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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두 발자국 - 생각의 모험으로 지성의 숲으로 지도 밖의 세계로 이끄는 열두 번의 강의
정재승 지음 / 어크로스 / 2018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생각의 모험으로 지성의 숲으로 지도 밖의 세계로 이끄는 열두 번의 강의 – 정재승의 <열두 발자국>
- 지식이 지혜로 바뀌는 열두 번의 놀라운 경험, 경계를 넘어 새로운 생각의 우주로 안내하는 최고의 명강의
정재승 교수, ‘국내를 여행하면서 다양한 관점의 이야기를 펼쳐 딱히 쓸데는 없지만 알아두면 흥이 나는 신비한 수다 여행 프로그램’이라고 소개되어 있는 tvn의 예능 알쓸신잡의 약간 통통한(나의 모습을 거울로 보는 듯한) 둥글둥글한 몸매를 가진, 말하는 어투나 목소리도 그 몸매처럼 둥글게 느껴지는 교수님. 전국 중고등학교 과학 관련 필독서가 되었을 것 같은 <정재승의 과학콘서트>와 <물리학자는 영화에서 과학을 본다>의 저자(이글을 쓰는 과학과 아무 관련이 없는 나조차도 이 두 권을 읽었으니...). TV 속에서 유시민, 유희열과 여행 하며 잡담(?)을 나누던 교수님. 과학자, 그것도 대한민국 대다수의 고등학생이라면 어렵다고 선택하지 않는다는 물리를 전공한 과학자. 하지만 ‘과학자들은 좀 딱딱하고 논리적이고 융통성이 없고, 아니면 말이 너무 없고, 자신이 전공하는 과학 분야에만 관심이 있을 것 같다는 일반적인 고정 관념을 깨게 만든 정재승 교수. 그런 그의 책 <열두 발자국>을 읽었다.
일단 책의 표지가 살구색이다. 아니 내가 어릴 적 가지고 있던 크레파스에는 살색이라고 되어 있던 그 색과 아주 비슷한 색이다. 과학책이라면 으레 갖는 딱딱함을 책 표지에서는 전혀 느낄 수가 없다. 사실 이 책을 읽으려고 선택했을 때만 해도 책의 내용이 뇌과학과 관련된 내용인줄은 몰랐다. 수필에 어울리는 그런 모습을 가진 책이다. 책 제목도 <열두 발자국>, 너무 문학적 아닌가! 그래서 책에 대한 소개 글을 자세히 읽지 않고 정재승 교수가 수필을 썼구나 하는 생각으로 이 책을 고른 독자들은 적잖이 난감할 수 있을 것 같다. 과학이라니 게다가 뇌과학...
정재승 교수의 책 중 세 번째로 읽은 <열두 발자국>, 이전에 읽었던 <과학콘서트>나 <물리학자는 영화에서 과학을 본다>가 물리학이나 과학적 현상에 대해 지식이 많이 없는 일반인들을 위해 과학을 우리 생활 주변의 현상이나 영화 등과 관련 지어 흥미롭게 설명하고, ‘과학도 좀 재미있어요, 관심 좀 가져 줄래요?’라는 느낌을 던져주는 책이었다면, <열두 발자국>은 정재승 교수의 본업인 뇌과학과 관련하여 좀 더 전문적인(하지만 늘 그렇듯이 좀 부족한 독자를 배려해 최대한 쉽게 설명하려는 의도가 보이는) 책이라고 판단되었다.
뇌과학, 인간의 뇌에서 일어가는 각종 현상을 연구하는 것, 뇌와 관련한 인간의 심리, 인공 지능과 4차 산업혁명 등 2019년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우리 체중의 2%에 불과하지만’ 우리 행동과 심리, 선택 등 거의 모든 것을 좌우하는 ‘뇌’와 관련한 여러 지식과 연구 등으로 독자를 이끌어 가는 책이다. 그래서 인지 이전에 읽었던 2권의 책보다 더 전문적이고 어렵게 느껴지는 내용도 많고 다 읽기까지 걸리는 시간도 더 오래다.
하지만 4차 산업혁명 시대, 우리의 뇌 속에서 일어나는 여러 현상, 뇌와 창조성, 우리가 살아가기 위해 가져야 하는 삶의 태도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는 많은 내용이 담겨 있다. 그리고 인간의 지능, 창조성, 놀이, 미신, 인공지능 등에 대한 잘못 알고 있는 지식의 오류도 수정하게 해준다.
그중 인상 깊은 몇 가지만 적어 본다.
① 결정 장애는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가?
- 결정 장애라는 말을 주변에서 쉽게 쓰고 있고 나 또한 일정부분 결정 장애가 있는 게 아닌가 싶을 경우가 많다. 저자는 우리가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것은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크기 때문이다’라고 한다. 특히 우리나라는 ‘사회적 안전망(한 번 잘못된 선택을 해도 재기할 수 있는 사회적 안정망)’이 부족한 나라이기 때문에 젊은이들은 매번 굉장히 신중하게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고,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만연해 있고, 사회적 안정망이 부재한 상황이 사람들의 결정을 더욱 어렵게 만드는 것 같다고 했다.
오히려 성공을 위해서는 실패의 경험이 꼭 필요하다고 한다. 실패를 하더라도 다시 도전하고, 또 실패할 것 같아 보이는 일에도 도전해서 조금씩 성장하고 성공으로 나아가는 태도가 필요한데, 이는 어렸을 때부터 많은 분야에 도전해보고 실패하더라도 다시 도전하고 성장하는 경험을 쌓아야 한다. 이 대목에서 우리나라 교육과 입시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우리는 아직 어린 학생들에게 얼마만큼의 실패와 성공의 경험을 주고 있는지. 한번 삐끗하면 성적하락, 내신하락... 입시 실패. 곧 인생의 실패라는 생각을 심어주고 있지는 않은지, 우리사회 모두가 반성해야 하는 것 아닌가 싶었다.
② 결핍 없이 욕망할 수 있는가?
- 저자는 ‘결핍’이 사람이 뭔가를 이뤄가고자 하는 성취의 동기가 될 수 있다고 했다. 결핍이 없다면 더 이상 이뤄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결핍의 그림자(비전터널)’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어린 시절 또는 어느 한 시기에 극단적인 결핍(먹고 자는 것, 성적인 것 등 사람의 생존과 관련된 것에 대한)을 겪게 되면 나중에 그것이 충족되더라도 정상적인 삶을 살아가는데 어려움을 겪게 될 수 있다고 한다.
어린 시절의 지나친 결핍이 사람의 생각, 판단, 행동에 크나 큰 영향을 미치고 남은 동안의 삶을 뒤틀리거나 왜곡시키고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망가뜨린다면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③ 혁명은 어떻게 시작되는가?
- 저자는 이 부분에서 블록체인과 암호 화폐에 대한 이야기를 서두로 꺼냈다. 아마 블록체인, 암화화폐와 관련한 토론 후 있었던 많은 일들과 관련해서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더 있었던 것 같다. 시작은 블록체인과 암호 화폐였지만 곧 이야기는 지금까지 세상을 바꾸어왔던 기술의 혁명과 관련한 이야기로 넘어간다.
산업혁명이라는 말이 1780년대 와트가 증기기관을 발명하고 난 후 100년이나 지나 나오게 되었다는 것, 산업혁명이 100년 동안의 영국 산업 지형도의 변화에 대한 명명이며, 혁명이라 이름이 붙긴 했지만 굉장히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하는 변화였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 그리고 1960년대 사람들 사이의 위계나 계층 구조의 부정, 동등하고 평등한 사회를 꿈꾸고, 돈과 권력의 집중화에 반기를 들고 국가 권력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폭력인 전쟁에 반대하며, 모든 인간이 수평적인 관계를 맺고 자발적으로 서로 돕고 의지하면서 인간성을 회복하며 사는 사회를 목표로 삼았던 히피 정신과 이 히피 정신을 테크놀로지를 통해 구현할 수 있다고 믿고 이를 실현하고자 했던 <홀 어스 카탈로그>와 그것의 열렬한 애독자로 지금 우리가 누리는 눈부신 발전을 만들어낸 잡스, 워즈니악, 에릭 슈미트 등에 대해 말하며, 혁명은 이상이 현실에서 이루어질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의 열정적인 실천으로 이루어지는 모양이라고 한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의 책상 위에 컴퓨터가 올려 진 데스크톱 혁명, 그리고 지금 진행 중인 4차 산업혁명까지 이어가며, 블록체인 혁명의 미래를 아직은 단언할 수 없고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그 누구도 알 수 없지만 블록체인 기술의 발달로 인해 사회가 개인에게 더 나은 사회가 아닐까 하는 질문을 던진다.
그러면서 혁명은 어떻게 시작되는가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밝힌다. 혁명은 ‘아직 오지 않았기만 오기를 바라는 미래를 상상하는 능력’에서 시작된다고 했다. 전화에 컴퓨터를 넣을 생각을 했던 잡스, 데스크톱 컴퓨터를 만들기 위해 만들어졌던 ‘홈브루 컴퓨터 클럽’, 온라인 상 누구나 자신의 지식을 쏟아내고 그것이 쌓여 지식과 정보를 모두가 자유롭게 공유하는 시대가 되고 정보 불평등이 줄어들게 될 것이라는 생각에 바탕을 두고 위키피디아를 만든 지미 웨일스.. 이들의 생각이 혁명을 시작하게 만들었다.
끝으로 <열두 발자국>은 뇌과학, 인공지능, 4차 산업, 블록체인 등등 문학을 전공한 문송한 나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용어와 내용도 꽤 있었지만, 새로운 미지의 영역을 탐험하는 탐험가의 마음으로 읽는다면, 재미있게 정재승 교수의 강의를 바로 옆에서 듣는다는 기분으로 읽을 수 있는 책이라는 생각으로 책의 마지막 챕터를 닫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