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자국 소설의 첫 만남 10
김애란 지음, 정수지 그림 / 창비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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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조차 떠올리지 못한 참신한 표현들이 가득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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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쪼가리 자작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41
이탈로 칼비노 지음, 이현경 옮김 / 민음사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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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뉴스를 보면 선한 미담보다는 악한 분쟁이나 범죄 소식이 주를 이루고 있다. 이를 보며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것은 비단 나뿐만은 아닐 것이다. 이때 가장 많이 하는 얘기가 세상의 악이 사라지고 선만 존재하면 좋겠다는 것이다. 물론 나도 그랬다. 그런데 이런 생각을 완벽하게 뒤집어준다는 책이 있다는 말을 듣자마자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인가? 하는 마음에 후딱 데려왔다.



​이탈리아 문학이라고 하면 신곡, 장미의 이름, 피노키오 정도가 떠오른다. 쉽게 말해 굵직굵직한 작품을 제외하면 개인적으로 깊게 접해본 적이 없다는 말이다. 이탈로 칼비노는 동화적이고 환상적인 소설을 주로 쓰는 작가이다. 어른들을 위한 동화 정도라면 가장 적절한 말일 것이다. 반쪼가리 자작은 나무 위의 남작, 존재하지 않는 기사로 구성된 우리의 선조들 3부작 중 첫 작품이다. 다시 말해 두 작품을 더 읽어야만 할 것 같은 숙제를 던져준 작가이다. 


주인공 메다르도 자작은 하인인 쿠르치오와 함께 이웃 군주를 즐겁게 해 줄 목적으로 투르크 전쟁에 참여하게 된다. 전쟁을 해 본적도 없는 주인공이 포탄을 향해 정면으로 뛰어가다가 결국 정확하게 몸이 세로로 절반이 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현실에선 당연히 생존이 어려웠겠지만, 동화적인 요소를 즐겨 사용하는 작가 덕분에 몸은 찢어진 채 각자의 몸으로 생존을 하게 된다. 문제는 찢어진 한쪽은 선만 가지고 있으며 나머지 한 쪽은 악만 가진 인간이 된다.


먼저 악만 가진 인간이 마을로 돌아와 말로 표현하기 힘든 악행을 매일 저지르고 다닌다. 자신을 가장 사랑해 준 사람들에게조차 무조건 악을 베푼다. 뭐 처음에는 반쪽 몸만 남은 것에 대한 반항인가 할 정도로 사물을 반으로 자르면서 돌아다니는데 이건 그냥 귀여운 애교 수준이었다. 이런 악한 반쪽의 모습에서도 조금 울컥하게 만드는 부분이 있어 소개한다. 


"동이 틀 무렵이었다. 그때 저수지 둑에서 검은 망토에 감싸인 메다르도가 미소 짓고 있는 모습이 물 위에 반사되어 나타났다. 물 위에는 하얀색, 노란색 그리고 흙색 버섯들이 떠 있었다. 바로 그가 따 온 반쪽짜리 버섯들이었다. 그것들은 투명한 물 위 여기저기로 흩어졌다. 물 위에 떠 있는 버섯들은 완전해 보였고 자작은 그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반쪼가리 자작 이탈로 칼비노 p.29


마을 사람들이 공포에 떨고 있을 때쯤 남작의 나머지 반이 마을로 돌아온다. 이쪽은 전자와 달리 완벽한 선만 존재하는 인간이다. 처음에 선한 것이 무슨 문제가 될 수 있을까? 왜 작가는 선한 애를 굳이 등장시킨 것이지? 하는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하여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책에 빠져들었다. 그러나 나의 생각과 달리 무조건 선하기만 한 것은 악만 존재하는 것과 동급으로 문제가 많았다. 


하나만 소개하자면 종교의 박해를 피해 이 마을로 도망 온 위그노 교도 가족이 있다. 이들은 책 안에서 가장 열심히 사는 인간들로 나온다. 결국 다른 곳에는 흉작으로 인하여 기근이 들었지만 이들은 넉넉한 곡식을 창고에 쌓아 놓고 비싼 가격에 팔고 있다. 이를 본 선한 반쪽은 어려울 때 이렇게 비싸게 받는 것은 옳지 않다며 이들을 설득하기 위해 노력한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매사가 이런 식이면 나중엔 어느 누구도 행복하지 않은 순간이 온다고 작가는 말한다.



"아마도 우리는 자작이 온전한 인간으로 돌아옴으로써 놀랄 만큼 행복한 시대가 열리리라 기대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세상이 아주 복잡해져서 온전한 자작 혼자서는 그것을 이룰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반쪼가리 자작 이탈로 칼비노 p.119


결국 마을 사람들은 악한 반쪽에도, 선한 반쪽에도 불만이 최고치를 찍게 된다. 마을 전체가 참여하는 어떤 행사에서 이들 둘은 서로 맞부딪쳐 서로를 죽이겠다고 싸우다 죽을 위기에 놓인다. 마을의 의사는 이들 둘을 아주 멋지게 다시 붙여 온전한 메다르도 자작으로 만든다. 선과 악이 적절히 섞인 온전한 인간이 되었으니 이제 마을 통치를 제대로 하여 평화를 되찾으리라고 사람들은 기대를 하지만 이들의 바람대로 일이 진행되지는 않았다며 책은 결말을 맺는다. 


"인간이 반쪽이 된다는 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나는 알거든. 그를 동정하지 않을 수 없어."

반쪼가리 자작 이탈로 칼비노 p.88



책에 꽤 많은 사람들이 나오지만 이들은 반쪼가리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삶은 온전함과는 거리가 멀며 오히려 어느 한쪽이 결핍된 생활을 한다. 의사이지만 사람을 치료하는 일을 하지 않는 트렐로니, 자신이 만드는 물품이 악한 일에 사용된다는 것을 알고 자괴감을 느끼면서도 아주 열심히 최선을 다해 물품을 만드는 장인 피에트로키오도, 유흥과 방탕한 생활을 일삼는 문둥이들, 자신의 종교에 대하여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종교적 윤리를 기계적으로 신봉하는 위그노들까지. 아마 우리도 이들 중 하나로 살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저절로 자신을 돌아보게 만드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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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쪼가리 자작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41
이탈로 칼비노 지음, 이현경 옮김 / 민음사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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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과 악, 불완전한 인간. 어느 쪽이든 한 곳으로 치우쳐 살고 있지는 않은지 삶을 돌아보게 만드는 힘이 있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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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니악
벵하민 라바투트 지음, 송예슬 옮김 / 문학동네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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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커상 최종 후보에 오른 과학 소설이라고 하여 관심이 갔던 벵하민 라바투트의 매니악. 작년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읽은 후 지속적으로 과학 관련 서적을 읽고 있는 나로서는 소설로서의 과학이 무척 궁금하였다. 게다가 근래에 시간과 우주론 그리고 시뮬레이션에 관련된 양자물리학 책을 읽은 후여서 더 궁금하였다. 덕분에 생소한 분야에 발을 담가서인지 아는 만큼 많이 본다는 말을 이번 책만큼 절실하게 느낀 적이 없었다.



이 책에 덧붙여진 닉네임이 '픽션과 논픽션의 경계'이다. 이 별명은 읽기 전부터 독자로 하여금 픽션과 논픽션이 어떻게 나누어져 있는지 매우 궁금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책의 절반을 읽는 동안 어느 것이 허구인지 어느 것이 사실인지 전혀 구분을 할 수가 없었다. 이유는 등장인물과 사건이 모두 역사적 사실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읽으면서 과연 이것이 소설이 맞을까 하는 의문을 놓지 못할 정도로 허구성을 찾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우리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알파고와 바둑 대결을 한 이세돌 편에 오면 드디어 어떤 것이 허구인지 감이 잡힌다. 다시 말하자면 작가의 필력에 의해 독자는 마구잡이로 휘둘리며 블랙홀로 빨려 들어갔다가 마지막에 현실로 돌아오는 느낌랄까. 쉽게 설명하면 우리나라 대하드라마와 비슷한 결이라고 보면 된다.



책의 처음은 꽤 충격적인 장면으로 시작한다. 기존 이론물리학자이며 네덜란드 레이덴대학교 이론물리학과 학장을 지낸 파울 에렌페스트가 양자물리학을 처음 접하고 이를 실질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하여 삶을 포기하는 이야기이다. 심지어 주인공은 자신이 아는 세계에서 다음 세계로 넘어가는 것을 오히려 인정하고 있었는데도 말이다. 이성적이라는 단어와 동급으로 취급하던 물리학에 논리적인 동시에 비이성적인 양자물리학은 자신의 존재에 대하여 의문을 가지게 된 것이다. 양자물리학을 아주 조금이라도 들어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파울 에렌페스트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1부부터 굉장히 많은 과학자들이 등장한다. 작가의 문장에 스쳐지는 과학자부터 비중 있게 등장하는 과학자까지, 우리가 익숙하게 아는 아인슈타인부터 들어보지도 못한 인물까지. 덕분에 읽으면서 조금 더 알고 싶은 사람은 열심히 검색하면서 읽어 지식의 층을 조금 더 쌓을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기존에 SF 과학 영화나 SF 소설, 일반교양 과학 도서를 접해본 분이라면 읽으면서 이미지가 그려져 색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양자물리학의 등장에서 시작한 이야기는 조니 폰 노이만의 최초의 컴퓨터를 진화시켜 만든 매니악 얘기로 넘어오면서 더 발전하고 성장한다. 맨해튼 프로젝트 얘기로 넘어가면서 우리에게 친숙한 리처드 파인만이 등장한다.


"기폭 장치를 집어넣는 구멍들은 테이프로 덮여 있었는데, 흰색 테이프가 십자가 모양으로 붙어 있어 꼭 붕대 같았고, 결과적으로 폭탄의 생김새는 다쳤든지 두들겨맞았든지 해서 부서지기 직전에 겨우 꿰매 붙인 프랑켄슈타인의 작은 괴물 같았다."

매니악 벵하민 라바투트 p.151



글 중에 리처드 파인만이 맨해튼 프로젝트의 첫 원자폭탄 실험 때 폭탄을 보고 묘사한 것이다. 물론 픽션인지 논픽션인지 아직도 구분이 안 간다. 그러나 원자폭탄의 위력을 생각하면 프랑켄슈타인의 작은 괴물이라는 표현이 너무 꼭 들어맞는 것 같아 이렇게 소개한다.



책의 대부분은 우리가 흔히 미래에서 온 남자로 부르는 조니 폰 노이만을 주변인이 본 시각으로 구성되어 있다. 실제로 작가가 노이만과 당대의 과학자들을 다 만나 바로 옆에서 지켜본 것이 아니니 꽤 많은 허구가 섞였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 경계를 소설 안에서는 절대로 느낄 수 없다. 주변인들의 입을 빌려 소개된 노이만은 히틀러와는 또 다른 결을 가진 통제광이었다. 무엇이든 본인이 이해해야만 했고 기술적으로 통제가 가능해야만 했던 노이만이었다. 심지어 생물학에도.




"수학이나 물리학과 달리 생물학이라는 영역은 여전히 논리의 손길 바깥에서 우리가 길들일 수도, 써먹을 수도 없는 우연과 혼돈의 지배를 받고 있었다. 생물학적 존재들은 정신없이 복잡해서 아무리 노력해도 영원히 이해 못 할 리듬 안에 갇힌 채, 경이로운 무질서 속에서 살아간다. 우리의 몸과 마음 역시 그와 같은 조화로 형성되고 움직이다. 고통스럽지만 대다수가 받아들이는 이 단순한 진실이 나의 사랑하는 남편에게는 심각한 문제가 되었다. 어떤 대상을 통제할 수 ㅇ벗고 이해할 수 없으면 그는 격분하는 사람이었으니까. 그리고 나 역시 그런 대상이었다."

매니악 벵하민 라바투트 p.247




여기서 등줄기에 소름이 끼쳤다. 만약 노이만과 히틀러가, 노이만과 스탈린이 손을 잡았다면 인류의 역사는 어떻게 변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물론 민주주의와 손을 잡은 노이만이었지만 그 결과는 딱히 독재자와 손잡은 것과 큰 차이가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긴 했지만 말이다. 이런 인격적인 부분을 제외하면 조니 폰 노이만은 천재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그는 심지어 현재의 AI, 그리고 앞으로 진화할 AI에 대해서는 나름의 논리를 가지고 있었으니까.



"알파고의 패배가 확실해지자 사람들이 기뻐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유는 분명했다. 그전까지 사람들은 무력감과 공포감을 느꼈던 거다. 인간이란 존재가 너무나도 나약해 보였으니까. 이 승리는 우리가 무너지지 않으리라는 증거다. 시간이 지나면 AI를 이기기가 훨씬 더 힘들어질 것이다. 그러나 이 한 번의 승리······ 이것으로 충분하다고 느꼈다. 한 번으로 충분했다."

매니악 벵하민 라바투트 p.390



이 책의 의의는 수많은 과학자들의 성향과 이들의 활약이 아니다. 과학의 발견과 발전으로 인해 인류가 현재에 다다른 AI 자체와 이것으로 인한 앞으로의 인류가 나아가야 할 방향성에 대한 문제점을 던져주는 것이다. 마지막 얘기에서 알파고와 대결한 이세돌의 인터뷰로 인하여 책은 다시 처음 양자물리학을 진정으로 받아들이지 못한 파울 에렌페스트에게로 돌아간다. 우리는 과연 스스로 창의력을 발휘하여 진화하는 AI를 비롯하여 두려움을 가진 과학 분야를 어떻게 대하며 앞으로 어떻게 이를 받아들일 것인가? 하는 질문으로 말이다.



"이번 경험으로 많이 배웠습니다. 얻은 교훈으로 더 발전할 겁니다. 가장 놀라운 점은 인간이 창의적이라 생각했던 수들을 알파고가 관습적으로 보이게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이는 바둑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가져올 것입니다..... 이하 생략."

매니악 벵하트 라바투트 p.396



벵하민 라바투트의 매니악은 과학적 지식이 있으면 조금 더 깊게 이해가 가능하며, 없더라도 이해하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다. 왜냐하면 과학 소설이지만 작가는 과학적 내용보다 이를 받아들이는 인간으로서의 철학에 대하여 메시지를 던지기 때문이다. 인간이 만든 AI가 인류를 역으로 공격하는 영화나 소설을 우리는 자주 접했다. 이제 이 문제가 단순히 화면 너머의, 종이 안의 활자로만 우리에게 다가온 것이 아님을 작가는 마지막에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결을 통하여 우리에게 알린다. 그러면 우리는 미래에 대하여 두려워만 하여야 할까? 이것이 이 책이 우리에게 던져주는 질문이다.








#매니악 #벵하민 라바투트 #문학동네 #부커상후보작 #SF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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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자 속 우주 - 우주론의 새로운 시대를 열다
앤드루 폰첸 지음, 박병철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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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나 천체물리학에 조금만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암흑물질, 암흑에너지, 블랙홀, 코스믹 웹, 양자물리학, 양자컴퓨터에 대하여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 단어에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눈에 보이지 않으며 실제로 검증이 어려운 부분이 존재들에 대한 것이다. 그래서일까? 지식 추구의 본능을 가지고 있는 인간과 존재하지만 증명이 어려운 것이 합쳐져 많은 이들의 열정을 쏟아 넣게 만들고 있다. 상자 속 우주의 저자인 영국의 우주론 학자 앤드루 폰첸도 그들 중 하나이다. 


상대성이론의 아인슈타인을 비롯하여 우주론에 관련된 과학자들은 이론과학자들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우주에 직접 가서 실험을 하기도 어려울뿐더러 심지어 직접 가더라도 앞서 말한 우주의 95%를 구성하는 물질을 어떠한 도구로도 관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즉, 가설을 먼저 세우고 시뮬레이션을 하여 거기서 나타나는 현상으로 결괏값을 역으로 찾아가는 방법을 쓸 수밖에 없어 이론과학자들인 것이다. 상자 속 우주는 이론과학자들이 우주에 대하여 관측과 가설 설정 그리고 시뮬레이션 과정을 수없이 반복하여 얻은 불확정한 우주론의 역사에 관한 이야기이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시뮬레이션이라는 단어가 그리 어렵게 다가오지 않는 편이다. 그러나 1900년대 초반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렇게 상상조차 하기 힘든 것을 최초로 적용한 분야가 바로 오늘의 날씨였다. 지금보다 기술이 뒤떨어져 모든 것을 인간의 손으로 계산할 수밖에 없던 그때의 기상 시뮬레이션은 예측이 적중한 날이 거의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이렇게 지지부진하던 기상학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최초의 컴퓨터로 알려진 에니악과 오펜하이머라는 영화로 우리에게 더 친숙한 맨해튼 프로젝트가 합쳐져 마침내 눈에 띄는 결실을 맺게 되었다. 


저자는 우리가 가장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는 기상학에서 시작하여 시뮬레이션이 우주 관측으로 도입되어 반전되는 과정을 하나씩 빌드 업하면서 독자를 우주론 깊숙이 끌고 가버린다. 독자는 알지 못하는 순간 이미 우리 은하계를 넘어 알 수 없는 우주를, 미시 세계에서만 적용된다는 양자컴퓨터의 세계를, 아직 검증되지 않은 사고 지능을 가진 로봇의 세계를, 시뮬레이션 가설 속을 헤엄치고 있다. 이 과정이 너무 자연스러워 책의 난이도 빌드 업을 크게 느끼지 못할 정도였다. 


우주론자들이 우주를 연구하는 이유가 나의 예상과 달라서 조금 놀랐다. 미래의 눈을 가지고 우주를 보는 줄 알았는데 오히려 이들은 별이 보낸 과거의 빛으로 우리 우주의 태초를 재현하는 것에 더 신경을 쏟고 있었다. 그러면서 마지막은 기술적 요소보다 인적 요소가 더 중요하다고 저자는 말하며 우리를 현실로 데려다 놓는다. 책의 내용은 너무 어렵지도 그렇다고 엄청 쉽지도 않았다. 아마 정규 교육을 받고 우주나 별에 조금만 관심이 있다면 충분히 이해가 가능할 것이다. 우주론에 관련된 책이지만, 의외로 기상학, 생명공학, 화학공학, 기술공학 분야에 대하여 두루두루 나와 많은 이들이 궁금증을 해소하면서 읽을 수 있는 책이다. 



*** 출판사에서 도서 협찬을 받아 읽은 후 개인의 주관적인 견해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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