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의 허리 가우디의 뼈 - 탐정이 된 의사, 역사 속 천재들을 진찰하다
이지환 지음 / 부키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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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은 때때로 환자의 외모를 바꿔 놓는다."
"세종을 낯설게 만나야 한다."

이렇게 말한 작가 이지환은 어떻게 역사 속 천재들의 병을 진찰하고 진단할 생각을 했을까. 탁월한 추리력과 관찰력으로, 진실을 파헤쳐가며 천재들의 병과 죽음에 대해 낯설게 접근했다. 참 감격스러운 책이다.

지은이는 '들어가는 말'에서 '모든 의사는 홈스의 후배'라고 말한다. 셜록 홈스를 탄생시킨 작가 코넌 도일은 의사였고 스승 조지프 벨 박사는 탁월한 추리 실력으로 질병을 밝혀냈다. 코넌 도일은 스승을 모델삼아 셜록 홈스를 탄생시켰다. 그 일화가 책의 '들어가는 말'에 소개되어 있다. 홈스의 후배라고 자처하는 의사 이지환이 역사 속 위인들의 병을 어떻게 추적해내고 어떻게 그들의 오명을 벗겨내는지 책을 읽다보면 정말 흥미진진한 스토리에 빠져들게 된다.

- 들어가는 말 6p
의학은 한 편의 추리다. 의사는 통증이라는 사건을 안긴 가해자 질병을 탐정처럼 수색해 나간다. 이 작업은 상당히 흥미진진해서 끔찍한 학업에 지쳐 앓은 소리를 하던 의대생도 희귀 환자 증례 시간에는 눈을 반짝인다.

작가 이지환은 유려한 필체와 풍부한 전문지식으로 글을 써내려갔다. 그 만의 의학적 관점으로 역사를 재조명하고, 지식과 상식의 이면을 파들어가며 천재들의 삶을 한 편의 영화처럼 극적으로 묘사했다.

역사 속 위인들의 오해를 바로잡는 일부터 시작해서, 고통(통증) 가운데서도 열정을 멈추지 않고 인류 역사에 남을만한 업적을 남긴 천재들의 이야기를 조근조근 풀어놓았다. 병과 함께 사투를 벌인 집요함이 위대한 결과를 만들어내고야 말았던 그들의 말년이 더 빛나고 아름답게 다가왔다.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천재들은 요절했다.

나고 자란 환경과 역사적 문헌과 시대적 질병, 일기까지 추적하고 주변인들의 증언을 추적한다. 작품 속에서 보여진 병에 대한 정보들까지 모든 근거 자료들을 차근차근 탐구해가며 정확한 병명을 진단할 때까지 사려깊은 전개로 독자들을 마음을 사로잡는다. 그리고 숙연한 마음이 되어 병의 진실을 마주하고 역사속 위대한 그들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한다.

나가는 말 284p
천재들의 사소함에 주목했고 사소함을 관찰해 병을 진단해 냈다. ··· 진단은 사소함에 주목하는 시선이다. 이 시선에는 원인을 밝히겠다는 철저함과 환자를 대하는 따뜻함이 함께 한다. 

- 세종, 조선 최고의 리더는 왜 말타기를 싫어했을까?
- 가우디, 천상의 건축가는 왜 하필 해골 집을 지었을까?
- 도스토옙스키, 세계적인 대문호가 도박꾼이 된 사연은?
- 니체, 실존 철학의 선구자는 어쩌다 정신 병원에 입원했을까?
- 퀴리, 노벨상 2회 수상 과학자는 방사능의 위험을 몰랐을까?

별로 궁금하지 않았던 이야기였고 몰라도 되는 이야기였는데 읽다보니 가슴이 뭉클해진다. 지금은 잘 알려진 질병들이지만 당시로서는 알 수가 없어서 사람들에게 빈축을 사거나 미쳤다는 얘기를 들으며 그 모진 수모를 감당해내었던 위인들의 정신력은 얼마나 강한지. 아니 사람들의 평가에 신경 쓸 만한 여백도 없이, 역사에 한 획을 긋는 그 한 가지 일에 몰입해 살았던 천재들의 삶이 가여웠다.

사람들의 행동에는 저마다의 이유가 있다. 이 책에서 밝히는 것처럼 질병에 의한 것일수도 있고 어릴 적 트라우마 때문일수도 있다. 환경 때문일수도 있고 관계 때문일 수도 있으며 교묘한 의도 때문일 수도 있다. 누군가의 행동을 보고 재빨리 판단하기 전에 한번쯤은 원인과 의도를 짚어보는 과정이 필요할 것 같다. 질병 때문에 오해했던 천재들의 비루한 삶을 이해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지금의 내 모습도 가끔은 자세히 살펴볼 여유가 있었으면 좋겠다. 삶의 방향을 잃지 않도록 나침반을 자주 만지작거려야겠다. 내가 지금 무슨 일에 몰두하고 있는지, 내 감정은 무엇에 휘둘리고 있는지, 나를 만들고 행동하게 하는 것은 어떤 것들인지 짚어가며 살아야겠다.

모네와 모차르트와 밥말리, 로트레크, 니체 등 숨겨진 재미난 이야기들이 책 안에 많다. 책을 읽어보면 역사속 천재들을 재평가할 수 있는 흥미로운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가우디의 작품과 습관, 스페인산 포도주 등을 통해 그가 어떤 질병을 앓았는지를 추리한 소고(小考) 하나에서 시작한 책이 이토록 우리의 시선을 더 깊고 넓게 만들어주다니 지은이 이지환에게 기립박수를 보내며 브라보를 외친다.

*해당 도서는 '부키' 출판사로부터 도서지원을 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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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지노와 소셜 스낵 - 소셜미디어, 연결되지 않으면 불안한 중독자들
최영 지음 / 이담북스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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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을 진단하고 대책까지 마련해주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우리는 대부분 진단(판단)은 해도 대책은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정보 제공을 넘어 진실을 알리고 기술이 지배하는 소셜미디어 중독 시대를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우리가 꼭 알아야 하는 해답이 있다. 알아야 멈출 수 있다. 간절함이 발견되어야 마음을 실을 수 있다. 현대를 사는 사람들의 삶을 재조명해볼 수 있는 귀한 책이다. 이 책... 꼭 읽어보아야 할 책이다.

[카지노와 소셜스낵] - 최영 지음

이 책은 한국외국어대학교 원로교수 연구비 지원을 받아 최영교수에 의해 저술, 출판되었다.

머리글 첫문장은 이렇게 시작하고 있다.
<미래의 삶이 불투명해지고 있다.>
불투명하다는 것, 예측 불가능하다는 것은 우리를 불안하게 한다. 그 불안과 외로움과 고립감은 사람들을 소셜미디어에 기대게 하는 기제가 된다. 그러나 거기에서 만나는 공동체는 우리를 더 외롭게 하고 허무하게 한다. 안정적인 관계를 기대하기 힘들다.

우리는 소셜미디어를 주체적으로 사용한다고 착각하고 있다. 하지만, 카지노의 자극에 노출되어 계속 빠져들게 되는 것처럼 거기서 헤어나지 못하고 중독에 빠져들고 있다. 불안과 같은 심리적 문제가 해소되는 체험을 학습하면서 중독이 된다. 그래서 특별한 목적 없이 습관적으로 스낵을 먹듯 소셜미디어에 접근하는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기술 사제(기술 권력)는 테크노폴리를 구축한다. 은밀한 감시와 통제를 통해 우리를 들여다본다.  테크노폴리에 속한 개인은 사색과 비판 없이 소셜미디어에  의해 조종받게 된다. 우리는 기술의 편리함에 길들여져 엘리트주의와 능력주의, 집단 이기주의 속에 파묻히고 급변하는 네트워크 사회에 속수무책으로 휩쓸리는 사회의 대표적인 병리현상 속에 놓인다. 과연 치료가 가능할까. 사람들에게 스마트폰 없이 살아보라고 강요한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이 책은 Intro, 본문 3장, Outro로 구성되어 있다.

Intro는 테크노폴리를 설계하고, 통제하고, 유지하는 기술 전문가 집단은 신흥 종교의 사제와 같은 힘과 권력을 지닌다. 기술 사제에 의해 구축되는 네트워크 사회의 모습과 의미를 논의하였다.

1장 '기술과 디자인'은 테크노폴리 구축의 근간이 되는 다양한 설득 기술과 디자인에 관해 설명했다. '주목 경제'와 '행동 디자인'에 대한 논의를 진행했다.

2장 '중독 사회'에서는 중독사회의 실체를 이야기하였다. '기술 중독'과 '인터넷 중독'에 대해 논의하고 '중독의 늪'에서 소셜미디어 중독 현상과 그 이면에 자리한 인간의 심리를 조망하였다.

시도 때도 없이 소셜미디어에 접속하는 소셜 스낵킹social snacking, 상대방 앞에서 무례하게 스마트폰만 들여다 보는 퍼빙phubbing, 업무 중 딴 일을 하는 사이버로핑cyberloafing, 스마트폰 부재에 따른 공포를 의미하는 노모포비아nomophobia 등 소셜미디어 중독으로 인한 다양한 부작용을 소개하였다.
배제됨의 공포를 의미하는 포모FOMO, 수치심, 공의존, 자존감 저하, 흔들리는 정체성 등의 논의를 통해 소셜미디어 중독의 심리적 요인에 대해서도 알아본다.

3장 '중독 사회 처방전'은 중독 사회를 극복하는 길을 모색하였다. 디지털 미니멀리즘, 슬로우 미디어, 저정보 다이어트, 미디어 리터러시 등 소셜미디어 중독 해결을 위한 다양한 접근과 관점, 한계와 문제점을 논의했다.

'마음챙김 가이드라인'에서는, 증상만이 아니라 기저 원인을 포함하는 병인론적 치유에 대한 논의를 통해 총체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주었으며 산책과 독서를 이야기했다.

Outro에서는 '쓸모없음의 유용함 usefolness of useless'에 대해 이야기하였다. 사회에서 내버려진 가치를 되새겨 보고 능력주의, 신자유주의, 수치 경쟁 등 사회적 병리가 우리의 사유와 행위를 어떻게 옭아매고 신뢰와 사회자본, 공동체의 형성을 어떻게 저해하는지를 보여주었다. 무용지용(無用之用), 쓸모없음의 유용함을 시간, 장소, 삶의 의미를 되새기며 살펴본다.


(83p-84p)
소비자의 마음을 강탈하는 분위기와 환경에 대해 '해리스'는 여덟 가지 명제를 통해 소개하고 있다.
- 메뉴를 통제한다면, 선택을 제어하는 것과 같다.
- 수 억 명의 소비자 주머니 속에 간이 슬롯머신을 집어넣어라.
- 소외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상상을 초월한다.
- 사회적인정 욕구를 주목하라.
- 우리는 상호 호혜 속에 살아간다.
- 바닥이 없는 그릇, 무한한 욕구 그리고 자동화 환경에 주목하라.
- 끊임없이 방해하거나 그럴듯한 서비스를 제공하라.
- 서비스의 논리를 이용자의 논리와 묶어라.
문제는 현재의 기술, 특히 스마트폰에 내재된 설득 장치는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는 점이다. 우리가 소셜미디어에서 흘리는 수많은 디지털 정보 부스러기들은 또 다시 기술 기업의 데이터 센터에 축적이 되면서 자체의 머신 러닝 시스템을 통해 새로운 장치와 기제를 개발하는 데 활용된다. 그렇게 다양한 자극과 인터페이스의 효과와 기능을 끊임없이 테스트하고 점검하면서, 우리가 특정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할지, 미래에는 어떻게 행동할지, 우리의 행동을 완벽하게 예측할 수 있는 시스템을 완성시켜 간다.


(220p)
침묵은 무엇이 없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존재하는 것을 되새기는 것이다. - 고든 헴프톤
우리는 상존하는 실체 자체와 싸우는 것만으로는 변화를 가져올 수 없다. 무언가를 바꾸려면 기존의 모델을 낡은 것으로 만들 수 있는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

(227p-228p)
기술이 우리의 오감 전체를 다양한 설득 기제로 자극하고 우리의 뇌를 점령하는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기본으로 돌아가서 마음챙김 등 면역을 길러야 하고, 회복 탄력성 이론처럼 무너져도 일어설 수 있는 내면의 힘, 내면의 근육을 키워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산책과 독서는 우리가 비교적 쉽게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이다. 산책은 육체적인 활동이고 독서는 정신적인 활동이지만 두 가지 다 컴퓨터나 스마트폰으로부터 우리가 벗어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준다. 소셜미디어로 엉클어진 우리의 뇌는 산책과 독서를 통해 제 자리를 찾을 수 있다.

이 책에서 말하는 9원칙을 잘 읽어보자.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 녹아있고, 눈을 떠서 벗어나야 하는 이유가 보이며, 이겨낼 수 있는 방법이 보인다.

■ 9원칙
- 우리는 모두 소셜미디어 중독 상태이다.
- 소셜미디어 중독은 사회 중독으로 병리적 현상이다.
- 교육에서의 소셜미디어 활용은 매우 신중하게 접근되어야 한다.
- 기술에 내재된 이데올로기와 가치에 대해 의문을 가져야 한다.
- 미래의 법, 코드에 대한 이해는 필수이다.
- 소셜미디어의 중독을 소셜미디어로 치유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 소셜미디어 중독의 치유는 삶의 기본 조건 변경에서 시작해야 한다. 삶의 기본 조건이라는 것은 먹고, 자고, 놀고, 일하는 환경을 의미한다.
- 쉼과 멈춤의 유용함을 인식해야 한다.
- 독서와 산책을 통해, 기본으로 돌아간다.

(272p-마지막 페이지)
르네상스의 핵심은 인간의 본질과 삶의 의미를 찾는 것이다. 우리는 누구이고, 무엇 때문에 사는지에 대한 성찰이다. 내재적 동기를 찾아서 자아 실현을 하는 것이다. 기본으로 돌아가자는 것이다. 걷고 읽자. 비상한 경계를 하지 않는 이상, 소셜미디어는 우리 삶의 방향을 엉뚱한 곳으로 인도할 가능성이 높다. 테크노폴리의 상곽 안에 갇혀, 어떤 곳인지도 인지 못하고, 문제가 있는지도 모르는 채, 방황하며 살아갈 수도 있다.


얼마전에 <IT 사용설명서>라는 책을 읽었던 탓에 충격이 크다. 기술로 단단히 무장된 미래 사회가 나를 격앙시켰고, 조롱하듯 최첨단의 단어들이 주눅들게 했었다면, 이 책 [카지노와 소셜 스낵]은 그 깊은 늪에서 온 힘을 다해 벗어나라고 말하고 있다.
<IT 사용설명서>는 현실을 자각하게 했다면, [카지노와 소셜 스낵]은 그 현실의 왜곡과 허상을 짚어주며 진짜 인간다운 삶이 뭔지 가르쳐준다.
물론 시대를 읽는 일은 중요하다. 미래의 예측하는 일도 필요하다. <IT 사용설명서>에서 접했던 많은 내용들은 내게 큰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카지노와 소셜 스낵]에서 짚어낸 우리의 적나라한 소셜미디어 중독에 대해서도 꼭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나의 허상, 나르시시즘, 가식으로 얼룩진 자기 표현이 소셜미디어에서 너무도 많이 떠다니고 있는 것을 맞닥뜨린다. 인스타그램에 매일 사진을 올리고 카페를 광고하면서 최대한 거짓을 말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아... 그래도... 덮어버리고 싶고 삭제해 버리고 싶은 충동이 든다.

책을 읽으니 머리에 전구가 켜지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아닐꺼라고 생각했었던 진짜 나의 실체가 이 책 안에서 고스란히 드러나는 것을 발견한다. 나도 중독이었다. 스낵을 먹듯 소셜미디어를 섭취했고, 카지노에서 도박을 못 버리듯 당연하게 소셜미디어에 끌렸다. 내 시간에 구멍이 숭숭 뚤리면서 허약해져버린 실체성에 소름이 돋았다. 이건 경악해야 할 일이다. 미룰 수 없다. 지금 멈춰야 한다. 절제해야 한다.

멈출 수 있다. 변화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발견했다. 이 책은 당장이라도 실천 가능한 해결책을 주었다. 기술의 맹신 없이도 살 수 있는 자신감을 주었다. 쉼과 멈춤을 선택하라. 산책하고 독서하라.

● 이 글은 책의 '머리글'에서 많이 가져왔습니다. 정말 내용이 너무 좋아 다 옮겨 놓고 싶은 충동이 들지만, 머리말에서 책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주었습니다. 그래서 서평이라지만, 거의 머리말을 베껴놓은 듯 합니다. 기가 막히게 좋은 책입니다. 이 시대에 정신차리고 살라는 '성령의 음성'처럼 들립니다.

※ 이담북스에서 도서지원을 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너무 좋은 책에 비해 많이 못 미치는 서평을 쓰려하니 심히 부담이 되었습니다. 정말 좋은 책을 출간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소셜미디어중독 #소셜스낵킹 #인터넷중독 #미디어중독 #서평단 #이담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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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각의 번역 - 요리가 주는 영감에 관하여
도리스 되리 지음, 함미라 옮김 / 샘터사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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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요리는 허무한 일이다. 엄마가 해주시던 맛있는 음식은 손이 빚어내는 예술이었다. 계량화시킬 수 없었지만 각종 양념들이 배합되어 마지막 손맛이 첨가되었을 때 요리는 정점을 찍고 가족들의 입맛을 사로잡는 마술을 부렸다. 엄마는 식탁에 올라온 반찬들을 모두 다 먹어주길 바라며 눈을 반짝였고 혹시 손이 가지 않는 반찬이 있다면 꼭 한마디를 곁들였다. "이것도 먹어봐, 맛있어."

내가 요리를 허무하게 느낀 건 분명 결혼 후에 벌어진 일이다. 그전엔 직장생활하느라 라면도 직접 끓여보지 못했으니까. 네이버도 없던 시절, 엄마의 짧은 훈수를 전화기 너머로 듣고 밥을 하고 반찬을 하는 일은 정말 힘들었다. 두 시간 가량을 조리대 앞에서 서성거려야 반찬 서너개 만들고 국을 끓인 식탁이 마련되었을 정도이다. 결혼 당시 몸무게는 38kg 정도였으니 체력은 이미 바닥이 나 있는 상황이었다. 남편은 건설회사 말단 직원이었다. 퇴근하면 또 얼마나 식욕이 왕성했겠는가. 맛없는 음식도 맛있게 먹어치우는 남편이 고마웠다. 그러나 먹는 시간은 5분~! 체감상 5분이었을까? 너무 빨리 먹어치웠고, 맛있다, 수고했다 말 한마디 없고 식탁 교제도 없었다.(남편은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이해한다.) 남겨진 빈그릇을 설거지하느라 또 서있어야 했다. 계속되는 요리에 관한 부정적 피드백이 요리에 관한 나의 정서를 만들었다. 요리는 허무해...

[미각의 번역] - 요리가 주는 영감에 관하여 - 도리스 되리 지음

생각해보면 누구 탓도 아닌 것이다. 내가 조금만 더 진지하게 요리에 접근했다면, 요리가 이렇게 숭고한 일이라는 걸 알았었다면 절대로 허무하다는 생각 따위는 하지 않았으리라.
이 책은 내게 요리는 허무하다는 생각을 무너뜨렸다. 저자는 고향 독일의 음식과 세계 곳곳의 음식을 맛보며 그 안에서 깨달은 영감을 신나게(!) 표현했다. 육지와 바다 많은 음식 재료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그것들의 심오한 변화, 혹은 각각의 아름다운 개체가 되어가는 과정인 요리에 대해 들려준다.

음식을 어디에서 먹는지, 누구랑 먹는지, 어떻게 먹는지, 무엇때문에 먹는지, 어떤 상황에서 먹는지는 음식을 대하는 태도에 영향을 준다. 그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떤 재료로 어떻게 요리하는지다. 그에 따라 음식의 맛은 완전히 달라진다. 요리는 그저 단순히 삶고 튀기고 익히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아주 섬세하고 오묘한 과정을 거친다. 과학적이고 정서적이며 예술적이다. 그래서 나온 결과가 음식이다.

재료와 요리에 관한 이야기들이 음식의 맛을 풍부하게 한다. 요리와 음식을 마주하며 삶의 의미를 발견해 낼 줄 아는 안목이 있다는 것은 위대한 일이다. <놀이하는 인간, 놀이하는 문어>라는 챕터에서 문어에 반해 더 이상 오징어류를 먹을 수 없게 된 저자의 이야기는 재미있기도 하고 음식 재료에 대한 자세도 다시 살펴보게 한다.

(139p) "문어는 지루한 걸 좋아하지 않는다. 지루하게 있느니 어렵사리 돌려 닫은 병뚜껑을 능숙한 솜씨로 열며 노는 걸 더 좋아한다. ㆍㆍㆍ 수족관 벽에 빨판을 붙여 좁디좁은 수족관 뚜껑 틈새로 몸을 비집고 빠져나가기도 한다. 사람을 알아보기도 하고, 호불호도 아주 분명하다. 신이 나면 친구의 얼굴에 물을 분사하기도 한다. 이 부분을 읽었을 때, 나는 문어에게 반해버리고 말았다."
(140p) "놀이를 즐길 줄 아는 존재 앞에서 나는 무장해제되고 만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아주 약간의 우아함> 챕터에서 저자는 식탁에서의 태도에 관해 말한다. 아주 약간의 우아함을 찾아 꺼내어 놓고 음식을 가득 채운 접시를 앞에 두고 절을 할 수도 있을 것 같다고 말한다.

(300p) "자기 앞에 놓인 그릇 위에 음식이 담기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과 동물, 식물의 수고와 협력, 희생이 있었는지 식사 때마다 들려주지 않는다면, 우리는 세상과 단절되어 뿔뿔이 흩어지게 될 거라고 나는 믿는다."

마지막 챕터 <효모가 우리 일상에 거는 주문>에서 저자는 효모 반죽에 찬사를 보내며 우리 내부를 짚어보게 한다.

(305p) "'당신이 반죽을 빚는 것이 아니라, 반죽이 당신을 빚는 것이다.' 한 선사의 부엌에 쓰여 있던 말이다. 반죽은 현재의 당신이 어떤 상태인지 그대로 보여준다. 인내심이 없는지, 매사에 정확한지, 산만하거나 집중하지 못하는 건 아니지. 예쁘게 부풀린 효모 반죽이란 찬사와 같은 것이다."

"나는 음식을 통해 세상을 이해하고
삶의 감각을 배우고
개인의 책임을 깨달았다."
-삶의 풍미를 발견하는 맛의 산책, 책 뒷표지

나는 못 먹는 음식이 좀 있다. 그 외에는 대부분 다 '맛있다!'고 감탄하며 먹는다. 지금도 엄마는 그렇게 말씀하신다. "얘는 뭐든 다 맛있다고 해." 그러면서 좋아하신다. 표현해줘서 그럴지도 모르지만 정말 다 맛있다. 식당 음식도 어쩜 그리 맛있는지... 나는 맛있다는 말을 참 잘한다.
이 책을 읽고 덮으면서도 맛있는 음식이 머릿속에 둥둥 떠다닌다. 쭈꾸미, 잔치국수, 삼겹살, 상추, 된장찌개, 김치찌개, 피자, 파스타, 냉면도...

맛있는 음식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 자연에서 제공되는 요리 재료에 대한 경의를 표하며 요리를 하는 분들에게 경외감을 갖는다. 나는 존경한다. 요리에 철학을 가지고 정성껏 창작물을 만들어내는 예술인과 다름없는 요리사를. 그리고 음식을 먹을 때마다 모든 삶에 감사하고 함께 식탁 교제를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 있어서 감사하다. 먹을 때마다 못 먹는 자를 떠올리며 나눌 수 있는 마음을 되새기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 '샘터'에서 도서지원을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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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사용설명서 - 5G부터 메타버스까지, 일상을 바꾸는 IT 상식
김지현 지음 / CRETA(크레타)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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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점점 더 낯설어지고 있다.
급변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격변하고 있다. 내가 MS-DOS 컴퓨터를 처음 시작했던 때가 벌써 30년전이다. 어마어마한 속도로 메타버스의 시대가 도래했다.
IT(information technology)(정보통신기술)이라는 말이 이제 조금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IT 사용설명서를 읽으면서 놀랍고 신기하고 새로운 세상을 발견했다. 너무 많은 것을 모르는 내가 이런 세상의 흐름가운데 서있다. 나는 스마트폰 사용 외에 무엇부터 익혀가야 하는 걸까.

햇갈리고 모르는 용어들이 많아서 네이버 어학사전을 찾아가며 읽었다. 그러나 책의 흐름은 굉장히 쉬워서 단어의 대략적인 의미만 알 수 있다면 에세이를 읽듯 편하게 페이지를 넘길 수 있다. 굉장히 어려운 시대, 이 책을 읽기 시작하면 지금 이 시대를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책을 읽다보니 이미 IT는 일상에 깊숙하게 침투해 있고 우리는 의식하지 못하고 그것을 당연하게 사용하고 있음을 알게 됐다. 네이버나 쿠팡에서 쇼핑하고, 간편결제로 대금을 결제하며 배송 과정을 모두 확인할 수 있다. 쿠팡, 유튜브나 인스타그램, 페북에서 열어본 상품이나 정보들은 스토커처럼 나를 따라다니고, 알고리즘으로 그와 유사한 내용들까지 추천해준다.

일터에서도 IT 없이는 업무자체가 힘들어졌다. 사무실 책상 위에는 컴퓨터와 복합기가 있으며 많은 소프트웨어들은 업무를 사실상 쉽고 빠르게 할 수 있도록 돕는다. 더 나아가 문화로서의 업무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애자일 조직체계와 린 스타트업의 비즈니스 전략, 그리고 디지털 리더십이 필요하다. ICT 기술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이런 사업의 혁신이 가능하다. 일터는 이미 바뀌었고 앞으로도 계속 바뀔 것이다.

메타버스(Meta Universe, 초월적 우주), 하도 많이 들어서 이젠 모두 알것이다. 3차원의 가상세계를 뜻하는데 많은 업체들이 앞다투어 뛰어들고 있다. 메타버스는 공간감, 아바타, 몰입감을 주는 상호작용, 경제시스템 이 네 가지 요건이 갖춰져야 완성된다. 예전에 우리가 사용했던 싸이월드는 상호작용이 부족해 싸이월드를 메타버스로 볼 수는 없다. '포트나이트', '동물의숲', '로블록스'라는 게임과 '제페토', '호라이즌' 같은 SNS가 메타버스를 체험할 수 있는 대표적인 것들이다. 메타휴먼도, 암호화폐도 메타버스 안에 새롭게 자리잡을 것이다.

메타버스나 5G의 계속적인 발전은 사회를 바꾸고 문화를 바꾸며 삶의 모습을 바꿀 것이다. 초조함이 생긴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진화하면서 쏟아지는 정보의 양은 이미 생활을 침범해서 상당량의 시간을 요구하고 있는데 중년의 우리는 어디까지 경험하게 될지 추측이 어렵다. 몰라서 다음 세대를 이해하지 못하고 꼰대 노릇만 할 수도 없는 일이고, 알기 위해 공부한다쳐도 기초가 부실해 일상에 활용할 수도 없는 현실이다. 과연 우리가 모른다고 항변하며 격변을 따라잡고 있는 다음세대의 옷자락만 붙잡고 늘어질 것인가,  따라잡기 위해 뭐라도 시작해야 하는 것인가.

협박처럼 조여오는 긴장감이 느껴진다. 펜데믹을 겪으며 오프라인 대면과 교제가 어려워진 요즘, 중년의 세대에게는 고문이 따로 없다. 삶을 강제로 바꿔야 하는 시점이라고나 할까. 난감하지만 현실이다.

정말 이 책은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기 위한 필수 교재이다. 모른다고 뒤로 물러날 수 없게 만드는, IT 교재로는 너무 쉬운 책이다. 시대를 충분히 읽어낼 수 있는 귀한 책이다. 인터넷 생태계가 지배하는 디지털 세상, 이 책과 함께 중년의 우리도 도전해 볼수 있다. 모두가 꼭 읽었으면 좋겠다. 강추강추~!!!

"클라우드, 전기차, 수소경제, 사물인터넷은 우리 삶과 사회에 어떤 변화를 가져다줄까."

"메타버스는 웹, 모바일에 이은 세 번째 ICT 패러다임으로 새로운 인터넷 시대를 만들어낼 수 있으리라는 기대로 주목받고 있다. 2010년대가 모바일과 클라우드의 시대였다면 2020년대는 메타버스와 블록체인의 시대로 전망된다."

※북촌에서 도서지원을 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너무 좋은 책을 보내주셔서 진심 고맙습니다.

#북촌 #IT사용설명서 #크레타 #메타버스 #5G #IT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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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 쌓이는 가게의 시간 사용법 - 1인 회사도 대기업도 따라하는
나이토 고 지음, 정지영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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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돈이 쌓이는 가게의 [시간 사용법] - 나이토 고 지음

✏그저그런 관심끌만한 것 하나 없는 아주 평범한 카페다. 내 월급 정도만 나오면 좋겠다 생각하고 카페를 시작했지만, 너무 막연한 출발이었다는 걸 점점 더 깨닫는다.

생각보다 난관에 부딪치는 일들이 너무 많다. 예상치 못한 상황들이 빈번하고 아무리 쥐어짜도 내 능력으로는 안되는 일도 있다. 리모델링부터 셈하자면 1년이 지났다. 프렌차이즈가 아니어서 운영은 자유롭지만, 체계적이지 않은 점이 가장 큰 어려움이다. 시간 관리도 마찬가지, 작은 업체라도 짧은 시간, 높은 매출을 위해 고민하고 궁리하는 건 같다. 1년을 어떻게 보냈는지, 앞으로는 어떻게 보낼 것인지 이 책을 읽으며 생각해보았다.

✒저자 '나이토 고'는 2008년부터 서비스 산업의 생산성 향상을 위해 현장조사를 시작했다. 낭비를 최소화하고 고객을 만족시키며 매출을 늘리기 위한 체계적인 운영 방식을 고민해왔다. 그 결과 생산성 향상법을 정리해서 여러 현장을 다니며 강연도 하고 노하우를 전수하고 있다.

📌생산성이란 손님이 원하는 서비스를 낭비 없이 제공하는 것이다.

인구 감소로 소비가 줄고 고객의 요구는 구체화되는데 아무 대응도 하지 않으면 비용만 올라가게 된다. 그러나 가격은 오히려 내려가는 지금의 서비스업은 딜레마에 빠진 상태이다.

이 책은 시간을 생산성 향상의 공식에 포함시켜서 직원의 만족과 고객의 만족을 이끌어내고 매출 상승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도록 사례를 소개하고 거기에서 적용가능한 노하우를 차근차근 설명해준다.

낭비하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서는 현장 데이터의 과학적 분석이 필요하다. 계절별, 요일별, 시간별 고객의 방문량을 계량해서 직원 근무시간과 다양한 업무처리 방식을 탄력적으로 조정하고 배치해야 한다. 적정한 인원 배치나 교대 근무에 신경 쓰면, 꼭 필요한 직원을 최소한으로 현장에 투입할 수 있게 되므로 총노동시간이 줄어들어 생산성이 높아진다.

여기서 짚고 넘어갈 것, 직원은 여유시간이 많아야 의욕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고객의 만족도가 높을 때 직원도 같이 만족을 하며 의욕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이것이 선순환이 되어 매출상승을 불러오게 된다.

서비스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직원과 고객의 대화이다. 귀찮을 정도로 고객의 요구를 듣고 바로바로 적용할 수 있으려면 진정성 있는 대화가 필요하다. 현장에서 바로 서비스가 가능하도록 심플한 과정을 미리 준비해 놓는 것도 중요하다. 고객은 이런 환대를 받고 재방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2부에서는 생산성이 올라가고 시간이 단축되는 방법을 알려준다.

현황 파악하기 》 효율적으로 인원 배치하기 》 낭비 요소 없애기 》 손님의 요구 이해하기 》 전략 수정하기 》 데이터로 평가하기

📝 이 책을 집어들었을 때 정신이 번쩍 들었다. '돈이 쌓인다'는 말도 '돈 버는 곳들은 심플하게 일합니다' 라는 카피도 '돈'을 앞세웠지만, 그것보다는 '시간 사용법'이라는 제목이 긴장하게 했고 카페 운영에 도움받을 수 있을거라는 기대감이 생겼다.

혼자서 카페를 운영하다보니 '낭비하는 시간'에 대한 개념이 조금 다르게 다가왔다. 카페 손님을 환대하기 위해 필요한 자잘한 업무들은 한가한 시간에 미리 살펴보고 채워야하는데 나는 그것을 자주 놓치는 편이다. 한가한 시간에는 나도 한가하게 있고 싶은 마음이 크기 때문이다. 아직 경영 마인드가 부족한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환대'라는 말에는 격하게 공감했다. 손님들께 친밀감 있는 인사를 하고 친절하게 하며 대화를 하다보니 손님들의 재방문이 늘었다. 환대, 그것은 우리 카페를 운영하는 가치관이기도 하다. 환대는 장기적으로 보았을때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강력한 수단이 될 수 있지만, 나는 수단으로 보지 않고 목적으로 삼았기에 매출은 부수적으로 따라오는 결과가 될 것이다.

📍이 책은 작은 점포 뿐 아니라 직원을 둔 모든 업체에서 큰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책이다. 꼼꼼하게 읽고 당장 현황부터 파악해본다면 이 책의 진면목을 발견하고 실행에 옮길 수 있을 것이다. 인구감소 시대, 공급 과잉만 탓하고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 #창투사 에서 도서지원을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창업에투자하는사람들 #네이버카페창투사 #돈이쌓이는가게의시간사용법 #시간사용 #서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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