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난 1년간의 항해 내내 선내에 있는 무엇인가를 보지 못했다.
사람의 모든 생각과 행동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공기처럼 흔한 무엇인가를, 누구나 가장 먼저 확인하고 고려하는 무엇인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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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난 1년간의 항해 내내 선내에 있는 무엇인가를 보지 못했다.
사람의 모든 생각과 행동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공기처럼 흔한 무엇인가를, 누구나 가장 먼저 확인하고 고려하는 무엇인가를.

"난 인간에 대해 아무 생각 없어. 내가 생각하는 건 보급뿐이야."
내가 말했다. 이미 수도 없이 했던 말이다. 받아들이지 않았을 뿐이다. 사람의 뇌는 유연한 나머지 새 정보가 들어오면 배열 전체를 바꾼다. 그래서 인간은 제 인격을 보호하기 위해 쉽게 정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남의 말을 도통 듣지 않는다. 과도한 유연성의 부작용이랄까.

인간은 이런 것을 보고 사는구나. 감각적이다. 공학적인 지식도 수학적 논리도 아닌 정보들. 들여다볼 도리가 없는 타인의 마음을 엿보기 위해 발달한 공감 신경과 거울 뉴런들, 햇빛처럼 쏟아지는 감각. 야만이 그 정신의 반이라면, 그 야만을 다스리는 데에 나머지 반을 쓴다. 인간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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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08 11: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12-08 11: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12-08 14: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도구로 사람을 찌르거나 사람으로 도구를 찌른다. 이게 벌을 각오하고 죄를 짊어지는 살인이야.
당신은 사람으로 사람을 찌르려고 했잖아"

나름의 신념을 지니고 열꽃을 피웠던 이들도, 어디서든 납작 엎드려 주변을 살피는 작은 짐승 같던 이들도, 유독 충성심에 불타 맹목적이던 이들도, 결국 나중엔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로 고만고만한 점토 인형처럼 변했다. 모두 처음엔 각자 마음속에 자기만의 촛불을 켜놓고 있었지만 더는 그렇지 않았다.

쉬지 않고 도망치며 살고 있는 건 오히려 윤서리 자신이었다. 너무나 오랫동안 과거로만 도망쳤기에 미래를 받아들이는 방법을 잊어버린 것만 같았다.

아직 어떤 친구도 죽지 않은 경선산성을 보고 싶어서 이곳에 왔다. 단지 그뿐이었다.
이제껏 시도했던 모든 노력이 그녀를 손가락질하며 비웃는 것 같았다. 이 굉장한 능력으로 할 수 있는 게, 고작 한때 반짝했던 추억을 들춰보는 것이라 생각하니 얼굴이 뜨거워졌다. 그런 건 사진첩의 역할이다. 인간이 온 힘을 다해 이뤄야 하는 목적이 아니다.

그녀는 판결문을 읽듯 중얼거렸다. "나는 시간을 돌릴 때마다 새로운 정여준을 죽게 했구나."

살아야 하는 건 언제나 그가 자신보다도 사랑했던 이들이었다.

사람이 얼마나 깊은 나락에서 돌아오든 얼마나 특이한 초능력을 가지게 되든, 그 능력은 아마 누군가를 찌르고 뭉개고 부수기 위한 게 아니라 그저 머리카락을 잘라주고 붙여주며 킬킬거리기 위해 생겨났을 것이다.

"우린 싱크홀에 떨어져서도 포기하지 않았잖아요. 그러니 싱크홀이 생기기도 전에 포기해버리면 미래의 우리가 분명 화낼 거예요. 난 복원자예요. 먼저 폭발해 다가오는 게 없으면 돌려보낼 수 없어요. 그러니 이번 희망도 부서질 때까지 기다려줘야 해요. 적어도 그 전엔 되돌리지 않을 거예요."

"무사해서 다행이다!"

"지금까지 싸웠던 시간보다 더 오래 대화를 나눌 것이다! 내가 용서받고 돌아올 때까지 죽지 말고 여기 있어라!"

정여준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최주상을 보았다. 그리고 먼 바깥에 환영처럼 스쳐 지나가는 윤서리의 모습을 보고, 다시 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왜겠어요?"
정여준은 미소 지었다.
최주상이 그를 완전히 처음 보는 낯선 이로 느낄 만큼 찬란한 미소였다.
"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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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략) 이 전투에 걸린 것은 기껏해야 국가의 존망일 뿐이다. 개인의 자유와 권리에 비하면 그다지 가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면 다들, 슬슬 시작해 보도록 하자." - P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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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막대한 피를 흘리고 국가경제를 파국으로 몰아넣고 국민들의 고혈을 짜내야만 한다면, 정의란 탐욕스러운 신과도 같다. 끊임없이 산 제물을 요구하며, 만족할 줄을 모르는 것이다. - P251

"지금 저랑 제독님이 같은 별을 보고 있었어요. 저기요. 저기 크고 푸른 별……."
"음. 저 별은………."
"무슨 별인가요?"
"뭐였더라, 저게….…."
기억의 끈을 더듬으면 해답은 발견할 수 있을 테지만, 굳이 그럴 마음은 들지 않았다. 그의 곁에 있는 이 소년이 굳이 그와 같은 별을 올려다볼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사람은 자기만의 별을 붙잡아야만 한다. 설령 그 어떠한 흉성이라 할지라도. - P2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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