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의 선물 - 제1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개정판
은희경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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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소유하고 있어 행복한 것, 상실했을 경우 불행해지는 것들을 충분히 많이 가지고 있다. 이를테면 나에게 제일 소중한 남편, 우리 가족들, 내 손으로 직접 꾸민 신혼집, 내가 아끼는 책들, 피아노와 같은 것들. 살면서 어느 누가 한 번도 상실을 겪지 않겠는가. 누구에게든 삶은 평탄할 수 만은 없어 때로는 살아가는 이를 노엽고 지치게 할 것이다. 이미 상실과 마주해본 사람은 그렇지 않은 이들에 반해 보다 냉소적으로 삶을 대하게 되지 않을까. 나 역시 과거부터 크고 작은 상실을 경험해왔고 이에 언젠가 있을 새로운 상실에 늘 대비해왔다.

나는 방송 `무한도전`을 좋아한다. 그냥 그 프로그램을 좋아해서 챙겨본다 정도가 아니라 (내 스스로 생각에는) 골수팬에 가깝다. 물론 우리나라에 무한도전 팬들이 보통 많은 것이 아니어서 누가 더 팬인지 순번을 매겼을 때 내가 상위권에 들지는 모르겠다. 멤버들의 몸개그와 만담, 깨알 같은 자막의 재치가 그 방송을 보고 있는 나를 진종일 웃게 하는 것을 깨달으며 살면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유희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재방송으로 봤던 방송을 몇 번이고 보면서 자막을 다 외웠다. 무한도전을 보고 있는 그 순간에라면 내일이 시험이든, 몸이 어디가 아프든, 그날 어떤 누구와의 관계에서 감정이 상했든 다 잊을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러다 2008년부터였나. 언제고 내가 마음이 힘에 부칠 때면 이 웃긴 아저씨들로부터 위안을 얻어야겠다 하는 생각에 무한도전 1회 방송분부터 하나하나 모으기 시작했다. 현재 400회차를 향해 가고 있는 그 모든 방송들을 외장하드 두 개에 모았다. 그리고 수시로 무한도전을 틀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지루한 집안일을 할 때도, 남편의 출장으로 쓸쓸한 빈 집에 있을 때도 나는 무한도전을 틀어놓는다. 사실 딱히 정자세로 앉아 집중해서 보는 것도 아니다. 그냥 틀어놓고 오디오를 흘려 듣는 것이다. 무한도전은 나에게 (지금은 마시지 않는) 마치 술과도 같은 존재이며 나의 이성과 감성을 정화시키는 리추얼 같은 것이다. 내 스스로 즐거움을 부여하는 기회일 뿐 아니라 고통스런 현실에서의 도피처가 되는 것이다.

나는 삶을 그다지 서정적으로 보지 않는다. 긍정적으로 매사를 대하고자 하지만 모든 것이 아름다운 결말이 될 것이라는 기대는 하지 않는다. 상실을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상실에 대비하지 못한다. 아니, 상실이라는 개념 자체를 모른다. 어쩌면 알고 싶지 않아서 일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원하든 원치 않든 모든 것은 변하고 언젠가는 상실된다. 주인공 열두 살 진희는 이미 그 것을 깨우친 것이다.

“삶이란 장난기와 악의로 차 있다. 기쁨을 준 다음에는 그것을 받고 기뻐하는 모습에 장난기가 발동해서 그 기쁨을 도로 뺏어갈지도 모르고 또 기쁨을 준 만큼의 슬픔을 주려고 준비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너무 기쁨을 내색해도 안 된다. 그 기쁨에 완전히 취하는 것도 삶의 악의를 자극하는 것이 된다”

너무 좋은 상황만 계속 될 수도 없다. 반대로 너무 나쁜 상황만 계속 되지도 않는다. 지금 눈 앞의 현실에만 매여 곧 다가올 상실을 (또는 기쁨을) 미처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작가가 소설에서 언급한 것처럼 행복하면 행복할수록 한편 그것이 사라질 때의 상실감에 대비해야만 하는 것이다. 너무 비관적인 태도가 아니냐 할지도 모르지만 인생이란 끊임없이 오르내리는 곡선 그래프와도 같은 것이니. 작가는 책 초반부에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나의 분방한 남성편력은 물론 사랑에 대한 냉소에서 온다. 사랑에 대해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 사람만이 쉽게 사랑에 빠지는 것이다. 그리고 사랑을 위해 언제라도 모든 것을 버리겠다는 나의 열정은 삶에 대한 냉소에서 온다. 나는 언제나 내 삶을 대수롭지 않게 여겨왔으며 당장 잃어버려도 상관없는 것들만 지니고 살아가는 삶이라고 생각해왔다. 삶에 대해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 사람만이 그 삶에 성실하다는 것은 그다지 대단한 아이러니도 아니다.”
모순되어 보이지만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음으로 열정은 더욱 커진다. 지금 당장의 사랑, 행복이 영원하리라 기대할수록 상실감은 더욱 커질 것이다. 아무 것도 기대하지 않는 것이 상실에 대비하는 최고의 방법이 아닐까. 나의 무한도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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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만난 다음 페이지 - 사랑으로도 채울 수 없는 날의 문장들
조안나 지음 / 을유문화사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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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때로 저자의 블로그를 드나들면서 그녀가 소개해주는 책들을 읽곤 했다.
이번에 두번째 독서 에세이를 냈다고 하여, 학교 도서관에 희망도서 신청을 해서 받아 봤다.
블로그의 글을 읽어왔기 때문에 문체가 익숙해서인지 가독성이 높았고
소개해준 책들 중 내가 읽은 책도 꽤 있어, 저자의 첫번째 책인 `달빛책방`보다 더 재미있게 공감하며 읽었다.

가족간의 불화, 부모에 대한 불만,
극히 개인적인 사생활이고 치부일 수 있는 이야기들을 서슴지 않고 책과 함께 풀어가는 것도 놀랍다.
어쩌면 저자는 그런 상황들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다독가가 된 것이 아닐까.

저자의 꾸준한 독서와 글쓰기의 이력이 마냥 부러울 뿐이다.
내가 읽어야 할/읽고 싶은 책들은 아직도 무한하게 남아있기 때문에.
그러나 그 때문에 아직 경험하지 못한 즐거움에 대한 설렘 또한 가득하다.
정말 밤은 짧고, 소설의 여운은 길기 때문이다.

어쩌다보니 김탁환의 독서에세이 `읽어가겠다`와 병행해 읽게 되었다.
우연의 일치이겠지만, 신기하게도 두 책의 리스트(책 발행시기도)가 비슷하다.
본의 아니게 두 독서가들의 의견이 어떻게 다른지 눈여겨보게 되기도 하였다.
김탁환의 책에서는 숙성된 포도주같은 부드럽고 편안한, 다작을 한 소설가의 노련미와 여유가 느껴졌다면
본 책의 저자는 30대 여성다운 감각적인 문체로 스타일리쉬한 느낌을 더했다고나 할까.
하루일과나 집안일에 대한 묘사는 마치 에쿠니 가오리의 여자 주인공들의 일상같다.
다음처럼 책을 읽고 `나만의 리스트`를 작성해보는 것도 신선했다. (내 것도 해보려고 따로 메모해두었다)


책을 남용하는 나만의 방법

* 남편에게 기분이 좋지 않음을 알리는 신호로 책을 읽는 행위를 한다.
* 듣기 싫은 강연은 책 한 권으로 물리칠 수 있다.
* 연애의 비루함이나 결혼 생활의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불륜소설을 애독한다.
* 일에 대한 열정이 식었거나, 출근하기 싫은 날 스티브 잡스나 아마존 CEO 제프 베조스의 책을 읽어 정신 단련을 한다.
* 다정다감한 섹스가 그립다면, 『채털리 부인의 연인』과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를 비교분석하며 읽고 감상문을 쓴다.
* 쓸데 없이 물건이나 옷을 샀다는 죄책감이 들면, 신간 5권을 사서 책장에 놓고 위로받는다. (혹은 값비싼 물건을 사고 싶을 땐 값이 상대적으로 싼 책을 몇 권 질러 과소비를 막는다.)


_크리스토퍼 아이셔우드, <싱글맨> 꼭지에서 (191p)


내게 위로가 되어 주는 사물들

레고 스타워즈 시리즈 / 플레이모빌 피규어 / 민음사와 열린책들 세계문학 전집 / 런던과 관련된 책자들 / 물방울 무늬의 양말 / 린넨으로 만든 테이블 매트 / 드라이 플라워 / 잘 죽지 않는 다육식물 / 극세사 담요 / 호텔에서 가져온 볼펜들 / 케이스가 조금 깨진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CD / 결혼 선물로 사 준 남편의 전자시계....


_조르주 페렉, <사물들> 꼭지에서 (234p)

최근 들어 이 책을 포함, 4권의 독서 에세이를 연속으로 읽었다. (올해 읽은 독서에세이만도 10권은 넘을 듯?)
이 책들을 번갈아 읽으며 결심한 것은, 독서에세이는 이제 그만 읽어야겠다는 것이다.
다독가들의 블로그를 통해서, 신문기사의 북 섹션을 통해서, 잡지의 피쳐 기사를 통해서,
그리고 독서에세이를 읽어가며 내가 적어둔 책의 위시리스트만 해도 엄청나다.
그러니 그 책들을 읽지 않아도 마치 읽은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인 것이다.
작가의 이름만 대면, 해당 작품은 줄줄 꿰고 있다. 줄거리도 대충은 알고 있다.
그러나 내가 아직 읽지 않은 책은 진정 나에게 온 것이 아니다. 이 것들은 애피타이저, 혹은 디저트일 뿐인데.

내가 처음 독서에세이를 읽게 된 것은 다른 이들은 무슨 책을 읽나 궁금해서였고
언젠가부터 이 것들을 남용하게 된 것은 다른 이들은 책을 읽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그들은 왜 책을 읽는지`가 궁금해서였다.

이번 여행, 이번 겨울, 곧 맞이할 새해에 읽을 책들을 고르고
책의 주인공들과 대화를 하는 것이 `내`가 되어야 하는 시간이 왔다는 생각이 든다.
한동안 같은 장르만 열심히 읽어대서 지겨워진 것일 수도 있다만.
(그러나 여전히 세련된 독서에세이에 눈길이 간다)

저자처럼 독서와 글쓰기, 이 것들을 내 인생의 페이지로 빼곡히 채워간다면
언젠가는 나도 사람들이 이렇게 읽어주는 `그 책`을 쓰는 글쟁이가 되어있겠지.
지금보다 더욱 더, 책을 오용, 남용하고프다.
반드시 그렇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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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더 가까이 - 북 숍+북 카페+서재
김태경 지음 / 동아일보사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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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단정하게 묶인 종이뭉치 그 자체로 가치있다.
한동안 휴대의 편리함으로 전자책을 애용하던 내가
최근 다시 종이책을 읽고 몇 권씩 사들이는 것도 그런 이유이다.

이 책은 잘 꾸며진 북샵, 헌책방, 개인 서재, 북카페를 소개해준다.
사진으로만 구경해도 그 분위기가 느껴져 좋다.
실제로 종이 냄새를 맡으며 커피 한 잔을 마시는 것은 더 좋다.

언젠가는 나도 북카페를 하고 싶다.
인풋 대비 아웃풋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단순한 로망이다.
그냥 책과 커피향으로 둘러싸인 나만의 아지트를 갖고 싶다는 의미이다.
남편이 행여나 정말 차려준다 해도 내가 손사래를 칠지도 모르는 막연한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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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허한 십자가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선희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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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유명한 히가시노 게이고의 책을 나는 처음 접했다.
북카페인 카페 몽실에 갔을 때 호기심에 집어들었다가
이후 학교 전자도서관에서 대출해서 마저 다 읽은.

미스터리, 추리소설류는 잘 읽지 않았는데
이번 여름은 더위를 더 많이 타서인지 유난히 장르문학에 마음이 끌렸다.
그래서 이 책을 필두로 넬레 노이하우스, 미야베 미유키, 요 네스뵈 등등
미스터리 소설들을 잔뜩 주문했더랬지.

문장이 건조해서 술술 읽기 좋다.
처음에는 조금 지리하게 내용이 전개되는 듯한데
중반부를 넘어가면 단추가 하나하나 맞춰지며 흥미로워지기 시작한다.
무엇보다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사형제도의 존립에 대한 다양한 의견들.
어느 한 쪽에 치우쳐 결론을 내리지 않기 때문에 독자를 더 고민하게 만든다.
식상한 표현이지만 사형제도라는 것은 양날의 검일 수 밖에 없는 사안인걸까.

책 내용의 스포일러가 될 지도 모르겠지만
갓 태어난 아기를 죽이는 장면은 끔찍하게 싫었다.
내가 이 책을 다 읽었던 시점이 아기를 출산한 다음이어서 그럴까.
이 부분에 감정이 심하게 이입되어 눈물이 났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다른 책들을 살펴보기는 하겠지만
이 책은 다시 읽지도, 소장하지도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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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오미와 가나코
오쿠다 히데오 지음, 김해용 옮김 / 예담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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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여름 추천 소설에 이름이 많이 올라오길래 선택해본 책.
더운 여름에 읽기 좋게 문장도 간결하다.
속도감있는 스토리 전개, 계속해서 다음 장을 궁금하게 만드는 흡입력 강한 추리소설.

별개로 백화점 외판부에서 일하는 주인공 나오미의 모습은 과거 회사 다닐 때 실적을 위해 영혼을 팔던 나를 생각나게 했다...

˝서비스업에 자아는 필요 없다. 봉사 정신은 일종의 군대식 규율에서 생겨난다˝ (1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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