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지능의 역사 - 유레카부터 인공지능까지, 지성사를 통해 인간을 다시 묻다
이은수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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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은 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인간 지능의 역사』에서 이은수는 인공지능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묻기 위해 먼저 과거를 돌아본다. 구술과 기억에 의존해 생존하던 인간이 어떤 경로를 거쳐 인공지능이라는 새로운 인터페이스와 마주하게 되었는지 차분히 짚어간다. 과학 기술의 발달로 인지 혁명을 겪은 인류가 환경에 적응하고, 그 적응을 다시 발전으로 밀어 올린 과정을 역사적 맥락 속에서 풀어낸다. 그렇게 쌓아 올린 시선 위에서, 흔들리기만 하는 AI 시대를 사는 현대인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한다.



이은수의 『인간 지능의 역사』는 다섯 장, 발견하다·수집하다·읽고 쓰다·소통하다·재정의하다로 이루어진다. 호기심과 욕망에서 출발한 ‘발견하기’는 곧 권력자의 ‘수집하기’로 이어지고, 다시 '왜'와 '어떻게'를 묻는 수집으로 저장성의 한계 끝에서 AI로까지 확장된다. 이런 시대에 인간은 읽고 쓰고 소통하는 행위를 통해 두려움을 덜고 인공지능과 협력하는 법을 익힌다. 마지막 ‘재정의하다’에서는 지능 인터페이스가 바뀔 때마다 인간이 적응해온 것처럼 우리가 이 시대에 적응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AI 시대 인간이 나아가야 할 길을 역사의 흐름 속에서 다시 짚어내는 『인간 지능의 역사』는 기술의 시대 한가운데에서 인문학의 필요성을 또렷하게 드러내는 책이다. 이 책이 전하려는 메시지는 단순하다. 끝없이 흔들리는 오늘의 현실 속에서도 인간은 결국 단단한 바닥에 다시 발을 붙일 수 있다는 것. 저자는 아르키메데스의 유레카에서 이야기를 시작해, 빠른 박자로 현대인의 불안을 가라앉힌다. 익숙한 인물에서 출발하는 구성은 독자에게 호기심과 몰입을 동시에 준다.



저자는 고대 이집트에서 오늘날까지 지능 인터페이스가 어떻게 바뀌어왔는지, 그 변화를 밀어붙인 환경이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그 틈바귀를 통과하며 인류가 어떻게 적응해왔는지를 펼쳐 보인다. 결국 그가 말하고 싶은 건 AI 시대에 인간이 취해야 할 태도다. 두려움에 떠밀려 “AI는 나쁘다”라고만 외치기보다 협력하는 방식, 그 협력을 위해 우리가 가져야 할 사고와 행동을 짚어낸다. 그래서 먼저, 구술과 기억에만 의존해 생존을 이어가던 인류가 어떤 경로로 AI와 마주하게 되었는지를 따라가보자.


인간은 태생부터 호기심과 욕망을 품은 동물이다. 그런 인류 앞에 문자가 등장한다. 지금의 우리에겐 너무 익숙해서 특별할 것 없는 문자이지만, 당시에는 외부에 기억을 저장한다는 이유로 격렬한 반대가 있었다. 인간의 기억력이 약해질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결국 인류는 이를 넘어섰고, 단순한 상형문자를 지나 알파벳까지 발전한다. 기록이 가능해지자 사람들은 신이 만든 세계를 파헤치기 시작한다. 아르키메데스의 수학, 갈릴레이의 지동설 같은 외부 세계에 대한 새로운 시선은 곧장 대항해 시대의 문을 연다.


그러나 인간이 갈 수 있는 곳, 상상할 수 있는 곳을 거의 다 뒤집어놓고 나자 시선은 더 작은 곳, 내부로 향한다. 여기서 현미경이 등장한다. 지식의 확장은 단순히 바깥의 새로운 것들을 더하는 방식으로만 이어지지 않았다. 이미 존재하던 수많은 책들을 한데 모으고, 그 축적을 토대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방식으로도 발전한다. 그 결과 필사 문화와 도서관이 흥하고, 저장 매체는 파피루스에서 양피지, 그리고 코덱스로 이어지며 달라졌다.



수집의 영역은 책을 넘어 세계 곳곳의 기이한 것들까지 포함하게 된다. 독일어로 분더카머라고 불리는 공간, 오늘날 박물관의 조상이라 할 만한 곳이다. 처음엔 귀족의 취미와 권력의 상징이던 이런 수집이 지식의 보편화와 함께 현대 박물관으로 발전한다. 하지만 모든 것을 모으는 데는 공간의 한계가 있었다. 그 한계를 넘어가기 위해 인류가 선택한 것이 바로 인공지능이다. 이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몇 가지 뚜렷한 특징이 드러난다.



그 첫 번째 특징은, 인류는 발견하고 수집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반드시 이를 나누는 행위까지 이어왔다는 점이다. 이는 호기심과 욕망이라는 인간 본능의 결과다. 현대도 다르지 않다. 과학의 한편에서는 영생과 자연법칙에 대한 욕망이 지식의 끝단을 향해 나아가는데, 다른 한편에서는 호기심이 사라진 듯 모든 판단을 인공지능에게 넘겨버리는 아이러니가 벌어진다. 그리고 이런 자발적 포기의 밑바닥에는 ‘AI가 인간을 대체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넓게 깔려 있다.



두 번째 특징은, 수많은 지능 인터페이스가 등장하지만 결국 같은 방향으로 흐른다는 점이다. 선형에서 비선형으로. 두루마리 양피지에서 코덱스로, 코덱스에서 인터넷 검색으로, 검색에서 인공지능으로 이어지는 흐름은 일관된다. 단계적이고 수동적인 탐색에서 적극적이고 연결적인 정보 관리로 넘어가는 진화다. 이 변화는 단순한 기술적 발전이 아니라 인간이 정보를 다루는 방식 자체가 확장되는 과정이라는 점에서 중요하다. 단계가 바뀔수록 구조는 복잡해지고, 원하는 지식에 더 빠르게 점핑하는 UI(인터페이스)로 확장된다.



세 번째 특징은, 지식 인터페이스가 바뀌는 순간마다 인류가 언제나 능동적 학습과 능동적 읽기를 고수해왔다는 점이다. 적극적으로 토론하고, 손수 필사하고, 책의 여백에 자신의 생각이나 질문을 적거나 밑줄을 긋는 방식으로 스스로 개입해왔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인류는 과거의 방식을 단절하지 않고, 현재의 것에 자연스럽게 섞어 혼종 형태로 유지해왔다. 구술 문화가 문자와 AI로 넘어왔어도 여전히 오디오북과 팟캐스트가 부상하는 것이 그 예다.


『인간 지능의 역사』를 되짚은 뒤, 이은수는 AI 시대에 인간이 나아갈 길이 과거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인간 고유의 성향과 AI 고유의 성향을 똑바로 직시하고, 더 적극적으로 마주하라는 것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어떤 방식으로 접근해야 하는지는 책에서 상세히 설명한다. 중요한 건, 인공지능을 무작정 두려워할 존재로도, 거꾸로 인간을 지배하는 상위 존재로도 상정하지 말라는 점이다. 저자는 말한다. 가장 인간다운 방식을 고수하며, 인류가 만들어온 지능 인터페이스를 적극적으로 사용할 때 오히려 인간은 더 강해진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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