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하게도 나는 너를 우리학교 소설 읽는 시간
이꽃님 지음 / 우리학교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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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꽃님이라는 이름을 알게 된 건 세계를 건너 너에게 갈게덕분이었다. ‘문학동네 청소년문학상을 수상한 작품이며, 게다가 서간체 소설이라는 소개 글이 나를 사로잡았다. 책을 구입해 키득키득 웃으며 읽다가, 엉엉 울어버렸다. ‘나도 이런 글을 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하면서.

 

그 후, 죽이고 싶은 아이의 출간 소식을 접했다. 바로 구입해 책을 읽었다. ‘오호! 구성이 좋은데~’ 감탄하며 책의 뒷이야기를 상상했다. 이런 얘기겠구나, 이런 결말이겠구나... 그러나 책장 끝에는 완전 다른 결말이 있었다. 몸에서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죽이고 싶은 아이를 딸에게 추천했다. 내가 추천하는 책은 끝이 다 아름답게!’ 끝난다고, 그런 결말은 자기 스타일 아니라고 말하던 딸이 이 책을 순식간에 읽었다. 아이는 책을 덮으면서 지금까지 내가 읽은 책 중에 가장 재밌는 책!‘이라고 말했다. 세상의 모든 책이 이렇다면 끊임없이 읽고 또 읽겠다고.

 

그 다음 나는 행운이 너에게 다가오는 중을 읽었다. 죽이고 싶은 아이보다 먼저 출간되었지만, 나는 그때야 그 책의 존재를 알았다. 책을 읽으며 생각했다. 이꽃님은 구성의 신이구나. 어쩜 이런 구성을 할까, 이런 생각을 할까... 싶었다. 도서관에서 빌려 읽고 책이 너무 좋아 구입했다. 앞으로 이 작가의 책은 소장하게 되겠구나, 생각하면서.

 

최근에 이꽃님 작가의 새 작품이 출간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바로 알라딘에 접속해 당연하게도 나는 너를을 주문했다. 어제 책이 도착했다. 잠자리에 들기 전에 몇 페이지만 읽고 자려고 책을 펼쳤다가 끝까지 다 읽었다. 내가 이럴 줄 알았다. 이꽃님 책은 한 번 손에 쥐면 끝을 볼 때까지 내려놓을 수가 없다. 결말이 궁금해서 도저히 덮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번 책도 그랬다.

 

당연하게도 나는 너를에는 김해주와 정해록이 등장한다. 일명 해해커플’. 어느 날 이 두 명이 저수지를 방문하는데, 한 명은 실종되고 한 명은 돌아온다. 실종된 사람은 남자아이인데, 저수지 앞에는 여자아이의 운동화 한 켤레가 놓여있다. 마치 물속에 들어간 사람이 여자아이인 것처럼. 해주와 해록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이꽃님 작가는 지난 작품에 이어 이번 작품에서도 진실은 무엇인가?’를 이야기 한다. 그러나 전작인 죽이고 싶은 아이와 다른 점이 있다면, ‘진실은 무엇인가?’ 옆에 사랑은 무엇인가?’가 붙어있다는 것이다. 어쩌면 이 이야기는 한 사람의 실종에 관한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해주의 말처럼 이 이야기는 사랑에 관한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진실사랑을 나란히 놓고 생각해야 한다. 무엇이 진실이고, 어떤 것이 사랑인지를 찾아야하니까.

 

이 책을 다시 한 번 읽어야겠다. 청소년들과 어떤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지 밑줄을 긋고 생각을 정리해야겠다. 해주의 세상과 해록이의 세상은 어떠했는지, 그들과 관계를 맺은 해주의 부모님, 해록이의 친구들, 해주의 친구들, 경찰과 낚시꾼에 이르기까지, 등장인물 한 명 한 명을 톺아보고, 그들의 세상도 살펴봐야겠다. 그들의 모습 속에서 나를, 우리를, 세상을 바라보는 진실의 눈, ‘진실이라고 믿어 싶어 하는 마음을 찾아낼 수 있을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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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수 있는 것부터 - 산골 청소년과 놀며 배우는 배추쌤
이재명 지음 / 내일을여는책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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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수 있는 것부터》를 쓴 이재명 선생님은 전라도 장수에 있는 YMCA에서 청소년을 만나고 있는 분이다. 아이들에게는 ‘배추쌤’이라고 불리고, 어릴 때는 ‘주의가 산만하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고 한다. 저자소개에서 이 문장을 읽으면서 쌤이 이런 ‘호기심 천국’이었기 때문에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배추쌤의 책을 읽으면서 가장 먼저 공감했던 부분은 ‘사나운 개, 윌리’의 이야기였다. 윌리는 지인이 키우는 개 이름이다. 지인의 집에 가면 늘 마주치게 되는데, 들어갈 때는 아는 척도 안하던 윌리가, 그 집에서 사람이 나오기만 하면 사납게 짖었다고 한다. 얼마 동안 윌리를 맡아 데리고 있어야 했던 쌤은 윌리가 너무 무서워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그러다 ‘관계맺기’에 대해 생각하고 어떤 방법을 시도해 본다. (어떤 방법인지는 책에서 확인하시라!) 시도는 성공이었다. 쌤은 윌리와 관계 맺기를 하면서 사람과의 관계맺기도 이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이 책에서 가장 크게 공감한 것은 <보이지 않는 것에 주목하기>라는 꼭지였다. 이 책에는 이런 질문이 나온다.
“이 소리는 무게가 몇 그램이나 나갈까?”
나는 이 문장을 읽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소리에도 무게가 있을 수 있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소리는 무게를 잴 수 없지만, 무게감이 있다. 또 작은 소리, 큰 소리, 찢어지는 소리, 울려 퍼지는 소리 등 모양과 형태도 다양하다. 우리가 주고받는 말도 일종의 소리다. 하루 동안 나에게 어떤 소리가 들렸는지 떠올려보면 정말 다양하다는 걸 알 수 있다.’(P69)

이 문장을 읽고 아이들이 느끼는 ‘하루의 무게는 얼마나 될까?’를 생각하게 됐다. 새털처럼 가벼운 하루는 아닐지라도, 온 몸에 쇠사슬을 달고 있는 것처럼 무거운 하루는 아니었으면 좋겠는데, 아이들의 ‘하루 무게’를 때때로 내가 좌지우지 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무거웠다. 그래서 내가 밖에서 만나는 아이들이든, 집에서 만나는 아이들이든 그들의 마음을 가볍게 해주는 소리를 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소리의 무게를 글쓰기 수업에 어떻게 접목해 볼 수 있을까 고민도 해봤다.)

《할 수 있는 것부터》에는 청소년과 함께 수업을 하는 사람으로서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 많았다. 코로나 때 아이들을 만날 수 없어 여러 가지 재료를 집으로 보냈던 ‘질문 꾸러미’는 나도 언젠가 한 번 해보고 싶은 아이디어였고, 유치원부터 중학교까지 같은 학급에서 만나야 하는 아이들이 겪는 어려움도 알 게 되었다. 그리고 아이들의 마음을, 관계를 회복시키는데는 꾸준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에 깊이깊이 공감한다고 전해드리고 싶었다. (관계 회복을 하루 만에 하라는 공공기관들아, 그러지 말자. 쫌!)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나라 곳곳에 청소년들을 위해 마음을 다하는 분들이 많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그래서 맘이 좀 벅찼다고나 할까. 그리고 배추쌤처럼 아이들의 ‘내면을 지지와 격려로 채워’주고, 아이들이 ‘자기의 가치를 발견하도록 안내’하는 분들과 만나 함께 노는 날이 오기를 꿈꾸게 됐다. 우리가 노는 게 그냥 노는 게 아니라는 걸, 우린 또 너무 잘 아니까! 이걸 아는 사람이라면 자, 크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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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론테 자매, 폭풍의 언덕에서 쓴 편지 - 뜨겁게 사랑하고 단단하게 쓰는 삶 일러스트 레터 3
줄리엣 가드너 지음, 최지원 옮김 / 허밍버드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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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론테 자매, 폭풍의 언덕에서 쓴 편지

 

나에게 편지를 읽는다는 행위는 한 사람의 삶을 읽어내는 일이다. 그가 왜 어떤 상황에서 편지를 썼는지, 편지를 받는 사람은 누구인지 무엇을 말하려고 했는지를 파악하려고 노력하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편지를 한 편의 수필로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편지를 공부하며 한 사람의 삶을 들여다보는 나에게 편지는 쓴 사람의 이다.

 

그래서 브론테 자매, 폭풍의 언덕에서 쓴 편지를 읽는 일은 쉽지 않았다. 그녀들의 작품을 온전하게 다 읽은 것도 아니고, 샬럿, , 에밀리의 삶을 면밀하게 살피지 못한 채 이 책을 읽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척 궁금했다. 이들이 어떤 삶을 살았고, 어떤 편지를 남겼는지.

 

 

외출하러 나가는 길에 책을 받았다. 택배함에 놓여있는 봉투를 열어 책을 꺼냈는데, 와우! 책을 포장한 종이와 묶은 끈이 우아했다. 마치 브론테 자매가 살았던 그 시절에 보낸 소포 같았다고나 할까. 나는 책이 궁금해 길거리에 포장을 뜯고 책을 펼쳤다. (허밍버드에서 서평단을 모집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재빠르게 신청했다. 허밍버드에서 출간한 일러스트 레터시리즈를 애정하기 때문이다. ‘빈센트 반 고흐제인 오스틴의 편지는 출간 된 후에 소식을 접해서 뒤늦게 구입했지만, ‘브론테 자매의 편지는 남들보다 빨리 읽고 싶었다. )

 

허밍버드일러스트 레터시리즈의 장점은 그 시대를 알 수 있는 일러스트들이 함께 실려있다는 점이다. 책 속에 등장하는 편지나 글을 이해하기 쉽도록 관련있는 그림을 배치해 두어 독자의 이해를 돕는다. 그리고 편지와 관련 글을 시대순으로 편집해 삶의 흐름을 알 수 있도록 구성했는데, 이는 한 사람의 삶을 조망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나는 브론테 자매, 폭풍의 언덕에서 쓴 편지를 통해서 다양한 정보를 접했다. 브론테 자매의 삶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부터, 그들이 어떻게 삶을 마감했는지까지! 일단, 부모님에 관해 비교적 자세하게 설명한 부분은 무척 흥미로웠다. 부모님이 어떻게 만났으며, 어떻게 결혼을 했고, 어떻게 살다가 자녀를 출산하고, 어떻게 키웠는지. 비교적 세세히 알 수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브론테 자매들의 편지 책에 주목한 사람은 그녀들의 아버지였다. 자매들의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아버지가 어떤 삶을 살며 자녀들을 보살폈는지 (혹은 자녀를 보살필 여성을 어떻게 구하려고 했는지)가 매우 흥미로웠기 때문이다. 그 시대에 남성이 여성을 생각하는 관점을 알 수 있었다고나 할까?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브론테 자매들이 어떤 삶의 배경 속에서 작가의 꿈을 키우며 살아갔는지를 알 수 있었다는 것이다. 브론테 자매는 자신들의 삶에 들어찬 황무지를 나름의 푸름으로 만든 사람이라는 것도.

 

브론테 자매는 절망을 절망 속에 가두지 않고, ‘희망으로 끌어내려고 애썼던 사람들이다. 비록 오랜 삶을 누리지는 못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뜨겁게 사랑하고 단단하게 쓰는 삶을 살았다.

 


폭풍의 언덕, 제인 에어, 아그네스 그레이를 읽은 독자라면, ‘브론테 자매들의 삶을 생생하게 만나고  싶다면, 브론테 자매, 폭풍의 언덕에서 쓴 편지를 읽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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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함은 덤이에요 - 10년차 베테랑 편의점 언니의 치밀어 오르는 이야기
봉부아 지음 / 자상한시간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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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주르 봉부아!

 

오늘은 왠지 샹송을 들어야 할 것 같아요. 언니에게 편지를 쓰고 있으니까요. ‘봉부아란 불어로 좋은 숲이라는 뜻이라죠? 아주 아름다워요! 그런데요 언니, 저는 이 뜻보다 언니가 지은 두 번째 뜻!이 더 좋았어요. ‘봉부아의 원래 의미요. 프롤로그에 있는 언니의 고백을 읽으면서 얼마나 크게 웃었는지 몰라요. 평생 잊지 못하겠다, 생각했죠. 그리고 고백하자면 저는 신부아예요. (, 봉 옆에 신이요! 큭큭큭)

 

언니가 쓴 다정함은 덤이에요를 처음 본 건 인스타에서였어요. ‘내 마음의 아지트<자상한 시간>에서 출간한 책이라기에 사서 읽어야지 했어요. ‘10년 차 베테랑 편의점 언니의 치밀어 오르는 이야기라는 부제에서 뭔가 확 느껴지는 게 있었거든요. 왜냐면 제가 ‘6년 차 편의점 앞집에 사는 사람이기 때문이죠. 그만큼 편의점을 자주 애용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편의점 언니의 이야기가 궁금했어요. 언니의 글을 읽으면 우리 앞집 편의점에서 일하시는 분하고도 왠지 가까워질 것 같았어요. (이미 제가 넌 알콜을 사도 땅콩을 챙겨주실 만큼 친해졌지만요 ^^)

 

편지를 쓰기 전에 밝혀야할게 있어요. 언니의 책은 제가 사지 못했어요. ‘서평단에 덜컥 당첨이 되었기 때문이에요. ‘자상한 시간인스타에서 서평단 뽑기를 하면서 ‘000은 덤이에요라는 이벤트를 하신다기에, ‘손편지는 덤이에요라는 댓글을 썼거든요. 그런데 제가 뽑혔지 뭐예요! 제가 쓴 문장이 아름다워서! 였으면 얼마나 좋았겠어요. 그건 아니고요, 자상지기님들이 제비뽑기를 했는데, 제 아이디가 뽑힌 거예요. (어디서 뭘 뽑혀본 적이 별로 없어서 진짜 놀랐어요) 그래서 선물처럼 온 언니의 책을 읽었답니다.

 

언니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에피소드 하나하나에 얼마나 웃었는지 몰라요. (우리 유머 코드가 맞나봐요) ‘무서운 얼음컵읽으면서는 여름마다 얼음컵 살 때 탁탁 깨트리던 제가 떠올랐고요 (물론 우리 편의점 매니저님도 그러다 컵 깨진다고 하지 말라고 말씀해주셨어요. 그 날 이후 저는 탁탁 하지 않아요. 저는 말 잘 듣는 손님이거든요), ‘나의 첫 캔커피를 읽으면서는 고등학교도 졸업하기 전에 회사에 취직했을 때가 떠올랐어요. 이른 시간에 출근하느라 밥을 먹지 못해서 회사 근처 편의점에서 샌드위치랑 레쓰비를 먹곤 했거든요. 그 때 미스터2’<하얀 겨울>이라는 노래가 나오곤 했는데, ‘나의 첫 캔커피를 읽으면서 그 시절 생각이 나더라고요. 역시 캔커피는 레쓰비! (롯데 보고있나?)

 

자기가 가르치는 아이의 잘못을 대신 사과하러 왔던 관장님 이야기는 감동이었고, 화장실 빌리러(?) 왔던 오누카 부부의 이야기는 읽으면서 울컥했어요. 엉엉. 세상에 이렇게 아름다운 사람들이 있다는 게(언니 포함) 너무 좋았거든요. ‘두릅엔 막걸리지. 나도 신랑이랑 그렇게 먹었어할머니 이야기도 찡했어요. 저도 언젠가 그 말을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죠. 그러려면 일단 두릅에 막걸리를 마셔야 할 텐데, 요즘 두릅이 나왔나 모르겠네요.

 

언니 책을 읽으면서 우리 주변에 있는 소소한 이야기들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구나를 새삼 다시 느꼈어요. 어떤 렌즈를 끼고 세상을 바라보느냐에 따라서 세상은 정말 달라보인다고요. 언니가 끼고 있는 다정함이란 렌즈를 우리도 끼워보면 어떨까... 도 생각했답니다.

 

그런데 왜 자꾸 언니라고 하느냐고요? 언니 나이는 모르겠지만 외화 V’를 아는 걸 보니 분명 언니일 것 같아서요. 저는 그거 꼬꼬마 때 봤거든요. 그리고 편의점!’이라고 하는 것 보다 언니라고 하는 게 더 다정해보이니까요. 우리에게 다정함은 덤이잖아요. ^^

 

추신 : 언젠가 <자상한 시간>에서 커피 한 잔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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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봄과 작업 - 나를 잃지 않고 엄마가 되려는 여자들 돌봄과 작업 1
정서경 외 지음 / 돌고래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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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금요일, 2022년의 공식적인 일정이 모두 끝났다. 새해가 될 때까지 더 이상 수업과 회의와 원고를 쓰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작가에게는 휴가가 없는 법. (지인이 알려준 말인데, 누가 한 말인지 까먹음) 나는 둘째가 아침에 등교해 오후 늦게 돌아오는 월요일을 기다렸다. 새해 계획도 세우고, 새로 써야 하는 원고 기획도 마무리 할 참이었기 때문이다. 오롯이 혼자서! 아침 시간을 즐기며 무언가를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지!

 

그러나 이런 계획은 엄마라는 이름 앞에서 늘 무용지물이 된다. 아이가 아파서 학교에 가지 않은 것이다. 통증을 호소하는 아이를 데리고 병원에 갔다, 하루 종일 아이와 함께 있었다. 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갔고, 나는 예정했던 일을 하나도 하지 못했다.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나에게는 화요일!이 있으니까. 그러나 아이는 화요일에도 아팠다. 아침부터 이 병원 저 병원으로 투어를 했고, 아이와 함께 수 시간을 병원에 묶여 있었다.

 

이런 일은 두 아이를 낳고 키웠던 17년 동안 비일비재했다. 내내 건강했던 아이는 내가 지방 출장을 갈라치면 아프기 시작했고, 남편은 늘 바빴으며(그래서 혹자들은 내게 남편이 없는 줄 안다), ‘프리랜서라는 이름 때문에 항상 집안의 대소사를 챙기는 것은 항상 프리한 내 몫이었다. 일일이 말하지 않았지만, 그동안 진짜 힘들고 서러운 순간들이 참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대학도 가고, 책도 쓰고, 강의도 할 수 있었던 것은 엄마의 돌봄덕분이었다. 딸의 작업을 위해 적극적으로 돌봄을 해준 엄마 덕분에 나는 학생도 되고, ‘작가도 되고, ‘강사도 되었다. 엄마의 돌봄이 없었다면, 단언컨대 지금의 나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마음 한 곳에 묵혀두었던 지난 시절들을 다시 떠올린 것은 돌봄과 작업이라는 책을 읽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수많은 를 만났다. 어쩌다 한 두 명의 생각에 공감한 것이 아니라, 책을 쓴 11명의 저자들에게 깊이깊이 공감했다.

 

먼저 이 책의 첫 문장을 읽고 빵 터졌다. ‘내게 아직 아이가 없었을 때 아이를 가질 수도 있다고 생각한 이유는 설마 그 아이를 내가 키우게 될 줄 몰랐기 때문이다.’(p29, 정서경), 라는 문장이었다. 그렇다. 나도 내가 아이를 키우게 될 줄 몰랐다. 어른들이 말하던 것처럼 아이는 낳기만 하면 저절로 크는 줄 알았으니까. 그러나 아이는 엄마의 24시간, 할머니의 25시간을 잡아먹으며 컸다. (우리 아이들은 종종 말한다. ‘엄마는 우리를 낳기만 했지, 할머니가 다 키웠잖아라고. 으허허허. 더 이상 다른 말은 하지 않겠다.)

 

서유미 작가가 쓴 아이는 마트료시카처럼 어릴 때 모습을 품고 있고라는 문장을 읽으면서는 마음이 아팠다. 자다 깬 아이가 자리에 앉아서 엉엉 울고 있는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 시절 나는 아이를 재우고 작은방으로 건너가 공부를 하고 원고를 쓰고 책을 봐야했다. 자기가 잠들면 엄마가 사라질 거라고 생각한 아이는 쉽게 잠들지 못했고, 겨우 잠들었다가 이내 깨서 서럽게 울었다. 시험을 보고, 마감을 해야 하는 나는 아이를 안고 같이 울었다. 이제 나보다 훨씬 큰 아이지만, 그 아이의 모습 속에 울고 있는 작은 마트료시카가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아렸다.

 

부모에게 잔인한 양육 지침들에 대해 꼬집은 홍한별 작가의 글도, ‘남자 학자나 지식인을 보면 존경심보다는 밥은 누가 차려줬는지, 아이는 누가 키워줬는지등이 궁금해지며 코웃음이 나왔다던 임소연 페미니스트 과학기술학자의 글도, ‘육아란 스스로조차 납득하기 어려운 변화의 과정이며, 때로는 그 선택을 후회하기도 하고, 때로는 그 선택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과정이라는 사실에 대해 최소한의 사회적 공감을 원한다는 전유진 아티스트의 글도 내 마음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 같았다.

 

특히, 내가 가장 깊이 공감하고 위로 받은 부분은 인터뷰어 엄지혜의 글이었다. 그는 엄마에게 아이를 맡기고 회사를 다니는 워킹맘인데, 엄마에게 아이를 맡기는 것이 같은 여성으로서 미안했다고 한다. ‘돌봄을 끝낸 시기에 또 다른 돌봄을 시작하게 만든 당사자가 나라서.’ 그 마음이 어떤 것인지 너무 잘 알고 있다. 엄마의 시간에 기대어 살아가는 것이 어떤 것인지. 엄지혜는 친정엄마에 대한 죄책감이 한 창 일 때 정신과 전문의이자 정신분석학 전문가가 해 준 말을 듣고 위로를 받았다고 한다. 나도 이 글을 읽고 엉엉 울었다.

 

자식이 부모에게 신세를 질 때가 있고, 부모가 또 자식에게 신세를 질 때가 있어요. 그때 잘하시면 돼요.”

 

*

 

돌봄과 작업을 읽으며 생각했다. ‘돌봄은 결국 돌아봄일지도 모른다고. 누군가를 돌보며 내 지나온 삶을 돌아보고, 누군가의 돌봄에 기대어 살며, 내가 돌볼 또 다른 누군가를 돌아보는 것이라고. ‘돌봄돌아봄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이 책을 많은 이들이 읽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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