는 일이 모두 사라지기 때문이다.(158)

 

정신력으로 무엇을 설명할 수 있는가? 아무것도 설명하지 못한다. 그것은 마치 자동차 엔진이 연소력으로 작동한다고 설명하는 것과 같다.(160)

 

뇌는 수백 가지 유형의 약 1000억 개의 뉴런으로 구성된다 …… 이 수천억 개의 뉴런은 약 1000조 개의 시냅스로 연결되어 있다 …… 인간 뇌의 뉴런 수는 우리 은하의 별들의 수와 맞먹는다. 말 그대로 천문학적인 숫자다. 그리고 시냅스 연결 수는 3000만 년 동안의 초와 맞먹는다 …… 3만 년 동안의 숫자 세기를 1000번 더 해보자.(161)

 

뇌 속에 흘러다니는 신경전달물질 가운데, 도파민은 믿음과 가장 직접 관련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 코카인과 오르가슴이 주는 황홀 상태와 연관된 뇌의 쾌락 중추를 가열하는 것으로 보인다 …… 쥐는 심지어 음식과 물도 마다하고 지쳐 쓰러질 때까지 바를 눌렀다 …… 모든 포유류에서 발견되었다. 그들이 이 효과를 설명하기 위해 사용한 단어는 오르가슴이었다. 이제 그것은 긍정적 강화의 기준표본이다. 그러나 도파민 시스템에는 불리한 측면도 있다. 바로 중독이다. 중독성 약물이 도파민 뉴런으로 들어갈 보상 신호의 역할을 넘겨 받는다. 도박, 포르노그라피 그리고 코카인 같은 약물은 뇌를 도파민으로 범람시킨다. 중독적인 사상들도 마찬가지다. 그것은 대부분 대량 자살(존스타운과 헤븐스게이트 등)로 이어진 컬트나 자살폭탄 테러를 이끈 종교가 전파한 상당히 나쁜 사상들이다.(169)

 

40명의 피험자에게 도파민을 증가시키는 엘도파를 주입했다. 주로 파킨슨병 환자에게 사용되는 약물이다 …… 패턴성이 뇌의 높은 도파민 수준과 연관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 도파민 수준의 증가는 신도들의 믿음을 강화하기보다는 회의론자들을 덜 회의적으로 만드는 데 효과적이다. 왜 그럴까? 두 가지 가능성 …… 1. 신도들의 도파민 수준은 이미 회의론자들보다 더 높은 상태다. 따라서 후자가 약물의 효과를 더 많이 느낄 것이다. 2. 신도들의 패턴적 성향은 이미 너무 높은 상태여서 도파민의 효과가 회의론자들에 비해 낮다.(170)

 

도파민이 증가하면 패턴 탐지도 증가한다. 과학자들은 도파민 작용제가 학습을 강화할 뿐만 아니라 투여량을 초과하면 환각 같은 정신병 증상을 유발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것은 창조성(차별적 패턴성)과 광기(무차별적 패턴성)의 작은 차이와 같다. 열쇠는 투여량이다. 투여량이 너무 많으면 제1종 오류인 긍정 오류를 …… 너무 적으면 제2종 오류인 부정 오류를 저질러 진짜 연결이 있는데도 놓치게 된다.(171)

 

눈을 가린 피험자의 손에 막대를 쥐어 주고 물리적으로 막대의 중간 지점을 추정하게 했다 …… 초과학적인 것을 믿는 신도들은 막대의 중간 지점을 더 왼쪽으로 추정했다. 이것은 그들의 우반구가 공간과 거리의 지각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의미한다 …… 회의론자들은 신도들보다 좌반구의 성능이 더 우세했고, 신도들은 회의론자들보다 우반구의 성능이 더 우세했다.(173)

 

정신분열증 …… 의미 있는 패턴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 패턴을 본다.(174)

 

세상을 바꾸는 새로운 패턴을 찾아내는 창조적인 천재성과 모든 곳에서 패턴을 보고 중요한 것을 골라내지 못하는 광기나 편집증 사이에는 가느다란 선이 그어져 있다 …… 노벨상을 받은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과 수학자 존 내쉬 …… 파인만은 양자역학 ……. 내쉬는 게임이론 …… 패턴성 등급에서 파인만과 내쉬 사이에 있는 사람은 캐리 멀리스다. 그는 유전학자로 노벨상을 받았으며, 중합효소 연쇄반응(PCR)의 개발에 공을 세웠다.(177)

 

알프레드 러셀 월리스 …… 찰스 다윈과 공동으로 자연선택설을 발견한 인물 …… 그는 인간 뇌의 진화를 둘러싸고 다윈과 결별했다. 월리스는 인간의 뇌가 자연선택의 산물일 리가 없다고 믿었다.(179)

 

일원론자들은 우리의 머릿속에 한 가지 물질만 있다고 믿는다. 바로 뇌다. 반대로 이원론자들은 두 가지 물질이 있다고 믿는다. 바로 뇌와 마음이다. 이것은 프랑스 철학자 르네 데카르트가 지적 풍경에 내놓았던 것으로, 17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아주 오래된 철학의 문제다. 당시 선호했던 용어로 말하면(뇌와 마음 대신 신체와 영혼에서) ‘영혼이다.(181)

 

예일대학교 심리학자 폴 블룸은 <데카르트의 아기>에서 우리가 타고난 이원론자들이라고 주장했다 …… 유물론자가 되기보다는 사고를 좁은 의미에서 해석하고 뇌가 계산력을 강화하기 위해 영혼에 더해진 인지적 인공보철이라고 결론을 내린다.(182)

 

찰스보넷증후군(시각 경로가 손상된 이후 생생한 환각을 보는 것. 그 증상을 처음으로 묘사한 18세기 스위스 박물학자의 이름을 땄다)(183)

 

2007년 신경학자 …… 브레인맵핑센터에서 14명의 성인의 뇌를 기능성 자기공명영상을 이용해 스캔했다 …… 피험자들은 믿을 수 없는 거짓 진술이나 결정할 수 없는 불확실한 진술을 판단하는 것보다 진실 진술을 믿을 만한 것으로 평가하는 속도가 더 빨랐다 …… 이러한 연구는 내가 스피노자의 추측이라고 부르는 것을 뒷받침한다. “믿음은 즉시 이루어지고 자연스럽지만, 회의론은 느리고 부자연스럽다. 사람들은 대부분 애매함을 잘 참지 못한다.” 과학은 어떤 주장이 진실로 증명되지 않는 한 거짓이라는 원칙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즉시 이해할 수 있도록 진실로 받아들이려는 우리의 자연적 성향에 반한다.(191)

 

누구나 반대보다는 동의하기가 더 쉽다 …… 신도든 비신도이든 관계없이 뇌는 종교적 주장과 비종교적 주장의 진실성을 같은 영역에서 평가한다. 뇌 속에 믿음 모듈이나 불신 모듈 같은 것은 없으며, 쉽게 속아 넘어가는 네트워크나 회의론적 네트워크도 없다.(192)

 

뉴런이 죽고 시냅스 연결이 부서지는 것은 우리의 기억과 성격의 소멸을 의미한다 …… 고대 히브리어에서 영혼을 의미하는 단어는 네페쉬(생명, 생명의 숨)’ …… 그리스어 프시케(마음)’, 라틴어로는 아니마(정신, )’이다.(198)

 

2009년 해리스 설문조사 (각주. 미국인의 74퍼센트가 천국을 믿으며, 그중에서도 모르몬교도의 비율이 가장 높다. 모르몬교도의 95퍼센트, 흑인 프로테스탄트 교회 참석자의 91퍼센트, 백인 복음주의자의 86퍼센트, 무슬림의 85퍼센트가 천국을 믿는다 …… 힌두교도의 고작 51퍼센트, 여호와의 증인 46퍼센트, 유대교도 38퍼센트, 불교도 36퍼센트가 아파트에서만이 아니라, 그들의 육신을 넘어 천상에 살 것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강력하게, 전면적으로 59퍼센트만이 지옥을 믿는 것으로 나타나 소망적 사고의 힘을 다시 한 번 증명하고 있다 …… 가장 기이한 발견은 무신론자의 12퍼센트, 불가지론자의 18퍼센트가 천국을 믿는다고 말한 것이다 …… 지옥을 믿는 비율은 더욱 낮았다. 무신론자의 10퍼센트와 불가지론자의 12퍼센트다. 사람은 결코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199)

 

우리가 초능력에 회의적인 이유는 그 연구에 복제 가능한 데이터와 실행 가능한 이론이 모두 빠져 있기 때문이다 …… 과학자들이 초능력에 여전히 회의적인 이유는 초능력의 작동 방식을 설명하는 이론이 없기 때문이다. 초능력 옹호자들이 발신자 뇌의 뉴런에서 발생한 생각이 두개골을 통해 어떻게 수신자의 뇌로 들어가는지 설명할 때까지는 회의론이 적절한 반응이다.(209)

 

원심기를 체계적으로 가속화해 점진적으로 중력가속도를 증가시키면 피험자들은 처음에 터널 시각을 경험하고 그 다음에는 시각 상실, 그 이후에는 의식 상실을 경험한다. 처음에는 망막의 산소가 손실되고 다음에는 시각 피질에서 산소 손실이 일어날 것이다(뉴런들이 외부에서 내부로 차단되면서 터널 시각이 만들어진다) …… 오랜 시간 뇌에 산소가 박탈되면 뇌 손상에 앞서 즉각 다양한 심리적 사건들이 발생한다. 그것이 바로 임사체험의 특징이다,(213)

 

쇼에 나올 때마다 나는 시청자들에게 전달하기 위한 단 하나의 메시지를 생각해내려고 노력한다 …… 우리가 자연적 수단으로 미스터리를 완전히 설명할 수 없다고 해서, 그 미스터리가 초자연적인 설명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221)

 

무지나 불신은 우리가 접하는 모든 미스터리를 전부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그것이 정상이다. 어떤 과학도 우주의 모든 미스터리를 포괄하는 설명의 그물을 던질 수는 없다 …… 그러한 불확실성은 과학의 핵심이며, 바로 그것이 과학을 도전적인 학문으로 만든다.(226)

 

과학과 회의론은 인생의 모든 의미를 다 잃어버리게 하는 것인가?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정 반대다. 만일 내세가 존재하지 않고 현세가 전부라면, 우리의 삶, 가족, 친구, 지역사회가 얼마나 소중하며, 매 순간 모든 관계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얼마나 소중하겠는가? …… 이러한 현실 인식은 우리 모두를 인간애와 겸손함의 더 높은 차원으로 끌어올린다. 우리 인생은 이처럼 제한된 시공간에서 흘러간다. 우주라는 드라마의 찰나적 무대에서 말이다.(228)

 

옥스퍼드대학교 출판부의 <세계 기독교 백과사전>에 따르면, 전 세계 인구의 84퍼센트(2009년 말 기준 57억명)가 조직된 종교에 속해 있다고 한다 …… 2007년 퓨 포럼의 설문조사 …… 모르몬교도들의 91퍼센트가 개인적인 신을 믿는다. 그러나 여호와의 증인은 82퍼센트, 복음주의자들은 79퍼센트, 프로테스탄트들은 62퍼센트, 가톨릭교도는 60퍼센트만 그렇다 …… 무신론자라고 자처한 사람들의 21퍼센트와 불가지론자를 자처한 사람들의 55퍼센트가 신이나 보편적 영혼에 대한 믿음을 표현했다.(230)

 

집단이 커지면 무임승차자와 규정 위반자들이 더 순조롭게 자신의 이익을 챙길 수 …… 따라서 더 공식적인 제도의 필요성이 대두했다. 이것이 바로 종교의 주된 역할이다. 위반자들이 이익을 챙길 수 있다고 해도, 모든 것을 관장하는 보이지 않는 의도적 행위자가 있다고 믿으면, 죄에 대한 강력한 억제제가 될 수 있다 …… 한 가지 증거는 모든 사람이 공유하는 공통적인 요소나 자질 …… 두 번째 증거는 전 세계 모든 수렵채취 사회에서 나타나는 육류 공유의 인류학 연구에서 찾아볼 수 있다(233)

 

당신이 어떤 신을 믿고 어떤 종교를 지킬지는 문화에 따라 달라진다. 하지만 초자연적인 존재에 대한 믿음은 사회집단의 필수불가결한 요소로서 모든 문화에 보편적이다. 우리의 뇌에 내재해 있기 때문이다.(234)

 

우리는 왜 이러한 성향을 물려받는가? …… 답은 도파민과 관련 있다 …… 도파민 생성 암호를 지정하는 유전자는 DRD4 ……도파민이 믿음에 개입한다는 사실은 수많은 믿음과 마찬가지로 이 책의 주제를 뒷받침한다 …… 기분이 좋으면 신에 대한 믿음에 보상을 받은 것이다.(239)

 

사이언톨로지교scientology(신과 같은 초월적 존재를 부인하고 과학기술이 인간의 정신을 확장시키며 인류의 제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신종파)(240)

 

당신은 좋은 이야기를 억누를 수 없다. 왜일까? 그런 성향이 우리의 뇌에 내재해 있기 때문이다.(242)

 

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입증 책임은 비신도들이 아니라 신도들에게 있다. 나는 비록 신이 없다는 것을 증명할 수는 없지만 이시스, 제우스, 아폴로, 브라마, 가네샤, 미트라, 알라, 야훼, 심지어 날아다니는 스파게티 괴물(캔자스 주 공립학교 교과 과정에 창조론의 지적설계를 포함하려는 움직임에 반발해 만들어진 일종의 패러디 종교)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할 수 없다고 쉽게 주장할 수 있다.(244)

 

불가지론agnoticism 1869년 토머스 헨리 헉슬리가 자신의 믿음을 설명하기 위해 만든 용어다. 다윈의 친구 …… 물론 행동만 보면 누구도 불가지론자가 아니다. 우리는 평소에 신이 있거나 혹은 없다는 듯이 행동한다 …… 불가지론은 지적 입장이다. 신성의 존재 여부와 그것을 확실하게 알 수 있는 능력에 대한 진술이다. 반면에 무신론은 행동적 입장이다. 우리가 행동하는 세상에서 내리는 가정에 대한 진술이다.(245)

 

신은 시간, 공간, 물질의 외부에 있기 때문에 설명이 필요 없습니다.”/ “만일 그게 사실이라면 누구도 신의 존재 여부를 알 수 없겠죠. 왜냐하면 우리는 세상 속에서만 작동하는 유한한 존재로서 다른 자연적이고 유한한 존재와 물건만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자연적이고 유한한 존재가 초자연적이고 무한한 존재를 알기란 불가능합니다.”(247)

 

가장 급성장한 종교인 이슬람교의 신자들, 수천 년의 박해에도 살아남은 가장 오래된 종교인 유대교의 신자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같은 기적이 사실이 아니라면 12사도가 신념을 지키며 죽음을 당했을 리가 없다고 믿는 기독교도들 …… 세 가지의 경우 모두 수백만의 신도들이 틀릴 리가 없다는 가정을 하고 있다. 나는 천사 모로니가 금판에 고대어로 새긴 신성한 문자를 조지프 스미스가 뉴욕 팔미라 근처에서 발굴했다고 믿는 모르몬교도들이 수백만 명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마법의 돌이 담긴 모자에 얼굴을 파묻고 그것을 영어로 번역했다고 한다. 수백만 명의 싸이언톨로지교 교인들에 따르면, 영겁 전에 제누라는 은하계 장군이 다른 태양계에 있는 외계생명체를 지구로 가져와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몇 개의 화산 속에 두었다고 한다. 그는 이후 수소폭탄으로 그들을 증발시키고 세탄(영혼)을 바람에 실어 퍼트렸다. 그것을 오늘날 사람들에게 들러붙어 약물 남용, 중독, 우울증, 심리적, 사회적 질환으로 이어지고 있으며, 오직 사이언톨로지교만 치료할 수 있다고 한다. 분명 전제의 진실은 그것을 믿는 신도의 수와는 상관 없다. 입증 책임은 비신도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신도들에게 있다.(248)

 

아인슈타인 …… “신은 주사위를 던지지 않는다.” …… 이스라엘 대통령직을 정중히 사양.(253)

 

나는 왜 믿느냐는 질문에 이성적인 대답을 내놓을 수 없다. 그 질문은 누군가를 왜 사랑하느냐와 같은 영역에 있는 것이다 …… 우리가 신을 믿거나 사랑에 빠졌을 때, 과학은 그 느낌을 설명하기 위해 상충적인 것이 아니라 보완적인 것을 제공한다. , 빼는 것이 아니라 더하는 것이다.(259)

 

우리는 외계인에 사로잡힌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에 이것을 외계인이라고 부른다. 문화가 뇌의 변칙적 경험의 명칭을 지정하는 것이다 …… 트라우마의 기억이 생생하다고 해서, 그 경험이 사실이라는 증거로 받아들여질 수는 없다.(269)

 

우리는 패턴을 추구하고 스토리텔링하는 동물의 가장 오래된 덫에 빠지곤 한다. , 영광스럽게 계속되는 우주에서 목적과 의미를 찾기 위해, 이야기 속에 자신을 핵심패턴으로 넣는다.(280)

 

마이클 크라이튼은 2003년 캘리포니아공과대학교의 연설에서 SETI(지구외 지성탐사)가 종교라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밝혔다. “신념은 증거가 없는 것을 확고히 믿는다는 뜻입니다. 우주에 다른 생명체가 있다는 믿음은 신념의 문제입니다. 다른 생명체에 대한 증거는 지금까지 단 한 조각도 없었으며, 40년 동안 찾았지만 전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이런 믿음을 유지해야 할 증거상의 이유가 전혀 없다고 생각합니다.”(282)

 

수전 클랜시 …… 천사와 신에게 우주복을 입혀 외계인으로 재포장한다면 그럴듯하지 않을까? …… 외계지적생명체는 세속의 신이며 무신론자들의 신성이다.(284)

 

SETI는 외계지적생명체와 접촉하기 전까지는 외계인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귀무가설을 설정한다.(285)

 

누구나 실수를 한다. 시대와 장소를 막론하고 대다수의 사람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만큼 그렇게 철두철미하지 않다.(288)

 

사람들은 왜 사실일 가능성이 별로 없는 음모를 믿는 것일까? 내 생각에 그런 사람들은 패턴 탐지 필터가 크게 열려 있어 모든 패턴을 다 통과시키기 때문에, 잠재적으로 잘못된 패턴을 전부 혹은 거의 걸러내지 못하는 것이다. …… 여기에 확증 편향과 뒷궁리 편항(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것에 사후 설명을 끼워 맞춤)이 더해지면 음모적 인지의 토대가 성립된다.(289)

 

사람들은 왜 음모를 믿는가? 이 질문은 선험주의자와 경험주의자를 구별할 때 유용하다. 선험주의자들은 모든 것이 서로 연결되어 있고 모든 사건이 일어나는 데는 이유가 있다고 믿는다. 경험주의자들은 무작위성과 우연성이 우리 세상의 인과 그물과 상호작용하며, 믿음은 각 주장에 대한 증거에 바탕을 두어야 한다고 믿는다.(291)

 

당신이 자유주의자라면 아마 <뉴욕타임스>를 읽고 …… CNN을 보고 …… 보수주의자라면 <월스트리트저널>을 읽고 …… 폭스뉴스를 보고.(317)

 

이데올로기적 믿음에 자신을 옭아매면, 그 믿음의 특정한 패턴 안에 스스로를 집어넣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이데올로기적 믿음을 드높이기 위해 비슷한 사상을 공유하는 사회집단 혹은 대중적인 지식인의 경우에는 청중에게 그것을 다시 앵무새처럼 되풀이한다.(325)

 

연구에 따르면, 우리는 도덕적인 결정을 내릴 때 이성적으로 깊이 생각하기보다는 자동적인 느낌에 근거해 판단한다.(326)

 

조너선 하이트 …… 우리에게 내재적, 보편적으로 이용 가능한 시비 감각에 따라 다섯 가지 심리체계가 존재한다고 제시한다. 1. 해로움/보살핌 …… 2. 공정함/호혜성 …… 3. 내집단/충성심 …… 4. 권위/존경 …… 5. 순결함/거룩함 …… 자유주의자들은 …… 1번과 2번에서 도덕성이 더 높았다 …… 보수주의자들은 …… 3~5번에서는 더 높았다.(329)

 

조화로운 사회를 위해서는 관대함과 무임승차자에 대한 처벌을 둘 다 장려하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현대 사회에서 그 두 가지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종교와 정부다(331)

 

태어나자마자 헤어져 다른 환경에서 양육된 일란성 쌍둥이의 연구에 따르면, 종교적 태도와 정치적 태도 차이의 약 40퍼센트가 유전자에 의해 설명된다.(333)

 

유토피아는 원래 그리스어로 어디에도 없다는 의미다.(336)

 

우리는 배신이 증명되기 전까지는 내집단 멤버를 신뢰한다. 그리고 충성이 증명되기 전까지는 외집단 멤버를 불신한다.(339)

 

우리의 믿음은 정서적 영향을 크게 받기 때문에 적어도 한 박자 쉬면서 타인의 입장을 고려하고 자신의 믿음에 의구심을 품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하려 들지 않는다. 자기가 항상 옳다고 확신하는 매우 강력한 인지적 편향이 작동하기 때문이다.(349)

 

죽음을 예감하는 꿈 …… 일반인은 밤마다 약 다섯 개, 1년이면 1825개의 꿈을 꾼다 …… 10분의 1만 기억해도 1년에 182.5개다. 3억 미국인들이 기억하는 꿈의 개수는 매년 547억 개에 달한다. 사회학자들에 따르면 한 사람이 알고 지내는 사람의 수는 150명 정도다. 따라서 미국을 기준으로 하면 450억 명의 대인관계 네트워크 사회망이 만들어 진다. 매년 240만 명의 미국인이 사망한다 기억된 547억 개의 꿈 중 일부가 3억 명의 미국인과 관계를 맺고 있는 450억 명 가운데 240만 명의 죽음의 일부가 되는 것은 불가피하다. 오히려 죽음을 알리는 일부 꿈들이 실현되지 않은 것이 기적아닌가!(352)

 

휴리스틱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정식 수단이나 공식이 없을 때 (종종 그것이 있을 때조차도), 직관이나 시행착오, 비공식적인 방법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정신적 방법이다. 이것은 때때로 경험법칙이라고 불리며, 인지적 편향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353)

 

뒷궁리 편향은 현재 지식에 과거를 끼워 맞추기 위해 재구성하는 시간역전 확증 편향의 한 형태이다(357)

 

자기 정당화의 실질적 혜택 가운데 하나는 우리가 어떤 결정을 내리든 대부분 그 결정에 만족한다는 것이다 …… 전문가들은 자신이 비전문가보다 못하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 똑똑한 사람들은 기이한 것을 믿는다. 똑똑하지 못한 이유로 갖게 된 자신의 믿음을 합리화하는 데 더 뛰어나기 때문이다.(359)

 

자신의 믿음과 행동을 타인과는 다른 원인으로 귀속시키려는 기본적인 귀인 편향 …… 일종의 자화자찬이 섞인 자기 홍보다 …… 설문조사 …… 자기가 신을 믿는 이유로 가장 많이 들었던 두 가지는 우주의 위대한 설계일상에서의 신의 경험이었다 …… 남들이 신을 믿는 이유를 묻자 …… 가장 흔한 두 가지 이유는 믿음이 주는 안락함죽음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우리는 자신의 믿음은 이성적인 동기에서 나오지만 타인의 믿음은 정서적인 동기에서 나온다고 여긴다.(362)

 

믿음에 들어간 매몰비용 때문에 뭔가를 믿는 매몰비용 편향’(363)

 

현상유지 편향은 우리가 원래 상태, 즉 현상유지를 택하려는 성향 …… 왜 존재할까? 그 이유는 현상유지가 이미 가지고 있는 것(그리고 다른 것으로 바꾸기 위해 포기해야 하는 것)을 대표하기 때문이다.(365)

 

소유 효과란 우리가 소유하지 않은 것보다 현재 가지고 있는 것을 더 중시하는 성향이다 …… 물건의 소유자가 잠재적 구매자보다 물건의 가치를 두 배 정도 높게 평가한다 …… 획득의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보다 상실의 고통을 피하는 것이 배로 동기 부여가 된다 …… 믿음은 사유재산의 유형 중 하나이자 공적으로 표현된 사유사상의 한 형태다. 소유 효과는 믿음체계에도 적용되는데, 우리는 오래 가져왔던 믿음일수록 거기에 더 투자하려고 한다. 그리고 그 믿음에 공개적으로 헌신할수록 그것에 더 가치를 부여하고 포기하지 않으려는 성향을 보인다.(367)

 

프레이밍(틀 짓기)효과 …… 우리는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을까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사람을 살릴 수 있을까 하는 측면에서 생각하는 것을 선호한다. , ‘부정적 프레임보다 긍정적 프레임을 선호한다.(369)

 

결정을 내릴 때 한 조각의 정보나 과거 참조에 지나치게 의존하려는 성향을 앵커링 효과(닻 내리기 효과)’라고 한다. 비교되는 앵커는 심지어 완전히 자의적일 수도 있다.(369)

 

우리 대다수가 늦었을 때 빨간 신호를 더 많이 인지한다는 사실은 가능성 휴리스틱의 사례다 …… 즉각적으로 이용 가능한 사례 …… 에 근거해 잠재적 결과의 확률을 판단하고, 그에 따른 결론으로 일반화하려는 성향을 말한다. 예를 들어, 당신이 비행기 추락으로 죽을 확률 …… 대중 미디어의 노출도와 상관관계가 있다.(370)

 

무주의 맹시 편향 …… 매우 특별한 것에 주의를 기울이느라 명백하고 일반적인 뭔가를 놓치는 성향(당신은 고릴라를 봤는가?) …… 우리가 무언가 다른 것에 골몰하고 있으면, 뇌는 눈앞에 스쳐 지나간 많은 것들을 인식하지 않을 수도 있다.(375)

 

타스만이 발견한 땅(지금의 뉴질랜드) …… (아벌 얀스존 타스만은 호주의 동남쪽 끝에서 커다란 섬을 발견하기도 했다. 그곳은 오늘날 그의 이름을 따 태즈매니아가 되었다)(387)

 

20세기 초반까지 우리는 지구가 에테르라고 불리는 보이지 앟는 물질 위에 떠 있다고 믿어왔다.(388)

 

갈릴레이는 네덜란드 안경 제조업자인 한스 리퍼세이가 처음 발명한 일종의 망원경을 들고 하늘을 쳐다봤다. 리퍼세이는 원래 항구에 접근하는 상선의 깃발을 자세히 파악하기 위해, 즉 지구상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것을 만들었다.(389)

 

갈릴레오의 <대화> 1835년까지 가톨릭교회의 금서목록으로 남아있었다. 1992년이 되어서야 교황 존 파울 2세는 공식사과를 통해 갈릴레오의 무죄를 선언했다.(394)

 

갈릴레오 시대의 학자들은 성서와 아리스토텔레스의 권위에 대한 충성 때문에 갈릴레오의 관찰과 결론을 수용하기 어려웠다.(395)

 

베이컨의 목표를 방해한 것은 사실에 대한 분명한 판단을 어렵게 하는 심리적 장벽이었다. 그는 이것을 네 가지 유형으로 파악했는데, 우리에게 익히 잘 알려진 동굴의 우상(개인적 특성), 시장의 우상(언어의 제한), 극장의 우상(기존의 믿음), 종족의 우상(사고에서 인간이 물려받은 약점)이다.(400)

 

베이컨 …… “물은 흘러 내려온 수원보다 높은 곳으로 올라갈 수 없다.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유래하고 검증에서 면제된 지식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지식보다 더 높아질 수 없다.”(402)

 

갈릴레오는 작은 망원경으로 당시로서는 가장 먼 행성인 토성을 관찰하고 …… “놀랍게도 토성은 하나의 별이 아니라 서로 거의 닿을 정도로 맞붙은 세 개의 별이었어.” 오늘날에는 가장 작은 가정용 망원경으로도 고리가 있는 토성의 모습을 볼 수 있다. 하지만 당시 그에게는 토성이 작은 두 개의 구로 둘러싸인 하나의 큰 구로 보였다. 그래서 토성을 타원형이라고 설명한 것이다.(403)

 

갈릴레오의 이야기에서 보듯 과학은 데이터, 이론, 프레젠테이션의 명쾌한 혼합을 요구하고 논쟁에서 새롭게 관찰된 것들에 의해 기존의 이론이 무용지물이 되기도 한다.(412)

 

빛이 달에서 지구까지 가는 데 걸리는 시간은 1.3초다. 태양에서 지구까지는 8.3분이 걸린다 ……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것은 은하수가 프리스비처럼 납작한 디스크이며, 태양계가 중심부로부터 4분의 3지점에 위치한다는 것이다. 당신이 두터운 평면을 따라 디스크를 정면으로 바라보면 마치 밤하늘에 걸쳐진 띠처럼 많은 별을 보게 된다. 그러나 그 띠를 찾지 못한다면, 디스크의 위나 아래를 보고 있는 것이다.(414)

 

1846년 섬 우주론의 지지자 존 니콜은 성운 일부가 우주 깊숙한 곳에 있어서 어떤 광선도 지구에 닿을 수 없다고 제시했다 …… 니콜의 상상력으로는 3000만 년에 이를 수도 있다. 당시의 세계관을 짐작했을 때, 만 년이 넘지 않은 성경의 연도를 고려하면 대중들이 떠올리기는 쉽지 않은 숫자다.(418)

 

내가 과학으로는 아직 해결하기 어렵다고 인정하는 미스터리 …… 첫 번째 구성 …… 우주가 시작되기 전에 무엇이 존재하는가? 혹은 왜 무가 아니라 유인가? 이런 식의 질문은 시간이 시작되기 전에는 몇 시였는지, 북극의 북쪽은 무엇인지 묻는 것처럼 비과학적일 뿐만 아니라 말 그대로 부조리하다 …… 우주 이전에 신이 존재하고 신이 우주를 창조했다는 개념 자체가 시간의 연속성을 암시하는 것이다. 종교적 세계관과 과학적 세계관에서 시간은 우주의 빅뱅 창조로 시작되므로 신은 시공간 외부에 존재해야 한다 …… 두 번째 구성 …… 우주는 왜 별과 행성, 생명과 지능이 출현하게끔 미세하게 조정되었나?(437)

 

빅크런치big crunch(빅뱅과 반대로 우주가 한 점으로 축소되면서 종말을 고하는 것)(442)

 

과학의 역사가 가르쳐준 한 가지 교훈이 있다면, 우리로서는 알 수 없는 것을 알 만큼 알고 있다는 생각은 오만이라는 점이다.(449)

 

우리는 개방적인 마음을 지녀야 하지만, 뇌가 무기력해질 정도로 열려 있어서는 안 된다. 잠정적인 진실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454)

 

귀무가설은 입증 책임이 그것을 반증하는 회의론자가 아니라 긍정적인 주장을 하는 사람에게 있다는 의미다 …… 과학이 X를 설명할 수 없다고 해서 당신의 X에 대한 설명이 사실이 되는 것은 아니다.(455)

 

창조론자들은 …… “진화생물학자들이 X의 자연적 설명을 제시할 수 없다면, X에 대한 초자연적인 설명이 옳은 게 분명하다는 형태로 반증 증거만 채택했을 뿐이다.(461)

 

역경을 넘어 별까지!(각주. 로마 시인 세네카에서 나온 문구로, 케이프커내버럴에서 발사대의 화재로 사망한 아폴로 1호 우주비행사들을 기리는 명판에 새겨져 유명해졌다. 미국 켄사스주의 표어이기도 하다.)(463)

 

<스켑틱> …… 발행된 지 이미 165년이 넘은 미국 역사상 가장 오래된 잡지.(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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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교회사 - 펭귄 교회사 시리즈 1
헨리 채드윅 지음, 박종숙 옮김 / CH북스(크리스천다이제스트) / 199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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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4월에 읽은 두 번째 책.

 

 헨리 비텐슨이 쓴 [초기 기독교 교부]라는 책을 읽을 때 가졌던 기대감을 (당시엔 좌절해야 했지만) 이 책을 통해서 어느 정도 채운 느낌이 든다. 그러나 역시 이 책도 발행된 지가 좀 되서 그런지 옛날 책을 읽는 기분은 어쩔 수 없었다. 이런 류의 저서로 좀 더 최신의 책을 접할 수 있었으면 한다. 책의 논조가 현재 주류 기독교에서 가르치는 것들에 대한 무조건적 옹호가 아님을 여러 대목을 통해서 알 수 있었다. 그러나 개운치는 않다. 나는 아직도 목마른가 보다.

 

외국의 지배와 팔레스타인의 열악한 경제 상태 때문에 많은 유대인들이 지중해 세계의 전역에 흩어져 흩어진 유대인을 이루게 되었고 …… 1세기 로마에는 열하나 혹은 열둘의 유대인 회당이 있었다 ….. 알렉산드리아와 이집트 전체로 보면 유대인이 약 백만 명이나 되었다 …… 가톨릭 교회의 라틴 기도 일과서나 또는 성공회의 기도서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중요한 점들에 있어서 이러한 예배 방식의 상속자들이라고 할 수 있다 …… 이들은 빈번한 예루살렘 순례와 또한 성전 유지를 위한 연례적 헌금을 통해 조국에 대한 일체감을 보존했다.’(9)

 

유대교에 매력을 느끼는 다수의 이방인들 …… 흩어진 유대인들의 회당 주변에는 보통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이라고 불리는 경건한 이방인들이 생기게 되었다 …… 이러한 우호적 이방인들 사이에서 초기 그리스도교 선교사들은 할례받지 않은 사람들 중에서 첫 개종자들을 얻을 수 있었다.’(10)

 

원래의 문서들은 랍비학파들의 주석적 전통에 의해 보완되었다(이러한 전통이 갖는 위치에 대한 문제는 첫 세기에 교회와 회당 사이에 날카로운 논쟁의 대상이 되었다) …… 알렉산드리아의 유대인들에게 70인역은 신비한 후광에 둘러싸인 것이 되어갔다 …… 72…… 72…… 그리스도인들이 원문에 직접 호소하는 것이 유대인들에게 당황스럽게 여겨진 다음에야 비로소 문자적 의미에 좀더 충실한 다른 번역본들이 헬라 지역의 회당들에서 선호되게 되었다 …… 일부 랍비들은 …… 70인역을 만든 것을 금송아지를 숭배하는 것과 같은 죄악으로 비난하였다.’(11)

 

그리스도인들의 사명은, 동료 유대인들로 하여금 그들이 무지 때문에 로마 통치자 빌라도 치하에서 수치스러운 법적 사형에 넘겨준 그 인물을 하나님의 기름부음받은 자 즉 메시야로 인정하도록 만드는 것이었다.’(11)

 

바리새파 …… 모세의 율법을 준수하는 일뿐 아니라 …… 전통을 지키는 일에도 엄격한 열심 …… 사두개파는 주도적인 귀족 가문 출신들이 많았는데, 단지 모세의 율법에만 관심을 갖고 있었으며, 서기관들의 전통에 대해서는 구속감을 갖고 있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이들은 죽은 자의 부활이란 모세 시대로부터 한참 후에 쓰여진(이들의 입장에서는 이것은 귄위를 결여하는 것이었다) 다니엘서와 같은 책에서만 발견되는 교리라 하여 이를 배척했다 …… 에세네파 …… 이들의 생활에 대한 묘사는 대플리니우스, 필로, 요세푸스 등에게서 발견되는데 …… 쿰란 공동체의 터는 66-70년 사이 유대전쟁의 피비린내 나는 참화의 현장이기도 하다. 에세네파는 노예제도는 …… 원칙적으로 배척 …… 정식 구성원은 독신일 것을 요청하였다 …… 맹세를 배척하였다 ……. 안식일 준수에 특별히 엄격하였다 …… 신약의 문헌들과 쿰란 문서들은 서로를 조명해 주기는 하지만, 어떤 문서 그룹도 다른 문서 그룹을 설명해준다고 말할 수는 없다.’(14)

 

교회는 사두개파를 제외하고는 아마도 대부분 1세기 유대교의 이질적 사회 내부의 다양한 사람들로부터 그 구성원들을 얻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 로마 제국의 세 번째 도시인 안디옥 …… 에서 이교도들은 곧 이들에게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는데, 이는 대중적인 이름으로 널리 퍼져나가게 되었다.(그리스도인들에 대한 유대적 이름은 나사렛파였다).’(15)

 

바울의 서신들과 사도행전이 이방인 공동체들의 발전 과정에 대해 상당한 정보를 제공해 주는 반면, 유대의 모교회에 대해서 우리는 알고 있는 것이 거의 없다.’(16)

 

4복음서는 사도 요한의 제자들 그룹에서 생산된 것이다 …… (각주. 라틴 저술가들은 터툴리안과 제롬을 따라 사도 요한이 로마에서 끓는 기름 가마 속에 던져졌으나 상처를 입지 않고 벗어났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 5 6일이 그 축일 …… ).’(17)

 

‘(각주. 베드로가 로마에서 순교했다는 것은 고린도 교회에 보낸 클레멘트의 서신, 로마 교회에 보낸 이그나티우스의 서신, 2세기 저술가들의 일치된 전승 등으로 미루어 볼 때 대단히 개연성이 높다. 이에 더하여 160-70년대에 제작된 것으로 바티칸 언덕 위의 공동 묘지에서 최근 발굴된 기념비도 이를 뒷받침한다).’(18)

 

고대 세계에서 어떤 사람도 유대인들에 관해 최소한 세 가지는 알고 있었다. 첫째, 유대인들은 직접적으로나 간접적으로나 어떤 이교 의식에도 참여하지 않으려 한다는 것(이는 반사회적 행위로 보였다), 둘째, 이들은 신들에게 희생 제물로 바쳐진 고기는 물론 돼지 고기를 일체 먹지 않는다는 것(이는 우스꽝스럽게 보였다), 셋째, 이들은 남아들에게 할례를 시행했다는 것(이는 혐오스러운 것으로 보였다) 등이다.’(19)

 

헬라의 저녁 만찬은 신전에서 행해지는 것이 관례였다. 신 자신이 이러한 만찬의 주인으로 여겨졌다.’(19)

 

팔레스타인의 첫 세대 그리스도인들은 주님께서 영광 가운데 곧 돌아오실 것을 기대했다. 바울은 세상의 종말이 임박했다는 교리는 헬라 세계의 복음화에 있어서 자산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부채라는 것을 깨달았다. 헬라 세계에서는 주된 사변적 관심이 종말이 아니라 우주의 시초에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20)

 

주후 135년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칙령을 내려 이후 모든 유대인들은 유대로부터 축출하고, 예루살렘이 아일리아 카피톨리나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이교의 신전과 극장을 가진 헬라 도시로 변모.’(21)

 

팔레스타인의 그리스도인들은 유대교 내부에서 오랫동안 하나의 종파로 머물러 있었다 …… 이방인에 대한 선교 자체가 유대 그리스도인들이 동료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데 방해가 되었다 …… 구약은 유대교에 대한 부정적 판단을 함축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동료 유대인들에 의해 배척당하기는 했지만,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은 계속하여 안식일, 할례, 그리고 다른 유대교의 절기들을 준수했다 …… 점차적으로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의 공동체는 중요성을 상실해 가게 되었다 …… 이레니우스 이후 유대인 그리스도교는 …… 일탈적 종파로 여겨지게 되었다.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은 자신들을 에비온파라고 불렀는데, 이는 가난한 사람들을 의미하는 히브리어에서 유래된 명칭이다.’(24)

 

예루살렘 공동체는 주후 66년 유대 반란이 일어났을 때 예루살렘을 떠났으며, 바르 코코바의 지도 아래 132-35년 사이 하드리아누스 전쟁시에는 잠재적 배신자들로 여겨져 다시 고통을 받아야만 했다.’(24)

 

사도행전에는 이미 하나님의 섭리 아래 로마 제국이 복음 확장을 위한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암시되어 있다.’(25)

 

남자들만을 위한 금욕적 종교인 미트라교는 …… 군대의 장교들에게 인기가 있었다. 미트라교는 그리스도교의 성만찬과 별로 다르지 않는 거룩한 식사를 함께 나누었으며 …… 퀴벨레교는 …… 3 15-27일 사이의 대대적인 축제로 유명하였다. 금식과 아티스의 죽음을 슬퍼하는 피의 날’(3 22)이 지나면, 3 25일 힐라리아 신의 부활을 경축하면서 슬픔은 기쁨으로 변한다(그리스도교의 고난 주간과 부활절과 강력한 유사성을 갖고 있다)(각주. 4세기의 이교의 그리스도교 비판자들은 이 점에 있어서 교회가 이교의 의식을 도용했다고 비난하였다. 두 축제는 모두 촛불을 켜고 철야하는 관습을 갖고 있었다).’(26)

 

타키투스 시대에, 그리스도인들은 밤에 자기들끼리 만나 근친상간을 범하고 사람을 잡아 먹는다고 사람들은 생각했다(이러한 비난은 보편적 사랑과 성만찬에 관한 용어들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27)

 

히브리인들에게 보내는 익명의 서신이 쓰여졌다. 히브리서의 저자는 바울 추종 그룹의 구성원임이 명백.’(28)

 

칼리굴라와 네로의 경우를 예외로 한다면, 황제들은 지나치게 열광적인 신민들이 황제에게 신적인 영예를 바치는 것을 전통적으로 금지시켜 왔었다. 도미티아누스는 이와는 정반대 …… ‘황제의 신으로라는 관습적인 맹세를 공식적으로 의무화하였다.’(28)

 

요한계시록에서 우상을 숭배하고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는 로마를 성도들의 피에 굶주린 음녀로 비난하고 있는 것은 이 당시 소아시아 교회들의 갈등을 반영하는 것일 것이다.’(29)

 

로마법에서는 고발이 중상임이 판명될 경우 고발자는 무고죄로 처벌을 받았는데, 이 때문에 중대한 고발을 제기할 때는 조심스럽지 않을 수 없었다.’(31)

 

일반 대중은 항상 홍수나 흉작 또는 야만족들의 침략과 같은 재앙들이 그리스도인들의 무신론의 영향 때문에 옛 신들을 잘 받들지 않은 것에 대한 이들의 분노의 표징이라고 믿는데 전혀 주저하지 않았다.’(31)

 

박해는 결코 지속적이고 조직적인 것은 아니었다.’(32)

 

코모두스 황제의 첩이었던 마르키아는 그리스도인이었으며, 로마 교회를 위해 상당한 정도로 박해를 완화시켜 줄 수 있었다.’(32)

 

일부 지나치게 열광적인 신자들은 순교를 당하기 위해 도발적인 행위를 자초하는 경향을 보이기도 했다. 특히 몬타누스주의자들.’(33)

 

‘300년 무렵 스페인에서는 황제 숭배 예식에서 아무런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은 채 사제라는 구별된 직분을 맡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있었다. 이런 사람들은 좀더 순결한 신앙을 추구하던 형제들에게 엄청난 고통을 안겨 주었다. 때에 따라서는 참으로 진지한 마음을 가진 정통 신자들조차도 혹시나 자신들이 사소한 것들에 목숨을 거는 괴짜들은 아닌가 의심하며, 도대체 어떤 점들에 있어서 더 이상 타협할 수 없는 것인지를 묻고 싶은 유혹을 느꼈다.’(34)

 

매 주일마다 그들은 성만찬을 나누기 위해 모였다.’(36)

 

신약성경에서 유다서는 아가페 또는 사랑의 축제를 악용하여 이것을 방탕한 성적 문란 행위로 타락시켜 버린 어떤 영지주의 그룹에 대해 경고하고 있다.’(41)

 

영지주의가 그리스도교로부터 끌어들인 주된 요소는 구속이라는 중심적 관념이었다 …… 구속이란 인간의 책임있는 행위의 결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운명에 의한 것이며, 신적 불꽃을 갖고 있는 예정된 택자들에게만 주어지는 것이었다.’(43)

 

창조된 질서에 대한 영지주의자들의 평가절하가 초래한 또 다른 결과는 구약 성경에 대한 폄하였다 …… 구약 성경의 하나님을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원칙을 가진 정의의 하나님으로, 예수에 의해 선포된 사랑이 넘치는 아버지와 대조시키는 것을 좋아하였다. 이러한 대립은 특히 마르키온에 의해 이루어졌는데 …… 유대인들의 하나님은 변덕이 심한 분이라고 마르키온은 주장했다 : 그는 우상 만드는 것을 금지시킨 다음, 모세에게는 구리로 된 뱀을 만들도록 명령한다. 그는 또한 전지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아담이 어디 있는지 물어야만 했으며, 소돔과 고모라의 상태가 어떤지 알기 위해 땅으로 내려오지 않으면 안되었다 …… 구악 성경에 대한 마르키온의 평가에는 끊임없이 반유대주의의 함축이 묻어난다 …… 그는 복음서들 중에서 단지 하나만이 권위를 갖고 있다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으며, 그것은 누가복음서임에 분명하다고 결론지었다.’(45)

 

간단히 말하면 중심적인 논쟁점은 권위의 문제였다 …… 안디옥의 이그나티우스는 일치의 구심점으로서 지역 감독(주교)의 권위를 강조함으로써 이러한 원심 운동의 문제를 해결해 보고자 하였다 …… 감독을 주님 자신을 대하듯 대해야만 한다고 주장.’(47)

 

이레니우스의 시대에까지도(185-190) 이 주님의 말씀의 구전 전승은 아직까지 완전히 문자화되지 않은 것으로서 독자적인 권위를 가지고 있었다 …… 순교자 저스틴은 …… 조화 복음서를 만들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그의 제자 타티안은 이에 요한 복음서를 더하여 [4복음 조화서](Diatessaron)를 저술하였다 …… 이레니우스는 복음서가 넷이 존재하는 이유를 숫자상의 원리에 근거하여 교묘하게 옹호하였다. 넷이란 네 방향, 에스겔에 나오는 네 얼굴을 가진 천사, 요한 계시록에 나오는 사자, 송아지, 사람, 독수리를 닮은 천사 등에 상응하는 거룩한 숫자라고 주장했다 …… 요한 복음서는 …… 이레니우스는 이것이 세베대의 아들 요한의 저술임을 능란하게 옹호하였으며, 계시록도 또한 그의 저술이라고 주장했다. 로마에서는 …… 히브리서가 제외되는 결과를 초래했는데, 서방 전통은 이 서신이 바울의 저술이 아니라고 여겼고, 후에 200년 이상이 지나서야 동방 교회의 권위에 근거하여 받아들여지게 되었다.’(49)

 

‘’사도라는 이름과 역할은 주님으로부터 복음 전도자로 보냄을 받았다는 사실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셋째는 교사요……(고전12:28) …… 두 세대 안에 사도들, 선지자들, 교사들로부터 주교, 장로들, 집사들로의 이러한 변천에 관한 정확한 역사는 …… 대체적으로는 어둠 속에 묻혀 있다.;(52)

 

회중들이 조직화됨에 따라, 순회 전도자들과 선지자들에 의해 수행되던 역할은 뒷전으로 물러나게 되었다. 영감있는 설교가 일반적인 지역 목회에 기대되었다 …… 교회가 도시들을 그 일차적 대상으로 삼았다는 것은 자연스런 선교 전략이었다 …… 도시가 집사들을 파송함으로써 시골의 회중에 봉사하는 것이 일반적인 관례가 되었다. 2세기와 3세기 동안에는 집사들이 실제적으로 성만찬을 집전하는 경우가 많이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이러한 관례는 환영을 받지 못했으며, 아를 회의와 니케아 공의회에서 명시적으로 금지되었다. 이때쯤에는 시골의 회중을 위해 그곳에 정주하는 장로가 성만찬을 집전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사도행전 6장의 칠인 …… 이 칠인과 집사를 처음으로 분명하게 동일시한 것은 이레니우스.’(55)

 

장로-감독들 중에서 한 사람이 수석의 위치로 올라서게 되었으며, 다른 동료들이 장로라고 불리는 반면, 그는 감독이라는 칭호를 얻게 되었다 …… 안수할 수 있는 권한 …… 교회들 사이의 연락 …… 자기들의 회중을 대표해서 참여하여 안수와 기도에 동참.’(56)

 

히폴리투스 시대의 로마 …… 감독의 선출은 전체 회중 즉 성직자들과 일반 신자들 모두에게 달린 것 …… 분열을 초래할 수가 있었다 …… (각주. 3세기 중반 로마의 파비안은 비둘기 한 마리가 그의 머리 위에 내려 앉았기 때문에 감독으로 선출되었다. 신자들은 이것을 성령의 선택을 상징한다고 믿었다.) …… 4세기에 그리스도인 황제가 나타나게 되면서 …… 중요한 도시들의 감독은 황제에 의해 임명되는 것이 일반적 관례가 되었다.’(57)

 

속사도 시대 만큼이나 귄위가 스스로를 주장함에 있어서 어려움을 겪고, 자유란 거의 무정부 상태를 의미했던 시기는 교회의 역사에 있어서 거의 없었을 것이다 …… 2세기에는 한 도시 안에 한  감독, 장로들, 집사들이 있는 세 계층 구조가 논란 없이 교회에 받아들여졌다 …… 3세기에는 …… 대도시의 주교(감독)들에게는 특별한 권위가 부여되었으며, 제국의 가장 큰 세 도시, 즉 로마, 알렉산드리아, 안디옥의 주교들에게는 더욱더 큰 영예가 돌려지게 되었다.’(58)

 

직접적인 영감과 간접적인 권위 사이의 대립은 170년대의 몬타누스주의 위기에서 날카롭게 드러난다 …… 두아디라에서는 전 교회가 거의 한 세기 동안 마지막 한 사람까지 몬타누스파 …… 터툴리안을 개종자로 얻게 되었다. 터툴리안은 가톨릭 신자들이 교회가 영적인 사람들이 아니라 주교들에 의해 구성된다고 여겼기 때문에 죽음의 순간까지도 그들을 맹렬히 비난하였다 …… 가톨릭 교회에 끼친 몬타누스주의의 주된 영향은 계시는 이미 사도 시대와 더불어 종말을 고했다는 확신을 크게 강화시켰으며, 따라서 신약 정경이 완결되도록 촉진시켰다는 것이다.’(60)

 

그리스도교는 진정한 행복에 …… 대한 인간의 갈망에 직접적으로 응답했다 …… 고대의 스토아주의는 행복이란 우리가 획득하고 보유할 수 없는 일체의 사물들에 대한 욕망을 억제함으로써 성취할 수 있다고 가르쳤다 …… 그리스도인들은 스토아 윤리에서 마음에 맞는 많은 것을 발견했으며 (“세네카는 종종 그리스도인처럼 말한다고 터툴리안은 기술하고 있다). 스토아주의의 지혜에 많은 빚을 지고 있다는 것을 부정하려 하지 않았다.’(63)

 

‘2세기 후반에 이르면 어쨌든 로마와 카르타고에서는 신자들을 위한 묘지들을 구입하기 시작한다. 이러한 가장 오래된 묘지들 중의 하나가 로마의 남쪽 아피아 가도에 위치한 카타쿰바스라는 이름의 장소이다. 이로부터 지하의 회랑 형태로 된 공동 묘지가 카타콤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 그리스도인 형제는 자신의 신앙에 대한 증거를 제시하기만 하면, 최대 사흘 동안은 아무런 질문도 받지 않고 확실하게 숙식을 제공받을 수 있었다 …… 성직자의 사례비 …… 5세기 로마에서는 수입의 1/4은 주교에게 지급되었고, 나머지 3/4으로 다른 성직자들, 구제 목록에 올라있는 병들고 가난한 자들, 그리고 교회 건물의 유지에 똑같이 삼등분하였다.’(64)

 

헌금의 분배는 명백히 잘못될 소지가 있었다 …… 251년 무렵 로마 교회의 재산은 엄청나게 불어나, 그 일반적 수입만으로 주교와 46명의 장로, 7명의 집사, 7명의 부집사, 42명의 복사, 52명의 축귀사, 독경사 그리고 문지기들뿐만이 아니라 1,500명 이상의 과부와 가난한 사람들을 부양하고 있다.’(65)

 

‘4세기 초부터 …… 현금과 토지가 유언에 의해 교회에 증여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증여를 합법화시키는 321년 콘스탄티누스의 법 제정 …… 법 제정의 결과 4세기에는 교회에 증여된 재산이 매우 증가하게 되었다. 소아시아와 시리아에서는 4세기 후반 개인 재산의 일정 비율을(보통1/3) 교회에 증여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66)

 

그리스도교는 특별히 여인들 사이에서 매우 성공적으로 전파 …… 그리스도교는 여성이나 노예들에게 정치적 해방을 선사하지는 않았지만 …… 이들의 가정 내에서의 위치를 매우 고양시켰다. 하나의 사회적 제도로서의 노예제에 관해 교회가 보수적 태도를 취하게 된 것은 정치적 무관심 때문이 아니라, 로마서 13장에 기술되고 있는 것과 같은 국가와 법에 대한 존중 때문이었다.’(67)

 

바울 사도에 따르면, 노예제도는 불신자와의 결혼과 같은 것인데 …… 그리스도인 주인은 주교의 입회 하에 노예를 해방시키겠다는 자신의 의지를 엄숙하게 선언하기도 했다. 이것은 콘스탄티누스에 의해 관리 앞에서의 공식적인 노예 해방과 동등한 법적 효력을 부여받았다. 교회 안에서 주인과 노예는 형제였다 …… 4세기 후반 무렵 제국법은 주인의 허락이나 금전적 보상 없이는 노예의 안수를 금지시킴으로써 재산권을 보호하기 시작했다.’(68)

 

‘3세기의 에데사 교회는 예수의 72인의 제자 중 하나인 아다이가 에데사 교회의 창설자라고 주장했다. 아다이는 흑왕 아브가르가 예수께 쓴 편지에 대한 응답으로 에데사에 파송되었다는 것이다.’(70)

 

‘250년 무렵 이탈리아에는 약 100개 정도의 주교 교구가 있었다 …… 갈리아 지방의 그리스도교는 바울의 제자 그레스게(딤후4:10)와 더불어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71)

 

이레니우스는  헬라어는 물론 켄트어로도 설교.’(72)

 

헬라어를 사용하는 그리스도인들과 라틴어를 사용하는 그리스도인들 사이에는 관습의 차이들이 있었다. 통속적으로 구어직언 표현을 써서 성경을 라틴어로 처음 번역한 사람은 아마도 아파르키 선교사들이었을 것이다. 아마도 이들은 한 시기에 한 장소에서가 아니라, 필요에 따라 조금씩 조금씩 성경을 번역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많은 개인적 노력들이 합해져서 첫 라틴 성경이 되었으며, 400년 무렵에는 표준역으로서의 확고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어, 제롬의 개역본(소위 불가타)이 나오자 큰 반대를 불러일으켰다.’(75)

 

교회가 처음부터 비판자들과의 논쟁에 휘말려 들었다는 것과 교회의 교리가 자체 안에서의 또한 외부 사람들과의 지적인 대화를 통해 형성되었다는 것은 교회의 존재의 본성에 속하는 것이다.’(76)

 

유대교 정통 회당은 모든 유대인들이 단지 선택된 백성에 속한다는 그 이유 때문에 최소한 씨앗 상태로라도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 여기는 경향이 있었다. 비록 자신들의 믿음을 행위로 실천하지 않는 많은 유대인들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는 없었지만 말이다.’(77)

 

‘2세기의 그리스도교 문헌들이 강력하게 도덕주의를 강조하게 된 것은 바로 이러한 도덕적 무정부 상태의 위험에 대한 응답이었다. 이러한 도덕주의 경향을 사도 시대의 원래의 활력으로부터의 이탈이라고 비난하는 것은 참으로 너무나 쉬운 일일 것이다.’(77)

 

이교도들의 눈에는 …… 그 종교가 한 민족의 종교여서 조상들의 전통을 계승한다는 명예스러운 명분이 있을 때는, 제국 내에서 관용될 수 있다고 여겨졌다. 그렇지만 2세기에 그리스도교는 비밀스런 악덕의 혐의를 광범위하게 받고 있었고, 로마 군대에서의 병역 의무 수행에 일반적으로 유보적.’(78)

 

유대인들이 그리스도인들보다 더 큰 관용을 얻는 것이 가능했다. 부분적으로 그것은 유대인들이 이교들에 대한 대중적 비난에 더 강하게 반대했기 때문이다. 필로나 요세푸스 모두 성경의 하나님은 유일하게 참되신 하나님이지만, 다른 사람들의 종교적 감정을 모욕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했으며, 동료 유대인들에게 다른 종교들에 대해 정중한 태도를 가질 것을 권고했다.’(79)

 

교회는 사회의 모든 계층을 사로잡고자 의도했지만, 동시에 이 세상에서의 권력 획득에 무관심하다는 특징을 갖고 있었다.’(79)

 

순교자 저스틴이 최초로 제시한 프로그램 …… 으로 교회는 플라톤의 형이상학과 스토아 주의의 윤리와 공통의 목적을 갖게 되었다 …… 저스틴에 따르면, 교회의 확장은 그리스도의 승천과 최후의 심판 사이의 중간기를 형성한다. 세상의 역사는 하나님의 섭리 아래 이 최후의 정점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80)

 

만일 그리스도의 부활이 꾸며낸 이야기였다면, 사도들은 그것을 위해 목숨을 걸고자 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논증은 전개된다.’(81)

 

사르디스의 주교 멜리토의 견해로는 아우구스투스의 평화 확립은 복음을 위한 신적 준비라는 섭리의 한 부분이었다 …… 순교자 저스틴은 주후 70년 예루살렘을 파괴한 로마 군대는 …… 하나님의 심판의 도구라고 생각했다 …… 가이사랴의 유세비우스는 콘스탄티누스의 회심을 하나님의 행위라고 보았다. 하나님은 그리스도교가 더 확장되도록 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를 제국의 결정이라는 요새 안에 세우셨다는 것이다.’(82)

 

다신론의 옛 신들은 본질적으로 …… 지역신이었다. 이시스 숭배 종교나 동양의 신비주의 종교들 …… 보편성의 느낌이 없었다. 2세기 이교도들은 이 지역 신들을 지방 총독에 비유할 수 있는 존재로 해석했다. 지방 총독은 …… 최고 권력자를 위해 세상을 다스린다 …… 3세기에 이르러 유일신론을 향한 이러한 노력은 태양 숭배와 결합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교가 제국 내에서 성공을 거둔 것은 부분적으로는 보편적 종교에 대한 제국의 필요에 그리스도교가 가장 잘 응답했기 때문이다.’(83)

 

순교자 저스틴 …… 처음에 그는 스토아 교사 …... 밑에서 철학을 시작했지만,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을 가르치는 교사에게로 옮겼다 …… 파티고라스 학파의 교사에게로 옮겼다가, 최종적으로는 플라톤 철학 교사 문하로 들어갔다 …… 그는 그리스도교를 진정한 철학으로 여겼으며, 따라서 인정된 철학 교사의 복장을(이것은 그의 시대에는 권위와 능력을 상징하는 것이었는데, 오늘날 서양의 성직자의 칼라와 연관된 것이다) 입기 시작했다.’(85)

 

아브라함과 소크라테스는 다같이 그리스도 이전의 그리스도인들이다 …… 저스틴에게 있어서 그리스도는 통일성의 원리이며, 우리가 진리를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이다. 진리는 다양한 철학 학파들이 종교와 도덕을 다루는 한, 나누어진 씨앗처럼 이들 속에 흩어져 있는 것이다.’(87)

 

저스틴은 …… 인간의 자유 의지를 믿었고, 따라서 구원이 인간의 도덕적 덕과는 관계없이 미리 결정되어 있다는 영지주의의 가르침에 비판적이었다. 또한 예언의 성취라는 논증을 강력하게 신뢰했기 때문에, 마르키온이 구약을 폄하하는 것에 극력 반대했다 …… 죽음 이후 인간의 운명은 …… 문자적인 방식으로 해석한 부활’ …… 천년 동안 성도들과 함께 다스리기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새 예루살렘을 세우시고자 돌아오실 것이라는 기대를 의미한다고 이해하였다.(각주. 천년왕국 신앙은 여러가지 요소들의 혼합으로부터 비롯되었다. 바벨론 점성술은 일곱 혹성의 지배 하에 있는 천년이라는 관념 형성에 기여하였다. 90:4(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나이다)이 창세기 1장의 이레에 걸친 창조에 대한 해석의 열쇠를 제공하였다 …… 이레니우스와 히폴리투스에게서 발견되는 관념, 즉 세상의 역사는 6,000년 동안 지속될 것이며, 일곱 번 째 천년은 그리스도의 통치 아래 있을 것이라는 관념이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다 ……. ).’(88)

 

심지어는 아우구스티누스까지도 귀신들이 미래를 예지하는 약간의 능력을 갖고 있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았다.’(90)

 

이레니우스와 더불어 그리스도교 신학은 안정되고 체계적인 형태를 갖게 되었다 …… 두 완전한 저술이 보존 …… [사도적 가르침의 증명] …… [잘못하여 지식이라 불리는 것에 대한 논박] …… 이레니우스의 논박은 주로 마르키온과 발렌티누스를 향하고 있다.’(91)

 

새로운 언약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은 원래의 창조의 총괄갱신이다 …… 아담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으로 창조되었다. 형상은 침해 받지 않고 남아 있으나, 하나님의 모양은 죄로 인해 상실되었다.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통해 인간은 상실한 하나님의 모양을 회복할 수 있다. 이레니우스는 구원을 타락 이전 낙원에서의 상태의 회복이라고 여겼기 때문에, 저스틴의 지상의 천년 왕국 희망을 받아들이기가 수월했다.’(92)

 

이레니우스는 마르키온이 한 가지 점에 있어서는 옳다는 것을 깨달았다. 즉 권위 있는 신약 문서들에 대한 고정된 목록 즉 정경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는 점이었다 …… 그의 신약 성경은 전통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게 된 정경에 실제적으로 일치하는 바(각주. 이레니우스는 요한 3, 야고보서, 또는 베드로 후서는 결코 인용하지 않는다.), 이 점에 있어서 그는 최초의 저술가이다.’(93)

 

이레니우스는 반석과 같은 사도적 기초 위에 세워진 불변의 동일한 정통 교회와 서로간에 다투면서 항상 체계를 변경시키는, 분열을 일삼는 이단 종파들을 대조시키는 것을 좋아하였다.’(94)

 

이레니우스는 보편적 교회가 마치 모든 주제에 대해 완전한 일치와 통일된 사상으로 특징지워지는 공동체이기나 한 것처럼, 이상적이고 거의 낭만적인 용어들로 교회에 대해 기술하였다 …… 소아시아 교회들은 부활절 날짜를 …… 유대교 유월절과 같은 날짜에, 즉 그 날이 언제든지 간에 유대력으로 니산월 14일에 지켰다. 부활절이 로마에 소개되었을 때( 160), 부활절 축제는 알렉산드리아와 마찬가지로, 유대교의 유월절 직후의 일요일에 축하되었다 …… 190년경 로마의 주교빅토르가 부활절을 지킴에 있어서 일치를 요구 …… 소아시아에서는 170년경 …… 최후의 만찬이 유월절 식사인지 아닌지에 대해 격렬한 논쟁이 있었던 것 …… 빅토르의 간섭은 …… 성공 …… 그렇지만 14일에 부활절을 지키는 사람들이 완전히 사라지게 된 것은 상당한 시간이 지난 다음 …… 9세기까지도 여전히 살아남아 있었다. 자신들이 가장 오래된 사도적 관습을 보존하고 있다는 ‘14일 주의자들의 생각이 옳았다는 것에는 하등의 의심이 있을 수 없다. 이들은 단지 시대에 뒤떨어졌기 때문에 이단이 되었다.’(98)

 

이레니우스의 언어에 큰 빚을 지고 있다는 안디옥의 테오필루스는 …… 하나님과 관련하여 트리아드라는 용어를 사용한 최초의 인물.’(99)

 

저스틴은 그리스도는 단순한 인간이 아니며, 또한 하나님이라고 주장했다 …… 2세기 후반 무렵 요한 복음서의 권위가 온 교회 안에 확립되면서, 저스틴이 제시한 이러한 논증의 힘은 압도적인 것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99)

 

‘’성부수난설’ …… 현대의 저술들에서는 …… ‘양태론이라 불리는데, 이 견해에 따르면 아버지, 아들, 성령이 한 동일한 존재의 양태에 불과할 뿐이기 때문이다 …… 아버지, 아들, 성령이라는 새 이름은 순전히 (역할을 묘사하는-역주) 형용사적인 것이기 때문이다.’(100)

 

단일신론 논쟁은 …… 3세기 내내 이런저런 형태로 계속하여 교회를 혼란시켰다.’(102)

 

터툴리안은 …… 라틴어로 저술한 …… 최초의 그리스도인이었다 …… 3세기에 그리스도교 신앙이 상류 계층에 침투하기 시작하면서, 로마는 라틴어를 말하는 그리스도인들이 헬라어를 말하는 사람들을 수에 있어서 능가하기 시작했다.’(104)

 

카르타고 …… 2세기 중반 무렵에 이곳을 대상으로 정열적인 선교 활동이 이루어졌던 것 같다.’(104)

 

197년에 쓰여진 [변증] …… 순결에 대한 터툴리안의 가장 엄격한 요구는 동료 그리스도인이 군에 복무하는 것, 공직에 봉사하는 것, 심지어는 학교에서 봉사하는 것조차도 금지하였다 …… 그리스도인의 삶에 대한 터툴리안의 개념은 일차적으로 사탄과의 전쟁이라는 것이었다.’(105)

 

‘(터툴리안은) 작은 엄격주의자 소수 집단(몬타누스 그룹-역주)의 목적을 옹호 …… 그렇지만 가톨릭 교회가 이 새로운 예언을 인정하지 않을 것임이 분명해지자, 그는 가톨릭 교회를 영적이지 못하며, 제도화되어 있고, 세상적인 것들과 타협하고 있다고 정죄하면서, 교회를 떠났다.’(106)

 

‘(터툴리안)은 평범한 사람들이 별 생각 없이 외치는 탄성들(“아이고 하나님!”) 속에서 진리를 추구하는 직관적 감정을 찾아 볼 수 있었다. 이러한 탄성들은 신적인 진리에 대한 무의식적 인정을 드러내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이다.’(107)

 

클레멘트는 알렉산드리아에서 태어나지 않았다. 그는 많은 다른 그리스도인 선생들로부터 배우면서 다양한 여행을 거친 후에 그곳에 왔다 …… 교묘하고 유창하게 옹호되는 이단과 다른 한편으로는 불명확하고 반계몽적인 정통 …… 클레멘트의 주된 성취 중의 하나는 이러한 딜레마가 비사실적이며 잘못된 것임을 드러내 보였다는 점이다.’(111)

 

‘[잡기]는 헬라 철학의 진리와 고전적 시가의 가치에 대한 대단히 긍정적인 확신을 가지고 쓰여진 것인데, 클레멘트의 서술 방식은 철학에 두려움을 느끼고 있던 그리스도인 독자들의 의구심을 한결 덜어줄 수 있었다.’(111)

 

클레멘트는 플라톤이 모세와 선지자들을 정당한 인정없이 표절했다고 말한다. 그리고는 헬라 철학은 …… 헬라 사람들을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고 죄를 억제하는 몽학 선생으로 주어졌다고 주장한다.’(112)

 

클레멘트의 사상에 있어서 중심 원리는 창조 교리이다 …… 어디에서 발견되든지 간에 모든 진리와 선은 창조주로부터 온 것이다.’(113)

 

개인적인 독신에의 소명은 존중할 것이라고 인정하였지만, 결혼이란 본채적으로 이에 비해 열등한 영적 상태라는 어떤 주장도 그는 용납하지 않았다. 동일한 이유로 그는 모든 그리스도인은 금주주의자 또는 채식주의자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배척했다. 이런 것들은 클레멘트에게 있어서 개인적인 양심의 문제이지, 보편적인 금지의 문제가 아니었다.’(113)

 

(클레멘트)에게는 저스틴과 이레니우스에게 빚을 지고 있다는 생각이 별로 없어서, 지상에서 천년 동안 그리스도와 함께 통치하기 위하여 성도들이 육체적으로 부활할 것이라는 이들의 지나치게 문자적인 믿음에 대해 그는 별로 호의적 입장을 보이지 않았다.’(115)

 

순교자 저스틴과 마찬가지로, (클레멘트) 역시 평신도로서 그의 주저를 저술했다.’(116)

 

오리겐은 초기 그리스도교 사상가들 가운데 거인으로 우뚝 서 있다 …… 오리겐은 헬라의 고전시가들에 정통한 지식을 갖고 있었지만, 그러나 이러한 사실을 거의 노출하려 하지 않았다 …… 그는 혹독한 노력을 기울여 대 철학자들을 공부했다.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성경을 열심히 공부해서, 웬만한 모든 본문을 마음대로 암송할 수 있는 정도에 이르렀다. 이러한 탁월한 기억력은 자연스럽게 그에게 자만심을 불러일으켰는데, 이 때문에 그는 때때로 참고 문헌을 밝히지 않은 채 인용을 하면서 사소한 잘못을 범하기도 했다.’(117)

 

‘18세 되던 주후 202년 셉티무스 세베루스 황제의 박해 때에 그의 아버지 레오니다스는 순교했었다 …… 클레멘트에게 있어서 플라톤은 대단한 권위를 누렸다. 그렇지만 오리겐의 눈에는 플라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117)

 

그리스도인들은 이러한 번역본 사용에 있어서, 특별히 메시야에 관한 예언들의 발췌 모음집에 있어서, 일부 본문들을 자기들의 목적에 더 잘 들어맞도록 만들기 위해 가벼운 수정을 가하는 경향이 있었다.’(118)

 

오리겐은 [헥사플라] …… 를 편집하였다. 그는 나란히 구분된 6개의 난에 히브리어, 히브리어 본문의 헬라어 음역, 그리고 4가지의 주된 헬라어 번역을 대조하여 위치시켰다 …… [헥사플라]의 주된 목적은 …… 70인역의 정확성을 보증하는 것이었다.’(119)

 

이단에 반대하여 정통을 옹호하는 것은 오리겐이 많은 관심을 기울인 일이었다 …… 오리겐의 사변적 체계에 의하면, 하나님께서는 처음에 바로 이 물질 세계를 창조하신 것이 아니라, 이성과 자유 의지를 부여 받았으며, 창조주에게 의존적인 영적 존재들의 영역을 먼저 창조하셨다. 타락을 섦명하기 위해 오리겐은 알렉산드리아의 필로의 생각을 빌리고 있다. 영적 존재들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에 싫증을 느끼게되었고, 태만으로 인해 타락하게 되어 점점 사랑이 식어지면서,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져 나가 열등한 것으로 향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물질 세계는 바로 이러한 타락의 결과로 존재하게 되었.’(122)

 

천국과 지옥에 관한 모든 언어는 비유적 상징으로 표현된다. 오리겐에게 있어서 지옥의 불의 온도를 잰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었다. 상징적 언어가 표현하고 있는 진리는 하나님의 형벌이 있다는 것이다 …… 오리겐은 하나님의 진노에는 치유적 목적이 반드시 포함되어 있다고 주장한다.’(123)

 

종말에 관한 오리겐의 언어는 6세기의 어떤 공상적 사변들에 자극제가 되었다. 당시 팔레스타인의 일부 열광주의적 수도사들은 부활한 육체는 구형일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이를 위해 오리겐의 권위에 의존하였다(플라톤은 구가 완전한 형태라고 설명하였다). 오리겐 자신이 이러한 주장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명백한 증거가 없다.’(124)

 

참으로 자유란 양도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구속 받은 자가 또 다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을 태만히 할 수 있으며, 그리하여 타락과 구속의 끝없는 순환이 계속하여 반복되는 사변적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것을 오리겐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오리겐은 질문으로 끝내고 있다.’(125)

 

스토아주의가 3세기에 들어와서 독립된 학파로서의 위상을 상실하고,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그 학파의 마지막 대변자가 되었다는 것은 스토아주의 역사에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이 의문에 대한 가장 개연성 높은 설명은 윤리 분야에서 교회가 스토아주의 고유의 이론들을 수용하는 한편, 철학 분야에서 플로티노스가 등장하여 플라톤의 호방한 형이상학으로써 스토아 학파의 윤리학과 아리스토텔레스 학파의 논리학을 철학적으로 종합했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하는 것이다.’(137)

 

‘247 4 21일에 로마 건국 천년을 기념.’(138)

 

키프리안은 [교회의 일치에 관하여]라는 열정적인 소책자를 써서 …… 일치의 중심은 주교이다. 주교를 버리는 것은 교회를 버리는 것이며, “교회를 어머니로 모시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을 자신의 아버지로 모실 수 없다.’”(139)

 

교회가 입은 가장 큰 해는 박해 때문이 아니라 내부 분열 때문에 초래되었다 …… 아우렐리우스가 제국의 모든 종교들을 끌어안을 수 있는 포괄적인 유일신교로서 태양신 숭배를 독려할 때인 274-5년을 제외하면, 교회는 303년까지 이렇다 할 박해 없이 평화를 누렸다. 심지어 그리스도인들인 속주 총독들조차 제사 참여를 은밀히 면제받았다.’(141)

 

콘스탄티누스는 자기 아버지처럼 정복되지 않는 태양을 숭배했다. 하지만 그에게 아나스타시아(아나스타시스=부활)라는 이복누이가 생기면서 그의 가문에는 기독교의 영향이 들어왔다.’(143)

 

서방에서는 콘스탄티누스였고, 동방에서는 리키니우스였다. 313 2월에 밀라노에서 두 사람은 그리스도인들과 이교도들을 포함한 모든 사람들에게 종교의 자유를 허락하는 정책과, 개인 그리스도인들에게 속했든 교회에 속했든 모든 부동산을 되돌려 주는 정책에 합의했다.’(144)

 

박해가 남긴 최악의 유증은 이번에도 분열이었다 …… 동방에서는 제사를 배교로 간주하되, 거룩한 책들과 교회 식기류를 내주는 행위는 배교로 간주하지 않았다. 하지만 서방에서는 견해가 양분 …… 로마의 주교 마르켈리누스도 거룩한 책들을 내주었다. 하지만 특히 누미디아에서는 성경이나 국가가 성경에 준하는 책으로 간주하는 책들을 내주는 행위(어떤 주교는 의학 논문들을 내주었다)를 배교로 간주했다. 달리 생각하는 것은 내주기를 거부하다가 죽은 사람들의 영예를 더럽히는 행위로 간주되었다. 그 생각에는 뭐 꼭 그럴 필요까지 있었느냐는 빈정거림이 내포되었기 때문이었다.’(144)

 

콘스탄티누스의 개종은 교회사와 유럽사의 방향을 틀어놓은 사건이다 …… 황제가 교회의 발전에 어쩔 수 없이 즉시 개입하게 되었고, 반대로 교회는 갈수록 황제의 정치적 판단에 연루되었다.’(147)

 

막센티우스는 아우렐리우스의 장벽 뒤에서 안전히 방어전을 치르지 않고 장벽 바깥으로 나와서 티베르 강을 등지고 싸웠다. 따라서 콘스탄티누스가 밀비아 다리에서 승리를 거둔 사건(312)을 하늘의 호의의 징조로 보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일이다.’(147)

 

콘스탄티누스가 신의 격려에 힘입어승리를 거뒀다는 비명이 새겨져 있다. 로마 원로원이 언급한 신은 정복되지 않는 태양신이었다 ……콘스탄티누스는 기독교와 자신이 믿던 정복되지 않는 태양 사이의 상호 배타성을 의식하지 않았던 셈이다. 유일신교인 태양신 숭배(당시의 이교권에서 가장 인기 있던 종교)에서 기독교로 옮겨가기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구약성경에는 그리스도에게 의의 태양이라는 칭호를 붙인 예언이 있었다.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는 그리스도께서 태양신처럼 병거를 몰고 하늘을 가로지르신다고 말한다. 최근에 로마에서 발견된 무덤의 모자이크(4세기초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됨)는 그리스도를 병거를 몰고 하늘에 오르는 태양신으로 묘사한다. 터툴리안은 많은 이교도들이, 그리스도인들이 일요일에 모여 동쪽을 향해 기도하는 것을 보고서 그들이 태양신을 숭배하는 것으로 상상했다고 전한다. 더욱이 4세기 초에 서방에서는 그리스도의 탄생일을 태양이 동지의 지점에서 탄생하는 날인 12 25일로 기념하기 시작했다(어디서 누가 이 관습을 시작했는지는 알려지지 않는다) …… 5세기 중반에 교황 대 레오 …… 는 자신의 교인들이 태양에게 경의를 표하기를 잊지 않는 행위를 질책한다.(각주. 반대로 율리아누스 때에는 기독교에서 태양신 종교로 개종하기가 쉬웠다. 트로이의 주교는 진실성을 의심받을 염려 없이 배교를 했다. 왜냐하면 주교로 있을 때조차 은밀히 태양에게 기도해왔기 때문이다.).’(149)

 

당시에는 임종 때까지 세례를 연기하는 것이 관행이었다(주후 400년경까지 이런 관행이 지속되었다) …… 콘스탄티누스는 …… 기독교를 제국의 공식 종교 혹은 국교로 삼지는 않았다.’(149)

 

콘스탄티누스가 교회에 부여한 혜택은 막대한 것이었다 …… 성경을 새로 필사하여 보급하고 교회당들을 건립 …… 바실리카들을 건립 …… 라테란 가의 재산이었던 자신의 둘째 아내의 궁전을 로마의 주교들에게 주교의 공관으로 기부 …… 속주의 세입 가운데 일정 비율을 교회 기부금으로 할당.’(150)

 

한 주간의 첫째 날에 주님의 부활을 기념하는 기독교 관습은 아미 사도 바울이 고린도전서를 쓰기 전부터 전통으로 자리잡았다. 교회가 주간의 첫 날에 모여 예배를 드린 관습의 출처는 …… 유대교였으며, 교회가 일요일을 선정한 이유는 그 날에 주께서 부활하셨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주후 1세기부터 민간 점성술은 일곱 개의 행성(고대인들은 해와 달도 행성에 포함시켰다)이 각각 하루를 지배한다는 사상을 퍼뜨렸다.’(151)

 

콘스탄티누스는 …… 324 9월에 …… 제국의 유일한 통치자가 되었다 …… 니케아 공의회에는 약 220명의 주교들이 참석했는데, 거의 대부분이 그리스 주교들이었다 …… 라틴계 서방에서 참석한 주교는 네다섯 명밖에 되지 않았다 …… 공의회가 상정한 신조는 성자가 성부와 하나의 본질을 지니신다고 확언함으로써 아리우스에 대한 반대 의사를 분명하게 천명했다 …… 참으로 뜻밖에도 공의회 전에 강력한 반대 움직임이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220명의 주교들 가운데 218명이 신조에 서명했다 …… 모든 서명자들이 신조의 중요한 표현들의 정확한 의미를 다 이해한 것은 아니었음이 분명하다 …… 이것은 모호했다 …… 모호한 표현 때문에 리비아계의 두 주교를 제외한 모든 주교들의 동의를 얻어낼 수 있었다.’(153)

 

주교를 축성할 때 될 수 있는 대로 관구 내의 모든 주교들에 의해 축성을 받되, 어떤 경우든 세 명 이상의 주교에 의해 축성을 받도록 규정했으며, 관구의 수도대주교에게 거부권을 부여했다. 이 마지막 규정이 수도대주교에게 권력이 집중되는 과정을 가속화했다 …… 니케아 교회법은 교회의 조직과 권력 구조가 발전된 경위를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준다 …… 예루살렘 교구는 교회에서 한 번도 권력의 중심에 선 적이 없었다. 그러다가 5세기에야 비로소 콘스탄티노플 교구가 알렉산드리아 교구로부터 격렬한 반대를 무릅쓰고 서방의 로마에 견줄 만한 지위를 동방에서 확보할 수 있었다 ……  4세기가 진행되면서, 교회 정책에 관한 최종 판결이 황제에 의해 좌우되는 경향이 갈수록 완연해졌고, 어느 때든 사건을 주도해 가는 교회 내의 그룹이란 황제의 비위를 맞추는 데 성공한 사람들인 경우가 빈번했다.’(155)

 

니케아 공의회 이후에 벌어진 아리우스 논쟁은 세 단계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는 콘스탄티누스가 죽은 때(337 5 22)까지이고, 둘째는 콘스탄티누스의 아들들이 즉위한 때로부터 콘스탄티우스 2세가 죽은 때(361)까지이며, 셋째는 율리아누스가 즉위할 때부터 테오도시우스 1세의 치하에서 아리우스주의가 진압될 때까지(381)이다.’(156)

 

서방의 주교들 가운데 많은 수가 논쟁의 실제 내용을 지극히 막연하게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각주. 그들의 이해가 얼마나 막연했는가 하는 것은 푸아티에의 주교 힐라리우스가 여러 해 주교로 재직해왔으나 니케아 신조에 관해 들어본 일 조차 없다고 공언한 말에서 분명하게 엿볼 수 있다.).’(165)

 

성자와 성부의 동일 본질을 주장하되, 성령께서 신격 안에 들지 않고 창조된 천사의 위계 중에서 맨 윗자리에 계시다고 주장하는 신학자들이 있었다 …… 콘스탄티노플의 마케도니우스는 성령의 신성을 부정하는 집단을 이끌었다 …… 정통 신학자들은 그들에게 성령과 싸우는 자들’, 즉 프뉴마토마키 혹은 마케도니우스파라는 별명을 붙였다.’(171)

 

‘381 5월에 테오도시우스는 콘스탄티노플에서 대규모 에큐메니컬공의회를 소집했는데 …… 콘스탄티노플 주교로 저명한 정부 관리인 넥타리우스를 선출했다. 넥타리우스는 과거의 논쟁에서 어느 진영에도 연루되지 않았기 때문에, 아직까지 세례를 받지 못했고, 따라서 세례를 받은 직후에 주교로 축성되었다 …… 공의회는 매우 중요한 교회법 조항에 합의했다. 그것은 콘스탄티노플이 새 로마이기 때문에 콘스탄티노플 주교는 로마 주교 다음의 서열을 갖는다는 조항이었다 …… 공의회의 교리적 결정은 제국의 교회를 장악하려던 아리우스파의 시도에 마침표를 찍었다. 아리우스주의는 그 진영의 선교사들에 의해 개종한 고트족 가운데 살아남았다. 아리우스파의 대표적인 선교사는 울필라스로서, 그는 성경을 고트어로 번역했고, 그 자신이 …… 고트족이었다.’(177)

 

콘스탄티누스가 기독교로 개종한 뒤에도 이교는 소멸하지 않고, 오히려 족히 4세기 후반까지 제국 인구의 다수를 점한 종교로 남아 있었던 것 같다(각주. 이교도paganus …… 이 단어를 세속적으로 사용할 때는 1. ‘촌스러운이라는 뜻과, 2. 군대와 반대되는 민간이라는 뜻을 지녔다 …… 정확한 설명은 이교도들이 세례에 의해 그리스도의 군인들이 되지 않은 사람들, 따라서 악의 세력과 투쟁하는 신앙의 전사들이 되지 않은 사람들을 가리켰으리라는 것이다. 동방에서는 비그리스도인들을 가리킬 때 헬레네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 교회가 사회 관습이라는 타성을 극복하기란 쉽지 않았다.’(178)

 

로마의 공식 종교가 일으키는 종교 감정은 애국심과 어떻게든 관계가 있었고, 따라서 순수한 종교 감정을 원하는 사람들은 이시스교, 미트라교, 아티스교, 퀴벨레교, 그리고 시리아 여신 숭배로 눈을 돌리기 십상이었는데, 이 종교들은 모두 유프라테스강에서부터 브리타니아의 하드리아누스 장벽에 이르는 제국 전역에 널리 보급되어 있었다(하드리아누스 장벽 이북으로는 해로운 것들만 존재한다고들 믿었다).’(179)

 

콘스탄티누스는 비록 초기에는 태양 유일신교와 기독교를 제대로 구분하지 못했지만, 그의 종교 자문을 맡은 주교들이 기독교가 태양을 신의 거처로 간주하지 않는다고 즉시 말해주었음에 틀림없다 …… 콘스탄티누스의 아들들 대에 가서는 이교를 제재하는 한층 결정적인 조치가 취해졌다. 제사가 금지되었고, 중요하지 않은 여러 신전들이 철거되었다. 대체로 직접적인 해를 입은 대상은 동양의 신비 종교들이었다.’(180)

 

이교도든 그리스도인이든 종교를 필요로 하지 않는 사회를 생각하지 못했지만, 고대에는 종교적 확신을 강요할 수 없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었고 …… 흑마술(나쁜 동기로 시행하는 마술).’(187)

 

다마수스 …… 이탈리아 복동부의 걸출한 학자 제롬에게 라틴어 성경의 개정판을 제작하게 하는 등[이 개정판은 아주 점진적으로 옛 역본을 대체하고 보편적으로 인정받는 역본<불가타>이 되었다] …… 고대 로마의 문민적이고 제국적 자부심을 기독교와 융합시킨 것이 다마수스의 업적이었다 …… 다마수스가 순교자들의 성소들을 화려하게 장식하고 로마 교회를 설립한 사도들을 강조한 것은 로마의 진정한 영광이 이교의 것이 아니라 기독교의 것임을 웅변으로 강조한 것과 같았다.’(190)

 

콘스탄티누스는 주교들에게 유언을 검증하고 분쟁을 조정할 수 있는 행정 장관의 권한을 부여했다. 313년이라는 이른 시기에 그는 고위 성직자에게 저명자라는 높은 세속 직위를 수여했던 것으로 보인다. 314년의 아를 공의회는 로마 주교를 지극히 영광스러운이라는 칭호를 사용하여 불렀는데, 이것은 세속적 용례로는 서열이 황제 가문에 버금가는 사람들에게 쓰이던 칭호였다. 주교들은 …… 표장을 갖게 되었다 …… 이런 경위로 주교들은 홀장과 삼중관과 아마 영대까지도 얻었다. 주교의 손에 입을 맞추는 관습은 4세기에 첫 모습을 드러낸다. 반지는 7세기 …… 가슴의 십자가는 13세기 …… 키프리안 때부터 주교들을 부를 때 당시 상류 사회의 용어를 채용하여 추상적인 칭호(이를 테면 성하聖下holiness)가 쓰이기 시작했다. 황궁의 의전이 심지어 촛대를 사용하는 등 성찬식의 양태에까지 영향을 끼쳤다 …… 서방에서는 성직자들이 심지어 예배를 인도할 때조차 평신도와 구분되는 성직복을 입지 않았다 …… 서방의 성직복은 고대의 평상복이 일반 사회에서는 더 이상 착용되지 않은 뒤에도 교회의 보수성 때문에 교회에 그대로 남은 데서 비롯되었을 뿐이다.’(192)

 

교회는 그리 오래지 않아 이교 정권 때보다 기독교 황제들 치하에서 자유와 자결에 더 큰 제약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심지어 콘스탄티누스 때부터 주요 지역의 주교 임명에 황제의 입김이 작용하기 시작했다 …… 니케아 교회법(325)은 수도대주교에게 거부권을 부여했다. 381년부터는 수도대주교보다 더 높은 차원, 알렉산드리아와 안디옥과 콘스탄티노플의 총대주교들에게 권력이 집중되는 경향이 완연하게 나타나기 시작했으며, 5세기에는 예루살렘도 이 그룹에 합류할 수 있었다.’(193)

 

왕이 주교를 임명하는 관행이 굳어진 곳은 그리스 동방이 아니라, 서방, 특히 6세기 메로빙거 왕조 치하의 갈리아였다 …… 세월이 흐를수록 제국의 법률에는 비국교도들에게 불이익을 가하는 내용이 크게 자리를 잡게 되었다.’(194)

 

암브로시우스는 …… 374년에 아리우스파 주교 아욱센티우스가 죽자 그는 군중의 압도적인 갈채에 의해 주교로 선출되었다. 아직 세례도 받지 않은 몸으로 말이다.’(195)

 

훌륭한 예술품들이 소장된 아름다운 신전들은 훼손하지 말라는 특별한 지침이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미학을 고려한 주장은 강렬한 도덕적 지탄 앞에서 무력했다 …… 민중의 애착이 지나치게 강하여 파괴할 수 없는 이교 성지에는 옛 터를 정리하고 그곳에 기독교적 의미를 부여하는 방법이 사용되었다 …… 아테네에서는 파르테논이 결국 성모마리아 교회가 됨으로써 파괴를 면했다.’(197)

 

테오도시우스가 법으로 규제한 이단 종파들 가운데 가장 심한 탄압을 받은 종파는 마니교였다 …… 바빌로니아인 마니가 …… 세운 영지주의 형태의 이원론 종교였다.’(197)

 

유대인들에 대해서 테오도시우스의 법은 그들의 지위를 약간 향상시킨 듯하다 …… 법률상 회당은 예배의 자유를 위해 보호되었다 …… 대체로 유대인들은 두려움 없이 살면서 직업 생활을 할 수 있었다 …… 간단히 말해서, 기독교 제국에서 살던 유대인들의 상황은 꾸준히 열악해지기만 한 것이 아니라 지그재그 방향으로 움직이는 경향을 띠었다.’(200)

 

대체로 당시 기독교 사회는 이교 사상을 표현하는 것을 금하지 않았고 이교 문학을 보급하는 행위를 제재하지 않았다 …… 시와 역사에서 고전의 관습이 대단히 강력하게 남아 있었다는 것이 특기할 만한 점이다. 유스티니아누스 때조차 당대의 대표적인 역사가 두 명은 …… 여전히 마치 기독교가 입에 담기도 부끄러운, 그래서 에둘러 논할 수밖에 없는 현상인 것처럼 여기면서 글을 썼다.’(202)

 

‘4세기 말에 접어들면, 교회가 사실상 사회를 장악하고 있었다. 세상적인 표준으로 볼지라도, 어지간한 도시의 주교직은 딱히 종교적인 동기가 아닐지라도 한 번 꿈꾸어 볼 만한 좋은 직위가 되어 있었다. 많은 지역 교회들이 실질상 지주들이 되어 무수한 지역 빈민들의 생계를 지원했다.’(203)

 

‘400년경 교회 관습으로 주교들에게 의무가 된, 아내와의 이별 …… (그리스 동방에서는 하급 성직자들에게는 이런 의무가 부과되지 않았다).’(204)

 

허영의 시장에서 발을 돌이키는 것은 역사가 계속 진행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자녀들에게 물려줄 재산도 있는 사람들보다는 세상의 종말이 임박했다고 예상하는 사람들에게 한결 쉬운 일이었다 …… 2세기에는 지교회들에서 결혼을 포기하고 지극히 작은 재산만 남기고 모두 포기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었었다. 이들은 스스로 앞에서 그리고 지교회 앞에서 세상을 버리고 기도와 자선 사업에 힘쓰겠다고 서약했다 …… 3세기에 교회가 급속히 확장되면서 이중적 윤리 표준을 채택하는 경향이 급격히 증가했다. 세상에서 사는 일반 그리스도인들은 완전의 교훈을 지킬 수 없을지라도 최소한 그리스도의 계명은 지키려고 했고, 문자적으로 명령된 최소한의 계명보다 더 많이 행하면 이후에 큰 상급을 받으리라고 기대할 수 있었다.’(205)

 

수도원 운동은 소박한 평민들뿐 아니라 플라톤과 그의 이상적인 순교자 소크라테스의 전승, 견유학파의 자족 원칙, 그리고 얻지도 지키지도 못할 것에 대한 욕구를 억누르는 데서 행복이 생기므로 합리적으로 올바른 삶을 살려는 집착도 버리라고 가르친 스토아주의로 교육을 받은 사람들에게까지 파고들었다. 고전 그리스의 영향이 금욕주의의 개인주의적 성향을 자극했다 …… 민중은 독거 수도를 하는 은수자들을 크게 존경했다.’(207)

 

수도원 운동은 사회의 의무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사람들, 과중한 세금을 못 이겨 파산한 사람들, 혹은 탈옥수들이나 동성애자들, 혹은 보다 많은 경우로서 고행으로 자신을 과시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손쉬운 은신처를 제공해 주었던 것이다.’(209)

 

역사의 우연에 의해서 베네틱투스라는 이름은 금욕 및 학문과 연관을 갖게 되었다. 베네딕투스 자신은 참회적 금욕주의자와 자기 학대적인 고행자가 아니라, 절제를 하면서 단순한 생활을 영위한 사람이었다 …… 베네딕투스의 수도회칙은 한 곳 이상의 수도원을 상정하긴 했지만, 베네딕투스가 수도회를 설립할 생각을 가졌던 것은 아니었음이 분명하다.’(213)

 

‘375년경에 오리겐의 정통성에 본격적인 공격이 가해졌다. 공격을 가한 사람은 367년부터 키프로스 살라미스(파마구스타)의 주교가 된 에피파니우스로서 …… 그는 과거와 현재에 걸친 모든 기독교 이단들을 집중적으로 연구하여 권위자가 되었다 …… 에피파니우스가 오리겐에게서 단죄한 점은 무엇보다도 어느 모로 보나 분명한 문자적 진술들을 영적 상징으로 재해석하는 그의 경향, 특히 부활을 영적으로 해석한 그의 교리였다.’(215)

 

제롬은 …… 과거에 오리겐의 저작 중 몇 권을 번역하고 그를 사도 시대 이후로 가장 위대한 교회의 교사로 칭송했다가, 이제는 그를 격렬하게 반대하게 되었다. 제롬은 주위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신랄하고 꼬장꼬장한 사람이었다. 간혹 자신의 호방한 학문을 동원하여 증오와 질투를 퍼붓곤 했다. 비판을 견디지 못했으며, 자신에게 가까이 접근한 사람일수록 후에는 완전히 등을 돌리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독설을 내뱉되 아주 탁월한 방식으로 내뱉고 큰 학식을 가지고 성경 주석을 썼기 대문에 누구나 그의 책을 일고 싶어했다.’(216)

 

요한 크리소스톰 …… 고매한 인격의 소유자였지만, 몇 가지 점에서는 뒷공론과 음모가 난무하는 대도시의 주교에는 적합하지 못한 사람이었다 …… 광야에서 금욕 생황을 하다가 고질적인 위장병을 얻었던 지라 늘 혼자서 식사를 했고, 그로써 그 동안 주교의 집에서 성대한 식사를 해온 사람들에게 깊은 모멸감을 안겨주었다 …… 금욕적이고 초연하고 혈기 왕성한 인물로서, 강단에서 흥분을 하면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노골적인 비판을 토해냈다. 이런 기질 때문에 세련되고 유복한 도시에서 편하게 살기가 쉽지 않았다 …… 유배길에 오른 요한은 407 914일에 코마나(토카트)에서 죽었다.’(221)

 

‘378년에 타르수스의 주교로 임명된 안디옥의 금욕주의적 장로 디오도루스 …… 예표론(typology. 특정 인물들과 사건들을 그리스도와 교회에 관한 구체적인 표상들로 보는 해석)의 유효성을 인정하면서도, 무절제한 알레고리 사용에는 반대했다.’(224)

 

라오디게아의 아폴리나리스 …… 동정녀 탄생을 교리에서 최우선적으로 중요한 사건으로 보았고, 3세기 이래로 개인들이 마리아에게 사용한 하나님의 어머니라는 칭호에 심오한 진리가 있다고 보았다.’(225)

 

테오도루스는 요한 크리소스톰의 친구이자 리바니우스의 제자였다. 그는 392년에 길리기아 평원에 자리잡은 몹수에스티아의 주교가 되었다 …… 수많은 메시야예언들과 시편들이 그리스도께 대한 예고라는 점을 부정하고, 아가서를 그리스도와 그의 교회간의 초자연적 결합과 상관이 없는 자연적인 연애시라고 평가함으로써 전통주의자들을 당혹하게 했다.’(225)

 

‘412-444년에 알렉산드리아 교구는 전임자 테오필루스의 조카로서 예리한 신학자요 과단성 있는 교회 정치가인 키릴루스가 차지하고 있었다 …… 삼촌이 이집트의 이단과 이교를 진압하기 위해 투쟁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란 그는 성격이 관용과는 거리가 멀었고, 주교직에 오르자마자 몇 차례에 걸쳐 과격한 사건을 일으켰다.’(227)

 

‘428 4월에 황실은 훌륭한 설교자를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로 초빙하기를 원하여 네스토리우스라는 안디옥의 수사를 영입했다.’(227)

 

아랍인들은 637년에 예루살렘을 함락한 뒤, 안디옥(638), 이집트와 알렉산드리아(641)를 함락하고 …… 콘스탄티노플은 그리스 화약을 사용하여 간신히 아랍인들을 격퇴했다. 아랍인들은 707년에 북아프리카를 정복했고, 4년 뒤에 스페인을 정복했다. 이렇게 노도와 같은 이슬람의 정복으로 수많은 주요 지역들이 기독교 제국에서 떨어져나갔다. 이로써 기독교 세계의 지형은 바뀌었고, 장차 때가 되면 무게 중심이 서방 유럽으로 옮겨가게 되는 과정이 시작되었다.’(248)

 

라틴 기독교는 4세기 말까지는 원숙한 경지에 올랐던 그리스 교회들의 수준에 비해 훨씬 처져 있었다.’(249)

 

제롬(Jerom. 유세비우스 히에로니무스) …… 그가 베들레헴의 라틴계 수사들에게 행한 설교 중 한 편은 그리스 교회가 성탄절을 12 25일 대신에 1 6일로 지키는 관습을 비판하는 내용이 주조를 이룬다 …… 제롬의 정신 세계는 라틴이었다 …… 제롬은 그리스 실력이 탁월했지만(히브리어에도 능통했다), 그리스 고전 문학에 대해서는 일차적인 지식이 없었다 …… 이제 바야흐로 독립된 라틴 신학이 등장할 때가 무르익었다. 제롬은 성경적 학문을 내놓고 있었지만, 사상가는 아니었다. 이 과제는 아우구스티누스라고 하는 젊은 아프리카인의 몫으로 남겨졌다.’(253)

 

아우구스티누스는 354 11 13일에 누미디아 지방의 소도시 타가스테에서 중하층의 부모 파트리키우스와 모니카의 아들로 태어났다. 파트리키우스는 이교도였다가 죽기 직전에 겨우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모니카는 베르베르족의 혈통을 물려받은 듯하며, 경건한 신자였으며, 총명한 아들에게 큰 기대를 걸었다 …… 고대에는 대중 앞에서 자기 의사를 자유롭게 표시하도록 만드는 교육이 법률가나 관료로서 성공하려 할 때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이었다.’(253)

 

‘386년 여름에 기독교로 개종 …… 13년 뒤에 쓴, 기독교권에서 가장 감동적인 저서의 한 권인 [고백록] …… 그가 태어났을 때 모니카는 그를 교회로 데려가 유아세례를 받게 했고, 조금 자란 뒤에는 교리문답 학교에 입학시켰다. (당시로서는 유아들에게 세례를 주는 것이 다소 보기 드문 일이었다) …… 사춘기에 …… 신앙을 버리고 성적 쾌락에 탐닉하게 되었다 …… 9년간 아우구스티누스는 마니교에 빠져 지내면서 여러 친구를 진지한 마니교 신도로 개종시켰다 …… 387년 부활절 전야에, 그는 아들과 함께 암브로시우스에게 세례를 받았다.’(255)

 

게다가 주께서 비유로써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누가14:23)고 하시지 않았던가? 이런 생각 때문에 아우구스티누스의 마음은 주저와 고통을 안은 채 탄압 정책을 받아들이는 쪽으로 움직였다.’(261)

 

‘410년에 로마가 알라릭과 고트족에게 함락되었다 …… 이런 혼란의 와중에서 역사를 운행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에 관한 질문들이 다급하게 제기되었다. 어찌하여 성 베드로와 성 바울이 자기들의 도시를 구원하는데 무력했는가?’(263)

 

펠라기우스는 브리타니아의 수사로서, 여러 해 동안 로마에서 살면서 도덕주의자와 영적 지도자로서 상당한 명성을 얻은 사람 …… 갓 태어난 아기에게 악의 요소가 있다는 생각을 부정하는 데로 나아갔다. 아담의 죄가 초래한 결과는 치명적으로 악한 불순종의 시범을 보여준 것일 뿐, 후손에게 죄나 사망을 전가한 것은 아니라고 그는 생각했다. 아담은 죄를 지어 필멸의 존재가 된 것이 아니라, 지음을 받을 때부터 그런 존재였다고 했다 …… 펠라기우스에 따르면, 이렇게 유아에게 죄가 없다고 해서 갓 태어난 아기가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 안에서 구속을 받을 필요가 없다는 뜻은 아니라고 했다. 요한복음 3장에 비추어 볼 때. 세례 받지 않은 사람은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것이 분명하다고 했다 …… 세례 받지 않고 죽은 아기들은 자연의 복이 거하는 제3의 장소 곧 림보로 들어가야 한다고 했다.’(267)

 

아우구스티누스는 자신의 삼위일체 교리에서 어떻게 해서든 아리우스주의와 성자 종속설의 요소를 제거하려고 했다. 따라서 삼위일체의 통일성을 고수하기 위해 성령께서 성부와 성자께로부터 나오신다고 주장해야 했다 …… 사람의 인격 안에는 기억’ …… 과 지성과 의지로 이루어지는 삼중 요소가 있다고 다소 자신 없게 주장했다. 지성은 성자이신 신적 이성의 반영이고 의지는 성령이신 사랑을 비추어 주는 거울이라고 했다.’(276)

 

로마 교회가 자연스럽게 지도자의 역할을 수행하게 된 기원 …… 1세기가 저물기 전에 로마교회가 고린도 교회의 분쟁에 형제애를 가지고 개입 …… 좀더 거슬러 올라가자면, 사도 바울이 예루살렘 교회의 권위에 대해 지녔던 독립적인 태도 …… 로마 교회의 지위를 높이 올려놓은 것은 2세기에 이단과의 투쟁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 사실과 …… 자신들이 사도적 전승의 수호자라는 인식이었다 …… 마태 16:18베드로 본문은 카르타고의 키프리안과 로마의 스테파누스가 세례 문제로 큰 갈등을 겪을 때 스테파누스가 그 본문을 변호 수단으로 삼은 3세기 중반 이전에는 로마의 지도권과 권위에 관한 논의에서 이렇다 할 역할을 수행했다고 볼 수가 없다. 그리고 382년 이전까지만 해도 이 베드로 본문이 수장권 주장에 신학적, 성경적 토대를 제공할 만큼 중요성을 띠지 않았다.’(278)

 

아리우스 논쟁으로 벌어진 투쟁은 교회회의의 신망을 약화시켰다 …… 대립적인 교회회의들이 양립 불가능한 선언들을 내놓는 사례들이 많았기 때문이다.’(278)

 

사도 베드로가 로마로 오기 전에 안디옥 교회를 감독했다는 전승 …… 역사적 계승이라는 이 사실은 마태 16:19에서 사도들에게 위임된 매고 푸는권세의 법적 유산을 부여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었다.’(280)

 

다마수스 때 로마 교회의 관습을 따르도록 권장하는 정책이 밀라노의 암브로시우스에 의해서 크게 촉진되었다 …… 모니카가 교회마다 예배식이 다른 점 때문에 겪은 고충을 토로했을 때, 암브로시우스는 무엇이 됐든 지역 교회의 전승을 따르라고 조언했다. 밀라노에 있을 때는 밀라노 방식을, 로마에 갈 때는 로마의 방식을 따르라는 것이었다.’(281)

 

‘5세기의 가장 위대한 교황은 레오 1(440-61)였다 …… 그는 성 베드로와 성 바울이 로물루스와 레무스가 로마 시의 수호성인으로서 지녔던 지위를 대체했다고 설명했다 …… 그는 교인들이 성 베드로 성당 계단에 기독교와 태양 숭배를 혼합하는 행위를 비판했다. 우연히 어떤 추문을 처리하다가 마니교가 자기 회중 사이에 상당히 깊게 침투한 사실을 발견한 그는 미사 때 잔을 받는가의 여부를 주의 깊게 살펴서 마니교도들을 가려냈다(마니교도들은 음주를 죄악시했기 때문에 성찬 때 떡만 받고 싶어했던 것이다) …… 레오는 스스로를 단순히 역사적 의미를 넘어서는 성 베드로의 계승자로 믿었다. 서신을 작성하거나 설교를 할 때도 성 베드로 자신이 말하고 쓰고 있다고 믿거나, 아니면 적어도 청중과 수신인들이 자신의 말을 성 베드로의 것으로 받아야 한다고 믿었다 …… 레오가 성 베드로 성당에 묻힌 최초의 교황이었다.’(285)

 

‘6세기 전반에 활동한 로마의 교회법 학자로서 기독교 시대를 연대 계산 체계로 도입하게 만든 장본인인 디오니시우스 엑시구스.’(286)

 

야만족의 이주는 점진적이고도 통제를 받아가며 이루어졌다 …… 375년부터 상황이 돌변 …… 훈족 …… 고트족 …… 406 12 31일에 라인강이 얼자 반달족과 알란족과 수에비족이 인명 희생에 아랑곳없이 갈리아로 쏟아져 들어왔다(반달족만 해도 강을 건너다가 2만 명이 죽었다고 한다). 2년 뒤에 …… 스페인 …… 429년에 반달족은 지브롤터 해협을 건너 아프리카로 밀려들어간 뒤 439년에 카르타고를 함락하고는 그곳에 해적 왕국을 세웠다.’(289)

 

처음에 서방 사람들은 야만족들을 자기들이 진정으로 회개하면 곧 제거될 하나님의 일시적인 회초리쯤으로 생각했다 …… 침략자들이 정착할 것이라고는 예측하지 못했을 것이다 …… 정치적 위협이 증가하자, 그들을 평화로운 사람들로 만들어야 한다는 절실한 요구 때문에 선교 사업에 큰 탄력이 붙게 되었다.’(289)

 

고트족 가운데 상당수는 이미 4세기에 울필라스에 의해 기독교로 개종했는데, 그들이 받아들인 것은 정통 신앙이 아니라 아리우스주의였다 …… 서고트족을 대상으로 전도를 했으며, 그 과정에서 고트어 문자를 창안하고 성경을 고트어로 번역했다 …… 문명화된 로마 세계 안으로 이주한다는 것은 곧 기독교를 받아들인다는 것을 뜻한다는 게 당시의 일반적인 견해였다.’(290)

 

제국을 침공한 게르만 부족들 가운데 프랑크족만 506년에 이른바 새 콘스탄티누스인 왕 클로비스와 더불어 처음부터 가톨릭 정통 신앙을 받아들였다. 부르군트족과 수에비족과 서고트족이 차례로 아리우스주의를 버리고 가톨릭 신앙을 받아들인 것은 6세기 말에 가서나 이루어진 일이다.’(291)

 

‘476년에 야만족 장군 오도아케르가 유명무실한 황제 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를 라벤나로 귀양을 보내고 직접 이탈리아 으로 자임하기로 결정함 …… 르네상스 이후부터 476년이라는 해는 서방 제국이 최후에 멸망한 시점으로서 깊은 상징적 중요성을 띠게 되었다. 하지만 당시에는 이런 시각으로 보지 않았다. 당시로서는 바뀐 것이 그다지 많지 않았다 …… 당시 사람들이 받은 심리적 충격은 410년에 알라릭이 로마를 약탈했을 당시에 비해 대수롭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 오도아케르가 동고트족 테오도릭에 의해 공격을 받고서 살해 …… 테오도릭의 치하(493-526) …… 로마의 유서 깊은 원로원 계층 지주들은 과거와 다를 바 없이 풍족한 생활을 누렸다. 변한 게 하나도 없었다.’(292)

 

청교도적 화상파괴론자들에 대해서도 교회 내의 그림들과 조각상들이 가난하고 못 배운 사람의 성경이라는 이유로 그대로 둬야 한다고 변호했다. 교회가 고대 이교 신전들과 축일들을 접수하여 거기에 기독교적 의미를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296)

 

로마는 비잔틴 제국의 도시였고, 7세기 내내 그 상태로 남았다. 교황은 콘스탄티노플 황제의 신민이었다.’(296)

 

‘6세기 말경에는 이교도 국가인 켄트(Kent) 왕국(켄터베리를 수도로 삼은)이 험버 강 이남까지 잉글랜드의 대다수 지역을 다스렸다 …… 켄트 왕국의 수도인 켄터베리가 아우구스티누스의 교구이자 선교 중심지가 되었고, 그 뒤로도 계속 그 지위를 유지했다.’(299)

 

그리스도인들은 할례를 유대교에 국한된 형태로서, 이방 그리스도인들에게 부과할 의도로 제정된 것이 아니라고 간주했다. 하지만 이방인 개종자를 유대교 회당에 받아들이는 의식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던 세례는 그대로 견지했다. 유대교 유월절의 떡과 포도주 …… 최후의 만찬과 십자가 사건과 결부시킴으로써 강렬한 의미를 부여하여 받아들였다.’(300)

 

일찍이 사도 바울의 시대에 그리스도인들이 주님의 부활을 기념하여 일요일에 모여 예배를 드리는 것이 관습이 되어 있었다. 이렇게 주일이라는 주중의 하루를 부활과 결부시킨 것이 근거가 되어, 어느 정도 세월이 흐른 뒤에는 부활절을 유대인의 유월절(파스카)인 니산월 14일에서 그 다음에 오는 일요일로 옮기게 되었다 …… 4세기에 접어들면 교회력에 승천일과 그리스도 탄생일이 포함되는데, 후자는 그리스 동방에서는 1 6일에, 서방에서는 12 25일에 지켰다.’(301)

 

유대교의 관습은 매주 월요일과 화요일이 금식일이었다. 적어도 1세기가 저물어갈 무렵에 그리스도인들의 금식일은 수요일과 금요일이었다 …… 4세기 초엽에는 부활절 전의 금식이 동방 그리스에서는 이레 동안 계속 되었으나 서방에서는 사십 일이나 계속되었다. 사십 일 사순절은 337년에 서방에서 유배 생활을 하다가 돌아온 아타나시우스가 서방 그리스도인들의 진지한 금욕 생활에 부끄러움을 느끼고서 최초로 그리스 교회들에게 보급했다.’(301)

 

성찬은 주로 주교가 집례했고, 그의 부재시에는 장로나 집사(부제)나 혹은 예외적인 경우에는 평신도가 집례했다. 아프리카에서도 그랬듯이 로마에서도 물세례가 끝난 뒤 수세자에게 기름을 발라주었다. 하지만 이 순서는 보편적인 것이 아니었다.’(302)

 

‘[디다케] 저자는 원칙상 강이나 호수에서 세례를 거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여겼지만, 실제로는 1세기가 넘어가기 전에 수세자의 머리에 세 번 물을 바르는 방식으로 세례를 거행하는 것이 관습으로 굳어져 있었다 …… 세례는 그리스도와 함께 죄에 대해서 죽고 새 생명으로 다시 살아나는 것을 뜻했다. 그런 이유에서 부활절 및 오순절과 각별히 연관되었다. 같은 이유에서 세례당을 지을 때는 주께서 여덟째 날에 부활하셨음을 상징하기 위해서 팔각형으로 짓는 경우가 많았다.(이 여덟이라는 수의 상징적 의미에 관해서는 베드로 전서 3:20을 참조하라).’(303)

 

‘2세기 초에 나타나는 본문들(디다케, 안디옥의 이그나티우스와 순교자 저스틴의 글)은 그리스도인들이 일요일에 드리던 대 예배가 무엇보다도 유카리스티아 곧 감사를 위한 예배, 즉 성찬을 위한 예배였다는 데 동의한다.’(304)

 

상투스(Sanctus. ‘거룩하다라는 문구가 세 번 들어간 찬송).’(309)

 

신조(the Creed)는 세례식에 고유하게 쓰였으며, 후기에는 성찬식에도 쓰였다. 어쨌든 서방의 세례 신조는 이른바 사도신경’(Apostles’ Creed)이었던 반면에, 동방 그리스는 세례식 때 325년의 니케아 신조를 사용했다.’(314)

 

온 교회가 사용한 최초의 사도적 전례란 신기루와 같은 것이다.’(315)

 

‘4세기 로마에서는 이런 시골 소교구 교회들을 가리켜 명의교회들’<title-chruches>이라고 했다. 왜냐하면 이 교회들은 설립 당시의 기부자들의 이름을 교회명으로 사용했고, 그들의 기부금으로 성직자들의 사례금을 주었기 때문이다.’(315)

 

히폴리투스는 [사도 전승]에서 그리스도인들이 하루에 일곱 번, 즉 해 뜰 때, 저녁 등불을 켤 때, 잠자리에 들 때, 한밤중에, 그리고 혹시 집에 있을 경우에는 그리스도의 고난과 관련된 시각들인 3시와 6 9시에 기도를 드려야 한다는 지침을 적었다 …… 400년경에는 적어도 주중의 특정 요일들에 아침기도와 저녁기도를 교회에서 성직자와 함께 드리는 것이 보편화되었다 …… 대바실리우스의 수도회칙에는 여덟 가지 성무가 있었다. 하지만 요한 카시아누스가 주교하던 마르세유 지방에서는 일곱 가지밖에 없었다. “내가 하루 일곱 번씩 주를 찬양하나이다라고 말한 시편 저자의 관습을 따른 것이다. 로마에서는 500년경에 성무일과가 여섯 가지였다.’(317)

 

초창기 기독교 찬송은 회당 찬송을 그냥 인수해서 사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이것은 예를 들어 히브리어 알렐루야가 번역되지 않은 채 찬송에서 계속해서 쓰인 이유를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된다.’(318)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는 어떤 유형의 음악이 기독교적 용도에 적합한지를 논한 최초의 기독교 저자이다. 그는 찬송이 연애의 무곡과 비슷한 유형이어서는 안 되며, 선율은 반음계를 피해야 하며 엄숙해야 한다고 지시한다.’(320)

 

종교적 춤은 유대교 전승에서뿐 아니라 …… 디오니소스교 같은 이교 제의에서도 승인되었다 …… 예술 형태인 발레도 고대에는 저속하고 대단히 선정적인 행위로 간주.’(320)

 

아우구스티누스는 [고백록]에서 자신이 밀라노에서 불렀던 시편 찬송이 얼마나 감동적이었는가를 기록하면서, 찬송을 부를 때 가사보다 선율을 더 중시할 경우 큰 죄책감을 느끼긴 했지만 가사에 아름다운 선율이 붙을 경우 가사의 의미가 훨씬 더 크게 깨달아졌다고 토로한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음악으로 표현하지 못할 인간의 정서는 없으며, 교회 예배에서 음악을 제거하는 것은 쓸데없이 경직된 행위라고 주장한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불렀던 찬송은 오늘날을 들을 길이 없다.’(321)

 

십계명의 제2계명은 하나님을 어떤 상으로 새겨 만들지 말라고 금했다. 터툴리안과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 모두 이 금령을 그리스도인들에게 구속력 있는 절대적인 명령으로 간주했다 ……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는 그리스도인들의 도장 반지에 적합한 그림에 관해 지침을 준다. 고대에는 도장 반지가 사치품이 아니라 사회 생활에 꼭 필요한 물품이었다 …… 비둘기나 고기나 배나 수금이나 닻 같은 기독교적 해석이 가능한 문양을 도장에 새겨 넣도록 권한다 …… 이교 사회에서도 통용될 수 있는 것 …… 그 문양들은 종교적 혹은 도덕적 관점에서 중립적인 것 …… 그리스도인들이 일찍부터 사용하기 시작한 또 다른 전통적인 문양은 기도하기 위해 치켜든 손을 묘사한 오란스였다.’(323)

 

초기의 기독교 교회당들은 주로 개인의 자택들이었고, 콘스탄티누스 때까지 그런 형태를 유지했다 …… 초기 기독교 회화가 처음 등장한 곳은 교회당들이 아니라 로마 지하묘지(카타콤)였다 .….. 공작은 불멸을, 비둘기는 내세의 평화를, 무엇보다도 물고기는 헬라어 단어들의 머릿글자들을 모으면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 구주를 상징했다. 물고기는 그리스도인들이 특히 성찬 때 즐겨 사용한 문양이었다.’(324)

 

중세의 베로니카 전설 …… (각주. 베로니카의 전설은 여러 전설들이 아주 복잡하게 뒤섞여서 생겼다. 4세기까지는 혈루증 앓는 여인이 베레니케라는 여인이었다. 400년경까지 유행한 아브가르 전설의 한 가지 형태에 따르면,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초상화를 베레니케라는 에데사의 공주에게 보내셨다고 한다. 두 명의 여인은 동일인이 되었고, 라틴 서방에서 그 이름은 베로니카가 되었다).’(327)

 

마리아 숭배는 400년에 접어들면 이미 개인 신앙의 맨 윗자리를 차지하고 있었고, 머지 않아 공식 전례에까지 들어가게 되었다. 마리아에게 봉헌된 교회로 알려진 최초의 교회는 431년에 공의회가 열렸던 에베소 교회이다.’(327)

 

단성론파의 신앙에서 인간으로서의 그리스도는 더 이상 그다지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 그리스도의 부활을 하나님의 부활로 보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그리스도와 나머지 인류 사이의 유대감이 상실되었기 때문에, 신자들은 갈수록 마리아를 구속받은 인류의 완전한 대표로 바라보게 되었다.’(328)

 

화상(icon)들은 수면 밑에서 깊은 불신과 의혹의 대상이 되다가 마침내 8세기에 격렬한 화상 파괴 논쟁을 촉발시킨 불씨가 되었다 …… 그리스도를 심판대에 앉으신 전능하신 주님으로 묘사한 화상은 제우스의 화상들에서 착상을 따온 것이었다. 하나님의 어머니를 그린 초상들은 고대 이교 세계가 숭배하던 지모신의 상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일반 대중의 마음에 성인들은 지역의 영웅들과 신들이 수행하던 역할을 수행해주고 있었다.’(329)

 

‘5세기 초에 활동한 최초의 교회사가 가이사랴의 유세비우스는 기독교 사회가 등장한 역사를 정부의 박해, 이단들의 이탈, 그리고 이교 같은 장애와 공격을 하나하나 정복해 나간 과정으로 보았다.’(331)

 

사도 시대의 핵심 쟁점들은 교회와 이스라엘의 연속성과 불연속성에 관한 것 …… 결과적으로 교회는 구약성경을 조금도 남김 없이 편안하게 느끼지 못했을 수도 있었지만, 그럴지라도 구약성경 없이 존립할 수가 없었다.’(332)

 

속사도 시대(대략 70-140) …… 예루살렘이 로마에 의해 함락 …… 유대 기독교 회중들은 중요성을 상실 …… 무게 중심이 대도시들에 자리잡은 이방인 교회들에게로 넘어갔다 …… 안디옥과 알렉산드리아 …… 로마였다.’(332)

 

‘2세기는 …… 성직 체계가 주교와 장로와 부제라는 보편적인 삼중 형태 …… 신약성경의 정경이 형성된 시기 …… 추측컨대 영지주의에 대한 투쟁과 정복이 교회사에서 가장 힘겨웠고 가장 결정적인 전투였을 것이다 …… 교회가 성직자 중심으로 변하면서 …… 사제는 …… 칸막이를 하기 시작한 4세기 이후부터는 평신도와 다소 동떨어진 존재가 되기 시작했다. 적어도 8세기 무렵이나 혹은 그보다 이른 시기에, 라틴어 미사경본을 회중이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로 나직한 소리로 낭송하는 것이 보편화되었다.(각주. 대 성체 기도를 조용히 낭송하는 행위는 5세기 시리아에서 최초로 시행되었다 …… ) …… 신앙을 변호하고 해명하는 글을 쓴 순교자 저스틴과 ……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와 오리겐 …… 다음 세대에 리용의 이레니우스와 카르타고의 터툴리안은 기독교 교리를 이단들의 그릇된 주장들에 극명히 대조하는 방식으로 체계와 논리를 갖춰 진술하기 시작했다.’(333)

 

‘3세기 중반에 이르면 교회가 보다 일반 사회의 시선을 의식했고, 기독교는 식자층과 지배 계층 사이에 깊숙이 뚫고 들어갔다 …… 박해는 기독교 내부의 분열이라는 불행한 유산을 남겼다. 특히 북아프리카에서는 도나투스파가 7세기에 이슬람교의 침공을 받을 때까지 가톨릭 형제들과 첨예하게 대립한 상태로 공존했다. 콘스탄티누스가 회심했다고 해서 기독교가 제국의 공식 종교가 되지는 않았다. 기독교는 그 세기말에 테오도시우스에 의해서 최초로 국교가 되었다.’(334)

 

‘4세기는 그리스 교회들의 위대한 시대로서, 훗날 동방의 그리스도인들은 아타나시우스, 바실리우스,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우스, 그리고 요한 크리소스톰 …… 이들은 교부, 즉 권위 있는 전승의 공인된 해석가들이었다 …… 그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은 이교 부흥보다는 지루하게 계속된 아리우스 논쟁이라는 폭풍에 더 큰 곤란을 겪었다 …… 4세기에 새로운 지지자들이 교회 안으로 홍수처럼 밀려들어온 것은 금욕주의자들이 사회 생활을 등지고 고립된 공동체들로 은둔하게 된 한 가지 동기였다 …… 그리스 교회와 라틴 교회 사이의 간격은 갈수록 넓어졌다.’(334)

 

동방 교회들이 밖으로는 이슬람 정복의 타격에 직면하고 안으로는 화상 사용의 적법성을 둘러싼 논쟁 …… 이 사건들은 교회사에 또 다른 한 획을 그었으며, 교부들의 시대가 대개 서방에서는 대 그레고리우스로, 동방에서는 다마스쿠스의 요한으로 끝나는 것으로 간주하는 관습도 그런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 뒤로는 동방과 서방의 기독교 세계의 역사를 마치 하나의 이야기인 것처럼 쓰기가 훨씬 더 어려워진 것이다.’(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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