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장 코앞에 닥친 일들을 붙들어 처리하자고, 이제는 더 이상 엉터리같이 놀지 말자고 굳게 결심하면서 마일즈는 침대에 모로 엎어졌고, 여섯 시간 동안 그대로 누워 꼼짝하지 않았다.

"아니야! 넌 부모와 달라. 넌 너잖아. 너라는 사람은 너만의 것이라고……. 완전히 따로야……. 결백한 존재야……."

"난 이제 내가 뭔지도 모르겠어. 마일즈, 나를 믿어 줘야 해. 난 너를 생명처럼 사랑하고 있어……."
마일즈의 심장이 기운차게 부풀어 올랐다.
"하지만 네게 딸린 사람이 될 수는 없어."
그리고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무슨 소리야."
"어떻게 더 쉽게 얘기하면 좋을까. 넌 큰 바다가 물 한 동이를 삼켜버리는 것처럼 날 삼켜버릴 거야. 난 네 속에 매몰돼 없어지겠지. 너를 사랑해, 하지만 네가 무서워. 네 미래가 겁나."

"언약을 깨." 마일즈가 명령했다.
엘레나는 말없이 마일즈를 쳐다볼 뿐이었다. 잠깐 사이에 마일즈는 얼굴이 붉어졌고, 수치스러운 마음으로 눈을 내리깔았다.
"넌 큰 바다와도 같은 명예를 지녔지." 엘레나가 속삭였다. "나에게 있는 것은 한 동이뿐이야. 그나마도 엎어버리려 하시다니 불공평해요……, 주군님."

엘레나의 목소리가 들렸다. 운반되는 마일즈 뒤에서 떨리는 음성으로 소리 높여 외치고 있었다.
"자, 어릿광대들아! 이제 놀이는 끝이다. 이번 한 판 싸움에 이겨 네이스미스 제독님께 승리를 바치자!"
영웅이로군. 영웅들이 잡초처럼 마일즈 주위 사방에서 돋아난다. 마일즈 본인은 영웅병의 숙주일 뿐 자기가 퍼뜨리는 병에 걸리지는 못하는 모양이었다.

믿음을 가지고 과감히 뛰어내려야 할 때가 오면 눈을 뜨고 있든 감고 있든, 떨어지면서 계속 비명을 지르고 있든, 어차피 아무 차이가 없다.

"어머니는 이것을 제가 받은 커다란 선물이라고 하십니다." 마일즈가 말했다. "시련은 선물이라고, 그러므로 커다란 시련은 커다란 선물이라고 어머니는 말씀하시지요.(중략) 당신은 당신이 받은 선물을 가지고 무엇을 하려 합니까, 보르할스 백작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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