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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떠보니 50 - 절대 오지 않을 것 같지만
김혜민 지음 / 한국경제신문 / 2018년 10월
평점 :
![](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19/0130/pimg_7360961382113450.jpg)
≪눈 떠보니 50≫이라고 알려 준 김혜민 PD님께
언젠가 페이스북 타임라인에서 사진 한 장을 보았습니다. 김민식 PD와 정재찬 교수, 그리고 어떤 여자 분이 함께 있는 사진이었지요. ≪눈 떠보니 50≫이라는 책의 북콘서트 사진이라는 설명을 보고, 김민식PD가 새로운 책을 출간한 줄 알았습니다. 가운데 있던 여자 분은 북콘서트를 진행하는 아나운서인줄 알았고요. 그러나 제가 헛다리를 짚었다는 것을 며칠 후에 알았습니다. ≪눈 떠보니 50≫은 YTN 라디오 PD이자 서른 일곱의 김혜민이 ‘쉰을 살아낸 선배들의 삶을 담아 낸 책’이었으니까요. 북콘서트 사진 가운데 있던 사람이 바로 당신, 김혜민이었습니다. 책을 구입할까 하다가 아직 다 읽지 못한 책들이 눈에 밟혀 ‘있는 책이나 다 읽자’ 생각했어요. 그런데 ‘눈 떠보니 50’이라는 말이 자꾸 머리에 맴돌았습니다. ‘눈 떠보니 50’이라는 말, 몇 년 후 제게 닥칠 일이었으니까요. 마음이 시키는대로 책을 장바구니에 담고 결재를 했습니다. 다음 날, 당신의 책이 우리집에 도착했어요. 읽고 있던 책을 제쳐두고 그 책을 먼저 읽기 시작했습니다.
≪눈 떠보니 50≫ 속에는 열여덟 개의 우주가 있었습니다. 내가 아직 만나지 못한 ‘쉰’이라는 ‘미지의 세상’이 있었지요. 당신은 그 우주로 가는 길을 다섯 개로 나누었습니다. ‘지금’, ‘나’, ‘너’, ‘시작’, ‘우리’라는 길로 말입니다.
당신이 첫 번째 길에 붙인 이름표는 <바로 ‘지금’이 그대의 전성기>였습니다. 인문학으로 광고하는 카피라이터, 치매 노모를 위해 매일 삼시 세끼를 차려내는 할배, 마흔셋에 등단해 청소년 소설을 쓰고 있는 소설가, ‘이웃’의 마음을 보듬는 심리치유자의 세상이 그 길 위에 놓였지요. 그들은 쉰이라는 나이는 ‘사소한 것을 발견’하고, ‘부모의 마지막 여정을 함께 준비’하고, ‘폐경이 아닌 완경을 통해 삶을 완성’해 나가고, ‘죽음에 대해 대화’하는 때라고 했어요. 저는 그 중에서 ‘사소한 것을 발견’하자는 박웅현 대표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봄날>이라는 이문재 시인의 시를 읽으며 울컥 하기도 했고요. 저도 오토바이를 급하게 세우고 막 벙글기 시작한 목련꽃을 찍을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사소한 것에 감동하며 산다면, 제 삶이 더 아름다워 질테니까요.
<나는 여전히 청년입니다>라는 길에서는 시의 아름다움을 전하는 교수, ‘청춘합창단’으로 유명한 호텔리어, 글 쓰는 판사, ‘빠리의 택시 운전사’였던 언론인, 심신치유기업의 대표를 만났습니다. 그들은 ‘두근거림을 회복’하고, ‘직책이 아닌 나로 살아’가고, ‘남의 시선에서 벗어나 개인주의를 선언’하고, ‘현역으로 활동’하며 ‘스스로를 치유’할 줄 아는 나이가 쉰이라고 했어요. 그들은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했지요. 이 길에서 만난 사람들은 사무엘 울만의 시 ‘청춘’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그가 말했지요. 청춘은 인생의 어느 한 때를 말하는 게 아니라 ‘마음 가짐’을 말하는 거라고요. 두려움을 물리치는 용기, 안이함을 뿌리치는 모험심을 품고 있으면 언제나 청춘이라고요. 두 번째 길에서 만난 그들은 모두 청춘을 살고 있었습니다.
이제 저는 당신이 <너와 내가 함께 하기 위해서>라고 이름 붙인 길에 들어섰습니다. 그 길에는 정신분석 클리닉 원장, 자살예방센터를 운영하는 분, 50대 섹스의 전도자를 만났습니다. 그들은 말했어요. 50이 되면‘ 자녀에게 아무것도 하지 말아’야 한다고, 아무리 ‘죽음이 우리 삶을 덮쳐도 스스로 극복해야’ 한다고, 아름다운 ‘몸의 언어에 대해 다시 공부해야’ 한다고요. 한 사람의 삶이라는 게 오롯이 혼자만의 것이 아님을 다시 한 번 깨달았습니다.
당신이 이름 붙인 다섯 개의 길 중에서 제가 가장 흥미롭게 걸은 길은 <50대, 시작하기 딱 좋은 나이>였습니다. ‘시작’하는 삶을 좋아하는 제가 가장 깊이 공감한 글이기 때문이지요. 이 길 위에는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시작하는 용기를 내는 PD, 50대 중반에 공무원으로 다시 태어난 아버지, 인공지능 시대에 필요한 윤리 가이드라인을 만든 교수의 삶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말했어요. ‘세상에 어떻게 쓰일지 고민해야 할 나이’가 50이라고, ‘도전으로 이후의 인생을 살아갈 동력을 얻을 나이’가 쉰이라고,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소비자를 넘어 창업자로 활동할 나이’가 지천명의 나이라고요.
저는 특별히 김민식PD와 노상호씨의 이야기가 참 좋았습니다. 그 열정이 어디서 나올까 싶을 정도로 시작하고 또 시작하는 김민식 PD의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였어요. 현역 일 때 은퇴 이후의 삶을 연습해야 한다는 말에는 밑줄을 그었고요. 《매일 아침 써 봤니》를 통해서 그를 알게 된 후, 자주 그를 떠올립니다. 어떠한 역경 속에서도 시작 할 수 있는 용기를 냈던 그를 말입니다. 매일 매일 새 날을 준비하는 그에게서 은퇴 이후의 삶을 준비하는 법을 배웁니다. 오늘의 습관이 내일을 만든다는 것도요. 50대 중반에 5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공무원이 된 노상호씨의 이야기를 읽고 뒷통수를 한 대 맞은 것 같았어요. 그 나이(?)에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는 것이 놀라웠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새 삶을 준비하며 열심히 노력한 그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파울로 코엘료의 말을 떠올렸습니다. 그가 《연금술사》에서 말했지요. 무언가를 간절히 원하면 온 우주가 그것을 도와준다고요. 노상호씨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그에게 ‘우주’는 노력이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고 또 노력한 시간들이 노상호씨의 ‘우주’가 되었다고요.
잠시 숨을 고르고 마지막 길에 들어섭니다. <우리의 불꽃은 꺼지지 않는다>라는 푯말이 보이는군요. 그 길목에서 대한민국 대표 코미디언과 뜨개질로 이웃의 마음을 보듬는 자매, 사회학자를 만납니다. 그들은 50이라는 나이를 이렇게 정의합니다. ‘남을 돕기 가장 좋고’, ‘새로운 친구를 사귀고 그들의 아픔을 함께 나누며’, ‘나의 공공성을 회복해야’ 하는 나이라고요. 내 욕심을 위해서 한 움큼 더 쥐기보다 내가 가진 것을 내 놓으며 함께 더불어 사는 나이가 50이라고 말입니다.
당신을 따라 길을 걸으며 선배들이 먼저 만난 세상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어쩌면 당신이 나눈 다섯 개의 길은 모두 같은 의미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요. 서로 다른 이야기 속에서 ‘마음’과 ‘여유’라는 코드를 읽었기 때문입니다. ‘지금’에 의미를 부여하든, ‘나’에 대해 생각하든, ‘너’를 배려하든, 무언가를 ‘시작’하든, ‘우리’라는 공동체에 대해 꿈을 꾸든 ‘마음’과 ‘여유’가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했으니까요. 그래서 시간에 쫓기지 말고, 원하는 것들을 하면서 50을 맞이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덕분에 50으로 가는 길을 그린 저의 지도에 새로운 길 하나를 그릴 수 있게 됐네요. 고맙습니다, 김혜민PD.
이제 곧 ≪눈 떠보니 50≫ 이 되겠지만, 저의 우주를 아름답게 가꾸며 그 시기를 맞이해야겠어요. 몇 년 후에 당신이 ≪눈 떠보니 50, 두 번째 이야기≫를 낼 때 저의 이야기도 한 편에 실릴 수 있기를 꿈꾸면서요. 당신의 우주도 ‘안녕’하기를, 언젠가 어느 행성에서 만나면 반갑게 악수하며 인사 나눌 수 있기를 기대하면서 이만 줄입니다. 당신의 50도 기대할게요.
2019년 1월 30일, 글봄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