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작가 박재성의 아내, 요시코의 편지 - 통영의 부둣가에 도착하는 나를 기다려 주세요 지역문학총서 28
테라오 요시코 지음, 김봉희 옮김 / 경진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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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자를 알고 있다. 일본으로 유학 온 조선인 남학생을 만나 사랑에 빠져, 결국 조선으로 오는 마지막 배에 몸을 실었던 여자. 그는 화가인 남자와 결혼해 원산에서 생활하다,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남편과 함께 부산을 거쳐 제주에서 피난 생활을 했다. 그러나 제주는 그들이 안착할 곳이 아니었다. 여자는 가족과 함께 다시 부산으로 터전을 옮겼지만, 결국 자신의 부모가 있는 일본으로 돌아가야 했다. 두 아들을 데리고 홀로 일본으로 돌아간 여자, 그녀는 얼마 후 신분을 속여 배를 타고 온 남편과 해후한다. 일주일의 시간을 함께 보낸 두 사람은 꼭 다시 만나자고 약속했지만 여자는 살아있는 남편을 만나지 못했다. 1956, 남편의 친구가 들고 온 남편의 뼈 일부를 집 마당에 묻으며 마지막 인사를 했을 뿐이다. 그 여자는 야마모토 마사코’. 혹은 이중섭의 아내라 불린다.

 

또 한 여자를 알게 됐다. 일본으로 유학 온 조선인 남학생을 만나 사랑에 빠져, 통영으로 왔다가 홀로 일본으로 돌아갔던 여자. 이제나저제나 남편이 자신을 데리러 와주기를 기다리며 편지를 쓰고 또 썼던 여자. 외로움으로 죽어갔으나 그리움으로 하루를 살았던 여자는 한참 후 밀항선을 타고 온 남편을 만났다. 둘은 함께 다시 밀항선에 올랐고 조선으로 향했으나, 조선과 일본 그 사이의 바다에서 태풍을 만나 영원히 사라지고 말았다. 그 여자는 테라오 요시코’. 혹은 극작가 박재성의 아내라 불린다.

 

극작가 박재성의 아내, 요시코의 편지는 홀로 일본으로 돌아간 요시코가 통영에 있는 남편 박재성에게 쓴 편지 127통을 소개한 책이다. 1936년 동경의 길상사 공원에서 우연히 만나 사랑을 키우고, 조선에서 짧은 신혼생활을 하다 헤어진 두 사람은 편지로 소통했다. 요시코는 많은 날동안 편지를 썼고, 박재성은 뜸하게 편지를 보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시코의 마음속에는 박재성 뿐이었다. 요시코에게 박재성은 남편이자, 예술가였다. 그녀는 박재성이 하루 빨리 자신을 데리러 와 둘이 함께 통영으로 가기를 바랐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박재성이 작가로서의 삶을 포기 하지 않길 바랐다. 그래서 박재성이 좋은 작가가 되기를 응원하고 또 응원한다.

 

극작가 박재성의 아내, 요시코의 편지1946101일에 시작돼 두 사람이 만나기 직전으로 추정되는 1947825일에 끝이 난다. 편지에는 헤어져 있는 연인의 애절한 그리움이, 여전히 식지 않은 뜨거운 사랑이 절절히 넘친다.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소식이 더딘 사랑을 기다리기만 하기도 힘든 요시코의 마음이 감정의 과잉처럼 읽히기도 한다. 그러나 사랑이란 원래 감정의 과잉이 만들어내는 것 아니던가. 그러니 사랑에 아파해본 사람이라면, 기다림에 고통스러워 해본 사람이라면 눈물로 쓴 그녀의 편지에 공감할 수 있으리라.

 

밀항선을 타고 건너 간 박재성이 요시코와 함께 무사히 조선으로 돌아왔다면, 이 편지들은 긴 그리움을 건너 완성된 사랑의 이야기로 남았을 것이다. 그러나 두 사람은 끝내 조선으로 돌아오지 못했고, ‘테라오 요시코의 편지는 요절한 천재 극작가의 일본인 아내가 남긴 편지가 되었다...

 

테라오 요시코’. 그녀가 쓴 편지를 읽으며, 80년 전, 이 땅에서 누군가를 사랑하고 살아갔던 한 사람이 있었음을, 그녀의 이름이 테라오 요시코였음을 기억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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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님이 보여준 세상
샘 귈름 지음, 율리아 귈름 그림, 조이스 박 옮김 / 후즈갓마이테일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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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는 다른 나라에 대한 개념이 별로 없었다. 내가 살고 있는 동네가 세상의 전부였기 때문이다. 아빠가 사우디라는 나라에서 일을 하고 있었지만, 그 곳이 어디 있는지, 어떤 곳인지 알지 못했다. 그저 빨강 파랑 마름모가 찍힌 편지 봉투에 편지를 넣어야 아빠에게 간다는 것만 알았을 뿐이다.

 

중학생 때 처음 세계사를 배웠다. 선생님이 칠판에 그린 세계지도가 내가 만난 첫 세계지도였다. 우리나라 지도를 외워서 그리는 것도 어려운데, 선생님은 전 세계를 머리에 넣고 다니는구나... 싶어서 놀랐던 기억이 있다.

 

세계라는 단어가, 지구에 흩어져 사는 사람들의 모습이 내게 들어온 건, 내가 라면을 먹을 때(하세가와 요시후미 / 장지연 옮김, 고래이야기) 라는 그림책 덕분이었다. 내가 라면을 먹을 때 세상의 아이들은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가를 알려주는데, 너무 충격이었다. 내가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순간들이 거기에 있었다.

 

달님이 보여준 세상(글 샘 귈름, 그림 율리아 귈름 / 조이스박 옮김, 후즈갓마이테일)이 건넨 충격도 비슷했다. 한 아이가 안 자겠다고 버틸 때, 다른 곳의 아이들은 어떻게 자고 있는지를 알려주는 책인데, 세상에 이렇게 다양한 이 있다니! 또 한 번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었다.

 

만약에 내가 어렸을 때, 이런 책을 읽었다면 나는 더 넓은 세상을 지닌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내가 단 칸 방에서 다섯 식구와 옹기종기 모여 자고 있을 때, 누군가는 언제 난파될지 모르는 배 위에서 자고 있고, 누군가는 일을 하다 쓰러져 잠들고, 누군가는 지붕이 없는 곳에서 잠들고 있다는 걸 알았다면 말이다. 나는 그 누군가를 궁금해 했을 것이고, 그들의 삶을 추적해갔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을 가슴 깊이깊이 품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세계사도 그렇게 어렵지는 않았을 텐데!...라는 생각을 해봤다.)

 

이 책은 서로 다른 잠에 대해 이야기 하지만, 심각하거나 슬프지 않다. (그냥 읽는 내가 울컥할 뿐 -_-) 작가는 한 결 같이 따뜻한 음성으로 조곤조곤 말한다. 여기에는 이렇게 잠든 아이가 있고, 저기에는 이렇게 잠든 아이가 있다고. 세상에는 다양한 이 있다고. 그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생각했다. 지구에 있는 모든 아이들이 같이 잠든 사이니까 너희는 상관없는 사람이 아니라고. 그러니 여기’, ‘지금’, ‘만을 생각하지 말고, ‘저기’, ‘그때’, ‘를 생각하는 마음을 품자고. 그것이 달님이 세상을 보여준 이유일지도 모른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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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챙김의 인문학 - 하루 10분 당신의 고요를 위한 시간 날마다 인문학 3
임자헌 지음 / 포르체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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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를 만나다>

 

나는 선비를 좋아한다. ‘선비라는 단어에 담긴 고고함과 유유자적함과 사람을 향한 연민정신을 좋아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런 정신을 마음에 품고 행동하는 진짜 선비를 좋아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나의 첫 선비는 정약용이었다.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 할 줄 알고, 놀고 싶을 때는 무단조퇴를 감행하며 노닐고, 사람을 향해 연민을 품고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어 보려고 했던 사람. 그러나 처음부터 정약용이 내게 선비였던 것은 아니다. 그는 내게 거대한 산이었다. 그의 어마어마한 업적을 볼 때마다 이 사람은 내가 가까이 할 수 없는 거대한 산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다 그가 죽은 막내아들의 무덤에 바친 편지 한 통을 읽고 그를 사람으로 다시 만났다. 그 속에는 거대한 업적을 남긴 실학자 정약용이 아니라 아들을 잃고 오열하는 아버지 정약용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날 이후 나는 정약용이라는 사람과 우정을 맺기 위해 노력했다.

 

이라는 것이 그렇다. ‘거대한 산사람으로 만들고, 역사 속에 박제된 사람도 되살려 내 진실한 우정을 맺게 한다. 그것이 가능하려면 내가 먼저 그들의 글을 읽어야 한다. 그것이 오랜 시간을 거슬러 온 그들을 만나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마음 챙김의 인문학(임자헌, 포르체)우정의 길을 내주는 책이다. 옛 선비들의 글에서 40편을 가려 뽑아 말끔한 현대어로 번역하고, 저자의 사유가 담긴 글을 덧붙인 선비와 거닐기 좋은 길이다. 이 책을 쓴 임자헌은 한국고전번역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데, 옛 문헌의 글들을 요즘 사람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맞춤형으로 번역하는 인물로 꼽힌다. 한시 번역에 정우성을 등장시키는 일을 저자 말고 누가 또 할 수 있겠는가! (p59를 참고하라!)

 

이 책에서 내게 말을 걸어온 선비는 기대승, 박지원, 허균, 황현, 이가환이다. 물론 그밖에도 많은 선비들이 말을 걸어왔으나, 나는 이 다섯 사람의 이야기에 집중적으로 귀를 기울였다. 그들이 어떤 이야기를 내게 했는지 잠깐 소개해 보자면 -

 

기대승. 이 선비는 퇴계 이황과 주고받은 편지 때문에 알게 된 선비였다. 26살이나 차이나는 어르신이황에게 나는 당신의 생각과 다르거든요!’라며 8년이나 끈질기게 편지를 보낸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기대승이 일방적으로 자기 할 말만 하는 건방진선비는 아니었다. 이황에게 예를 갖추었고, 이황 또한 아들 같은 기대승에게 열린 마음으로 그와 편지를 주고받았다. (마음 챙김의 인문학5대화를 나누는 관계의 아름다움에 이들에 관한 내용이 소개돼 있다.) 편지가 아닌 그의 글을 본 것은 이 책의 편에 실린 봄을 봄답게 간직하는 방법에서였다. 단어만으로도 충분히 설레는 1년 내내 간직할 수 있는 법을 알려주는 기선비의 멋짐에 무릎을 탁!쳤다.

 

박지원. 그렇다. 그 유명한 <열하일기>의 저자 박지원이다. (하지만 나는 <열하일기> 읽기에 실패했다 -_-) 내가 박지원을 처음 만난 것은 죽은 누나를 생각하며 쓴 묘지명을 통해서였다. 시집가 어렵게 살던 누나가 세상을 떠나자 그의 무덤에 바치는 글을 썼는데 그의 아픔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유쾌함의 정석이 쓴 아린 글은 새롭게 다가왔다. 그런데 이번 책에도 그는 눈물을 말한다. 광활하게 펼쳐진 넓은 땅을 보고 한바탕 울기 좋은 땅이라고 말한 것이다. 그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궁금하다면 책을 펼쳐 보는 걸로! (p168을 펼치면 된다.)

 

허균. <홍길동>의 저자로 유명한 허균도 눈물에 관해 이야기 한다. 자신의 조카가 집의 이름을 통곡헌으로 짓자 주변에서 말이 많았던 모양이다. 그러나 허균은 그만의 깨인 생각으로 조카가 지은 이름을 옹호한다. 나는 허균의 글을 읽으며 오래 전 생각했던 울 수 있는 집을 떠올렸다. 맘 놓고 울고 싶을 때 찾아 갈 수 있는 집을 상상했던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내가 몇 백년 전에 살았던 사람과 같은 생각을 했다는 사실이 소름끼치게 반가웠다. 그리고 그가 통곡할 겨를도 없는 사람은 어떤 선택을 하는지 쓴 대목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황현. 황현이라는 이름이 낯선 사람에게도 매천 황현혹은 조선의 마지막 선비라는 말은 익숙할 것이다.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기자 유언을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선비가 바로 황현이다. 책에는 그가 남긴 유서와 평소에 그와 매우 가깝게 지냈던 구한말 문장가 김택영이 황현의 초상화를 보고 쓴 추모의 글이 실려 있다.

 

이가환. 정조시대의 천재라 불리던 사람, 정조가 승하하자 서학의 삼흉으로 지목돼 목숨을 잃은 이가환은 정약용 덕분에 알게 된 선비였다. 이가환은 자타가 공인하는 지식인 정약용이 인정한 유일한 천재였기 때문이다. (천재에 관한 그의 일화까지 쓰면 가뜩이나 긴 글이 더 길어지니 마음챙김의 인문학p378을 읽도록 하자!) 그는 조카가 처소의 이름을 가이소라고 지었다고 하자, 밥을 먹던 숟가락을 내려놓고 한숨을 쉰다. 혹자들은 무엇이든 다 있다는 그 상점을 떠올릴지 모르겠지만, ‘가이소‘~할 수 있다는 뜻을 지닌 이름이었다. ‘할 수 있다! 아자아자정신이 깃든 이름인 것이다. 긍정의 힘을 발휘하는 이름에 이가환은 왜 한숨을 지었을까? 그것은 바로!! 책의 제5, ‘진지하게, 머뭇거리지 말고에서 확인 할 수 있다.

 

고백하자면... 나는, 한글로 번역된 정약용의 편지들을 읽다가 한 밤중에 울컥 눈물을 쏟은 적이 있다. 편지 내용 때문이 아니었다. 수백년 전 그가 한문으로 남긴 편지를 오랜 시간을 건너 내가 지금 여기에서 한글로 읽을 수 있다는 게 너무 고마웠기 때문이다. ‘죽은 학문이라고 불리는 오래된 글들을 읽고 현대어로 번역해 주는 분들이 너무 고마웠다. 죽은 정약용을 살려내 내 곁으로 보내준 그들이. 마음챙김의 인문학을 읽으면서도 같은 마음이 들었다. 누군가의 수고가 없었다면 내게 올 리 없었던 선비들을 만나며 참 고마웠다. (이 글을 통해 선비들의 글을 번역하고, 책으로 엮어준 저자와 출판사에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다.)

 

이 책은 한꺼번에 후루룩 읽어도 좋지만, 가까운 곳에 꽂아두고 계절에 따라 한 편 한 편 읽으며 음미하면 더 좋을 책이다. 나는 어떤 선비들이 기다리고 있는지 궁금해서 촤르르 책장을 넘겼지만, 선비와의 첫 만남을 준비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하루에 한 편 씩 읽어도 좋겠다. 하루에 한 사람과 마주앉아 이야기도 나누고, 마음이 동하면 함께 거닐기도 하면서 우정을 쌓아보면 어떨까. 나의 친구들이 이 책을 읽으며 선비들과 친구가 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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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나락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조이스 박 옮김 / 녹색광선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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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당신의 단편을 묶은 행복의 나락이 도착했습니다. 하필이면 눈보라가 몰아치던 중이라 책은 한기를 잔뜩 품고 있었습니다. 표지에 맺힌 습기를 닦아내고 따뜻한 방에 두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보다 만 <위대한 개츠비>를 마저 감상했어요. 당신의 작품을 읽기 전에 나름의 준비운동이 필요했으니까요. 왜냐면 저는 당신의 작품을 한 편도 읽지 못했거든요.

 

당신의 이름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당신의 작품을 읽은 적이 없습니다. 당신이 썼다는 위대한 개츠비도 소문으로만 들었어요. 돈 많은 개츠비라는 사람에 관한 책이라는 소문이었지요. 저에게 영미문학은 접근하기 어려운 세계였습니다. 경험을 바탕으로 모든 것을 인지하는 저에게 가 본적도 없었고, 접할 기회도 없었던 그쪽 나라의 문화가 낯설었기 때문입니다. 어릴 때의 선입견은 어른이 돼서도 깨뜨리기가 쉽지 않았어요. 그래서 한 동안 외국문학과는 거리를 두다 이제 조금씩 시선을 넓히는 중입니다.

 

당신에 관한 이야기를 접한 것은 영화 <지니어스><미드나잇 인 파리>였습니다. 그 속에서 알콜 중독으로 고생하고, 사치스런 생활을 하느라 빚을 내고, 빚을 갚기 위해 또 글을 쓰는 당신을 보았지요. 심하게 휘청이며 살아가는 당신을 믿는 사람은 오직 맥스웰 퍼킨스 뿐이었습니다. ‘작가 스콧을 발견하고, 당신의 책을 세상에 내놓고, 끝까지 당신에게 글을 쓰라고 용기를 북돋아준 사람, 당신의 영원한 편집자말입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나는 당신이 다시 일어설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위대한사람으로 기억될 거라고 생각했지요. 그러나 당신은 삶을 일으켜 세우지 못했습니다. 환상 속에서 반짝이던 당신은 그렇게 소멸되고 말았지요.

 

당신의 단편 다섯 작품을 엮은 행복의 나락을 읽으면서 삶의 이중주를 연주한 당신을 보았습니다. 환상을 좇아가던 사람들이 결국에는 환멸을 경험하는 이야기들을 읽으면서 당신의 삶이 그들과 같았다는 생각을 했어요. ‘환상과 환멸이 공존한다는 역자의 말처럼 당신의 삶에도 두 가지의 선율이 함께 연주되었습니다. 아마도 삶의 이중주는 당신뿐만 아니라 세상 모든 이들이 연주하는 곡이겠지요. 사랑이 올 때 이별이 같이 오는 것처럼 삶의 기쁨 뒤에는 꼭 슬픔이 숨어있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젊었을 때는 그 사실을 잊고 나에게는 늘 좋은 것만이 존재한다고 믿으며 살았습니다. 환상이 끝나지 않을 것처럼 오늘을 살아갔지요.

 

그러나 저는 이제 환상보다 환멸을 먼저 생각합니다. 삶이 더 이상 나에게 환상을 줄 리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환상의 끝은 환멸이라는 걸 너무 잘 아는 까닭인지도 모릅니다. 짧지 않은 세월을 살면서 꿈꾸고 설레는 일보다 상처를 끌어안아야 하는 일이 더 많다는 걸 배웠으니까요. 그런데 당신의 글을 읽으면서 소멸할 환상일지라도 삶을 반짝이게 하는 무언가가 갖고 싶어졌습니다. 그것이 신이 허락한 내 삶의 모습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글을 읽으면서 어쩌면 환상과 환멸이 같이 오는 것은 내 삶에 생명력을 주기 위한 신의 배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어제가 오늘 같고, 내일도 오늘 같은 죽어있는 날들이 아니라, 예측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나고, 마음에 다양한 감정이 일렁여 끊임없이 피고 지는 날을 만드는 것이 우리가 이 세상에서 해야 할 일이라고요. 당신도 그걸 알고 있었기에 끝내 소멸할지라도 아름답게 피어나는 환상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 게 아닐까요?

 

당신의 작품을 로 읽으면서 당신이 정말 빛나는 문체를 지닌 사람이란 걸 깨달았습니다. 당신의 다른 작품들도 찾아 읽어보고 싶을 만큼, 당신의 문장들이 좋았어요. 저 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당신의 문체를 새롭게 발견하는 계기가 되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스콧! 혹시 언젠가 당신의 글을 우리말로 바꾼 역자를 만나게 된다면 그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시길! 축배를 들기 위해 와인 잔을 부딪칠 예정이라면, 그 옆에 체리가 듬뿍 담긴 바구니를 함께 준비하세요. ‘체리를 준비하는 것만으로도 역자에게 충분한 감사 인사가 될 테니까요.

 

저는 이제 당신과 맥스가 주고받은 편지를 읽어야겠습니다. 당신에 대해 조금 알았으니 두 사람이 편지를 읽으며 당신을 더 깊이 알아가야겠습니다. 물론 책으로 읽지 못한 위대한 개츠비도 읽어야겠지요. 그러다보면 당신에게 또 편지를 쓰게 될 날이 오겠지요. 얼마의 시간이 걸릴지 모르겠지만, 스콧! 저의 다음 편지도 기다려주세요. 또 편지할게요.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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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행
호시노 도모유키 외 지음 / 문학세계사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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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선생님의 단편을 모은 『인간은행』을 읽었습니다. 선생님의 글을 번역하신 김석희 선생님이 소개해주신 덕분이었지요. 김석희 선생님과 저는 페이스북에서 만난 친구입니다. 아직 얼굴을  마주한 적은 없지만, 글 속에 담긴 마음을 읽으며 공감하는 사이지요. 


『인간은행』을 받아들고 표제작부터 읽어볼까 하다가 역자가 글의 목차를 구성한 이유가 있을 것 같아 순서대로 읽었습니다. 한 권의 책을 엮을 때 흐름을 생각하지 않는 편집자는 없으니까요. 마지막 책장을 덮으며 순서대로 읽기를 잘 했다고 생각했습니다. 뭐라고 딱 꼬집어 설명할 수는 없지만, 글들이 품고 있는 분위기가 어떤 흐름을 만들고 있었거든요. 저는 그걸 ‘나’→‘우리’→‘나’로 해석해보았습니다. 치매 아버지를 모시는 ‘나’에서 시작해 인간과 자연이 포함한 공동체를 거쳐서 다시 ‘나’란 존재의 정체성에 대해 생각하는 글로 끝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책의 가장 앞자리에 있던 <무엇이 나를 그렇게 만들었을까?>에서는 호시노 도모유키라는 작가가 어떤 사람인지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어떤 생각을 하는 사람인지 알 수 있었다고 할까요? 당신은 치매 아버지를 모셔야 하는 ‘나’의 이야기가 사회 공동체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말하고 있었습니다. ‘나’의 문제는 결국 ‘사회공동체’ 모두의 문제라는 걸 말하고 있었지요. 저는 이 글을 읽으면서 몇 가지의 키워드를 발견했습니다. ‘노인문제’, ‘노동’, ‘생명’, ‘육식’, ‘젠더’였지요. 길지 않은 소설 속에 이렇게 다양한 키워드를 녹이다니! 저는 당신의 능력에 감탄하고 말았습니다.


표제작 <인간은행>은 결코 자본주의를 떠날 수 없는 인간과 인간 세상에 대해서 적나라하게 파헤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우리 인간들은 돈 없이도 살 수 있는 세상을 원하지만 모든 인간이 그걸 원하는 것은 아니며, 그 마음을 이용하는 또 다른 인간들이 있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진카’의 등장은 소름이 돋을 만큼 공포스러웠다는 걸 고백해야겠군요. 


누군가 『인간은행』에 실린 당신의 작품 중에서 단 한편만 골라달라고 한다면 저는 서슴없이 <스킨 플랜트>를 선택할 것입니다. 당신의 어마어마한 상상력에 온 마음을 빼앗겼기 때문입니다. 타투에서 시작된 작은 행동이 헤어스타일을 넘어 인간 존재 자체를 변화시킨다는 이야기를 읽으면서 당신이 궁금해졌습니다. 도대체 당신 머릿속에는 어떤 생각들이 자라고 있는 걸까요? 어떻게 하면 당신처럼 단순한 생각 하나를 거대한 생각으로 발전시킬 수 있을까요? 


<스킨 플랜트>를 읽으면서 가장 소름끼쳤던 것은 인간의 종말이 오지 않았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쾌락을 위해 인간을 포기한 인간들이 그대로 사라져버릴 줄 알았어요. 그런데 당신은 그런 선택을 하지 않더군요. 그리고 다시 희망을 이야기합니다. ‘꽃의 아이들’로요. 이 작품을 통해서 당신이 따뜻한 품성을 지닌 사람이란 걸 깨달았습니다. 아무리 무시무시한 이야기를 써도 결국에는 ‘함께’ ‘존재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라는 걸요. 


<읽지마>는 읽지말라는데도 계속 읽을 수밖에 없는 아이러니가 매력인 작품이었고, <모미 쵸아요>는 ‘홈리스 축구단’이 있다는 걸 알려준 작품이었습니다. ‘하자센터’에 강연을 갔었다는 부분이 흥미로웠던 것은 ‘굉장히 재미있는 교육을 하고 있어서 마음 편한 장소였지만, 문제는 졸업한 뒤 한국 사회에 맞추기 어렵다는 점이라고 들었다’는 대목 때문이었습니다. 저 또한 그와 비슷한 대안학교에서 아이들을 만나고 있기 때문에 그 어려움에 대해서 알고 있거든요.  


<핑크>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마지막에 도는 방향을 바꾸는 것이었습니다. 19년 전에 돌았던 방향을 마치 되감기 하듯이 반대로 감아서 시간을 되돌리는 것이요. 어떤 방향으로 돌든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나는 몇 바퀴를 돌아 어디로 가고 싶을까, 그런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제가 도착지로 정한 곳이 어디였는지 궁금하신가요? 그건 다음 기회에! (하하하) 


<선배 전설>에서는 ‘홈네스’를 통해서 언어유희를 느꼈고, 집을 버림으로써 집을 얻는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이 작품에서 당신은 ‘집’을 이야기 하고 있지만, 저는 그 단어가 ‘인간이 소유한 모든 것’이 아닐까 생각했어요. 결국 인간은 모든 것을 버려야 자유를 만날 수 있구나! 깨달았지요. (그래서 인간은 결코 자유로워질 수 없다는 것도 알았고요. 흑흑)


<지구가 되고 싶었던 남자>에서는 한국 영화 <기생충>과 카프카의 작품 <변신>이 떠올랐습니다. 물난리가 난 지하방의 모습과 산도를 통해서 지구에 사는 생명체를 낳는 모리세의 모습이 두 작품을 떠올리게 했어요. 그리고 진심으로 궁금했습니다. 당신의 집에 물난리가 난 적이 었었는지... 수해 복구하는 장면이 너무 사실적이었거든요. 


<눈알 물고기>를 읽기 시작했을 땐 ‘울지 못하는 사람들’이 ‘울게 됐다’는 이야긴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맘 놓고 울 수 있는 세상!’이 오는 거구나! 생각했어요. 그런데 역시 당신은 나보다 훨씬 앞서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내가 상상할 수 없는 다른 세계의 이야기를 펼쳐냈지요. 이 작품을 읽으면서도 저는 당신의 상상력에 경의를 표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까마귀가 된 남자 <쿠엘보>와 일본인으로 불리는 걸 싫어했지만 결국 일본인임을 인정해야 했던 <치노>의 이야기도 흥미로웠어요. 책 읽기를 마치면서 ‘나’로 시작해 ‘우리’를 거쳤던 이야기들이 다시 ‘나’로 끝나는구나... 하면서 책장을 덮었습니다.


『인간은행』을 통해서 ‘호시노 도모유키’라는 작가를 알게 되어 기뻤습니다. 오에 겐자부로가 왜 당신을 소설적 후계자로 지목했는지 알 수 있었어요. 끝을 모르는 당신의 상상력에 감탄했고, 그 안에 녹아있는 따뜻함에 위로를 받았습니다. 이쯤에서 당신을 알게 해준 김석희 선생님께도 감사 인사를 전해야겠군요. (김석희 선생님 감사합니다!)


자 그럼, 언젠가 김석희 선생님을 통역사로 모시고 당신과 함께 이야기 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대하며 편지를 마치겠습니다. 당신의 머릿속에서 자라고 있는 상상력이 성장을 멈추지 않기를 바라고 또 바랍니다.


                                2020년 8월 27일 목요일 서울에서 독자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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