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자네에게 믿는 일이란 무엇인가 - '배교자' 이승훈의 편지
윤춘호 지음 / 푸른역사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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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동에 있는 한국천주교회역사관에서 당신이 정약종에게 써준 세례증명서를 보았습니다. 기록에 따르면 정약용의 형인 정약종은 권일신을 대부로 모시고 당신에게 세례를 받았다지요. 정약종의 세례명은 아우구스티노. 아오스딩이라고도 부르는 그 세례명을 조선에서는 위오사뎡이라고 불렀다는 것을 세례증명서를 보고 처음 알았습니다. 그가 천주교 신자가 된 것을 증명하는 종이 위에 당신의 이름이 있었습니다. 이백돌이라는 이름이었지요. 베드로라는 세례명의 한글 표기였습니다.

 

당신은 내게 조선에서 최초로 세례를 받은 사람으로 기억되어 있습니다. 이승훈이었던 당신이 이백돌이 되었다가 다시 이승훈이 되고, 다시 이백돌 되었다가 또 다시 이승훈이 되는 과정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어요. 그런데 당신은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했던 베드로처럼, 예수님을 부인하고 부정하며 이백돌이라는 이름을 지워갔지요. 다산, 자네에게 믿는 일이란 무엇인가라는 책에서 당신은, 당신의 삶을 -교회에서는 배교자라고 낙인찍히고, 조선에서는 천주교의 삼흉이 되어버린- 조용히 읊조리고 있었습니다.

 

이승훈이었던 당신이 이백돌이 된 것은 1784년의 일이었습니다. 사신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북경에 갔다가 북당에서 세례를 받았지요. 당신에게 세례를 준 사람은 예수회 소속의 프랑스 선교사 그라몽 신부였지만, 당신에게 세례를 권한 사람은 이벽이었습니다. 정약용의 사돈이자, 당신 아내의 사돈이었던 이벽 말입니다.

 

그는 북경에서 세례를 받고 돌아온 당신을 환영했습니다. 그리고 자신도 세례자 요한이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지요. 무반으로 이름을 날리던 가문의 이벽을 그리스도인으로 다시 태어나게 한 것은 이승훈, 당신이었습니다. 당신은 조선에 들어와 수많은 사람들에게 세례를 베풀었지요. 뿐만 아니라 미사도 집전하며 마치 사제처럼 행동했습니다. 당신과 당신이 뽑은 동료 열 명은 그렇게 조선의 사제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당신과 동료들이 미사를 집전하고 성사를 베푸는 것은 잘못된 일이었습니다. 당신은 사제서품을 받은 사람이 아니었으니까요. 책에서 당신은 임시성직제도를 사제놀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이런 놀이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당신도 동료들도 알고 있었다고요. 그러나 나는 믿을 수 없었습니다. 당신이 독성죄를 짓는다는 걸 알면서도 미사를 집전했다는 것을, 당신이 미사를 집전하고 성사를 베푸는 일을 사제놀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을요. 적어도 내게 당신은 조선의 첫 세례자로서 진중한 사명감을 갖고 있는 사람이었으니까요. 나는 당신이 진심으로 그리스도를 사랑했기 때문에 그런 행동을 했다고 믿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나의 이런 믿음이 당신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다는 걸,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했습니다. ‘조선의 첫 세례자라는 이름이 당신의 영혼을 얼마나 무겁게 했는지 생각해보지 못했어요. 당신이 윤유일 바오로를 통해서 북경에 선교사 파견을 청하며, 당신에게 주어진 사명도 내려놓게 해달라는 편지를 보냈을 때... 그때 깨달았습니다. 당신에게 이 세상 누구도 짊어지지 않은 무거운 짐이 있었다는 것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이 죽음을 눈앞에 두고, 처남이었던 정약용에게 쓴 편지를 읽으면서 좀 놀랐습니다. 처남인 정약용을 향한 당신의 마음이 애증을 넘어 증오로 치닫고 있다는 걸 느꼈으니까요. 마지막 편지 속에서 당신은 단어를 고르고 골라, 정약용을 비약하고 있었습니다. 내가 생각했던 정약용의 이미지를 깨부수려는 것처럼, 고약한 단어와 문장으로 그를 몰아갔지요. 이 모든 일들이 작가의 상상이 만들어낸 것이란 걸 알고 있지만, 어쩌면 정말로 당신은 수많은 동료가 죽어갈 때 혼자 살아남은 정약용을 미워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책 속에서 당신이 이야기하는 모든 것이 사료와 꼭 맞아 떨어지지는 않았습니다. 당신이 주인공이 되어 펼쳐지는 이야기 속에서 어떤 것은 부풀려지고, 어떤 것은 줄어들었지요. 그래도 주석을 함께 읽으며 오해를 덜어 낼 수 있었습니다.

 

나는 다산, 자네에게 믿는 일이란 무엇인가를 읽으며 그라몽 신부에게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예수회 소속이었던 프랑스 선교사, 북당에서 당신에게 세례를 준 사제말입니다. 조선의 천주교회가 자라나는데 프랑스외방전교회 선교사들이 큰 역할을 했다고만 생각했지, 한 번도 당신에게 세례를 준 사제가 조선에 복음의 씨를 뿌리는 역할을 했다는 것은 생각해보지 못했습니다. 당신이 그라몽 신부에게 보낸 편지 흔적조차 없이 사라져버린-를 읽으며, 그가 당신에게 얼마나 큰 마음을 내주었는지, 그 마음이 조선 교회에 어떤 씨앗을 뿌렸는지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아마도 그라몽 신부는 당신을 만날 날부터, ‘미지의 세계로 불리는 조선을 위해서 기도하고 또 기도했겠지요. 그 기도 덕분에 조선에는 복음의 씨앗이 퍼져나갔지만, 당신은 괴로워했습니다. 믿음을 현실로 가지고 올 수 없어서, 믿음과 현실을 모두 끌어 안을 수 없어서. 책을 읽는 내내 믿는다는 것이 이토록 어려운 일 인 줄 몰랐다며 다산에게 호소하던 당신의 모습이 따라다녔습니다.

 

천주를 믿는 일이 무척 힘들었어. 한 번 믿으면 되는 것인 줄 알았어. 한 번 믿는다고 고백하면 그것으로 끝이라 생각했네. 그런데 그렇지가 않았네. 신앙은 내게 끝없는 결단을 요구했네. 신앙은 내게 끝없는 용기를 요구했네. 신앙은 내게 끝없는 희생을 요구했네. 신앙은 그 결단과 희생과 용기를 밑거름 삼아 성장하는 것이었어. 그러나 나는 신앙이 요구하는 것을 계속 내 줄 능력이 없었네. 아무나 천주를 믿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어.” (p40)

 

이 대목을 읽으면서 나는 당신 왜 배교를 반복하고 번복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나 또한 믿는다는 것이 괴로웠던 날들이 있었으니까요.

 

당신의 삶을 한 편의 드라마처럼 이야기 해준 당신 덕분에 조선의 천주교에 대해서, 북경에 있던 사제들에 대해서, 내가 아끼는 정약용에 대해서, 그리고 잊힌 이름인 당신 이승훈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고맙습니다.

 

당신이 다산에게 질문한 것처럼 믿음이 무엇인지, 어떻게 살아야 믿는 이로서 잘 살아가는 것인지 아직은 모르겠지만, 남아 있는 나의 생을 통해서 조금씩 깨달아 보겠습니다. 언젠가 우리가 만나게 된다면, 그때 마주 앉아 믿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겠지요.

 

이승훈 형제님, (이 호칭이 당신이 원하지 않는 호칭인지는 모르겠지만, 오늘만 그렇게 부르겠습니다.) 당신이 지금 피 흘리며 죽어간 동료들과 함께 있든 그렇지 않든 오늘은 제가 당신을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 배교자와 천주교의 삼흉 사이에서 번뇌하고 끝내 천주교를 믿었다는 이유로 사라진 당신을 위해서 말입니다. 오늘만이라도 당신의 영혼이 조금은 평안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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