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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비포 유 ㅣ 미 비포 유 (다산책방)
조조 모예스 지음, 김선형 옮김 / 다산책방 / 2024년 4월
평점 :

***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은 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이 책이 처음 출간되었을 때 번역도 되기 전에 원서로 읽을 만큼 궁금했던 작품이다. 이후 몇 년이 지나 호주의 104세 과학자 데이비드 구달 박사의 존엄사 소식이 전해졌고 그 내용이 책과 겹쳐 강한 인상으로 남았다. 최근에는 호주와 네덜란드에서 부부가 함께 안락사를 결정한 사례도 보도되었다. 삶의 마지막을 스스로 선택하는 이들이 조금씩 늘고 있지만 여전히 가족과 당사자 사이의 의견차는 쉽사리 좁혀지지 않는다. 그래서 이번에 이 작품을 다시 읽게 되었고 가족의 사랑과 당사자 선택의 간극에 관한 고민을 다시 마주하게 되었다.
작은 마을에 사는 루이자는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다. 일하던 카페가 문을 닫자 급하게 새로운 일자리를 찾고, 휠체어에 의존하는 전신마비 환자 윌 트레이너의 간병인으로 고용된다. 시급은 높은 만큼 그녀는 이 일이 곧 고통을 동반할 것임을 직감한다. 윌은 한때 능력 있는 사업가이자 익스트림 스포츠와 여행을 즐기던 인물이었으나 사고 이후 삶에 대한 의욕을 완전히 잃고 안락사를 결심한 상태다. 루이자는 단지 생계를 위해 이 일에 뛰어들었지만, 윌과의 첫 만남부터 낯설고 불편한 감정을 마주하게 된다.
처음엔 서로를 이해하지 못했던 루이자와 윌은 시간이 흐르며 조금씩 가까워진다. 루이자의 진심 어린 말과 행동은 윌의 굳게 닫힌 마음에 균열을 만든다. 루이자는 윌의 안락사 계획을 알게 된 뒤 충격을 받지만 그의 삶을 바꾸기 위해 직접 계획을 세우기 시작한다. 그는 여전히 차갑고 단호했으나 가끔은 미소도 보였다. 여행을 떠나고, 콘서트에 가고, 함께 새로운 경험을 하며 두 사람은 점점 깊은 유대를 쌓아간다. 하지만 그 어떤 노력에도 불구하고 윌의 마음은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미 비포 유는 미비포유시리즈의 첫 작품으로 이후 애프터 유와 스틸 미로 이어진다. 이 시리즈는 한 여성의 성장기를 다루지만, 첫 권의 핵심은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선 한 남자의 자기 결정권이다. 작품은 전신마비 상태로 존엄을 잃었다고 느낀 인물이 죽음을 결정하는 과정을 따라가며 생존 자체보다 자기다움의 지속 가능성이 인간에게 더 중요할 수 있다는 점을 그린다. 또한 가장 가까운 가족의 사랑과 당사자의 선택 간의 간극을 조명하고 있어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이 소설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단순하지 않다. 죽음을 선택한 한 인물의 결정을 두고, 우리는 삶의 조건, 통제, 사랑, 존엄성 등 다양한 층위에서 질문을 마주하게 된다. 생명이 남아 있다는 사실만으로 그것을 삶이라 부를 수 있는가? 타인의 선의가 당사자의 의지를 대신할 수 있는가? 사랑은 정말 구원이 될 수 있는가? 중요한 것은 그 결정에 동의하는 것이 아니라 그 선택이 왜 가능한지, 또 우리는 그것을 허용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를 고민하는 일이다.
작중 윌의 결정은 단순히 고통을 피하려는 문제가 아니다. 그는 사고 이후 전신마비가 되면서 모든 일상을 타인의 손을 거쳐야만 삶이 유지되는 상태에 놓인다. 여기서 핵심은 육체의 불편함이 아니라 인생의 선택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능력의 상실이다. 동시에 최소한으로 보장되어야 할 인간 존엄성의 소멸이기도 하다. 삶을 구성하던 능동적 행위들이 제거된 상태에서 그는 더 이상 자신을 자신이라 부를 수 없었다. 생존은 단순한 물리적 조건이 아니라 통제 가능성의 유무에 따라 의미를 가진다는 점이 드러난다.
죽음을 결정하는 행위는 흔히 포기, 절망, 혹은 삶의 실패로 간주된다. 하지만 윌의 결정은 그와는 다르다. 그는 고통을 피하기 위해 죽음을 택한 것이 아니라, 더는 자신을 자신이라 부를 수 없는 삶에서 벗어나기 위해 마지막 선택을 한 것이다. 이는 회피가 아니라, 무너진 통제 속에서 유일하게 남은 주체적 표현이자 저항이다. 죽음은 단절이 아니라, 자기 정의의 마침표이자 마지막 자기 복원일 수 있다. 우리는 이 결정을 단지 비극으로만 간주할 수 있을까?
타인의 삶을 지키고자 하는 마음은 흔히 사랑이라 불린다. 그러나 그 사랑이 살아야 한다는 전제를 강요하기 시작할 때 그것은 구원이 아니라 개입이 된다. 작품 속에서 주변 인물들의 설득은 선의로 출발하지만 결국 윌의 결정권을 뒤흔드는 외부의 압력으로 작동한다. 그의 존재는 보호받아야 할 상태로 정의되고 판단은 유예된다. 우리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누군가의 결정을 바꿔도 되는 걸까? 선의는 언제부터 통제가 되며, 그 통제는 왜 쉽게 정당화되는 걸까?
사랑은 언제나 구원의 언어로 제시된다. 우리는 누군가를 사랑하면 그 사람의 고통을 덜어줄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저자는 이 믿음에 근본적인 의문을 던진다. 루이자는 윌을 사랑했지만 그 감정이 그의 존재 조건을 바꿀 수 없다는 사실을 끝까지 자각하고 있었다. 감정은 의식을 대체하지 못하며 사랑이 선택을 대신할 수는 없다. 우리가 누군가를 구하고 싶다는 마음은 종종 그 사람의 고통을 진정으로 이해하지 못한 결과일 수도 있다.
죽음을 결정하는 순간 가장 가까운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그 선택을 붙잡으려 한다. 하지만 사랑이 강할수록 그 결정이 더 무겁게 거부당할 수 있다. 루이자는 끝내 윌의 선택을 존중한다. 중요한 건 감정이 아니라 그 결정이 당사자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를 서로가 이해하려는 과정이다. 삶을 연장하는 것이 생명을 지키는 일은 아니다. 목숨은 하나뿐이고 결정 또한 단 한 번뿐이다. 우리는 이 간극을 좁히기 위해 충분히 고민하고 나서 서로의 마음에 상처가 되지 않도록 결정하여야 할 것이다.
조조 모예스의 미 비포 유는 죽음조차 한 인간의 자기표현이 될 수 있는지를 묻는다. 삶의 끝에서 내리는 결정은 단순히 옳고 그름으로 나뉘지 않으며 우리는 타인의 선택 앞에서 쉽게 감정으로 반응하지만, 그 감정이 판단을 대체할 수는 없다. 과연 우리는 타인의 고통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어떤 선택을 허용하거나 금지하려는 건 아닐까? 존엄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감정 없이 정의될 수 있는 것일까? 이 작품은 가족의 사랑과 당사자의 선택 사이의 간극을 고민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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