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나락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조이스 박 옮김 / 녹색광선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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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당신의 단편을 묶은 행복의 나락이 도착했습니다. 하필이면 눈보라가 몰아치던 중이라 책은 한기를 잔뜩 품고 있었습니다. 표지에 맺힌 습기를 닦아내고 따뜻한 방에 두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보다 만 <위대한 개츠비>를 마저 감상했어요. 당신의 작품을 읽기 전에 나름의 준비운동이 필요했으니까요. 왜냐면 저는 당신의 작품을 한 편도 읽지 못했거든요.

 

당신의 이름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당신의 작품을 읽은 적이 없습니다. 당신이 썼다는 위대한 개츠비도 소문으로만 들었어요. 돈 많은 개츠비라는 사람에 관한 책이라는 소문이었지요. 저에게 영미문학은 접근하기 어려운 세계였습니다. 경험을 바탕으로 모든 것을 인지하는 저에게 가 본적도 없었고, 접할 기회도 없었던 그쪽 나라의 문화가 낯설었기 때문입니다. 어릴 때의 선입견은 어른이 돼서도 깨뜨리기가 쉽지 않았어요. 그래서 한 동안 외국문학과는 거리를 두다 이제 조금씩 시선을 넓히는 중입니다.

 

당신에 관한 이야기를 접한 것은 영화 <지니어스><미드나잇 인 파리>였습니다. 그 속에서 알콜 중독으로 고생하고, 사치스런 생활을 하느라 빚을 내고, 빚을 갚기 위해 또 글을 쓰는 당신을 보았지요. 심하게 휘청이며 살아가는 당신을 믿는 사람은 오직 맥스웰 퍼킨스 뿐이었습니다. ‘작가 스콧을 발견하고, 당신의 책을 세상에 내놓고, 끝까지 당신에게 글을 쓰라고 용기를 북돋아준 사람, 당신의 영원한 편집자말입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나는 당신이 다시 일어설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위대한사람으로 기억될 거라고 생각했지요. 그러나 당신은 삶을 일으켜 세우지 못했습니다. 환상 속에서 반짝이던 당신은 그렇게 소멸되고 말았지요.

 

당신의 단편 다섯 작품을 엮은 행복의 나락을 읽으면서 삶의 이중주를 연주한 당신을 보았습니다. 환상을 좇아가던 사람들이 결국에는 환멸을 경험하는 이야기들을 읽으면서 당신의 삶이 그들과 같았다는 생각을 했어요. ‘환상과 환멸이 공존한다는 역자의 말처럼 당신의 삶에도 두 가지의 선율이 함께 연주되었습니다. 아마도 삶의 이중주는 당신뿐만 아니라 세상 모든 이들이 연주하는 곡이겠지요. 사랑이 올 때 이별이 같이 오는 것처럼 삶의 기쁨 뒤에는 꼭 슬픔이 숨어있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젊었을 때는 그 사실을 잊고 나에게는 늘 좋은 것만이 존재한다고 믿으며 살았습니다. 환상이 끝나지 않을 것처럼 오늘을 살아갔지요.

 

그러나 저는 이제 환상보다 환멸을 먼저 생각합니다. 삶이 더 이상 나에게 환상을 줄 리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환상의 끝은 환멸이라는 걸 너무 잘 아는 까닭인지도 모릅니다. 짧지 않은 세월을 살면서 꿈꾸고 설레는 일보다 상처를 끌어안아야 하는 일이 더 많다는 걸 배웠으니까요. 그런데 당신의 글을 읽으면서 소멸할 환상일지라도 삶을 반짝이게 하는 무언가가 갖고 싶어졌습니다. 그것이 신이 허락한 내 삶의 모습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글을 읽으면서 어쩌면 환상과 환멸이 같이 오는 것은 내 삶에 생명력을 주기 위한 신의 배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어제가 오늘 같고, 내일도 오늘 같은 죽어있는 날들이 아니라, 예측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나고, 마음에 다양한 감정이 일렁여 끊임없이 피고 지는 날을 만드는 것이 우리가 이 세상에서 해야 할 일이라고요. 당신도 그걸 알고 있었기에 끝내 소멸할지라도 아름답게 피어나는 환상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 게 아닐까요?

 

당신의 작품을 로 읽으면서 당신이 정말 빛나는 문체를 지닌 사람이란 걸 깨달았습니다. 당신의 다른 작품들도 찾아 읽어보고 싶을 만큼, 당신의 문장들이 좋았어요. 저 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당신의 문체를 새롭게 발견하는 계기가 되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스콧! 혹시 언젠가 당신의 글을 우리말로 바꾼 역자를 만나게 된다면 그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시길! 축배를 들기 위해 와인 잔을 부딪칠 예정이라면, 그 옆에 체리가 듬뿍 담긴 바구니를 함께 준비하세요. ‘체리를 준비하는 것만으로도 역자에게 충분한 감사 인사가 될 테니까요.

 

저는 이제 당신과 맥스가 주고받은 편지를 읽어야겠습니다. 당신에 대해 조금 알았으니 두 사람이 편지를 읽으며 당신을 더 깊이 알아가야겠습니다. 물론 책으로 읽지 못한 위대한 개츠비도 읽어야겠지요. 그러다보면 당신에게 또 편지를 쓰게 될 날이 오겠지요. 얼마의 시간이 걸릴지 모르겠지만, 스콧! 저의 다음 편지도 기다려주세요. 또 편지할게요.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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