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네에게 가장 만성적으로 잠재해 있는 문제 요소는……, 이걸 정확히 뭐라고 말해야 할까……, 복종 문제일세. 자네는 딴지를 걸고 나설 때가 너무 많아."
"아니오, 그렇지 않습니다." 마일즈는 분연히 받아치다가, 그만 입을 다물었다.

"가라앉든지 헤엄을 치든지 하란 얘기네, 소위."
날아야죠. 마일즈가 생각했다. 전 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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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빈스토크는 진짜로 바벨탑이 된 걸까. 셰흐리반은 반대쪽으로 돌아누웠다.
수십 년간 폭탄을 안고 살아온 사람들을 떠올렸다. 누군가 거금을 들고 찾아오거나, 혹은 견딜 수 없을 만큼 가혹한 압력을 행사하는 경우도 있었을 것이다. 그래도 그들은 65년간이나 그 자리에 그대로 머물러주었다. 수십 년 묵은 약속을 지켜준 셈이다. 언제 터져버릴지 모르는 폭탄을 안고.
부동산을 넘겨받으면서 셰흐리반은 그들의 표정을 유심히 살폈다. 진짜로 빈스토크는 바벨탑이 됐던가요? 셰흐리반이 눈빛만으로 그렇게 물었다. 그들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셰흐리반은 도무지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그냥 제거해버릴까, 저놈의 폭탄.

"60년을 살면서 지켜봐왔지만, 바벨탑이 아니었거든. 우리끼리 서로 짜거나 한 건 아니었어. 물론 한두 사람은 나처럼 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은 했어. 그래도 하나도 안 터진 건 미안해...
정말로 예상 못 한 일이었어. 아무튼 미안하게 됐어. 하지만 정말이지 그러고 싶지가 않았어. 다른 사람들은 예정대로 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내 손으로 여기를 없앨 수가 있어야 말이지.
여기 이 동네 말이야. 이 나라 전체에 대해서는 나도 잘 모르겠지만, 이 동네만큼은 어쩔 수가 없었어요. 어차피 결과는 똑같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우리 집에 있는 놈만은 불발이었으면좋겠다고 생각했어. 왜냐하면, 여기는 바벨탑이 아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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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동료 경희 씨, 사랑하는 빈스토크 시민 여러분, 여러분의 국가가 손을 뗐어요. 그 사람은 빈스토크 시민이 아니라면서요. 하지만 여러분은 그러지 않을 거라 믿어요. 빈스토크 22층에는 네모난 국경면이 펼쳐져 있지만 여러분의 마음은 직육면체 상자에 갇혀 있지 않으니까요.

"뭐긴요? 아까 제가 만들어드린 거요. 타클라마칸 사막에 추락한 비행기 찾는 거."
병수는 잠이 확 달아났다.
"왜? 지금 이 시간에 2만 7천 명이 어딨어? 그것도 한밤중에."
"아, 어디 보자. 빈스토크에서 6천 명 조금 넘고, 우리나라에서 5천 명쯤 되고, 나머지는 다른 나라에서 접속했어요."
"왜?"
"왜는 무슨 왜요? 그냥 찾는 거지."
"그러니까 그 사람들이 왜? 뭔가 오류 생긴 거 아니야?"
"오류 같은 거 없어요. 뭐가 있어야 오류가 나죠, 사진 하나 달랑인데. 조은수 씨가 빈스토크에 돌린 편지가 번역이 돼서 외국으로 갔어요. 그래서 그냥 찾는 거예요, 그냥. 이유가 필요한가? 원래 인터넷에서 하는 일이 그렇잖아요. 그냥 해요, 그냥."
그리고 한 시간이 지나자 접속자 숫자가 4만 명을 넘어섰다. 그로부터 한 시간 뒤에는 7만5천 명을 돌파했다. 파란색 칸이 점점 늘어만 갔다. 그 주위로 녹색 선이 불길처럼 번져갔다. 병수는 손을 놓고 전체 화면을 지켜보았다. 그는 그 광경이 이해가 안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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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과 엘리베이터! 심지어 제목까지 정해져 있었지만 아직은 그 이야기를 끄집어낼 타이밍이 아니었다. 정권이 바뀌고 당사자들이 모두 자리에서 물러날 때까지 일단 조용히 기다려야 했다. 그때가 되면 회고하듯 담담한 어조로, 한 시대를 지배했던 부조리에 대해 반성의 목소리를 높여볼 수 있을 것이다.
‘젠장! 오래도 살아야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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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코앞에 닥친 일들을 붙들어 처리하자고, 이제는 더 이상 엉터리같이 놀지 말자고 굳게 결심하면서 마일즈는 침대에 모로 엎어졌고, 여섯 시간 동안 그대로 누워 꼼짝하지 않았다.

"아니야! 넌 부모와 달라. 넌 너잖아. 너라는 사람은 너만의 것이라고……. 완전히 따로야……. 결백한 존재야……."

"난 이제 내가 뭔지도 모르겠어. 마일즈, 나를 믿어 줘야 해. 난 너를 생명처럼 사랑하고 있어……."
마일즈의 심장이 기운차게 부풀어 올랐다.
"하지만 네게 딸린 사람이 될 수는 없어."
그리고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무슨 소리야."
"어떻게 더 쉽게 얘기하면 좋을까. 넌 큰 바다가 물 한 동이를 삼켜버리는 것처럼 날 삼켜버릴 거야. 난 네 속에 매몰돼 없어지겠지. 너를 사랑해, 하지만 네가 무서워. 네 미래가 겁나."

"언약을 깨." 마일즈가 명령했다.
엘레나는 말없이 마일즈를 쳐다볼 뿐이었다. 잠깐 사이에 마일즈는 얼굴이 붉어졌고, 수치스러운 마음으로 눈을 내리깔았다.
"넌 큰 바다와도 같은 명예를 지녔지." 엘레나가 속삭였다. "나에게 있는 것은 한 동이뿐이야. 그나마도 엎어버리려 하시다니 불공평해요……, 주군님."

엘레나의 목소리가 들렸다. 운반되는 마일즈 뒤에서 떨리는 음성으로 소리 높여 외치고 있었다.
"자, 어릿광대들아! 이제 놀이는 끝이다. 이번 한 판 싸움에 이겨 네이스미스 제독님께 승리를 바치자!"
영웅이로군. 영웅들이 잡초처럼 마일즈 주위 사방에서 돋아난다. 마일즈 본인은 영웅병의 숙주일 뿐 자기가 퍼뜨리는 병에 걸리지는 못하는 모양이었다.

믿음을 가지고 과감히 뛰어내려야 할 때가 오면 눈을 뜨고 있든 감고 있든, 떨어지면서 계속 비명을 지르고 있든, 어차피 아무 차이가 없다.

"어머니는 이것을 제가 받은 커다란 선물이라고 하십니다." 마일즈가 말했다. "시련은 선물이라고, 그러므로 커다란 시련은 커다란 선물이라고 어머니는 말씀하시지요.(중략) 당신은 당신이 받은 선물을 가지고 무엇을 하려 합니까, 보르할스 백작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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