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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나무, 손수건, 그리고 작은 모자가 있는 숲 ㅣ 열다
로베르트 발저 지음, 자비네 아이켄로트 외 엮음, 박종대 옮김 / 열림원 / 2025년 7월
평점 :

***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은 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로베르트 발저의 에세이 전나무, 손수건, 그리고 작은 모자가 있는 숲은 그의 사후에 자비네 아이켄로트, 에르하르트 쉬츠가 숲에 관련된 그의 산문과 시를 엮은 책이다. 주제는 동일하게 숲으로 귀결되며 한 제목 당 글의 길이는 매우 짧다. 그 이유는 그가 매일 숲으로 산책을 하고 난 뒤 느낀 점을 일기처럼 적은 내용이기 때문이다. 그 기간은 다양하지만 그의 감각은 전혀 흐트러지지 않았으며 이 책은 읽는 것이 아닌 느껴야만 이해할 수 있다는 독특함이 있다.
로베르트 발저의 전나무, 손수건, 그리고 작은 모자가 있는 숲은 형 카를 발저의 삽화와 동생의 글이 어우러져 감각적 깊이를 더한 작품이다. 자연과 산책, 일상에 대한 에세이와 시를 모은 이 책에서 작가는 숲을 통과하며 자신만의 시선으로 세계를 관찰하고 사유한다. 줄거리보다는 관조와 감각, 탈속의 기운이 중심을 이루며 독자는 매 글마다 그의 산책자적 내면을 함께 걷듯 따라가게 된다. 작고 조용한 것들을 주목하는 그의 글은 사소함 속에 깃든 아름다움과 자유를 느끼게 한다.
로베르트 발저의 전나무, 손수건, 그리고 작은 모자가 있는 숲은 작중에 등장하는 단편의 제목이다. 모든 작품의 주제는 숲을 산책하는 저자이며, 각각의 글은 그가 매일 산책을 하며 느낀 점에 무한한 상상력을 가미하여 서술하였다. 그래서 그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여인이나 사람은 실제가 아닌 경우가 많았으며, 곳곳에서 신화적 은유가 등장하였다. 가장 큰 예가 바로 아래의 문구이다. 이때 등장한 여인은 생명과 죽음, 치유와 재생, 출산과 포용의 상징인 대지의 여신을 상징으로 읽힐 수도 있다.
조금 더 다른 측면에서 살펴보자면 그 여인은 지하세계를 의미하는 무의식, 죽음, 재탄생으로 향하는 공간으로의 은유인 지하의 중재자로 볼 수도 있다. 그 외에 야생의 수화자인 숲의 정령으로도 읽히는 등 매우 복합적인 존재로 다가온다. 이를 뒷받침하는 내용으로 주변의 몇 가지 문장이 있다. 첫 번째로는 몸을 숙여 두 다리에 입을 맞추었다는 부분과 순간 다정하고 환영하는 강물이 행복한 내 몸 안에서 흘러갔다고 하는 양립하는 문장의 화법 차이이다. 인간의 능동적 행동에서 자연에 흡수된 후 수동적 감각의 서술어가 대표적이다.
이후로 각자의 고요한 황홀경을 즐기기 위해 한참을, 정말 한참을 그러고 있었다에서는 영적인 상태로의 돌입 및 무의식으로의 하강을 느낄 수 있다. 이는 단순히 약물에 취하는 것 같은 느낌이 아닌 자연과의 일체로 인하여 신비로움에 취함을. 그 외에 반짝이는 별, 크고 신성한 달 등에서는 우주적 질서와 생명, 그리고 아르테미스의 속성을 은유하기도 한다. 즉, 그가 말하는 여인이나 아이 또한 숲이며, 지구의 증언자 또한 하이덴슈타인(고대의 사람으로 지구의 깊은 시간을 기억하는 자를 의미)이라는 이름의 바위로 의인화된다.
그러나 그의 작품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런 언어적 상징성이나 은유를 찾기보다 직접 눈을 감고 그가 말하는 숲에 들어가서 느껴야만 한다. 그가 들어간 숲은 언제나 고요하고, 웅장하지만, 포용성이 강한 곳으로 묘사된다. 그래서 그의 심리에 따라 그곳은 마음을 안정시키는 곳으로도, 두려움을 느끼게 하는 곳으로도, 자신을 잊고 세상으로부터 받은 고통을 치유하고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 곳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이런 점은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다.
숲은 언제나 그 자리에, 쉽게 변하지 않고 아주 느리게 변하는 곳이지만, 그곳에 입성하는 자의 심리 상태에 따라 수시로 변하는 곳임을. 이런 곳에 있는 모든 것은 지구의 태곳적 시절부터 있었던 것을 묵묵히 지켜보고 기억하는 인류의 고향 같은 공간이라고 발저는 말한다. 한 개인의 고향이 아닌 전 인류의. 특히 그의 초록이라는 컬러에 대한 묘사는 단순히 생명을 의미하는 것을 넘어선다. 오히려 기존의 것을 죽이는 죽음이라고까지 표현하는 그.
가장 인상 깊었던 제목의 글은 산불이다. 모든 글은 그가 숲으로 들어가 직접 보고 느낀 것, 그리고 그곳에 융화되어 자연과 물아일체가 된 느낌을 표현한 것이라면 산불은 오히려 그가 높은 하늘에서 인간들을 관찰하는 느낌이 강하다. 저무는 태양빛을 압도하는 불타는 숲의 빛깔. 땅에서 불타는 것이 어느 순간 하늘의 그것으로 옮겨간 듯한 느낌. 이를 지켜보는 인간들의 두려움과 걱정에 사로잡혀 정지된 모습을 묘사한 부분은 언제나 잔잔한 그의 이미지를 지울 정도로 압도적이다.
이 책을 보면 저자가 단순히 글을 쓰기 위하여 산책한 것이 아니며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을 따지지 않고 숲으로 달려간 것을 느낄 수 있다. 심지어 해가 떠있는 낮에만 간 것도 아니다. 그 시간의 흐름에서 그는 매번 다른 것을 느끼고 서술했다. 봄의 생명, 여름의 무성함, 가을의 쓸쓸함, 겨울의 허망함과는 거리가 먼 모든 것에서의 생명을. 다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면 그는 숲을 단순한 자연물이 아니라 하나의 생명체처럼 대하고 있다. 인간을 낳고 기른 원초적 지구라는 존재로서.
즉, 태고의 존재와 짧디짧은 한순간을 스쳐 지나가는 작은 존재로서의 인간이 언제나 풍덩 빠지는 곳이 숲이다. 하찮은 존재가 거대한 존재에게 다가가지만 그것에 압도되기보다 그 작디작은 존재인 인간의 거울이 되어주는 거인으로서의 숲은 경이롭다는 말로는 한참 부족하게 다가온다. 읽다가 당장 저자가 말하는 것을 느낄 수 있도록 잎이 무성하고 거대한 산으로 달려가고 싶음을 매 페이지마다 달래야만 할 정도로 압도적인 장면이 많은 책이다.
로베르트 발저의 에세이 전나무, 손수건, 그리고 작은 모자가 있는 숲은 단순히 초록으로 뒤덮인 자연의 한 공간을 매일 걸은 흔적이 아니다. 오히려 같은 장소임에도 매번 다름을 느끼면서 흔들리는 그의 마음을 다독이고 지켜주는 마법 같은 일화를 피톤치드에 취해서 쓴 글이다. 그래서 독자 또한 글을 읽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상상의 숲에 빠져 그곳의 분위기에 취해 피부로 느껴야 한다. 이것이 흔히들 말하는 발저식 독법 즉 자연의 감각을 몸에 새기는 독자의 체화가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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