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챙김의 인문학 - 하루 10분 당신의 고요를 위한 시간 날마다 인문학 3
임자헌 지음 / 포르체 / 2021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선비를 만나다>

 

나는 선비를 좋아한다. ‘선비라는 단어에 담긴 고고함과 유유자적함과 사람을 향한 연민정신을 좋아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런 정신을 마음에 품고 행동하는 진짜 선비를 좋아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나의 첫 선비는 정약용이었다.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 할 줄 알고, 놀고 싶을 때는 무단조퇴를 감행하며 노닐고, 사람을 향해 연민을 품고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어 보려고 했던 사람. 그러나 처음부터 정약용이 내게 선비였던 것은 아니다. 그는 내게 거대한 산이었다. 그의 어마어마한 업적을 볼 때마다 이 사람은 내가 가까이 할 수 없는 거대한 산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다 그가 죽은 막내아들의 무덤에 바친 편지 한 통을 읽고 그를 사람으로 다시 만났다. 그 속에는 거대한 업적을 남긴 실학자 정약용이 아니라 아들을 잃고 오열하는 아버지 정약용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날 이후 나는 정약용이라는 사람과 우정을 맺기 위해 노력했다.

 

이라는 것이 그렇다. ‘거대한 산사람으로 만들고, 역사 속에 박제된 사람도 되살려 내 진실한 우정을 맺게 한다. 그것이 가능하려면 내가 먼저 그들의 글을 읽어야 한다. 그것이 오랜 시간을 거슬러 온 그들을 만나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마음 챙김의 인문학(임자헌, 포르체)우정의 길을 내주는 책이다. 옛 선비들의 글에서 40편을 가려 뽑아 말끔한 현대어로 번역하고, 저자의 사유가 담긴 글을 덧붙인 선비와 거닐기 좋은 길이다. 이 책을 쓴 임자헌은 한국고전번역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데, 옛 문헌의 글들을 요즘 사람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맞춤형으로 번역하는 인물로 꼽힌다. 한시 번역에 정우성을 등장시키는 일을 저자 말고 누가 또 할 수 있겠는가! (p59를 참고하라!)

 

이 책에서 내게 말을 걸어온 선비는 기대승, 박지원, 허균, 황현, 이가환이다. 물론 그밖에도 많은 선비들이 말을 걸어왔으나, 나는 이 다섯 사람의 이야기에 집중적으로 귀를 기울였다. 그들이 어떤 이야기를 내게 했는지 잠깐 소개해 보자면 -

 

기대승. 이 선비는 퇴계 이황과 주고받은 편지 때문에 알게 된 선비였다. 26살이나 차이나는 어르신이황에게 나는 당신의 생각과 다르거든요!’라며 8년이나 끈질기게 편지를 보낸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기대승이 일방적으로 자기 할 말만 하는 건방진선비는 아니었다. 이황에게 예를 갖추었고, 이황 또한 아들 같은 기대승에게 열린 마음으로 그와 편지를 주고받았다. (마음 챙김의 인문학5대화를 나누는 관계의 아름다움에 이들에 관한 내용이 소개돼 있다.) 편지가 아닌 그의 글을 본 것은 이 책의 편에 실린 봄을 봄답게 간직하는 방법에서였다. 단어만으로도 충분히 설레는 1년 내내 간직할 수 있는 법을 알려주는 기선비의 멋짐에 무릎을 탁!쳤다.

 

박지원. 그렇다. 그 유명한 <열하일기>의 저자 박지원이다. (하지만 나는 <열하일기> 읽기에 실패했다 -_-) 내가 박지원을 처음 만난 것은 죽은 누나를 생각하며 쓴 묘지명을 통해서였다. 시집가 어렵게 살던 누나가 세상을 떠나자 그의 무덤에 바치는 글을 썼는데 그의 아픔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유쾌함의 정석이 쓴 아린 글은 새롭게 다가왔다. 그런데 이번 책에도 그는 눈물을 말한다. 광활하게 펼쳐진 넓은 땅을 보고 한바탕 울기 좋은 땅이라고 말한 것이다. 그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궁금하다면 책을 펼쳐 보는 걸로! (p168을 펼치면 된다.)

 

허균. <홍길동>의 저자로 유명한 허균도 눈물에 관해 이야기 한다. 자신의 조카가 집의 이름을 통곡헌으로 짓자 주변에서 말이 많았던 모양이다. 그러나 허균은 그만의 깨인 생각으로 조카가 지은 이름을 옹호한다. 나는 허균의 글을 읽으며 오래 전 생각했던 울 수 있는 집을 떠올렸다. 맘 놓고 울고 싶을 때 찾아 갈 수 있는 집을 상상했던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내가 몇 백년 전에 살았던 사람과 같은 생각을 했다는 사실이 소름끼치게 반가웠다. 그리고 그가 통곡할 겨를도 없는 사람은 어떤 선택을 하는지 쓴 대목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황현. 황현이라는 이름이 낯선 사람에게도 매천 황현혹은 조선의 마지막 선비라는 말은 익숙할 것이다.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기자 유언을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선비가 바로 황현이다. 책에는 그가 남긴 유서와 평소에 그와 매우 가깝게 지냈던 구한말 문장가 김택영이 황현의 초상화를 보고 쓴 추모의 글이 실려 있다.

 

이가환. 정조시대의 천재라 불리던 사람, 정조가 승하하자 서학의 삼흉으로 지목돼 목숨을 잃은 이가환은 정약용 덕분에 알게 된 선비였다. 이가환은 자타가 공인하는 지식인 정약용이 인정한 유일한 천재였기 때문이다. (천재에 관한 그의 일화까지 쓰면 가뜩이나 긴 글이 더 길어지니 마음챙김의 인문학p378을 읽도록 하자!) 그는 조카가 처소의 이름을 가이소라고 지었다고 하자, 밥을 먹던 숟가락을 내려놓고 한숨을 쉰다. 혹자들은 무엇이든 다 있다는 그 상점을 떠올릴지 모르겠지만, ‘가이소‘~할 수 있다는 뜻을 지닌 이름이었다. ‘할 수 있다! 아자아자정신이 깃든 이름인 것이다. 긍정의 힘을 발휘하는 이름에 이가환은 왜 한숨을 지었을까? 그것은 바로!! 책의 제5, ‘진지하게, 머뭇거리지 말고에서 확인 할 수 있다.

 

고백하자면... 나는, 한글로 번역된 정약용의 편지들을 읽다가 한 밤중에 울컥 눈물을 쏟은 적이 있다. 편지 내용 때문이 아니었다. 수백년 전 그가 한문으로 남긴 편지를 오랜 시간을 건너 내가 지금 여기에서 한글로 읽을 수 있다는 게 너무 고마웠기 때문이다. ‘죽은 학문이라고 불리는 오래된 글들을 읽고 현대어로 번역해 주는 분들이 너무 고마웠다. 죽은 정약용을 살려내 내 곁으로 보내준 그들이. 마음챙김의 인문학을 읽으면서도 같은 마음이 들었다. 누군가의 수고가 없었다면 내게 올 리 없었던 선비들을 만나며 참 고마웠다. (이 글을 통해 선비들의 글을 번역하고, 책으로 엮어준 저자와 출판사에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다.)

 

이 책은 한꺼번에 후루룩 읽어도 좋지만, 가까운 곳에 꽂아두고 계절에 따라 한 편 한 편 읽으며 음미하면 더 좋을 책이다. 나는 어떤 선비들이 기다리고 있는지 궁금해서 촤르르 책장을 넘겼지만, 선비와의 첫 만남을 준비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하루에 한 편 씩 읽어도 좋겠다. 하루에 한 사람과 마주앉아 이야기도 나누고, 마음이 동하면 함께 거닐기도 하면서 우정을 쌓아보면 어떨까. 나의 친구들이 이 책을 읽으며 선비들과 친구가 되길 바라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