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약품 살인사건 - 약이 독이 되는 위험한 화학의 역사
백승만 지음 / 해나무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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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은 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백승만의 『의약품 살인사건: 약이 독이 되는 위험한 화학의 역사』는 약병 속에서 벌어진 죽음의 기록처럼 보인다. 하지만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살인사건보다 더 오래 남는 것은 각각의 약이 걸어온 이상한 이력이다. 당근주스를 마시다 죽음에 이른 남자, 직접 만든 약 때문에 파킨슨병 증상을 얻은 사람, 우리가 흔히 쓰는 눈약을 살인 도구로 바꾼 범죄자, 그리고 신경작용제의 공포 앞에서 다시 해독제로 불려 나오는 약품까지. 화학이나 약을 잘 모르는 사람도 눈을 반짝이며 따라갈 만한 이야기들이 이 책 안에 가득하다.



이 책은 사람을 재우고, 몸을 멈추고, 기억을 흐리며, 몸의 조절계를 건드리는 물질들이 어떻게 치료제와 살해 도구 사이를 오가게 되었는지 보여준다. 수술실의 도구였던 약은 범죄의 그림자를 얻고, 몸에 좋다고 믿었던 성분은 과잉과 맹신을 만나 독이 된다. 독소는 치료제와 미용 상품으로 얼굴을 바꾸고, 복제약과 불법 제조약의 이야기로 넘어가면 약은 더 이상 몸속 화학물질에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돈과 제도, 욕망과 지식의 유통 문제로 확장된다.



『의약품 살인사건: 약이 독이 되는 위험한 화학의 역사』에서 흥미로운 점은 사건의 잔혹함보다 약의 위치가 계속 바뀐다는 데 있다. 어떤 약은 수술실에서는 생명을 붙잡는 도구가 되지만, 다른 손에 들어가면 죽음을 숨기는 장치가 된다. 어떤 성분은 건강의 상징처럼 여겨지지만, 지나친 믿음과 만나면 몸을 해치는 원인이 된다. 저자 백승만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약과 독은 서로 멀리 떨어진 말이 아니라, 같은 물질이 얻는 서로 다른 이름처럼 보인다.



이 변화는 우연히 일어나지 않는다. 약은 몸 안에서 작용하지만, 그 약을 둘러싼 조건은 몸 밖에서 만들어진다. 누가 어떤 목적으로, 어느 정도의 양을, 얼마나 정확히 알고 쓰는지, 그리고 어떤 제도와 시장 안에 놓이는지에 따라 같은 물질은 전혀 다른 결과를 낳는다. 그래서 이 책의 사건들은 단순한 범죄담이 아니라, 약이 약으로 남기 위해 얼마나 많은 조건이 필요한지를 보여주는 사례 모음집처럼 읽힌다. 약의 위험성은 물질 자체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물질을 둘러싼 인간의 선택과 관리 방식 안에서 커진다.



각 장은 익숙한 약의 쓰임이 고정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약은 하나의 이름으로 머물지 않는다. 치료제였다가 독이 되고, 상품이 되었다가 범죄의 도구가 되며, 다시 새로운 치료 가능성으로 돌아온다. 그래서 이 책은 약으로 벌어진 죽음을 나열하기보다, 하나의 의약품이 시대와 조건에 따라 이름을 바꿔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화학의 역사에 가깝다. 그 변화의 순간마다 약은 인간이 바라는 것과 두려워하는 것을 동시에 드러낸다.



이 점에서 제목의 ‘살인사건’은 자극적인 장식이라기보다 독자를 화학의 역사 안으로 끌어들이는 입구에 가깝다. 죽음의 사례들은 충격적이지만, 저자는 그 사건에 오래 머물지 않는다. 오히려 사건을 통해 하나의 약이 어떤 구조를 가지고 있고, 왜 그런 작용을 하며, 그 작용이 어떤 시대적 필요와 만나 새로운 쓰임을 얻게 되었는지를 따라간다. 그래서 이 책의 중심은 범죄의 잔혹함보다 약이 지나온 길에 놓인다. 살인은 질문을 열고, 화학은 그 질문을 끝까지 밀고 간다.



약은 처음부터 완성된 얼굴로 태어나지 않는다. 어떤 약은 특정한 목적을 위해 만들어졌지만, 이후 전혀 다른 질병이나 증상에 쓰이게 된다. 어떤 물질은 실패한 연구나 뜻밖의 부작용 속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얻는다. 이 책은 약의 역사가 계획대로 진행된 직선의 기록이 아니라, 실험과 실수, 관찰과 전환이 뒤섞인 우회로의 역사임을 보여준다. 그래서 이 책에서 약의 역사는 우연한 변신의 기록이라기보다, 실패를 관찰하고 부작용을 다시 읽어내며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온 인간의 시행착오에 가깝다.



그 우회로가 늘 치료의 방향으로만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약은 몸을 바꾸는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방향이 조금만 비틀려도 위험해진다. 사람을 재우는 힘, 몸의 움직임을 멈추는 힘, 기억을 흐리게 하는 힘, 몸의 조절계를 건드리는 힘은 치료의 조건 안에서는 유용하지만, 악의나 무지와 만나면 살인의 도구가 된다. 약이 무서운 이유는 낯설어서가 아니라, 본래부터 몸을 바꿀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 힘을 정확히 이해한 사람은 치료의 길을 열 수 있지만, 그 힘을 비틀어 쓰는 사람은 가장 조용한 폭력을 만들 수 있다.



동시에 이 책은 독이 다시 약으로 돌아오는 역설도 보여준다. 독이라고만 생각했던 물질도 매우 적은 양과 정확한 위치, 분명한 목적을 만나면 치료제가 되기도 한다. 독소는 병을 고치는 약이 되고, 위험한 작용은 몸의 과잉 반응을 잠깐 멈추는 기술이 된다. 결국 약과 독은 서로 다른 물질이 아니라, 같은 물질이 어떤 조건 안에 놓이느냐에 따라 얻는 이름에 가깝다. 독을 약으로 바꾸는 일은 위험을 지우는 일이 아니라, 위험이 움직일 자리와 양을 인간이 간신히 통제하는 일이다.



또 하나 눈에 띄는 것은 약의 역사가 실험실 안에서만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전쟁은 더 빠르고 강한 약을 요구하고, 시장은 약을 상품으로 바꾸며, 사람들의 욕망은 치료와 미용, 건강과 광기의 경계를 흐린다. 약값과 특허, 복제약과 불법 제조의 문제로 넘어가면 약은 더 이상 몸속 화학물질에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누가 치료받을 수 있고, 누가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지를 가르는 사회적 장치가 된다. 이때 약은 병을 고치는 기술을 넘어, 누가 생명에 접근할 수 있는지를 가르는 싸움의 언어로 바뀐다.



그래서 백승만의 『의약품 살인사건: 약이 독이 되는 위험한 화학의 역사』는 약을 무조건 두려워하라고 말하는 책이 아니다. 오히려 약을 너무 쉽게 믿는 태도를 경계하게 만든다. 약은 작은 병이나 알약 안에 담겨 있지만, 그 안에는 화학뿐 아니라 인간의 욕망, 제도, 돈, 실수, 지식의 유통 방식이 함께 들어 있다. 약을 안다는 것은 성분 이름을 외우는 일이 아니다. 그 물질이 어떤 조건에서 약이 되고, 어떤 순간에 독이 되는지를 함께 보는 일이다. 이 책을 덮고 나면 약병은 더 이상 선한 물건으로만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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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동네 도서관
차인표 지음 / 사유와공감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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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은 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차인표의 『우리동네 도서관』은 용을 앞세우지만, 용을 설명하는 소설은 아니다. 이 작품에서 용은 잡히지 않고, 보이지 않고, 끝내 하나의 뜻으로 고정되지 않는다. 대신 그 보이지 않는 존재는 사람들을 움직이게 한다. 소설은 동네 도서관에서 글을 쓰는 작가의 이야기와 고구려 시대 화공 번각의 이야기를 오가며, 쓰는 사람과 그리는 사람의 막막함을 겹쳐 놓는다. 누군가는 쓰고, 누군가는 읽고, 누군가는 기억한다. 이 소설이 묻는 것은 결국 하나다. 인간은 왜 끝내 이야기를 필요로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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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인표의 『우리동네 도서관』 줄거리는 낭떠러지를 향해 달리는 사람들이 용의 등장으로 목숨을 구하는 꿈을 꾼 작가가 동네 도서관에서 용에 관한 소설을 쓰며 시작된다. 그가 쓰는 소설 속 고구려 화공 번각은 권력자의 명령으로 보지 못한 용을 그려야 하는 처지에 놓인다. 한편 도서관에서는 죽음에 관한 책을 읽는 노신사, 소설가를 꿈꾸는 여성, 학교폭력에 시달리는 소년이 작가의 주변에 머문다. 작가는 그들과 마주치며 자신이 쓰는 이야기의 방향을 조금씩 바꾸고, 여러 이야기는 용을 둘러싸고 맞물리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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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인표의 『우리동네 도서관』은 여러 이야기가 번갈아 나오다가 어느 순간 두 세계가 섞이며 전개되는 메타픽션이다. 고구려 시대에는 기우제를 앞둔 왕을 구하기 위해 비를 내리는 용이 필요해지고, 훗날 화공 번각은 당시 인물들이 남긴 글을 읽으며 보지도 못한 용을 그려야 하는 처지에 놓인다. 현재의 작가는 꿈을 계기로 용에 관한 장편소설을 쓰기 시작한다. 과거의 용은 소문과 기록으로만 남고, 현재의 용은 오히려 실물처럼 나타난다. 이 대비는 작품 속 소설과 현실의 경계를 흐리며, 창작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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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속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용의 실체가 계속 흔들린다는 점이다. 고구려 시대의 기록 속 용은 신성한 존재로도, 인간에게 위해를 가하는 악마적 존재로도 묘사된다. 그러나 그 모든 모습은 확실한 목격이 아니라 소문과 증언을 통해서만 전해진다. 현대의 작가 앞에 나타나는 용 역시 우리가 미디어에서 익숙하게 보아온 형상에 가까우면서도, 등장할 때마다 다른 얼굴을 가진다. 결국 용은 말하는 사람마다, 듣는 이마다, 믿는 자마다 다른 형태로 나타난다. 그렇다면 왜 작품 속 용은 하나의 모습으로 고정되지 않는가.



그 이유를 저자는 단계적으로 확장시킨다. 처음에는 왕의 회피 수단으로, 용사들의 충성심으로, 욕심 많은 자의 욕망으로, 마지막에는 작품 속 작가의 잘 쓰고 싶은 욕망으로. 그러나 페이지가 넘어감에 따라 번각의 창작 윤리와 현대의 작가가 도서관에서 만난 미래의 독자들에 대한 인식 변화로 용에 대한 시선은 단순한 욕망을 넘어서 보이지 않는 것으로 확장된다. 이때 용은 더 이상 찾아야 할 대상이 아니라, 인물들이 자기 안의 결핍과 질문을 비춰보는 거울에 가까워진다.



저자는 이를 크게 세 파트로 나누어 말한다. 목차에 적힌 것처럼 쓰는 이, 읽는 이, 기억하는 이로. 이는 단순한 제목에 그치지 않는다. 창작자가 자기 안에서 이야기를 길어 올리다가, 그것을 읽을 독자를 의식하고, 다시 그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기억되는 과정까지 그려낸다. 즉 이 목차는 이야기가 태어나고, 전달되고, 남겨지는 과정을 압축한 설계도처럼 보인다. 이 과정에서 자기 안에 갇혀 쓰기만 하던 작가는 자신의 팬이자 독자인 인물들을 만나고, 더 나아가 작품이 타인의 삶과 연결될 수 있음을 깨닫는 쪽으로 나아간다.



그중 첫 번째 자리인 ‘쓰는 이’에서 이 질문을 가장 선명하게 떠안는 인물이 번각이다. 그는 본 것만 그리겠다고 말하지만, 정작 그에게 주어진 명령은 아무도 제대로 보지 못한 용을 그리라는 것이다. 여기에서 번각의 갈등은 단순한 생존 문제가 아니라 창작자의 윤리로 바뀐다. 보지 못한 것을 본 척 그릴 것인가, 아니면 자신이 확인한 것만으로 다른 답을 찾아낼 것인가. 그래서 번각이 마주한 용은 그림의 대상이면서 동시에 거짓과 진실 사이에서 예술가가 어디까지 상상할 수 있는지를 묻는 시험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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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자리인 ‘읽는 이’에서 작품은 시선을 독자에게로 옮긴다. 고구려 시대의 번각은 용사들이 남긴 글을 읽으며 용의 흔적을 좇고, 현대의 작가는 도서관에서 책을 읽는 사람들을 만난다. 죽음을 두려워하는 노신사와 학교폭력에서 몸을 숨기듯 도서관에 머무는 출렁이는 작가에게 이야기가 누구에게 가닿아야 하는지를 묻는 독자들이다. 특히 출렁이가 소설을 썼다고 해서 해석까지 작가의 몫은 아니라고 말하는 순간, 작품은 작가의 손을 떠난 이야기의 운명을 드러낸다. 읽는 이는 작가도 몰랐던 의미를 다시 발견하는 사람이다.



마지막 장인 ‘기억하는 이’에서 작가는 쓰기와 읽기를 지나, 이야기가 무엇으로 남는가를 바라본다. 그는 소설 속 인물이 스스로 움직이기 위해서는 살아갈 이유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 이유가 결국 누군가를 향한 마음에서 생겨난다는 데 도달한다. 이 과정에서 노신사와의 대화는 용의 의미를 한층 더 넓힌다. 아무도 확실히 본 적 없지만 누구나 알고 있다고 믿는 존재, 그리고 끝내 피해 갈 수 없는 것, 그것은 죽음처럼 인간이 마주해야 하는 질문과 닮아 있다.



결국 『우리동네 도서관』이 말하는 글쓰기는 혼자만의 생각을 펼치는 일이 아니다. 생각은 나 혼자 만든 것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흔적 속에서 생겨난다. 그래서 이 소설에서 쓰는 이와 읽는 이, 기억하는 이는 따로 떨어져 있지 않다. 누군가는 쓰고, 누군가는 읽고, 누군가는 기억하며 이야기는 계속 살아남는다. 그 과정에서 작가도, 독자도, 인물도 서로의 자리를 조금씩 바꾸어 가진다. 차인표는 용이라는 환상을 통해 결국 우리가 왜 이야기를 필요로 하는지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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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인표의 『우리동네 도서관』은 따뜻한 도서관 이야기라기보다, 제목처럼 인간은 왜 끝내 이야기를 필요로 하는가를 끝까지 붙드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그 질문을 쓰는 이, 읽는 이, 기억하는이라는 세 개의 자리에서 되묻는다. 용은 단순한 상징이 아니라 사람마다 자기 안의 모르는 것을 비추는 거울로 작동하며, 이야기가 어떻게 태어나고 살아남아 누군가에게 옮겨가는가를 보여준다. 즉, 이 소설은 작가가 쓰는 이와 읽는 이에게 건네는 창작론에 가깝다. 따라서 읽고, 쓰고, 기억하려는 자라면 누구나 긴 여운에 머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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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오시마 예술의 탄생 - 인구 소멸의 섬에서 피어난 현대미술의 도전과 기록
아키모토 유지 지음, 지소연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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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은 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나오시마 예술의 탄생』은 예술의 섬 나오시마를 단순히 소개하는 책이 아니다. 아키모토 유지가 나오시마 프로젝트의 탄생과 성장을 직접 따라가며 남긴 기록에 가깝다. 이 책은 예술이 어떻게 한 장소의 운명을 바꾸고, 그 장소와 함께 자신의 형체를 얻어 가는지를 보여준다. 완성된 풍경 뒤에 숨어 있던 긴 시간을 마주하고 나면 나오시마는 더 이상 관광지의 이름으로만 남지 않는다. 그곳은 예술이 놓인 장소가 아니라 사람과 기업과 지역의 시간 속에서 끝내 예술이 현실이 되어간 하나의 공간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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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키모토 유지의 『나오시마 예술의 탄생』은 나오시마 프로젝트의 탄생과 성장 과정을 담은 기록이다. 숫자로 모든 것을 판단하는 기업 안에서, 예술가에서 아트 디렉터로 변신한 저자는 15년에 걸쳐 실패와 갈등, 그리고 성취의 시간을 통과한다. 공해와 쓰레기로 오염되고, 개발 실패에 지친 주민들마저 떠나가던 섬. 이 책은 그곳을 단순히 예술품을 전시하는 섬이 아니라 예술 그 자체가 되는 섬으로 바꾸어가는 과정을 따라간다. 그 안에서 이들이 무엇을 했고, 어떤 변화를 만들어냈는지를 차근차근 펼쳐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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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오시마 예술의 탄생』의 저자 아키모토 유지는 나오시마 프로젝트를 이끈 인물이다. 그러나 그는 전형적인 실무자라기보다, 예술을 믿는 감각으로 움직인 사람에 가까웠다. 그는 기업 안에서도 주변부에 가까운 부서에 속해 있었고, 수익을 우선하는 조직 안에서 늘 자신의 자리와 프로젝트의 필요를 증명해야 했다. 불안정한 위치에 놓인 한 사람이 끝까지 예술을 현실의 언어로 번역해나가는 과정은 커다란 벽들의 연속이었다. 그의 15년은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멀었다.



안으로는 수익을 따지는 회사와 주주들을 설득해야 했고, 밖으로는 재개발에 지친 채 외부의 손길을 경계하는 주민들의 마음을 얻어야 했다. 그 과정에서 이름만 들어도 쟁쟁한 작가들에게 작품을 의뢰하고 승인받는 일 역시 쉽지 않았다. 그러나 저자가 끝까지 밀고 나간 기준은 외부에서 이미 가치를 인정받은 작품이 아니라, 나오시마라는 장소에 어울리는 작품이었다. 여기에 가장 먼저 힘을 보탠 사람이 바로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다다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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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 다다오와 함께 첫 전시를 위한 공간을 만든 뒤, 나오시마에는 구사마 야요이, 미야지마 다쓰오, 제임스 터렐, 월터 드 마리아, 야니스 쿠넬리스 등의 작품이 차례로 들어왔다.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긴 것은 현대미술을 나오시마 위에 올려놓는 일이 아니라, 나오시마 안에 자연스럽게 녹여내는 일이었다. 세상이 이미 높은 가치를 부여한 작품이 아니라, 이 장소와 가장 잘 맞는 작품을 선택하는 것. 그 결과 나오시마는 작품을 전시하는 공간을 넘어, 장소 자체가 예술이 되는 효과를 만들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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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이 작가들의 작업은 그 의미가 남달랐다. 각각의 성향은 모두 달랐지만, 나오시마 안에 놓이면서 이들은 따로 흩어진 작품이 아니라 하나의 흐름처럼 이어졌다. 그 차이는 오히려 장소의 층위를 더 풍부하게 만들었다. 어떤 작품은 바다를 향해 공간을 열었고, 어떤 작품은 실내를 무겁게 닫았으며, 또 어떤 작품은 시간과 빛, 보이지 않는 감각을 끌어들였다. 그렇게 서로 다른 언어를 가진 작품들은 나오시마라는 장소 안에서 하나의 큰 서사를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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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사마 야요이의 〈호박〉은 바다와 하늘을 끌어들여 공간을 바깥으로 연다. 선명한 색과 반복되는 점은 멀리서도 눈에 띄지만, 중요한 것은 그 작품이 놓인 자리다. 호박은 단독으로 존재하기보다 부두와 바다, 수평선까지 함께 끌어안으며 나오시마의 첫인상처럼 작동한다. 반대로 야니스 쿠넬리스의 〈무제〉는 물질의 무게로 실내를 봉인한다. 그 대비가 나오시마의 공간감을 더 선명하게 만든다. 납과 사물의 묵직함은 공간을 닫고, 섬의 밝은 풍경과는 다른 밀도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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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지마 다쓰오의 〈시간의 바다〉는 숫자와 물로 시간을 흐르게 만든다. 깜빡이는 숫자들은 각기 다른 속도로 움직이며, 오래된 집 안에 보이지 않는 시간을 떠오르게 한다. 제임스 터렐의 〈달의 뒤편〉은 어둠 속에서 보는 행위 자체를 흔들고, 월터 드 마리아의 〈보이는/보이지 않는, 아는/알 수 없는〉은 제목 그대로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아는 것과 알 수 없는 것 사이에서 공간을 하나의 사유 장치로 바꾼다. 이 작품들을 따라가다 보면 나오시마는 단순한 전시장이 아니라, 예술 안으로 걸어 들어가는 장소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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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단순히 작가와 작품에만 초점을 맞추지 않고, 외부의 자본과 기획이 지역을 일방적으로 덮어쓰지 않도록 한 과정을 보여준 점도 인상 깊었다. 나오시마는 외지인이 들어와 일방적으로 바꿔 놓은 섬이라기보다, 지역민과 함께 호흡하는 방식 속에서 조금씩 예술의 공간으로 바뀌어 갔다. 그렇기에 이 책은 단순한 문화 프로젝트의 성공담이 아니라, 사람이 사라져 가는 지방이 어떤 방식으로 다시 자신만의 얼굴을 가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기록으로도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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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 동안 프로젝트에 심혈을 기울인 그에게 회사의 회장은 다른 섬에서도 같은 성과를 만들 수 있는지 묻는다. 저자는 이때 보편성의 차이를 말한다. 공산품의 보편성이 어디서나 재현될 수 있다는 데 있다면, 예술의 보편성은 유일성에서 나온다고. 여기서 나오시마가 복제 가능한 성공 모델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고령화와 빈집 문제를 해결하려고 나오시마를 그대로 따라 해도 같은 효과는 생기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그 지역의 시간과 기억, 사람과 풍경을 바탕으로 유일성을 만들어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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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오시마 예술의 탄생』을 통해 아키모토 유지가 이끈 나오시마 프로젝트의 탄생과 성장 과정을 끝까지 따라가고 나면, 세계적 관광지는 더 이상 완성된 풍경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것은 누군가의 선택과 설득, 그리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시간들이 겹쳐 만들어진 공간이다. 그래서 이 섬은 예술이 놓인 장소가 아니라 예술이 현실이 되어버린 하나의 구조로 남는다. 책에 충분히 담기지 못한 작품 이미지와 공간의 모습은 베네세 아트 사이트 나오시마 홈페이지에서 함께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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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AI로 급등주에 투자한다 - 클릭 한 번으로 연수익률 233%를 만든 인공지능 퀀트 투자
곽경일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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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은 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파이썬을 통한 인공지능 퀀트 투자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곽경일의 『나는 AI로 급등주에 투자한다』는 주식과 AI를 접목해 실전 투자 전략을 제시하는 책이다. 제목만 놓고 보면 흔한 과장형 투자서처럼 보인다. 그러나 첫 페이지에 들어서면서부터 이런 선입견에 금이 가기 시작한다. AI를 만능인 것처럼 포장해 맹신하라고 말하지도, 코딩을 익히라고 강요하지도 않는다. 대신 AI를 활용해 잘못된 코딩부터 경험하게 하며, 투자자의 사고를 정리하고 이를 반복 가능한 구조로 만드는 데 초점을 둔다.



곽경일의 『나는 AI로 급등주에 투자한다』는 인공지능과 퀀트 투자를 다룬 실용서다. 제목만 보면 책의 난이도가 꽤 높아 보이지만, 막상 읽어보면 그것이 착시였다는 걸 알게 된다. 이유는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 내용 자체만이 아니라 전달 방식에 있기 때문이다. 복잡한 개념을 설명하면서도 독자의 사고를 멈추게 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다음 문장으로 넘어가게 만드는 서술 방식은 입문서로서의 완성도를 높인다. 즉, 쉽게 쓴 책이 아니라 쉽게 읽히게 쓴 책이다. 이런 특징은 저자가 코딩을 다루는 방식에서도 이어진다.



저자는 퀀트 투자를 위한 코딩 자체를 목표로 삼지 않는다. 코드는 소설처럼 읽고, 완성된 프로그램은 자신의 카페에서 내려받아 쓰면 된다고 말한다. 그러면 굳이 이 책으로 공부해야 할까 하는 의문이 남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가 처음부터 끝까지 강조하는 것은 프로그래밍 능력이 아니라 데이터를 읽는 사고력이다. 쉽게 말해, 남을 부리기 위해서라도 스스로 원리를 알아야 한다는 뜻에 가깝다. 그리고 이런 설명 방식은 기술적 개념을 다룰 때 더 분명해진다.



곽경일의 『나는 AI로 급등주에 투자한다』는 왜 AI를 활용해야 하는지부터, 관련 지식이 거의 없는 일반인도 AI를 이용한 코딩의 원리와 직접 만들기를 따라갈 수 있도록 풀어낸다. 그중에서도 이 책의 차별점은 일반 투자서와 갈라지는 지점에서 더욱 뚜렷해진다. 투자 공부를 하다 보면 반드시 마주하게 되는 이동평균선, RSI, 볼린저 밴드, 이격도, 스토캐스틱 같은 개념이 등장할 때다. 한 번이라도 공부해 본 사람이라면 이런 용어를 이해하고 실제 차트에 적용해 해석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알 것이다.



저자는 이 개념들을 곧바로 AI 코딩과 연결하고, 다시 이미지로 변환해 그림의 모양과 색만 볼 수 있어도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설명한다. 책장이 넘어가면 제목에 들어간 급등주를 어떻게 찾을 것인지, 또 AI와 급등주가 왜 잘 맞는지까지 구체적으로 풀어낸다. 이후에는 비전문가가 가장 어렵게 느끼는 투자 포트폴리오 구성까지 해리 마코위츠의 효율적 투자선과 켈리 공식 등을 바탕으로 자연스럽게 이끌어 간다. 용어만 보면 어렵게 느껴지지만, 막상 읽기 시작하면 이해가 바로바로 따라와 수월하게 배울 수 있다.



이 과정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예측값과 실제 결과 사이의 오차를 기준으로 AI의 성능을 평가해야 한다는 대목이다. 이는 AI를 점괘처럼 소비하는 태도에서 벗어나 통계적 도구로 바라보게 만드는 중요한 전환이다. 쉽게 말해 예상 수익이 100원일 때 실제 수익이 99원이 나온 경우와 200원이 나온 경우는 둘 다 예측이 빗나간 것이지만, 오차의 크기는 전혀 다르다. 전자는 오차가 1원에 불과하지만, 후자는 100원이나 차이 난다. 즉, AI를 평가할 때 중요한 것은 맞았느냐 틀렸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정확하게 예측했느냐는 점이다.



이런 설명은 자연스럽게 AI에게 무엇을, 어떻게 물어야 하는가의 문제로 이어진다. 많은 사람들이 AI에게 ‘내일 주가가 얼마냐’ 같은 질문을 던지지만, 이런 물음은 그럴듯한 답변만 남긴 채 끝나기 쉽다. 반면 조건과 범위를 분명히 설정한 질문은 전혀 다른 결과를 만들어낸다. 결국 문제는 AI의 성능이 아니라 질문의 수준이다. 이 책은 추상적인 당위만 말하지 않고, 실제 질문의 예시를 통해 그 차이가 어떻게 벌어지는지 눈앞에 보여준다.



읽고 난 후 실제로 연습해 보면서 가장 신뢰가 갔던 부분은 높은 수익률을 강조하지 않는 점이었다. 책 표지에 클릭 한 번으로 연수익률 233%를 만들었다는 문구가 있어 처음에는 반신반의했지만, 막상 내용은 자신의 자산을 지키면서 투자하는 방법에 더 가깝다. 오히려 위험 대비 효율, 즉 ‘가성비’라는 관점에서 투자를 바라보라고 말한다. 많이 버는 전략보다 안정적으로 반복 가능한 전략을 선택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태도다. 이 책은 돈을 크게 버는 법이 아니라, 덜 무너지면서 꾸준히 버는 법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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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 책에서 가장 어렵게 느껴질 수 있는 부분은 코딩 프로그램을 직접 만들어 보는 과정이다. 책에는 원리 설명과 함께 코드가 그대로 제시되어 있어 구글 코랩을 이용하면 직접 따라 해볼 수 있다. 물론 끝까지 구현하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어렵다면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책에서 다룬 코딩 프로그램은 저자의 네이버 카페를 통해 제공되기 때문이다. 그래도 바로 쉬운 길을 택하기보다는 먼저 직접 만들어보려는 시도는 꼭 해보길 권하고 싶다.



이렇게 직접 만들어보고 따라가다 보면, 마지막에는 결국 투자 기술을 넘어 태도의 문제와 마주하게 된다. 기록을 통해 자신을 검증하고, 타인의 말보다 실제 자금의 흐름을 보며, 무엇보다 자신의 판단이 가장 큰 위험 요소가 될 수 있음을 경고한다. 제목만 보면 자극적인 투자서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차분하고 실용적인 책이다. AI를 맹신하게 만들기보다 원리를 이해하고 질문하는 방식을 익히게 한다는 점에서 입문서로서의 장점이 분명했다. 투자와 AI를 함께 공부해 보고 싶은 사람에게 좋은 출발점이 되어 줄 책이다.



곽경일의 『나는 AI로 급등주에 투자한다』는 단순한 투자서를 넘어 인공지능이라는 새로운 도구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답을 건네는 책이다. 저자는 과거 증기 기관이 처음 등장했을 때 돈을 번 사람들이 증기 기관 엔지니어가 아니라 그것을 가장 먼저 받아들이고 활용한 사람들이었다고 말한다. 프로그램까지 제공하며 우리에게 그 버튼을 직접 누를 기회까지 준다는 점에서 이 책은 AI를 막연히 두려워하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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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 천재 고려 - 최강대국에 맞선 작은 나라의 생존 전략
이익주 지음 / 김영사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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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은 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이익주의 『외교 천재 고려』는 미중 패권 사이에 선 지금 읽어야 하는 고려 외교사에 관한 책이다. 현대의 무역 전쟁에 과거의 국가사가 굳이 필요할까 하는 의문이 들 수도 있지만, 저자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처음부터 차근차근 따라가다 보면 당시의 상황이 현재와 매우 비슷해 해결의 실마리를 얻을 만한 지점이 꽤 많다는 걸 알게 된다. 송, 명, 요, 금, 원나라 사이에 끼어 있던 고려의 사정은 현재 대한민국보다 훨씬 열악했기에, 우리 조상들의 행적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는지 차근차근 살펴보자.



미중 패권 사이에 선 지금 읽어야 할 고려 외교사, 이익주의 『외교 천재 고려』는 고려의 건국부터 멸망까지의 역사 가운데 외교와 관련된 부분만을 선별해 서술한 작품이다. 송과 남송, 거란의 요, 여진의 금, 몽골의 원, 명에 이르기까지 오늘날 못지않은 강대국들과 시기를 함께한 고려 500년의 역사. 약소국이었지만 강대국에 끌려가기만 한 것이 아니라, 언제나 자국의 존재와 이익을 지키는 방향으로 실리 외교를 이어온 고려인들. 책은 그들의 선택을 통해 우리가 오늘의 위기를 돌파할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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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 천재 고려』에서 저자 이익주는 우리가 역사를 배워야 하는 까닭을 섬세하게 짚어낸다. 과거를 단순히 외우는 데서 멈추지 않고 교훈을 길어 올리며, 역사가 발전한다는 믿음을 세우고, 역사적 사고력을 기르며, 올바른 역사 인식을 갖기 위해서다. 그리고 이 모든 목적은 결국 하나로 모인다. 국제관계를 입체적으로 바라보고, 지금의 위기를 빠져나갈 실마리를 찾는 것. 즉 역사는 “올바로 보고, 올바르게 인식해, 어려운 상황에서도 가장 실익 있는 대응을 하기 위한” 사고의 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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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위해 저자는 우리 역사에서 가장 실리적인 외교를 매 순간 이어온 고려의 행태를 파헤친다. 또한 500년이라는 비슷한 존속 기간을 지닌 고려와 조선의 외교 관점을 나란히 놓고, 평행선 위에 선 듯 보이면서도 전혀 다른 선택을 한두 왕조의 결과를 꼼꼼히 비교한다. 특히 고려 초기의 찬란한 시절이 아니라 가장 어려웠던 원 간섭기의 왕들을 집중적으로 다룬 점이 인상적이다. 성군이라기보다 나라의 존속을 위해 협상가가 되어야 했던 왕과 신료들의 모습은 오늘의 국정을 이끄는 관료들과 겹쳐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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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이 작품이 돋보이는 지점은 단순히 고려와 강대국의 관계만을 조명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타국과 타국의 관계까지 함께 끌어들여 확장된 대외 질서 속에서 고려를 바라보게 한다. 주관적 역사 해석이 아니라, 객관적이고 입체적인 국제 관계 속에서 자국의 위치를 인식하게 만드는 서술이다. 일촉즉발의 상황에서도 겉보기에 무관해 보이는 베트남 지역의 정세가 고려의 운명에 영향을 미친 사례는 특히 인상적이다. 고려는 단지 존속에 그친 것이 아니라, 이러한 국제 정세의 틈을 활용해 실질적인 이익까지 얻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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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사례는 오늘의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약소국이었던 고려는 강대국 사이에서 줄을 서기보다 판을 읽으려 했다. 한 나라의 왕마저 체면보다 실리를 택하고, 때로는 자존심까지 낮추어야 했던 선택은 결코 나약함이 아니었다. 그 태도는 지금의 대한민국이 처한 외교 현실과도 무관하지 않다. 얕은 판단으로 한 국가의 편에 서며 스스로를 약소국으로 규정하는 일도, 국력을 과신해 정면충돌을 택하는 일도 모두 위험하다. 바람 앞의 등불과도 같았던 고려의 상황은 그 극단이 얼마나 위태로운지 분명히 보여준다.



중고등학교 교과 과정에서 빠르게 지나가는 고려 말의 사정을 이 책은 깊이 조명한다. 저자는 당시 왕들의 선택이 얼마나 영민했는지를 보여준다. 대외적으로는 외교가 통하지 않는 원의 침략이 이어졌고, 내부적으로는 무신 정권으로 왕권이 약화되어 있었다. 그 와중에 생존을 위해 원에 투항하고 영토를 내주었으며, 곳곳에서 민란도 일어났다. 이러한 압박 속에서 한 세기 가까이 버텨낸 고려가 ‘고려’라는 국호를 유지한 채 원 간섭기를 벗어나는 장면은, 멸망 직전이었지만 오늘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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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나라를 살리기 위해 원의 공주와 국혼을 이어온 고려의 왕들은 단순히 혼인을 통해 안위를 도모한 존재가 아니었다. ‘국부’라는 지위를 통해 원 정치에 일정 부분 개입할 여지도 있었지만, 이를 함부로 행사하지 않고 상황을 읽으며 절제된 태도를 유지했다. 외국 공주와의 혼인은 개인적 욕망이나 체면이 아니라 국가 생존을 위한 전략이었다. 체면보다 국익을 택한 이 선택은 굴종이 아니라 계산이었다. 힘의 구조를 냉정히 읽어낸 결정이었기에 고려는 끝내 ‘고려’라는 국호를 지킬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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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말의 상황에서 가장 눈에 띄는 장면은 드라마로 익숙한 기황후 편이다. 고려를 위해 정의로웠던 기황후는 존재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그의 일가는 자국을 괴롭히며 사익을 취했다. 흥미로운 점은 그의 권력욕이 역설적으로 고려의 최대 적이던 원의 붕괴를 재촉했다는 사실이다. 제1황후에 오른 지 3년 만에 주원장에 의해 쓸쓸한 최후를 맞은 그녀는 끝내 고려의 편에 선 적은 없었다. 다만 결과적으로는 자신의 야망이 고려의 적을 무너뜨리는 데 일조한 아이러니한 인물로 의도와 전혀 다른 결과를 남긴 채 역사에 기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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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외교 천재 고려』가 보여주는 것은 약소국의 생존 방식이다. 고려는 강대국 사이에서 감정적 대응이나 일방적 굴종을 택하지 않았다. 때로는 자존심을 낮추고, 때로는 개입을 자제하며, 상황에 따라 계산된 선택을 이어갔다. 그 과정에서 국혼과 같은 결정 역시 체면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를 읽어낸 전략이었다. 그 결과 100년에 가까운 원 간섭기 속에서도 국호를 유지할 수 있었다. 이 책은 외교가 도덕적 우열이나 명분의 문제가 아니라 힘의 구조를 읽어내고 선택을 조정하는 판단의 문제임을 분명히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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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익주의 『외교 천재 고려』는 미중 패권 사이에 선 지금 읽어야 하는 고려 외교사라는 말이 과장이 아님을 보여주는 책이다. 방대한 고려사를 나열하는 대신 외교라는 한 줄기로 정리해 국가의 선택 과정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전문적인 사료와 분석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주관을 덧붙이지 않아 설득력을 갖춘다. 학문적 깊이를 유지하면서도 서술은 평이해 누구나 접근할 수 있다는 점도 장점이다. 결국 이 책은 과거를 복원하는 데 그치지 않고 외교를 판단의 기술로 이해하게 만드는 역사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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