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자네에게 믿는 일이란 무엇인가 - '배교자' 이승훈의 편지
윤춘호 지음 / 푸른역사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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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동에 있는 한국천주교회역사관에서 당신이 정약종에게 써준 세례증명서를 보았습니다. 기록에 따르면 정약용의 형인 정약종은 권일신을 대부로 모시고 당신에게 세례를 받았다지요. 정약종의 세례명은 아우구스티노. 아오스딩이라고도 부르는 그 세례명을 조선에서는 위오사뎡이라고 불렀다는 것을 세례증명서를 보고 처음 알았습니다. 그가 천주교 신자가 된 것을 증명하는 종이 위에 당신의 이름이 있었습니다. 이백돌이라는 이름이었지요. 베드로라는 세례명의 한글 표기였습니다.

 

당신은 내게 조선에서 최초로 세례를 받은 사람으로 기억되어 있습니다. 이승훈이었던 당신이 이백돌이 되었다가 다시 이승훈이 되고, 다시 이백돌 되었다가 또 다시 이승훈이 되는 과정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어요. 그런데 당신은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했던 베드로처럼, 예수님을 부인하고 부정하며 이백돌이라는 이름을 지워갔지요. 다산, 자네에게 믿는 일이란 무엇인가라는 책에서 당신은, 당신의 삶을 -교회에서는 배교자라고 낙인찍히고, 조선에서는 천주교의 삼흉이 되어버린- 조용히 읊조리고 있었습니다.

 

이승훈이었던 당신이 이백돌이 된 것은 1784년의 일이었습니다. 사신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북경에 갔다가 북당에서 세례를 받았지요. 당신에게 세례를 준 사람은 예수회 소속의 프랑스 선교사 그라몽 신부였지만, 당신에게 세례를 권한 사람은 이벽이었습니다. 정약용의 사돈이자, 당신 아내의 사돈이었던 이벽 말입니다.

 

그는 북경에서 세례를 받고 돌아온 당신을 환영했습니다. 그리고 자신도 세례자 요한이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지요. 무반으로 이름을 날리던 가문의 이벽을 그리스도인으로 다시 태어나게 한 것은 이승훈, 당신이었습니다. 당신은 조선에 들어와 수많은 사람들에게 세례를 베풀었지요. 뿐만 아니라 미사도 집전하며 마치 사제처럼 행동했습니다. 당신과 당신이 뽑은 동료 열 명은 그렇게 조선의 사제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당신과 동료들이 미사를 집전하고 성사를 베푸는 것은 잘못된 일이었습니다. 당신은 사제서품을 받은 사람이 아니었으니까요. 책에서 당신은 임시성직제도를 사제놀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이런 놀이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당신도 동료들도 알고 있었다고요. 그러나 나는 믿을 수 없었습니다. 당신이 독성죄를 짓는다는 걸 알면서도 미사를 집전했다는 것을, 당신이 미사를 집전하고 성사를 베푸는 일을 사제놀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을요. 적어도 내게 당신은 조선의 첫 세례자로서 진중한 사명감을 갖고 있는 사람이었으니까요. 나는 당신이 진심으로 그리스도를 사랑했기 때문에 그런 행동을 했다고 믿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나의 이런 믿음이 당신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다는 걸,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했습니다. ‘조선의 첫 세례자라는 이름이 당신의 영혼을 얼마나 무겁게 했는지 생각해보지 못했어요. 당신이 윤유일 바오로를 통해서 북경에 선교사 파견을 청하며, 당신에게 주어진 사명도 내려놓게 해달라는 편지를 보냈을 때... 그때 깨달았습니다. 당신에게 이 세상 누구도 짊어지지 않은 무거운 짐이 있었다는 것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이 죽음을 눈앞에 두고, 처남이었던 정약용에게 쓴 편지를 읽으면서 좀 놀랐습니다. 처남인 정약용을 향한 당신의 마음이 애증을 넘어 증오로 치닫고 있다는 걸 느꼈으니까요. 마지막 편지 속에서 당신은 단어를 고르고 골라, 정약용을 비약하고 있었습니다. 내가 생각했던 정약용의 이미지를 깨부수려는 것처럼, 고약한 단어와 문장으로 그를 몰아갔지요. 이 모든 일들이 작가의 상상이 만들어낸 것이란 걸 알고 있지만, 어쩌면 정말로 당신은 수많은 동료가 죽어갈 때 혼자 살아남은 정약용을 미워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책 속에서 당신이 이야기하는 모든 것이 사료와 꼭 맞아 떨어지지는 않았습니다. 당신이 주인공이 되어 펼쳐지는 이야기 속에서 어떤 것은 부풀려지고, 어떤 것은 줄어들었지요. 그래도 주석을 함께 읽으며 오해를 덜어 낼 수 있었습니다.

 

나는 다산, 자네에게 믿는 일이란 무엇인가를 읽으며 그라몽 신부에게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예수회 소속이었던 프랑스 선교사, 북당에서 당신에게 세례를 준 사제말입니다. 조선의 천주교회가 자라나는데 프랑스외방전교회 선교사들이 큰 역할을 했다고만 생각했지, 한 번도 당신에게 세례를 준 사제가 조선에 복음의 씨를 뿌리는 역할을 했다는 것은 생각해보지 못했습니다. 당신이 그라몽 신부에게 보낸 편지 흔적조차 없이 사라져버린-를 읽으며, 그가 당신에게 얼마나 큰 마음을 내주었는지, 그 마음이 조선 교회에 어떤 씨앗을 뿌렸는지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아마도 그라몽 신부는 당신을 만날 날부터, ‘미지의 세계로 불리는 조선을 위해서 기도하고 또 기도했겠지요. 그 기도 덕분에 조선에는 복음의 씨앗이 퍼져나갔지만, 당신은 괴로워했습니다. 믿음을 현실로 가지고 올 수 없어서, 믿음과 현실을 모두 끌어 안을 수 없어서. 책을 읽는 내내 믿는다는 것이 이토록 어려운 일 인 줄 몰랐다며 다산에게 호소하던 당신의 모습이 따라다녔습니다.

 

천주를 믿는 일이 무척 힘들었어. 한 번 믿으면 되는 것인 줄 알았어. 한 번 믿는다고 고백하면 그것으로 끝이라 생각했네. 그런데 그렇지가 않았네. 신앙은 내게 끝없는 결단을 요구했네. 신앙은 내게 끝없는 용기를 요구했네. 신앙은 내게 끝없는 희생을 요구했네. 신앙은 그 결단과 희생과 용기를 밑거름 삼아 성장하는 것이었어. 그러나 나는 신앙이 요구하는 것을 계속 내 줄 능력이 없었네. 아무나 천주를 믿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어.” (p40)

 

이 대목을 읽으면서 나는 당신 왜 배교를 반복하고 번복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나 또한 믿는다는 것이 괴로웠던 날들이 있었으니까요.

 

당신의 삶을 한 편의 드라마처럼 이야기 해준 당신 덕분에 조선의 천주교에 대해서, 북경에 있던 사제들에 대해서, 내가 아끼는 정약용에 대해서, 그리고 잊힌 이름인 당신 이승훈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고맙습니다.

 

당신이 다산에게 질문한 것처럼 믿음이 무엇인지, 어떻게 살아야 믿는 이로서 잘 살아가는 것인지 아직은 모르겠지만, 남아 있는 나의 생을 통해서 조금씩 깨달아 보겠습니다. 언젠가 우리가 만나게 된다면, 그때 마주 앉아 믿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겠지요.

 

이승훈 형제님, (이 호칭이 당신이 원하지 않는 호칭인지는 모르겠지만, 오늘만 그렇게 부르겠습니다.) 당신이 지금 피 흘리며 죽어간 동료들과 함께 있든 그렇지 않든 오늘은 제가 당신을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 배교자와 천주교의 삼흉 사이에서 번뇌하고 끝내 천주교를 믿었다는 이유로 사라진 당신을 위해서 말입니다. 오늘만이라도 당신의 영혼이 조금은 평안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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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알아주지 않아도 나는 다산이오 - 유배 18년, 다산 정약용의 내면 일기
김형섭 지음 / 산처럼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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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정약용. 그에게 관심을 갖기 시작한 건 교과서에서 본 편지 한 통 때문이었다. 아버지 정약용이 세상을 떠난 막내아들을 기억하며 쓴 편지였다. 정약용이 아들의 무덤 앞에 바치는 편지를 읽으면서 거대했던 정약용이 평범한 사람으로 내게 다가왔다. 그러나 그 때까지만 해도 나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내가 이토록 정약용을 파게 될 줄.


‘정약용’이라는 이름을 파헤치게 된 건 그가 유배지에서 쓴 편지들 때문이었다. 황사영 백서 사건에 연루되어 강진으로 유배 된 정약용이 마재에 남아있던 두 아들에게 보낸 편지 말이다. 처음에는 아버지가 아이들에게 보낸 편지겠거니, 하고 읽기 시작했는데 쉬운 얘기가 아니었다. 정약용에 대한 사전 지식이 있어야 충분하게 읽어나갈 수 있는 내용이었다. 어쩔 수 없이 정약용에 대한 공부를 시작했다.


시중에 나와 있는 책 중에서 편지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만한 책들을 골라 읽었다. 정민 교수가 정리해 놓은 『다산의 재발견』과 『삶을 바꾼 만남』, 『다산 증언첩』을 시작으로 여러 판본의 다산 자료들과 다산의 일생을 정리해 놓은 『다산의 한평생』을 읽었다. 그리고 다산의 둘째 아들의 시선으로 다산의 삶을 정리한 『다산의 아버님께』도 펼쳤고, 그가 쓴 산문을 번역한 책들에 이어 그가 남긴 지인들의 묘지명까지도 훑었다. 거기에 정약용이 관여했다고 전해지는 한국천주교회사 초창기의 움직임을 이해하기 위해서 『한국 초기 교회에 관한 교황청 자료 모음집』까지 들여다봤다. 그래도 나는 다산을 ‘안다’고 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각조각 이어붙인 정보들을 가지고 그가 남긴 편지를 다시 읽기 시작했다. 처음보다 훨씬 잘 읽혔다. 편지를 읽을 때마다 조선시대에 박재돼 있는 편지를 ‘지금 여기’로 불러오고 싶은 열망에 사로잡혔다. 고지식하고 꼰대같은 학자 아버지 말고, ‘사람이 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던 ‘사람 정약용’의 말들을 쉽게 전하고 싶은 열망. 나는 그 바람을 이루기 위해 내 삶의 에피소드를 얹어 그의 편지를 소개하는 『다산의 편지를 읽으며 ‘나는 사람이 되기로 했다’』를 쓰기 시작했다.


다산에 대해 글을 쓰는 것은 무척 재미있는 일이었지만, 결코 쉽지 않았다. 과거의 편지를 읽고 현재의 이야기를 엮어가기에 내 깜냥이 부족하다는 것도 깨달았다. 작년 말까지 서른여섯 개의 꼭지를 쓰는 것이 목표였는데, 스무 개의 꼭지를 완성했을 뿐이다. 열여섯 개의 꼭지를 더 쓰기 위해서 내겐 더 많은 생각이 필요했다. 그래서 다른 자료들을 살피기 시작했고, 그 무렵 ‘도서출판 산처럼’에서 『세상이 알아주지 않아도 나는 다산이오』 (이하 『나는 다산이오』로 표기)를 출간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나는 쾌재를 부르며 책을 주문했다.


『나는 다산이오』는 다산의 유배생활 18년을 일기 형식으로 서술한 책이다. 정조가 다산의 재기를 돕기 위해 사람을 보내어 책을 선물하는 장면으로 시작해, 정조의 죽음과 정약종의 책롱 사건으로 다산이 옥에 갇혀 취조를 당하고 장기(포항)으로 유배를 떠나는 일로 이어진다. 그리고 황사영 백서 사건 때문에 한양으로 압송돼 전라도 강진으로 유배를 가고 그곳에서 해배될 때까지 살아가는 다산의 모습이 그려진다.


이 책의 장점은 다산의 유배 생활을 한 흐름에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동안 내가 살펴 본 편지 관련 책을 통해서는 장기에서 다산이 어떻게 살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런데 『나는 다산이오』는 다산이 쓴 편지 뿐 만 아니라 그가 남긴 많은 기록들을 살펴 다산의 삶을 재구성했기에 그동안 여러 책에서 생략했던 다산의 날들을 생생하게 만날 수 있다.


나는 이 책을 통해서 다산이 시골 사람들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 장기에서 『촌병혹치』라는 의서를 쓰고, 큰 아들 학연이 「종축회통」이라는 농서를 남겼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나는 다산이 장기에서도 백성을 위한 저술을 했다는 것을 몰랐고, 둘째 아들 학유만 농사에 관련된 책을 썼다고 알고 있었다.) 그리고 편지 속에는 잘 드러나지 않았던 아내를 향한 깊은 마음도 알게 되었는데, 이 책을 통해서 두 사람의 관계를 조금 더 자세히 알게 되어 기뻤다. 무엇보다 유배인으로 살았으나, 하늘이 허락한 날들을 허투루 쓰지 않고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했던 그를 만날 수 있어서 고마웠다.


혹시 다산이 유배지에서 어떻게 생활했는지를 한 흐름에 읽고 싶다면, 그가 어떤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버티고 살아냈는지가 궁금하다면, 다산의 삶이 궁금한데 다른 책들이 어려워서 시작하기가 두렵다면 이 책을 펼쳐보시라!


소설인 듯 수필인 듯 술술 읽히지만, 한 권을 다 읽고 나면 다산에 관한 사료를 읽었다는 뿌듯함으로 스스로가 한 뼘 더 성장했음을 느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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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을 걷다 - 인문학자 김경집이 건네는 18가지 삶의 문답
김경집 지음 / 휴(休)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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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릿속에 담긴 생각을 덜어내려고 산책을 나섰습니다. 떠돌던 발길이 서점에 닿아 책장에 꽂혀 ‘등뼈’를 드러내고 있는 책들을 훑어보았지요. 그러다 『생각을 걷다』를 만났습니다. ‘생각’이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와 책을 빼들었어요. 그제야 ‘인문학자 김경집이 건네는 18가지 삶의 문답’이라는 부제가 보였습니다. 반가운 이름에 마음의 손을 흔들어 보았는데, 보셨을까요?      


<<생각을 걷다>>, 김경집, 휴

제가 ‘김경집’이라는 선생님의 이름을 처음 만난 건, TV에서였습니다. 한 프로그램에 선생님께서 패널로 출연해 ‘편지’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셨어요. 편지에 관해 읽고 쓰는 저에게는 반가운 이야기였던터라 선생님의 이름을 각인시켰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엄마 인문학』을 읽으며 ‘인문학자’인 선생님을 제대로 만날 수 있었어요. 엄마들과 나누고 싶은 생각이 있어서 <엄마는 교양인>이라는 책을 구상했던 저에게 참 의미 있는 책이었습니다. 그 후 『인문학은 밥이다』를 구입했는데, 그 두께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얼마나 많은 생각을 녹여야 이런 글을 쓸 수 있을까 감탄하기도 했지요. 깊고 단단한 글들을 마음이 닿을 때마다 몇 페이지씩 읽고 있는 중입니다. 『인문학은 밥이다』를 다 읽지 못했는데 선생님의 새로운 책 소식을 접했습니다.  『김경집의 통찰력 강의』였지요. 목차를 훑어보니 곁에 두고 읽으면 좋을 내용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구입했어요. 책장에 꽂아두면 언젠가 또 꺼내 볼 날이 올테니까요.      


 『생각을 걷다』는 제가 네 번째로 만난 선생님의 책입니다. 목차를 살펴보기도 전에  아무 페이지나 펼쳐 보았습니다. 제일 먼저 이런 문장이 눈에 들어오더군요.     


‘어떤 이는 내가 절에 가는 것도 그렇거니와 대웅전에 들어가서 합장하며 부처님께 인사하는 게 영 마뜩잖은 눈치다. 내가 가톨릭신자인 걸 아니 더더욱 그럴 것이다.’      


<숲을 이루는 나무의 지혜>를 시작하는 문장이었습니다. 이 구절들을 읽으며 저는  『생각을 걷다』가 제 책장에 꽂히게 되리란 걸 예감했어요. 저에게도 그런 경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래 전, 대웅전에 들어가 합장하며 부처님께 인사하던 신부님을 본 적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신부님의 행동에 적잖이 당황했어요. 가톨릭의 사제가 부처에게 인사를 하다니! 어린 저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지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 저를 향해 신부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나의 종교가 중요하면, 다른 이의 종교도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요. 그리고 ‘우리는 나와 다른 이의 종교를 존중해야 한다’고 하셨지요. 그 때 처음, 다른 이의 종교를 존중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선생님이 쓰신 문장을 읽으니 그 날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왠지 이 책을 읽다보면 엉켜있는 생각의 실타래들이 풀릴 것 같은 예감도 들었고요. 그래서 책을 집으로 데려와 본격적으로 읽기 시작했습니다.     


‘겸손은 말과 글로 배우는 게 아니라 몸으로 느낄 때 실존한다.’


‘인문 정신은 역동적이다. 물론 때론 아주 조용히 성찰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지금 우리에게 요구되는 인문 정신은 역동적이어야 한다.’     


프롤로그부터 밑줄을 긋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그러다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한 문장이 있었지요.     


‘내게 가장 역동적인 일은 책을 읽는 일이다. 남들은 책 읽는 일이 아주 정적인 일이라 여길지 모르지만 내겐 그렇지 않다. 물론 몸을 크게 움직일 일 없고 의자에 앉아 고요히 페이지를 넘기는 일이니 일견 그렇게 여길 수 있다. 그러나 책을 읽는 동안 뇌세포는 총동원되어 긴장하고 끊임없이 묻고 캐고 따지는 일에 몰두한다. 몸의 근육을 움직이는 것만 동적인 게 아니다. 뇌의 근육과 가슴의 올들이 촘촘히 일어선다. 그러니 그것만큼 역동적인 일은 달리 찾기 어렵다.’     


아! 얼마나 반가운 문장들이었는지 몰라요! 그 느낌을 저도 알거든요! 책을 읽는 게 얼마나 역동적인 일인지 말이에요. 눈은 문장을 읽지만, 머릿속은 떠오르는 생각들을 정리하느라 빠르게 돌아가죠. 손은 펜을 찾아 들고 떠오른 생각들이 사라지기 전에 적어놓느라 분주하고요. 이런 일이 부족한 게 많은 저에게만 일어나는 일인 줄 알았는데, 선생님 같은 학자도 그러신다니 내 책읽기가 이상한 게 아니구나 싶어 반가웠습니다.     


프롤로그에서 시작된 공감은 책장을 넘기며 더 커졌습니다. 히말라야 여행을 준비하고, 네팔에 도착해 산행을 시작하는 선생님을 따라 저도 여행하는 기분이었어요. 타르초가 바람에 날리는 모습도 상상해보고, 경전을 읽고 가는 바람 소리도 떠올려 보았습니다. 수없이 들어온 “나마스테”라는 말이 “내 안의 신이 그대 안의 신에게 인사합니다”라는 뜻이었다는 걸 알고, 가슴이 뭉클했어요. 그 짧은 인사가 이토록 아름다운 뜻을 품고 있었다니요! 누군가 나에게 ‘나마스테’라고 인사를 건넬 때마다 그 감격을 가슴 깊이 새기게 될 것 같습니다.     


선생님은 ‘여행은 점이 아니라 선이다’라고 말씀하셨지요. 목적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거기까지 가는 과정이 중요하다고요. 저는 이걸 ‘인생은 7번국도’라고 말하곤 합니다. 목적지까지 고속도로를 타고 한 번에 가는 인생보다, 7번 국도를 타고 가면서 바다도 보고, 꽃도 보고, 길을 거니는 사람들도 만나는 게 더 멋진 인생이라고요. 몇 년 후, 삶을 통해 생각이 자라면 《인생은 7번국도》라는 책을 세상에 내놓을 수 있지 않을까 꿈꿔봅니다.     


선생님의 글을 읽으며 지난 가을 베네딕도 왜관수도원에 머물던 날을 떠올리기도 했습니다. ‘길은 걷는 곳이기도 하지만 묻는 곳이기도 하다. 단순해지니 저절로 물음이 쏟아진다. 주변에 빼앗겼던 정신을 되찾기 때문일 것이다’라는 문장 때문이었습니다. 지난 가을, 저는 소리가 없는 곳으로 가야 숨을 쉴 수 있을 것 같아서, 홀로 피정을 떠났습니다. 복잡한 모든 것에나 벗어나 단순하게 살고 싶었어요. 수도원에서 느리게 걷고, 때론 걸음을 멈추면서 수많은 질문을 만났습니다. 질문에 대한 답을 찾으려고 마음을 모았지요. 그러나 모든 질문에 대답할 수는 없었습니다. 어떤 질문에는 대답 할 수 있었고, 어떤 질문에는 침묵을 지킬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도 좋았습니다. 홀로 고요히 머물며 대답을 찾으려 했던 그 시간들이 다시 살아갈 힘이 되어 주었으니까요. 수도원에서 보낸 며칠을 떠올리면서, 선생님 왜 그토록 걷고 또 걷는 지극히 단순한 여행을 하는지 이해 할 수 있었습니다. 


     

선생님은 안나푸르나의 3,000미터 고도에서 고산병을 예방하는 예비약이 나무와 꽃임을 깨달으셨지요. 풍경은 ‘보는 것’이 아니라 ‘읽는 것’이라는 것도 알아채셨고요. 그리고 그곳에서 네팔의 ‘미래’인 도서관도 만났습니다. 문이 잠겨있어 들어가 보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도서관이 있다는 것에 대해 감격하고 또 감격하셨지요. 저도 그 대목에서는 마음이 뭉클했습니다.     


 『생각을 걷다』에서 가장 놀라웠던 장면은 <삶과 죽음을 가를 그 짧은 순간!>이었습니다. 안나푸르나의 마지막 고개를 넘으며, 잠깐 쉰다고 돌에 앉았던 선생님이 잠이 들었다는 대목을 읽는데 걱정이 됐어요. 그래도 털북숭이 서양 남자가 선생님을 깨우고, 선생님이 일어서는 걸 확인하고 갔다고 해서 안도 했습니다. 아, 그런데 피곤에 지치고 산소가 부족했던 선생님의 몸은 자꾸 오른쪽으로 쏠렸다지요. 의식도 희미해져 가던 그 때, 갑자기 어디선가 천둥 같은 소리가 들렸다고 하셨어요. “앉아! 당장 그 자리에 주저앉아!” 선생님은 그 소리에 놀라 걸음을 멈추셨고, 그러다 돌에 무릎을 찍히고 말았죠.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둘러봤을 때, 선생님이 가파른 벼랑 끝에 겨우 앉아 있었다는 걸 알고는 전율했습니다. 히말라야 그 산길에서 도대체 누가 한국말로 선생님께 외친 걸까요? 


저는 잠시 생각해보았습니다. 네팔에 도착했을 때부터 선생님을 향해 “나마스테”라고 말하며, 합장을 하던 그들의 마음이 선생님을 살린 게 아닐까, 어쩌면 매번 미사를 드릴 때마다 선생님에게 “평화를 빕니다”라고 축복해주던 이웃들의 기도가 위험한 순간에 반짝 빛난 것은 아닐까...하고요. 그리고 더불어 생각했습니다. 선생님이 합장하며 “나마스테”라고 건넨 인사가, 하느님의 어린양을 부르기 전에 곁에 있는 사람에게 “평화를 빕니다.”라고 건넨 축복이 어딘가에서 위기를 맞고 있는 누군가를 살려낼 수도 있다고요….    




선생님과 안나푸르나를 걸으며 이리 저리 흩어져있던 생각들을 제 자리에 놓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많은 위로받았고, 다시 읽고 쓸 힘을 얻었어요. 얼어붙어 있던 마음에 새싹 하나가 돋아나는 기분입니다. 마지막으로, ‘어른은 반드시 청년의 삶에 주목하고 관심을 기울이며 세상을 바꿔줘야 한다’는 선생님의 말씀을 새길게요. 그리고 세상을 바꿀 수 없다면 ‘주저앉은 마음이라도 일으켜 세워주는 어른’이 되겠다고 다짐해봅니다. 그런 어른이 되는 길목 어딘가에서 선생님과 또 한 번 생각 위를 걷게 되기를 꿈꿔봅니다.      


고맙습니다, 『생각을 걷다』를 써주셔서.

고맙습니다, 제게 생각을 걸을 용기를 주셔서.     


                                                         2019년 1월, 글봄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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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떠보니 50 - 절대 오지 않을 것 같지만
김혜민 지음 / 한국경제신문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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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떠보니 50이라고 알려 준 김혜민 PD님께

 

언젠가 페이스북 타임라인에서 사진 한 장을 보았습니다김민식 PD와 정재찬 교수그리고 어떤 여자 분이 함께 있는 사진이었지요눈 떠보니 50이라는 책의 북콘서트 사진이라는 설명을 보고김민식PD가 새로운 책을 출간한 줄 알았습니다가운데 있던 여자 분은 북콘서트를 진행하는 아나운서인줄 알았고요그러나 제가 헛다리를 짚었다는 것을 며칠 후에 알았습니다눈 떠보니 50은 YTN 라디오 PD이자 서른 일곱의 김혜민이 쉰을 살아낸 선배들의 삶을 담아 낸 책이었으니까요북콘서트 사진 가운데 있던 사람이 바로 당신김혜민이었습니다책을 구입할까 하다가 아직 다 읽지 못한 책들이 눈에 밟혀 있는 책이나 다 읽자’ 생각했어요그런데 눈 떠보니 50’이라는 말이 자꾸 머리에 맴돌았습니다. ‘눈 떠보니 50’이라는 말몇 년 후 제게 닥칠 일이었으니까요마음이 시키는대로 책을 장바구니에 담고 결재를 했습니다다음 날당신의 책이 우리집에 도착했어요읽고 있던 책을 제쳐두고 그 책을 먼저 읽기 시작했습니다.

 

눈 떠보니 50≫ 속에는 열여덟 개의 우주가 있었습니다내가 아직 만나지 못한 이라는 미지의 세상이 있었지요당신은 그 우주로 가는 길을 다섯 개로 나누었습니다. ‘지금’, ‘’, ‘’, ‘시작’, ‘우리라는 길로 말입니다.

 

당신이 첫 번째 길에 붙인 이름표는 <바로 지금이 그대의 전성기>였습니다인문학으로 광고하는 카피라이터치매 노모를 위해 매일 삼시 세끼를 차려내는 할배마흔셋에 등단해 청소년 소설을 쓰고 있는 소설가, ‘이웃의 마음을 보듬는 심리치유자의 세상이 그 길 위에 놓였지요그들은 쉰이라는 나이는 사소한 것을 발견하고, ‘부모의 마지막 여정을 함께 준비하고, ‘폐경이 아닌 완경을 통해 삶을 완성해 나가고, ‘죽음에 대해 대화하는 때라고 했어요저는 그 중에서 사소한 것을 발견하자는 박웅현 대표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봄날>이라는 이문재 시인의 시를 읽으며 울컥 하기도 했고요저도 오토바이를 급하게 세우고 막 벙글기 시작한 목련꽃을 찍을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사소한 것에 감동하며 산다면제 삶이 더 아름다워 질테니까요.

 

<나는 여전히 청년입니다>라는 길에서는 시의 아름다움을 전하는 교수, ‘청춘합창단으로 유명한 호텔리어글 쓰는 판사, ‘빠리의 택시 운전사였던 언론인심신치유기업의 대표를 만났습니다그들은 두근거림을 회복하고, ‘직책이 아닌 나로 살아가고, ‘남의 시선에서 벗어나 개인주의를 선언하고, ‘현역으로 활동하며 스스로를 치유할 줄 아는 나이가 쉰이라고 했어요그들은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했지요이 길에서 만난 사람들은 사무엘 울만의 시 청춘을 떠올리게 했습니다그가 말했지요청춘은 인생의 어느 한 때를 말하는 게 아니라 마음 가짐을 말하는 거라고요두려움을 물리치는 용기안이함을 뿌리치는 모험심을 품고 있으면 언제나 청춘이라고요두 번째 길에서 만난 그들은 모두 청춘을 살고 있었습니다.

 

이제 저는 당신이 <너와 내가 함께 하기 위해서>라고 이름 붙인 길에 들어섰습니다그 길에는 정신분석 클리닉 원장자살예방센터를 운영하는 분, 50대 섹스의 전도자를 만났습니다그들은 말했어요. 50이 되면‘ 자녀에게 아무것도 하지 말아야 한다고아무리 죽음이 우리 삶을 덮쳐도 스스로 극복해야’ 한다고아름다운 몸의 언어에 대해 다시 공부해야’ 한다고요한 사람의 삶이라는 게 오롯이 혼자만의 것이 아님을 다시 한 번 깨달았습니다.

 

당신이 이름 붙인 다섯 개의 길 중에서 제가 가장 흥미롭게 걸은 길은 <50시작하기 딱 좋은 나이>였습니다. ‘시작하는 삶을 좋아하는 제가 가장 깊이 공감한 글이기 때문이지요이 길 위에는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시작하는 용기를 내는 PD, 50대 중반에 공무원으로 다시 태어난 아버지인공지능 시대에 필요한 윤리 가이드라인을 만든 교수의 삶이 있었습니다그들은 말했어요. ‘세상에 어떻게 쓰일지 고민해야 할 나이가 50이라고, ‘도전으로 이후의 인생을 살아갈 동력을 얻을 나이가 쉰이라고,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소비자를 넘어 창업자로 활동할 나이가 지천명의 나이라고요


저는 특별히 김민식PD와 노상호씨의 이야기가 참 좋았습니다그 열정이 어디서 나올까 싶을 정도로 시작하고 또 시작하는 김민식 PD의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였어요현역 일 때 은퇴 이후의 삶을 연습해야 한다는 말에는 밑줄을 그었고요매일 아침 써 봤니를 통해서 그를 알게 된 후자주 그를 떠올립니다어떠한 역경 속에서도 시작 할 수 있는 용기를 냈던 그를 말입니다매일 매일 새 날을 준비하는 그에게서 은퇴 이후의 삶을 준비하는 법을 배웁니다오늘의 습관이 내일을 만든다는 것도요. 50대 중반에 5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공무원이 된 노상호씨의 이야기를 읽고 뒷통수를 한 대 맞은 것 같았어요그 나이(?)에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는 것이 놀라웠기 때문입니다그리고 새 삶을 준비하며 열심히 노력한 그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파울로 코엘료의 말을 떠올렸습니다그가 연금술사에서 말했지요무언가를 간절히 원하면 온 우주가 그것을 도와준다고요노상호씨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그에게 우주는 노력이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고 또 노력한 시간들이 노상호씨의 우주가 되었다고요.

 

잠시 숨을 고르고 마지막 길에 들어섭니다. <우리의 불꽃은 꺼지지 않는다>라는 푯말이 보이는군요그 길목에서 대한민국 대표 코미디언과 뜨개질로 이웃의 마음을 보듬는 자매사회학자를 만납니다그들은 50이라는 나이를 이렇게 정의합니다. ‘남을 돕기 가장 좋고’, ‘새로운 친구를 사귀고 그들의 아픔을 함께 나누며’, ‘나의 공공성을 회복해야’ 하는 나이라고요내 욕심을 위해서 한 움큼 더 쥐기보다 내가 가진 것을 내 놓으며 함께 더불어 사는 나이가 50이라고 말입니다.

 

당신을 따라 길을 걸으며 선배들이 먼저 만난 세상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그리고 어쩌면 당신이 나눈 다섯 개의 길은 모두 같은 의미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요서로 다른 이야기 속에서 마음과 여유라는 코드를 읽었기 때문입니다. ‘지금에 의미를 부여하든, ‘에 대해 생각하든, ‘를 배려하든무언가를 시작하든, ‘우리라는 공동체에 대해 꿈을 꾸든 마음과 여유가 없으면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했으니까요그래서 시간에 쫓기지 말고원하는 것들을 하면서 50을 맞이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덕분에 50으로 가는 길을 그린 저의 지도에 새로운 길 하나를 그릴 수 있게 됐네요고맙습니다김혜민PD.

 

이제 곧 눈 떠보니 50≫ 이 되겠지만저의 우주를 아름답게 가꾸며 그 시기를 맞이해야겠어요몇 년 후에 당신이 눈 떠보니 50, 두 번째 이야기를 낼 때 저의 이야기도 한 편에 실릴 수 있기를 꿈꾸면서요당신의 우주도 안녕하기를언젠가 어느 행성에서 만나면 반갑게 악수하며 인사 나눌 수 있기를 기대하면서 이만 줄입니다당신의 50도 기대할게요.


2019년 1월 30일, 글봄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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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해리 세트 - 전2권
공지영 지음 / 해냄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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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악이 있다!”고 소리치자고 하신, 공지영 작가님께

- 『해리를 읽고

 




 

수도원에 다녀왔습니다. 높고 푸른 사다리의 주인공인 요한 수사가 사는 왜관 수도원 말입니다. 세상살이에 지쳐 조금 조용한 곳에서 홀로 머물고 싶었습니다. 나를 둘러싼 많은 것들에서 멀어지면, 나를 더 자세히 볼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교회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들도 떨쳐내고 싶었습니다. 어떤 사제에 대한 믿지 못할 이야기들이, 어떤 분노가 계속해서 저를 잠식하고 있었습니다. 해리를 읽은 것만으로도 충분히 아프고 힘들었는데, 실제 제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저를 더 힘들게 했습니다.

 

 

수도원에 도착해 소희가 묵었던 손님의 집에 짐을 풀었습니다. 저녁 기도시간까지는 시간이 남아 있어서 먼저 대성전으로 올라갔어요. 오랜만에 보는 왜관 예수님아래서, 어떤 수사님이 청소를 하고 있었습니다. 걸레를 들고 의자를 닦아내고 있는 수사님의 모습은 경건해 보였어요. 오른쪽 의자를 다 닦은 수사님은 성전 가운데 길로 가서 예수님께 인사를 드리고, 건너편으로 옮겨 가셨습니다. 그러고 나서 맨 앞줄에 앉아 기도를 하셨어요. , 청소를 다 하신 거구나... 생각했는데, 기도를 마친 수사님이 다시 걸레를 들고 의자를 닦아내셨습니다. 계획했던 하나의 청소를 마치고 기도하고, 다시 걸레를 들고 성전의 다른 의자들을 열심히 닦아내는 수사님을 보자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노동하는 수사님, 기도하는 수사님의 모습과 저를 분노하게 만든 사제들의 모습이 겹쳐보였기 때문입니다.

 

 

제가 다니던 성당은 청소하는 날이면 허리가 굽은 노인들이 걸레를 들고 나타났습니다. 노동으로 갈라지고 부르튼 손에 걸레들 들고 성당의 의자며 바닥을 닦았지요. 부활을 맞아 대청소를 할 때도 신자들만이 성당의 곳곳을 쓸고 닦았습니다. 가장 더럽고 지저분한 곳도 성당의 신자들의 몫이었지요. 그럴 때마다 성당은 신자들의 것이라는 논리가 사용됐습니다. 그러나 저는 신자로 살아온 37년 동안 성당의 그 어떤 것도 제 것처럼 써보지 못했습니다. 성당의 모든 것은 사제의 것처럼 관리되어 왔으니까요.

 

 

청소하며 기도하는 수사님을 보니, 굽은 허리로 청소하던 노인들이 떠올라 서러운 눈물이 흘렀습니다. 그러나 아마 선생님이 쓴 해리를 읽지 않았다면, 울지는 않았겠지요. 성당에서 사제들이 차지하는 것들, 교회에서 성직자가 차지하는 것들에 그렇지 머!’하고 말았을 거예요. 그런데 해리를 읽은 후, 작은 일에도 자꾸 마음이 쓰여 자주 앓게 됩니다. 해리는 저에게 너무 큰 아픔을 준 책이었어요.

 

 

사실, 해리를 읽는 게 두려웠습니다. 교회가 어떻게 무너져가고 있는지, ‘이라는 이름을 내세워 그들이 어떻게 을 행하고 있는지 그걸 알게 되는 게 두려웠으니까요. 그래서 선 듯 책을 펼치지 못했습니다. 예약주문을 해서 가장 먼저 받았는데도, 책을 펼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두려움에서 벗어나는 가장 빠른 방법은, 그 두려움의 실체와 마주서는 것이겠지요.

 

 

해리소망원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됐습니다. 가톨릭에서 운영하는 시설에서 사람들이 감금당하고, 급기야 죽어간다는 이야기였습니다. 한 사람이 어떻게 죽어갔는지 상황이 묘사되었고, 마지막 문단에는 이런 문장이 있었습니다.

 

 

특별할 것은 없었다. 이것은 지난 6년 통산 312번째, 최근 2년간 일어난 129번째의 비슷비슷한 죽음이었다.’

 

 

숨이 턱 막혔습니다. 이 문장이 선생님이 지어낸 것이 아니란 걸 알고 있었으니까요. 몇 해 전, 시사프로그램을 통해 저도 이 사건을 접했습니다. 가톨릭에서 운영하는 시설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이, 인권유린을 당하고 있다는 내용이었지요. 6년간 312명이 사망했다는 소식은 제 귀를 의심하게 만들었어요. 12명이 아니라, 312명이라니요.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방송 이후 해명 자료들이 나왔지만, ‘생명 존중을 위해서 낙태를 반대하는 곳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태아도 존중해야 한다고 하는 곳의 울타리 안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는지, 처참한 마음이 사라지지 않았어요. 해리에서 다시 만난 그 죽음이 너무 아팠습니다.

 

 

소망원 이야기를 넘기자, 어느 술집을 묘사하는 글이 나왔습니다. 접대부들이 나오는 술집에서 벌어지는 일이었지요. TV나 영화에서 자주 보았던 장면이었으니, 어색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곳에서 사제가 있다는 것은 무척 생경한 장면이었습니다. 그도 그런 자리가 어색했던지 문을 열고 조용히 나왔다고 했지요. 안개 속을 걷다가 그는 편의점에 들렀습니다. 그때 거기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청년이 유통기간이 막 지나서 곧 폐기될 음식들을 먹고 있었어요. 그 장면을 읽을 때부터 마음이 울컥거렸습니다. 청년이 사제를 알아보고 말을 건네고 급기야 술이 깬다는 바나나 우유를 건네는 대목을 읽으면서 저는 엉엉 울었습니다. 도대체 누가 누구를 위로하고 위안해야 하는지, 가슴이 먹먹해서 책장을 넘길 수가 없었어요.

 

 

숨을 고르고, 다시 책을 읽었습니다. 뉴스텐 기자 한이나와 그의 오래전 친구인 이해리의 이야기가 펼쳐지면서 책장을 넘기는 속도가 빨라졌어요. 도대체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갈지 궁금했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궁금증은 또 다시 분노로 뒤바뀌었지만, 해리를 읽는 속도는 점점 빨라졌습니다. 선을 가장해서 오는 수많은 악들, 그걸 식별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선과 악을 구별하지 못하는 사람, 그 속에 저도 있었으니까요. 저도 SNS에서 불우한 이웃을 돕겠다며 모금 활동을 하던 사제에게 돈을 보낸 적이 있습니다. 저는 한 일을 하려고 선택한 일이었는데 을 만드는데 일조했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았습니다. 그리 큰돈은 아니었지만, 충격은 컸습니다. 어떤 것이 선이고 어떤 것이 악인지, 그 경계를 찾는 것이 무척 힘들어졌으니까요.

 

 

해리를 끌고 가는 많은 사람들 중에 저는 백진우 신부에게 가장 분노했습니다. 어쩌면 이해리보다 더 나쁜 악이 백진우 신부라고 생각했어요. ‘사제라는 이름으로 악을 가리고, 선한 척 위선 떠는 그가 무섭고 슬펐습니다. 이해리를 악녀로 만드는데 백진우 신부가 많은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하니, 절망스럽기까지 했어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스마트하게 제 주머니를 채우는 백진우 신부를 보다 어떤 사제가 떠올랐습니다. “우리는 독신서약과 순명 서약을 하지만, 청빈 서약은 하지 않아. 그렇기 때문에 가난하게 살 필요가 없어.”라고 말하던 어떤 사제가요...

 

 

누가 찾아오기만 하면 다리를 절고 아픈 사람이 된다는 민들레마을 원장 신부도 절망이었습니다. 평생을 시장에서 장사하며 살아온 할머니에게 돈을 받아, 고가의 나무를 심는 그 원장 신부 말이에요. 겉으로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 헌신하는 척하지만, 실상은 자본을 숭상하는 원장 신부... 책을 읽는 내내 절망을 절망으로 덮으며 처참함을 쌓아가는 교회가 보여서 너무 가슴이 아팠습니다. 내가 아는 사제들 중에도 백진우가 있지 않을까, 내가 정말 좋은 신부님이야라고 생각하는 분들 중에도 민들레마을 원장 신부가 있지 않을까... 마음이 너무 심란했습니다.

 

 

책을 다 읽은 후에도 마음은 진정되지 않았습니다. 해리에서 내가 읽어야 할 희망이라는 게 도대체 무엇인지 사실 좀 암담했어요. 해리의 책장을 덮은 지 많은 날이 흘렀지만, 마음만 답답할 뿐이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수도원을 방문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노동하는 수사님이, 기도하는 수사님이 저를 울린 것이지요. 3일을 수도원에 머물면서 저는 참 많이 울었습니다. 기도를 하다가도, 산책을 하다가도 자주 눈물이 흘렀어요. 그러나 전시관에서 눈물이 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선생님도 아시지요? 수도원 대성전 아래층에 있는 수도원 전시관이요. 돌아가신 신부님과 수사님들의 소박한 유품을 비롯해, 수도원의 오래된 역사가 보관되어 있는 곳 말이에요. 그곳에서 오래된 사진과 낡은 물건들을 하나하나 보다가, 조선으로 파견된 젊은 사제들이 함께 모여 찍은 기념사진을 보는데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죽음을 각오하고 하느님을 전하러 왔던 그 젊은 사제들, 결국 다시는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이 땅에서 죽어간 수많은 사제들 말이에요.

 

 

누군가 목숨을 걸고 지켜온 교회를, 누군가 사리사욕을 위해서 무너뜨리고 있다는 것이 너무 슬펐습니다. 가난한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서약한 이들이, 부자로 살겠다고 나서는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아프고 아팠습니다. 그러다 해리의 마지막 즈음에 나오는 안드레아가 떠올랐습니다. 열 두 사도들 중에서 예수님을 가장 먼저 만났지만, 중요한 때에는 언제나 소외됐던 안드레아, 그러다 결국 성경에서 사라지는 안드레아 말이에요. 선생님이 안드레아 사도 이야기를 왜 그 부분에 넣었는지, 그때서야 이해가 되었습니다. 추악하게 변하고 있는 교회가 망하지 않는 것은 아마도 안드레아 사도 같은 사제들이 있기 때문이겠지요. 보여지는 영광을 누리기보다는 꼭 필요한 때에 간절히 원하는 이들을 하느님 앞으로 인도하는 안드레아 같은 사제들이요. 이런 안드레아가 우리 교회를 정화하고 있는 거겠지요. 바다 속에 있는 소금처럼, 3.5% 밖에 안 되는 그런 안드레아들이요.

 

 

저는 교회가 온당하게 남아 있었으면 좋겠어요. 한이나가 강 변호사에게 말했던 것처럼 나는 죄 짓고 있으니까, 그래도 그들은 거기서 좀 온당하게 남아있어 주기를’, ‘그래야 우리도 돌아갈 곳이 있으니까. 그래야 언제든 돌아가고 싶어질 테니까요.그러려면, 저도 소리쳐야겠지요. 살다가 악을 만났을 때, 그 악과 맞서 싸우지는 못해도 여기에 악이 있다.”고 알려야겠지요. 그게 지금 이곳에서 살아가고 있는 안드레아의 또 다른 역할일지도 모르니까요.

 

 

가톨릭 신자로서 해리를 쓰는 것이 쉽지 않으셨을 텐데, 용기 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도가니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이 그랬듯, 언젠가 해리도 가톨릭에서 인정받는 작품이 되기를, 그리하여 가톨릭이 쇄신하고 있다는 것을 몸으로 체득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꿈꿔봅니다. 이 작품을 쓰면서 선생님이 흘리셨을 수많은 눈물이 성모님 발아래서 아름다운 장미로 피어나기를 기도하겠습니다.

 

 

 

2018918일 독자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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