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드워크
스티븐 킹 지음, 공보경 옮김 / 황금가지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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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장편소설 『로드워크』는 참 독특한 이력을 가진 책이다. 엄밀히 말하면 책이 아니라 작가인 리처드 바크만의 이력이 특이하다고 하는 편이 맞겠지만. 리처드 바크만은 공포 소설의 대가로 불리는 스티븐 킹이 가상으로 만들어낸 인물로 일종의 필명이라고도 볼 수 있는데 미국에서 심리 스릴러 분야의 최고 작가로 꼽히고 있었다. 심지어 그는 1980년대에 사망했다고 알려졌지만, 한 독자가 리처드 바크만과 스티븐 킹의 관계를 끝내 밝혀냈다는 일화가 유명하게 전해지고 있다. 필명과 본명 모두 미국 소설계에서 높이 평가를 받았다는 스티븐 킹의 이야기를 본다면 그가 정체를 숨기고 ‘리처드 바크만’으로서 쓴 소설이 더욱 궁금해진다.

『로드워크』를 보는 시점은 다양하게 형성된다. 그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건 아마도 스티븐 킹의 작품으로 볼 것인가, 리처드 바크만의 작품으로 볼 것인가이다. 이 둘을 고민해보는 것은 이 소설을 읽는 데에 나름의 재미를 준다. 스티븐 킹의 기존 소설을 읽어봤기에, 그리고 작가 스스로가 필명을 통해 출간한 책이기에 짐짓 속아주는 것도 재미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오! 이 책은 리처드 바크만이 쓴 것이군. 나는 그의 책을 처음 읽어!) 일면 스티븐 킹을 믿는 사람들은 리처드 바크만에 대한 신뢰도도 상당히 높을 것이라는 추측 역시 가능하다. 그나저나 심리 스릴러라니. 장르 소설의 팬이라면 누구나 좋아할 법한 두 개의 분야를 합쳐 놓은 듯한 명칭이다.

“안녕하십니까. 조만간 대형 크레인이 귀하의 집으로 찾아갈 것입니다. 저희는 귀하의 도시를 개선하고 있으니 이 멋진 행사를 지켜봐 주시기 바랍니다.”

책의 뒤표지에 쓰인 이 말을 본다면 작품에 흥미를 갖지 않을 수 없다. 스티븐 킹은 강력한 힘이 있는 문장을 잘 쓰는 작가다. 그리고 한 방향으로 향하는 글을 쓰는 사람이다. 단 한 문장으로 소설을 표현하기 어려운 책들이 더러 있는데 스티븐 킹은 비교적 작품을 일관된 맥락으로 이끌어가고 다른 곳으로 새지 않기 때문에 그의 소설을 요약하는 건 수월하다. 위의 문장은 『로드워크』의 줄거리와 핵심을 가장 잘 표현한다.

이 소설은 한 남자의 감정이 무너져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죽은 아들과의 추억이 있는, 그리고 자신이 일평생 살아온 한 동네가 도로 공사로 인해 파괴될 위기에 처하자 주인공인 바튼 도스는 점점 이상하게 변해간다. 마치 벼랑 끝으로 떨어지기 직전의 기차에 탄 승객처럼. 그리고 내일 종말을 맞이하는 사람처럼. 서서히 미쳐가는 한 남자의 시간을 끈질기게 담아낸 작품이 바로 『로드워크』다. 11월과 12월, 그리고 1월에 걸쳐 일어나는 사건들과 그에 따른 바튼의 감정 변화가 섬세하고 때로 과감하게 이어진다. 심리 스릴러라는 장르명에 걸맞는 전개가 이어진다.

국내외 문학에서 삶의 터를 잃은 인물을 그린 작품은 많다. 재건축과 도시계획 등으로 추억의 장소가 허물어지는 것을 지켜보는 이들의 심정은 어떨까. 집을 한순간에 잃는다는 건 심리의 변화를 극단적으로 겪는 상황이다. 집을 잃은 사람들은 문학 안에서 저항하거나 때로 거대한 권력에 눌려 상황을 수용한다. 그러나 리처드 바크만의 시점은 색다르다. 『로드워크』의 주인공 바튼은 공격적이다. 더는 물러설 곳이 없는 사람이 할 수 있는 갖가지 행동을 보여준다.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작품이란 바로 이런 것을 말한다는 듯, 작가는 자신 있게 바튼의 심리를 펼쳐 놓는다. 마치 그만의 강렬한 색채를 한 사람에게 칠하는 것처럼.

바튼의 캐릭터에 좀 더 주목해 보자. 그는 작품 내내 무언가를 상실한다. 부재로 인한 빈자리는 무엇으로도 메울 수 없다. 죽은 아들이 살아 돌아올 수 없고, 도로 공사로 사라질 집을 돌려받을 수도 없으니 그는 파괴적으로 변모한다. 바튼의 정신은 일면 여러 갈래로 분리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일례로 소설 안에서 조지와 프레디가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자주 등장하는데 독자들은 이들이 바튼의 정신세계 안에 있는 가상의 명칭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작가는 작품의 중반에서 프레디와 조지가 각각 바튼과 그의 아들 찰리의 중간 이름이라는 사실을 밝힌다. 둘이 대화를 나눈다는 가정은 바튼이 아직 아들을 완전히 떠나보내지 못했다는 반증이다. 바튼은 오히려 내면에 아들의 분신을 만들었다. 흥미로운 장치다.

“당신은 여길 떠날 수 없으니 저들에게 대가를 치르게 해야겠죠. 하지만 부디,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지는 마세요. 일부러 누굴 죽일 일은 없어, 프레디. 하지만 너도 내 입장 알잖아. 그래요, 알아요. 이해해요. 조지. 하지만 무서워요. 너무 무서워요.”

바튼의 삶은 단계적으로 무너진다. 집이 있던 자리에 생길 예정인 도로 계약을 미루다 회사에서 잘리고 아내와 별거를 한 후 충동적으로 폭탄을 사 크레인을 파괴한다. 바튼의 집으로 찾아올 예정이었던 크레인은 그의 손에 부서지지만, 그의 예상과 달리 폭발은 공사 진행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겨우 그것을 몇 주 미룰 뿐이었다. 우리는 여기에서 ‘크레인’의 속성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크레인은 무언가를 단번에 부순다. 특별히 책의 표지에 있는 것처럼 커다란 추가 달린 것들은 대형 건물을 박살내는 데에도 안성맞춤이다. 그렇기에 이 작품에서는 크레인을 하나의 ‘암시적 형상’으로서 고정하는 작업이 세밀하게 이루어진다. 크레인은 여러 도구로 변모하며 일정한 폭력의 이미지를 그려낸다.

소설의 처음에는 총을 구매하는 바튼이 나온다. “이 총으로 쏘면 사냥감의 내장이 6미터 넘게 펼쳐질 겁니다”라고 말하는 직원 해리의 말은 작품의 뒤에서 상당한 의미를 가진 말임이 드러난다. 총 하나의 폭발력이 그만큼 강하다는 말이다. 총에 이어서 이 소설에는 폭탄, 마약 등 물리적, 또는 심리적으로 거대한 영향을 한 번에 줄 수 있는 물건이 자주 등장한다. 크레인 폭파 사건 이후에도 바튼은 대단히 불안정한 모습을 보인다. 거의 중간에 등장해 서사의 분기점 역할을 하는 그 일은 작품의 핵심이다.

폭발 이전에 총이 크레인의 이미지와 같았다면, 폭발 이후에는 마약이 크레인의 역할을 대신한다. 바튼에게 마약을 제공한 것은 도로에서 히치하이킹을 하던 올리비아였고 그녀는 바튼에게 여러 자극을 준다. 결정적으로 올리비아가 남긴 메스칼린이라는 마약은 파티에서 바튼의 정신을 극도로 혼란스럽게 만든다. 결국 바튼은 약 후유증을 겪으며 집의 텔레비전을 부순다. 올리비아는 바튼에게 어떤 기폭 장치를 준 셈이다.

“그럼 폭탄이 왜 필요한데?”

“도로를 날려버리고 싶어서요.”

그러나 총과 마약이 크레인과 정확히 같은 이미지를 그리는 것은 아니다 이 셋은 ‘폭력’이라는 단어로 묶이지만, 크레인은 바튼을 향한 폭력이고 마약과 총은 바튼으로부터 나오는 폭력이다. 전자는 강압적이고 후자는 저항적이다.

총과 마약, 그리고 다른 암시가 가리키는 것은 바튼이 크레인을 부수는 단 하나의 사건이다. 폭발이 있기 전과 후 모두가 그 일을 향한다. 그가 총을 사는 것, 휘발유를 사는 것, 마약을 먹는 것, 텔레비전을 향해 망치를 내던지는 것은 전부 견딜 수 없는 하나의 사건에 맞서는 개인을 드러낸다. 바튼이 더욱 폭력적으로 변할수록 독자들은 삶의 터를 빼앗는 일이 얼마나 강압적인지를 역설적으로 깨닫는다. 그건 한 인간의 정신의 기반을 흔들 정도로 충격적인 일이다. 죽은 아들과의 추억, 그리고 살아온 나날이 한 번에 없어지는 것은 잔인하다. 『로드워크』는 자신이 어쩌지 못하는 소멸 한가운데에 선 남자를 조명한 작품이다.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의 인생을 밀어내고 매끈하게 들어설 도로. 『로드워크』는 어떤 의미의 제목일까. 이는 단순히 하나의 길(Road)과 일(Work)을 의미하지 않는다. 길 자체가 복합적인 의미를 내포하기 때문이다. 바튼에게 도로가 들어오는 일은 가장 고통스러운 과정을 의미한다. 우리가 걷거나 달리는 도로 아래에는 어떤 것들이 묻혀 있었을까. 무엇을 걷어내고 이 도로는 만들어졌을까. 만약, 이 길이 생기기 전을 기억하는 이가 있다면, 그의 머리에 기억되는 옛 모습은 어떤 것일까. 길을 걸으며 이런 질문을 할 기회는 극히 적거나 아예 없다. 그러나 반드시 매끈하게 뻗은 도로는 그 자리에 원래 있던 무엇을 밀어내고 들어온 것이리라.

직선으로 곧게 뻗은 도로는 분명 기술 발전의 산물이다. 그것은 때로 한 도시나 마을에 깔끔하고 세련된 이미지를 부여한다. 그러나 이전부터 그 자리를 오래 점유한 이들에게 길이란 그저 무언가를 앗아간 고통의 흔적일 뿐이다. 그들은 길을 걸을 때마다 어떤 생각을 할까. 아니, 그들은 길을 걷지 못한다. 온 힘을 다해 길을 파괴하고, 부수고, 없앤다. 길을 내려는 사람들을 방해하고 폭파한다. 길이 생길 자리에 원래 있던 것들은 그들의 삶과 같기 때문이다. 길이 들어오는 것조차 참지 못할 정도로 괴로웠을 이들이 떠올릴 ‘길’은 우리의 그것과 같을 수 없다.

바튼은 자신의 눈앞에 날 도로와 정면승부를 한다. 결국 자신의 터가 사라져야 한다면 그 스스로 모든 것을 없애겠다는 생각으로. 그가 행하는 극단의 폭력 사이에는 그럴 수밖에 없던 ‘심리’가 숨어 있다. 행동은 마음으로부터 나온다. 마음을 흔드는 사건은 행동을 흔든다. ‘심리’스릴러 작가인 리처드 바크만이 선택한 인간의 내면은 무너지는 것이었다. 극도로 빠르게, 걷잡을 수 없이 무너지는 사람의 마음을 표현하기란 매우 어렵다. 그러나 리처드 바크만은 무너짐의 속도와 각도를 정확히 계산하는 수학자처럼 섬세하고 과감하게 이야기를 펼친다. 바튼에 독자들이 반드시 이입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그는 스티븐 킹으로서, 그리고 리처드 바크만으로서 사람의 모습을 쓰는 데에 능숙한 작가이기 때문이다.

『로드워크』는 어느 쪽으로든 만족스러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스티븐 킹의 매력에 다시금 빠질 수 있었던 소설이었다. 리처드 바크만의 다른 소설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그 안에서는 어떤 인물의 심리가 독자를 흡족하게 할까. 리처드 바크만은 “역시 스티븐 킹!”이라는 말을 듣고 싶어했을까, 아니면 “리처드 바크만은 대단한 작가야”라는 말을 듣고 싶어했을까. 재미있는 질문이 꼬리를 무는 와중에 가진 한 가지 확신은 내가 이 작품에 ‘또’ 매료되었다는 것이다.

어쩔 수 없다. 그는 스티븐 킹이다.



본 리뷰는 개인 페이지에 올린 글의 전문을 옮긴 것입니다.

원문 보기 : https://ijeya.com/category/review/%EB%8F%84%EC%84%9C-%EB%A6%AC%EB%B7%B0-book-re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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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라와 태양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홍한별 옮김 / 민음사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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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가즈오 이시구로의 장편 『클라라와 태양』은 근미래를 배경으로 로봇과 인간의 관계를 다루는 소설이다. 민음사에서 번역 출간된 이 작품은 표지에서 강렬한 붉은색 배경과 푸른 사각형 안에 살짝 보이는 노란 원을 통해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작가는 노벨상을 받은 후 처음 내놓는 장편으로 『클라라와 태양』을 선택했다. 모든 작가가 굵직한 수상 이후 의미 있는 작품을 내놓는다고 볼 수는 없지만, 이 소설이 작가 개인에게 있어 중요한 시기에 등장한 것임은 분명하다. 그런 맥락에서 『클라라와 태양』에게 쏟아지는 주목과 그에 따른 찬사는 당연하게 느껴진다.

이 소설은 인공지능 로봇 에이에프(AF)인 클라라의 일인칭 시점으로 진행된다. 클라라는 에이에프를 파는 상점에 진열되어 있던 중 조시라는 이름의 여자아이를 만난다. 조시는 클라라를 곧 데리러 오겠다며 떠나고 클라라는 그것을 굳게 믿는다.

“그건 아니지, 클라라? 너 누구랑 약속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

작가는 주인공이자 서술자를 클라라로 설정한 만큼 로봇의 입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독특한 특징을 소설 안에서 적극적으로 살린다. 그리고 동시에, 클라라에게 인간의 모습도 일면 부여한다. 클라라는 사람과 기계의 모습을 모두 가지고 있다기보다는 ‘아주 자연스러운 기계’처럼 보인다. 사람은 인공지능이 지나치게 인간적으로도, 지나치게 기계로도 보이지 않기를 원한다. 『클라라와 태양』은 이러한 모순적인 관점을 잘 반영한 소설이다.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뉠 수 있는 작품의 가장 앞부분은 클라라가 조시를 기다리는 장면이 주를 이루며 ‘지나치게 인간적인’ 면모를 부각한다. 아무도 조시가 클라라와 약속을 했다고 믿지 않지만, 클라라는 홀로 조시를 기다린다.

클라라는 조시가 했던 말을 기억한다. 그리고 가게 밖을 관찰한다. 혹시 다른 아이가 온다면 자신을 데려가지 않을까 걱정하고 조시가 꼭 자신을 데려가기를 바란다. 정말 조시가 가게에 다시 방문했을 때, 하필이면 자신이 “가게 뒤쪽에 있”는 것을 안타까워하기도 한다. 다행히도 조시 역시 클라라를 기억하고 있었고 둘 사이에는 무사히 만남이 이루어진다. 우리는 이 장면에서 조시가 신형 로봇인 B3를 고르지 않고 클라라를 택한다는 점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B3는 소설의 전반에 걸쳐 ‘세련된’ 신형 로봇으로 소개된다. 조시의 친구들이 클라라와 B3를 대놓고 비교하는 장면이 나오기도 한다. 조시는 “B3가 할 수 있는 일 중에 클라라가 못 하는 건 하나도 없”다고 말하지만, 구식 모델과 신형의 대조는 끊임없이 이루어진다.

클라라가 조시를 보는 것처럼 조시도 클라라를 본다. 조시의 주변 사람들도 클라라를 본다. 그들은 어쩐지 옛날 에이에프처럼 보이는 클라라가 B3보다 한참 기능이 떨어질 것이라 여긴다. 너무나 당연하게도 이런 클라라의 특징은 조시와 바로 연결되는 지점이다.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구형과 최신식의 비교는 기술을 다룬 소설에 종종 등장하며 인간 사회와도 쉽게 연결되곤 한다. 신식 로봇의 등장은 옛것과 새것, 좋은 것과 안 좋은 것, 윗세대와 아랫세대 등 다양한 층위의 다름을 드러낼 수 있는 매개이다. 『클라라와 태양』은 수많은 위치의 사람 중 클라라의 짝으로 조시를 등장시킨다. 조시는 몸이 매우 약하고 이미 비슷한 병을 앓다가 사망한 언니가 있다. 신체적으로 약하다는 것은 조시에게 약점이 되며 일종의 ‘결함’으로 작용한다. 그리고 이는 구식 모델인 클라라와 조시를 맺어준다. 조시와 클라라는 약함을 통해 강화되는 관계성을 가진 인물들이라고 할 수 있다.

조시의 약함과 그것을 보완하는 클라라의 상호 의존성은 소설 전반의 분위기를 설정한다. 클라라는 단순히 조시에게만 도움을 주지는 않는다. 이후 조시의 엄마 크리시, 릭, 릭의 엄마인 헬렌 모두가 클라라와 직간접적인 관계망을 형성하는 것을 관찰할 수 있다. 그들 중 조시 다음으로 클라라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인물은 단연 크리시다. 클라라를 구입하기 전, 조시의 엄마 크리시는 클라라에게 “조시의 걸음걸이를 그대로 따라 해 볼 수 있”느냐는 질문을 한다. 독자들은 정보가 부족하기에 처음 보는 로봇에게 이상한 주문을 하는 그녀를 의아하게 볼 수 있지만, 여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크리시가 클라라를 선택한 까닭은 ‘다음 조시’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크리시는 첫째 샐처럼 조시 역시 몸이 약해 오래 살지 못할 것을 걱정했으며, 그렇게 된다면 자신 역시 다시 일어설 수 없으리란 사실을 알았다. 그랬기에 그녀는 오랜 시간에 걸쳐 ‘초상화’를 그린다는 핑계로 카팔디와 함께 ‘두 번째 조시의 몸’을 제작하는 작업을 진행한다. 클라라가 어디에 쓰일 것인가에 대한 암시는 조시의 친구 릭의 엄마인 헬렌으로부터 나온다. 헬렌은 클라라에게 자신이 옛날에 샐을 본 적 있다는 말을 한다. 그녀가 본 것은 전후 맥락으로 유추해 보았을 때 ‘샐의 두 번째 몸’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원래의 샐은 죽었고, 두 번째 샐을 만들었지만 실패한 것이다. 이 부분은 아직 조시의 두 번째 몸에 대한 암시가 나오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에 샐의 정체에 대한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주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은 클라라가 존재하는 목적과 맞닿는 복선이었다.

『클라라와 태양』에서는 SF에서 주로 사용되는 흥미 요소가 다수 등장한다. 특히 조시의 존재를 이어나가기 위해 이루어지는 ‘신체의 복제’는 소설의 허리를 채워나가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몸을 기계화하거나 완전히 복사하는 유의 장치는 오랫동안 변용된 구조의 서사다. 그런 맥락에서 크리시가 조시에게 ‘초상화’를 그리러 간다고 둘러댄 것은 아예 틀린 말이 아니다. 신체의 복제는 정교한 초상화를 그리는 작업과 유사하기 때문이다.

“만약 제가 조시를 이어 간다면, 새로운 조시 안에 들어간다면, 그러면 이……이건 어떻게 되죠?”

“그게 뭐가 중요하겠니? 겉껍질일 뿐인데.”

클라라는 크리시의 계획을 듣고 기뻐한다. 자신이 조시에게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클라라에게는 목적성이 분명했고 그것을 위해서는 스스로 희생도 감수하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사실 클라라에게는 ‘두려움’이 없다. 클라라는 공해를 내뿜는 기계를 망가뜨리기 위해 몸 안에 든 용액을 사용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용액을 쏟아내기 위해 귀 부분을 뜯어내거나 하는 묘사 역시 클라라가 아닌 사람에게 쓰였으면 기괴해보였을 테지만, 클라라는 조시를 위해 그런 행동을 망설이지 않는다. 그것이 클라라가 인간과 다른 점이다.

클라라는 자신이 조시가 되어야 하는 이유를 잘 알고 있었고, 그렇게 해야 하는 데에 의심을 품지 않았다.

『클라라와 태양』에서 가장 강조되는 것은 로봇의 ‘조건 없는 사랑’이다. 조금 과장하자면 이 소설은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 존재가 어디까지 상대를 도울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크리시에게 그녀의 계획을 들은 클라라는 잠시 자신이 조시를 살려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조시를 완벽하게 따라 하는 것 역시 그를 위하는 일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리고 사람의 ‘마음’까지 알아가 보겠다고 말한다. 이후 조시의 건강은 악화되었다. 조시는 클라라가 자신과 함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둘은 떨어질 수 없는 관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크리시는 클라라에 대한 문제를 모두 조시에게 맡긴다.

이런 암울한 상황에서 클라라가 희망을 가진 대상은 단 하나였다.

클라라는 태양으로 충전되는 에이에프였다. 그렇기에 ‘태양’의 특별한 힘을 믿으며 살아왔다. 이것이 작가가 소설 안에서 끊임없이 강조한 에이에프만의 시선이다. 소설의 후반에서는 지극히 기계적인 클라라의 시점이 돋보인다. 에이에프는 태양의 힘을 믿었다. 그리고 거기에서 희망을 찾는다. 클라라는 마지막으로 태양에게 조시를 맡긴다. 자신과 최초로 약속을 했고, 그것을 지켜주었으며, 끝내는 자신이 이어가야 할지도 모를 한 아이를 위해 클라라는 태양으로부터 오는 “특별한 친절함”을 바란다. 클라라에게는 사람도 태양이 꼭 필요한 존재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클라라의 다정함은 역설적으로 ‘인간’의 관점이 아닌 ‘기계’의 방식으로 강화된다. 미신처럼 보이는 현상을 간절히 원했던 에이에프 클라라의 기도는 이루어진다. 태양이 조시에게 특별한 친절함을 베풀어서인지 조시는 회복되고 클라라는 조시를 대체할 필요가 없어진다. 클라라는 가장 에이에프다운 방식으로 조시를 구한다.

“이제 희망을 가질 수 있어요.”

“무슨 말이니?”

“아침에 해가 뜨면요. 이제 희망을 가질 수 있어요.”

태양은 조시를 환하게 비췄고 더 이상의 슬픔은 없었다. 조시는 회복되었고 대학에 진학했다. 걱정했던 일은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았다. 조금은 쉽게 이루어진 것 같은 결말을 좀 더 단단히 하기 위해, 그리고 그것에 당위성을 부여하기 위해 작가는 뒷이야기를 이어서 전한다. 클라라는 자신이 가게에 있던 시절의 매니저를 우연히 만난다. 매니저는 클라라에게 “B3한테는 너희 세대한테 느낀 것 같은 감정을 가질 수가 없었”다고 말한다. 결말부에 제시된 이 문장은 아주 의미심장하다. 만약 조시가 B3를 데려갔다면, 클라라가 주었던 조건 없는 사랑을 받을 수 있었을까. 매니저가 B3에게 느끼지 못했던 감정은 아마도 ‘사랑’이었을 것이다. 태양만큼 따스하고 때로 온전히 자신을 버리면서까지 상대를 아끼고 걱정하는 마음을 B3는 가지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그것이 더 발전된 모델일지라도 오래된 마음은 쉽게 닮을 수 없었다.

클라라는 기계가 할 수 있는, 가장 기계다운 사랑을 보여준다. 그건 딱딱하고 경직되지 않은 진실함이다. 사람과 다른 인공지능의 두려움 없는 사랑은 몹시 낯설다. 인간은 계산이 수반되는 사랑을 하기 때문이다. ‘인간성’이라 감히 불리는 ‘감정’ 때문에 우리는 종종 진짜 사랑을 하지 못한다. 세상에서 오직 단 하나, 조시를 향했던 클라라의 마음만이 계산하지 않음으로써 완성되고 있다. 어떻게 우리가 이 인공지능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어떻게 우리가, 클라라와 같은 존재를 감히 인간의 불명확한 감정으로 재단할 수 있을까.

책을 모두 읽는 순간 태양이 클라라에게, 클라라가 조시에게 주었던 사랑은 독자를 향한다. 이 소설을 통해 독자들은 인간답지 않은 사랑이 한없이 다행인, 어떤 세상을 살짝 엿보게 된다. 아마도 그곳에서는 한 아이를 위해 산 에이에프와 특별한 태양이 있을 것이다. 무조건의 사랑에 겨워 따스한 태양 아래 ‘특별한 친절함’과 시선을 맞추어보자. 아마도 이것은 기술과 문학이 만들어낼 수 있는 가장 정확하고 확실하지만 계산 없는 행복일 테니 말이다.



본 리뷰는 개인 블로그에 올린 글 전문입니다.

원문보기 : https://ijeya.com/category/review/%EB%8F%84%EC%84%9C-%EB%A6%AC%EB%B7%B0-book-re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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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보그가 되다
김초엽.김원영 지음 / 사계절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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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보그가 되다』는 모두가 읽어야 하는 책이다. 특별히 비장애인들이 읽어야 한다는 것은 굳이 강요할 필요가 없어 보인다. 기술의 발달로 인해 지극히 낙관적이고 동정적이고 비장애인 중심적으로 바뀌어 버린 우리의 미래에 대해 진심으로 다시 생각해야 할 시기가 도래했다. 그렇기에 지금 가장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작가 김초엽과 깊고 진중한 글로 독자들의 마음을 울리는 김원영의 공동작업은 주목을 받아야 한다. 『사이보그가 되다』는 기술 발전을 기반으로 형성된 지나친 희망, 그리고 그 속에서 이루어지는 또 다른 폭력을 경계하기 위한 가장 최신의 지침서이다.

이 책은 하나의 작은 경험으로 틈이 생긴 고정관념의 시각을 뚫어주었다. 너무 단단하지도, 지나치게 말랑하지도 않은 적당한 경도의 이 책으로부터 많은 이의 생각이 바뀌었으면 한다. 그리고 언젠간, 누군가에게 낮은 손소독제가, 누군가에게는 의족이 필요에 따라 주어지는 사회가 도래했으면 좋겠다. 김초엽 작가의 말처럼, “취약한 사람들이 편안하게 제 자신으로 존재하는 미래”가, “무언가를 할 수 없는 몸들을 세계의 구성원으로 환대하는 미래”가 더 열려있으리라고 나도 믿는다.

본 리뷰는 개인 블로그에 업로드한 포스트 중 일부를 발췌한 것입니다.

원문 보기 : https://blog.naver.com/sol_narae98/2222222742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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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라미터O
이준영 지음 / 황금가지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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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마지막의 인류가 남는 미래의 이야기는 다양한 종말의 상상력에서 비롯된다. 인류로 인해 세상이 망하고 어쩌다 살아남은 이들이 다음 세대를 꾸리는 진행은 우리 행성의 안팎으로,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서 이루어진다. 최근 개봉한 영화 그린랜드는 소행성의 충돌로 인해 살아남은 몇몇이 다음 세대를 이어가는 결말을 보여주며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장편소설 파피용역시 미래의 어느 순간에 우주에서 다음 세대를 이어가고자 하는 과정을 다룬다. SF와 판타지는 왜 최후의 인류를 멈추지 않고 그리는 것일까.


상당수 콘텐츠에서 인간 종족의 멸망은 예견된 것이며 어떤 경계선 바깥으로 잘 벗어나지 않는다. 또한, 그 안에서 많은 이들이 죽거나 다치며 다수 또는 소수의 이들이 선택을 받거나 운 좋게 살아남는다. 대부분의 동족이 죽어가는 것을 목격한 다음 세대는 과거의 잘못을 반복하지 않으리라는 희망을 준다는 것이 최후의 인류를 끊임없이 생산하는 SF 작품이 갖는 하나의 작은 이유가 되지 않을까 싶다.


 

최후의 인류로서, 선조들을 대표해 마지막 발자취라고 할 만한 무언가를 남겨야 한다는 근거 없는 망상.”

 


황금가지의 신간 파라미터O역시 생존시설에 살아남은 이들을 다룬다. 다만 이 소설은 인류의 멸망이 어떤 과정을 통해 이루어졌는지에 초점을 두지 않는다. 이것은 재앙 이후의 이야기다. 주인공 조슈는 생존시설에 살아가는 엔지니어로서 안전한 자신의 세계안에 둥지를 틀고 살아간다. 어머니 가야는 알 수 없는 이유로 죽지만 그 이유는 초반에 제시되지 않는다. 처음에 묘사되는 생존시설은 우리가 흔히 상상할 수 있는 미래의 이미지다. ‘나무라고 불리는 산소발생기, ‘기계종이라고 불리는 로봇들. 그리고 인간이 사는 작은 공간. 감옥과 종교와 지도자도 갖추고 있는, 겉보기에 훌륭한 공동체다.


그러나, 소설을 읽다 보면 등장했다는 것조차 잊어버리는 프롤로그의 낸시는 이 공동체의 위험성을 암시한다. 비명을 지르며 시설을 탈출해 결국 사망하고 마는 낸시의 초반 등장은 강렬하다. 낸시의 탈출은 주인공 조슈를 시설 바깥으로 끌어내는 역할을 함과 동시에 1차적으로 그를 위험에 노출시킨다. 조슈는 낸시를 구하기 위해 시설을 나왔다가 바깥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느끼는 동시에 돌아가신 엄마의 흔적을 찾을 수 있겠다는 희망을 얻는다. 그게 조슈를 모험으로 이끄는 원동력이다.


소설의 제목에 등장하는 단어인 파라미터는 어떤 자료를 처리할 때 필요한 매개변수를 가리킨다. 파라미터O에서는 이 단어가 일의 우선순위를 결정할 때 쓰인다. 조슈는 기기들을 조종하기 위해 파라미터O에 들어가는 명령어를 여러 가지로 바꾼다. 하지만 이런 조슈의 행동이 열기를 띨수록 독자들은 오히려 그녀가 한 가지 목적을 끊임없이 갈망했음을 깨닫는다. 기계에게 명령어를 입력하기에 앞서 결국 조슈는 스스로, 자신에게 멈추지 않고 나아갈 방향을 설정했다. 그건 엄마를 찾는 일이었다.


기계들의 길잡이에 대한 언급이 등장할 때, 독자들은 이미 사라진 가야가 길잡이이거나 그와 매우 연관이 있을 것이라는 추측을 하게 된다. 그러나 이 소설은 그렇게 예측 가능한 구성으로 진행되지는 않는다. 여기에서 작가는 한 번 더 전환점을 준다. 조슈의 엄마에 대한 정보를 조금씩 풀어놓은 것이다. 비밀스럽게 모두에게 숨겨야 했던 가야의 죽음에 얽힌 비밀은 여기에서 밝혀진다. 마치 층층이 쌓인 얇은 천을 벗기듯 공개되는 과거의 진실을 듣던 조슈는 한 번 더 혼란을 겪는다.


인물의 관계나 이야기의 진행은 주어진 배경에서 충실히 해낸 장편이었다. 이 소설에서 장점으로 꼽고 싶은 것은 서로가 상대를 대하는 자세이다. 인간이 로봇을 대하는 방식, 그리고 특별히 로봇이 인간을 대하는 방식은 이전의 이야기들과 다른 면이 있었다. 파라미터O에서는 무작정 인간의 명령에 복종하거나 지나치게 자율적으로 움직이는 로봇이 등장하지 않는다. 그들의 움직임을 제어하는 것은 철저히 파라미터O’뿐이다. 물론 입력창에 자율적인 행동을 명령한다면 로봇 스스로가 움직이는 것이 가능하겠지만, 기본적으로는 인간의 말을 들어야 한다는 것이 독특한 점이다.


 

이라는 것은 어째서 해야 하는 거죠?”

우리 인간이 너흴 만든 이유가 그거니까.”

 


로봇은 인간의 일을 대신하기 위해서, 또는 인간이 할 수 없는 일을 하기 위해서 만들어진다. 기계적인 동작을 위해 만들어진 장치이든, 인공지능이든, 결국 그것들의 존재 목적은 을 하기 위해서이다. 하지만 파라미터O의 이브는 조슈에게 일을 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묻는다. 이브는 자신이 일을 하지 않았음에도 살아오는 데에 무리가 없었다고 말한다.


김혜진 작가의 단편 「TRS가 돌보고 있습니다등 인간을 대신하는 로봇이 등장하는 소설이나 영화에서 사람에게 로봇은 종종 질문한다. 그 질문 안에는 종종 자신들의 존재 목적과 인간의 존재 목적에 대한 심오한 메시지가 숨어있다. 파라미터O는 스스로 사회를 건설하고, 생각할 수 있는 기계들을 인간이 조종하거나 자율행동을 할 수 있도록 설정함에 따라 로봇들이 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하도록 한다. 로봇의 존재 이유는 에만 있을까. 이 책을 통해 던져지는 도전적인 물음이다.


이 소설의 또 다른 특징은 기계를 기계종으로 보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는 흔히 생물에게 이라는 말을 붙인다. 이는 생물학적 분류로 쓰일 뿐 아니라 한 생물과 다른 생물을 나누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생명이 없는 것들에게 이라는 호칭이 주어진 적은 없었다. 작가는 의도적으로 기계종이라는 말을 사용함으로써 낯설게 기계를 조명했다. 이 단어는 기계도 인간과 다를 바 없다는, 더 나아가 생명이 있는 것들과도 차이가 없다는 메시지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독자들은 이라는 말을 통해 한층 더 인간과의 차이가 좁혀진 기계들의 입장에 몰입할 수 있다. 그리고 기계종의 움직임과 외형 역시 인간과 거의 유사하게 묘사되기도 한다.


여러 소설 속 인공지능은 자연어 처리에 부족한 모습을 보인다. 작가의 의도이거나 장르의 관습이거나 로봇은 인간과의 대화에서 종종 부자연스럽게 그려지기도 한다. 하지만 파라미터O를 읽으며 로봇이 거의 인간과의 대화에서 다른 점이 없다는 느낌이 들었다. ‘튜링 테스트에 관한 언급이 지속되는 것을 본다면 작가는 인간과 로봇의 대화에 무게를 실었을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생체 실험을 통해 고안된 로봇들이라는 설정을 면밀히 살피자면 로봇의 움직임이나 말투가 비교적 자연스럽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감정을 느끼거나 도시를 세우거나 사회를 설립하는 것. 인간만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하던 것들은 이제 로봇의 영역으로 옮겨가고 있다. 로봇이 우는 것, 자율적인 선택을 하는 것에서 인간은 이제 놀라지 않는다. SF는 이런 장면을 사회에 미리 제시하는 장르이다. 이를테면 완충재의 역할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이런 SF의 장르적 효용을 고려하자면 파라미터O에 대포된 의미는 더욱 명확히 다가온다. 사람과 다를 바 없지만, 지구에 불어닥친 방사능 안에서 사람보다 더 강한 로봇. 그것은 기계에 자신을 의탁할 수 없었던 한 여성이 최후의 인간을 위해 발명하고자 했던 물건이기에 어쩌면 더욱 친밀한 모습으로 그려진 것이 아닐까.

 

만약 나를 낳아준 부모가 내가 낳은 자식을 해치려고 한다면, 부모의 뜻을 따라야 합니까, 자식을 구해야 합니까?” (324)

 

SF에서 등장하는 종교와 기계는 창조주-인간-피조물의 연쇄를 통해 더욱 풍성한 이야깃거리를 만든다. 부모--자식으로 치환될 수도 있는 이 구조는 결국 가야-조슈-이브에 이르게 된다. 썩 매력적인 방법이다. 황혼 들판을 바라는 한 기술자가 발명한 작은 기계종이 결국은 창조주를 찾고 창조주의 창조주에 대한 의미를 독자에게 전달하는 이 책은 황혼의 들판처럼 아름다운 결말을 맺는다. 육신을 잃고 나서야 낭만을 찾은 한 인간과 그의 어머니, 그리고 작은 기계종이 그린 이야기는 이 책에서 서막을 올렸을 뿐이다.


파라미터O는 깔끔하게 마무리되거나 여운이 남는 종류의 작품이 아니다. 어떤 대하소설의 서문, 다음 세대의 프리퀄과 같다. 최후의 인류가 남기는 이야기의 마지막에서 우리는 더 큰 세계의 서문을 읽는다. 그리고 우리의 파라미터O에 커서를 놓고 깜빡여 본다. 인류가 다음 내딛어야 할 발걸음은 어디로 설정되어야 하는가에 대해 고민하면서.


본 리뷰는 개인 블로그의 글을 일부 수정하여 업로드한 것입니다.

원문 보기 > https://blog.naver.com/sol_narae98/22220328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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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키지
정해연 지음 / 황금가지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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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연 작가의 장편 『패키지』는 나에게 ‘스릴러’의 본질이란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할 수 있도록 만든 작품이었다. 소설의 분류란 그 기준이 정확히 정해져 있지 않고 칼로 베듯 나눌 수 없어 ‘여기까지는 스릴러’, ‘저기까지는 로맨스’의 식으로 구분할 수는 없다. 하지만 분명한 그 장르적 특징이란 것이 존재할 텐데 『패키지』는 가장 전형의 스릴러였다. ‘전형적인 소설’이란 분명 부정적인 의미로 종종 쓰이는 말일 테지만, 나는 이 소설에만큼은 ‘전형’이라는 말이 긍정적으로 작동할 수 있다고 본다. 전형은 그 깊이가 쌓이면 ‘본질’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패키지』에는 하나의 사건이 등장하고 범인과 그를 추적하는 이들, 그리고 만들어진 가짜 범인이 나온다. 물론 그 과정에서 한 번의 커다란 반전이 있으며 스릴러는 모름지기 보는 이들이 조마조마하며 이야기의 커다란 전환을 기다리는 묘미가 있으므로 대목을 기다려 물고기를 낚는 사람처럼 숨죽이고 기다려야 한다. 보통 처음에 범인으로 강하게 주목받는 이는 오히려 그렇지 않은 경우가 대다수이므로 작품이 끝날 때까지 ‘진짜 범인’을 찾기 위해 독자는 잠복한다. 이 장편은 그 과정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사람들은 흔히 어떤 소설이 ‘예측 가능한 이야기’라는 평가를 받을 때 그것을 ‘지루하다’라는 일종의 부정적인 판단으로 지나치게 빨리 확신해버리곤 한다. 하지만 의외로 대중에게 사랑받는 이야기는 전형적이다. 신선한 이야기를 모두가 찾는다는 것은 분명 맞는 말이지만, 여전히 뻔한 대기업 총수 일가의 막장 드라마와 누구 하나는 불치병에 걸려야 절정을 맞는 가족 드라마의 흥행을 설명하지 못한다. 정말 신기하고 대단한 작품은 그 형태와 결말이 ‘예측 가능함에도’ 독자가 끝까지 놓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패키지』는 그런 소설이다. 분명히 읽다 보면 진짜 범인이 누구인지의 목록이 대충 추려진다. 전형적인 토막살인과 가짜 범인을 내세우면서도 빠르게 진행되는 전개에 독자는 다른 곳에 눈 돌릴 틈 없이 오히려 소설에 깊이 몰입한다.


*본 리뷰는 개인 블로그에 업로드한 글의 일부를 인용한 것입니다.

원문 보기 : https://blog.naver.com/sol_narae98/2221625594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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