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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만난 다음 페이지 - 사랑으로도 채울 수 없는 날의 문장들
조안나 지음 / 을유문화사 / 2014년 11월
평점 :
때때로 저자의 블로그를 드나들면서 그녀가 소개해주는 책들을 읽곤 했다.
이번에 두번째 독서 에세이를 냈다고 하여, 학교 도서관에 희망도서 신청을 해서 받아 봤다.
블로그의 글을 읽어왔기 때문에 문체가 익숙해서인지 가독성이 높았고
소개해준 책들 중 내가 읽은 책도 꽤 있어, 저자의 첫번째 책인 `달빛책방`보다 더 재미있게 공감하며 읽었다.
가족간의 불화, 부모에 대한 불만,
극히 개인적인 사생활이고 치부일 수 있는 이야기들을 서슴지 않고 책과 함께 풀어가는 것도 놀랍다.
어쩌면 저자는 그런 상황들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다독가가 된 것이 아닐까.
저자의 꾸준한 독서와 글쓰기의 이력이 마냥 부러울 뿐이다.
내가 읽어야 할/읽고 싶은 책들은 아직도 무한하게 남아있기 때문에.
그러나 그 때문에 아직 경험하지 못한 즐거움에 대한 설렘 또한 가득하다.
정말 밤은 짧고, 소설의 여운은 길기 때문이다.
어쩌다보니 김탁환의 독서에세이 `읽어가겠다`와 병행해 읽게 되었다.
우연의 일치이겠지만, 신기하게도 두 책의 리스트(책 발행시기도)가 비슷하다.
본의 아니게 두 독서가들의 의견이 어떻게 다른지 눈여겨보게 되기도 하였다.
김탁환의 책에서는 숙성된 포도주같은 부드럽고 편안한, 다작을 한 소설가의 노련미와 여유가 느껴졌다면
본 책의 저자는 30대 여성다운 감각적인 문체로 스타일리쉬한 느낌을 더했다고나 할까.
하루일과나 집안일에 대한 묘사는 마치 에쿠니 가오리의 여자 주인공들의 일상같다.
다음처럼 책을 읽고 `나만의 리스트`를 작성해보는 것도 신선했다. (내 것도 해보려고 따로 메모해두었다)
책을 남용하는 나만의 방법
* 남편에게 기분이 좋지 않음을 알리는 신호로 책을 읽는 행위를 한다.
* 듣기 싫은 강연은 책 한 권으로 물리칠 수 있다.
* 연애의 비루함이나 결혼 생활의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불륜소설을 애독한다.
* 일에 대한 열정이 식었거나, 출근하기 싫은 날 스티브 잡스나 아마존 CEO 제프 베조스의 책을 읽어 정신 단련을 한다.
* 다정다감한 섹스가 그립다면, 『채털리 부인의 연인』과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를 비교분석하며 읽고 감상문을 쓴다.
* 쓸데 없이 물건이나 옷을 샀다는 죄책감이 들면, 신간 5권을 사서 책장에 놓고 위로받는다. (혹은 값비싼 물건을 사고 싶을 땐 값이 상대적으로 싼 책을 몇 권 질러 과소비를 막는다.)
_크리스토퍼 아이셔우드, <싱글맨> 꼭지에서 (191p)
내게 위로가 되어 주는 사물들
레고 스타워즈 시리즈 / 플레이모빌 피규어 / 민음사와 열린책들 세계문학 전집 / 런던과 관련된 책자들 / 물방울 무늬의 양말 / 린넨으로 만든 테이블 매트 / 드라이 플라워 / 잘 죽지 않는 다육식물 / 극세사 담요 / 호텔에서 가져온 볼펜들 / 케이스가 조금 깨진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CD / 결혼 선물로 사 준 남편의 전자시계....
_조르주 페렉, <사물들> 꼭지에서 (234p)
최근 들어 이 책을 포함, 4권의 독서 에세이를 연속으로 읽었다. (올해 읽은 독서에세이만도 10권은 넘을 듯?)
이 책들을 번갈아 읽으며 결심한 것은, 독서에세이는 이제 그만 읽어야겠다는 것이다.
다독가들의 블로그를 통해서, 신문기사의 북 섹션을 통해서, 잡지의 피쳐 기사를 통해서,
그리고 독서에세이를 읽어가며 내가 적어둔 책의 위시리스트만 해도 엄청나다.
그러니 그 책들을 읽지 않아도 마치 읽은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인 것이다.
작가의 이름만 대면, 해당 작품은 줄줄 꿰고 있다. 줄거리도 대충은 알고 있다.
그러나 내가 아직 읽지 않은 책은 진정 나에게 온 것이 아니다. 이 것들은 애피타이저, 혹은 디저트일 뿐인데.
내가 처음 독서에세이를 읽게 된 것은 다른 이들은 무슨 책을 읽나 궁금해서였고
언젠가부터 이 것들을 남용하게 된 것은 다른 이들은 책을 읽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그들은 왜 책을 읽는지`가 궁금해서였다.
이번 여행, 이번 겨울, 곧 맞이할 새해에 읽을 책들을 고르고
책의 주인공들과 대화를 하는 것이 `내`가 되어야 하는 시간이 왔다는 생각이 든다.
한동안 같은 장르만 열심히 읽어대서 지겨워진 것일 수도 있다만.
(그러나 여전히 세련된 독서에세이에 눈길이 간다)
저자처럼 독서와 글쓰기, 이 것들을 내 인생의 페이지로 빼곡히 채워간다면
언젠가는 나도 사람들이 이렇게 읽어주는 `그 책`을 쓰는 글쟁이가 되어있겠지.
지금보다 더욱 더, 책을 오용, 남용하고프다.
반드시 그렇게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