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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를 지키다
장바티스트 앙드레아 지음, 정혜용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3월
평점 :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은 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1904년, 미모 비탈리아니는 왜소증을 가진 채 태어나 조각가인 삼촌 치오 밑에서 착취당하며 자란다. 그는 오르시니 가문의 막내딸 비올라를 만나 처음으로 지식과 가능성을 배운다. 두 사람은 서로를 날게 하고 지탱하겠다고 맹세하지만, 비올라는 열여섯 생일에 강제 약혼 소식을 듣고 자살을 시도한다. 이후 미모는 다른 도시로 팔려가고 그의 재능으로 인해 온갖 고초를 겪는다. 그러나 몇 년 후 미모는 조각가로서 성공하지만, 성장한 비올라와의 관계는 점차 어긋나기 시작한다.
비올라는 남편과 사회에 무시당하며 도도새처럼 자신을 감춰 살아가고, 미모는 파시스트 정권의 조각을 맡으며 정치적 타협에 휩싸인다. 두 사람은 서로의 선택을 비판하며 갈등하지만, 결국 미모는 유대인 친구의 도움 요청을 계기로 정권에 맞서다 투옥된다. 전쟁 후 풀려난 미모는 다시 비올라와 재회하고, 그녀는 국회의원 출마를 선언한다. 그러나 두 오빠는 그녀의 공약을 막기 위해 출마를 저지한다. 비올라는 더 이상 침묵하지 않겠다며 끝까지 맞서려 하고 그런 그녀에게 또 다른 장애물이 닥친다.
장바티스트 앙드레아의 그녀를 지키다는 불가능에 도전한 두 사람의 우정을 그리고 있다. 자신의 재능으로 날아보고 싶었던 소년 미모는 신분과 환경에 가로막혔고, 하늘을 날고 싶어 비행기를 만들던 비올라는 귀족 사회 여성이라는 신분에 막혀 답답함을 느끼는 상황에 만났다. 이런 묘한 공통의 상황으로 인하여 이 책은 단순한 우정담이 아니라 시대라는 감옥 속에서 마음속에 샘솟는 꿈을 어떻게 실현하며 존재하고, 기억되는지를 그린 작품이다.
작품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제2차 세계대전 종전까지 격동의 이탈리아 근현대사를 배경으로 한다. 귀족 계급과 파시즘 정권의 권력 구조 아래 개인은 쉽게 말소되거나 조작됨을 매우 자연스럽게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시대의 모순 속에서 미모와 비올라는 서로의 꿈을 지지하며 연대하지만 현실은 그들의 선택을 수없이 좌절시킨다. 각자의 자리에서 마주한 억압은 정치적이면서도 철저히 일상적이며 그 안에서 우정은 개인적 이상을 넘어 생존의 몸부림으로 작동한다.
비올라는 지식과 자유의지를 갖춘 존재로 시대가 허용하지 않는 자율성과 정치의식을 품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오빠들에 의해 통제되고, 남편에게 억압당하며,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충분한 능력이 됨에도 불구하고 선거 출마를 저지당한다. 비올라는 이런 자신을 도도새에 비유하는데 이는 그런 시대적 구조가 인간의 내면을 어떻게 침식시키는지를 보여준다. 비올라의 결혼으로의 도피를 위한 비행 추락은 단순한 물리적 사건이 아니라 긴 시간에 걸쳐 만들어진 사회적 제한에 대한 거부의 결과이다.
그녀의 우뚝 선 여자라는 표현은 침묵을 견딘 이가 더는 침묵하지 않겠다는 선언이며, 사적 존재가 공적 주체로 전환되는 시점에 선 인물의 의지를 상징한다. 이상과 현실 사이의 간극은 계속해서 그녀를 시험하며 이 과정은 시대가 개인의 꿈과 목소리를 어떻게 제한하는지를 보여준다. 그녀는 자기 세계에 갇힌 삶을 넘어 공적 공간으로 나아가고자 한다. 이는 단순한 정치 참여가 아니라 억압된 존재가 시대를 향해 스스로를 주장하는 근본적인 선언이다. 그녀는 발화되지 못한 말들의 총체이자, 억압된 모든 여성의 대리인으로 서 있다.
미모는 예술가로서 성공하지만 그의 성공은 철저히 정치권력의 통제 아래 이루어진다. 그는 유대인 친구의 도움 요청을 통해 파시즘의 실체를 깨닫고 예술가로서의 방향을 전환한다. 이는 단순한 전향이 아니라 자신이 조각하는 존재의 의미를 재정의하는 전환점이다. 이후 그는 다시는 권력을 위한 조각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그와 동시에 감옥에 수감된다. 이 과정은 예술이 권력의 도구가 아니라 기억의 증언이 되어야 한다는 저자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듯하다.
단순히 비올라에 대한 애정과 스스로의 성공을 위해 시작한 조각이지만 사회적 고난과 그녀로 인해 나름의 철학을 만들어 가는 그는 급기야 모든 사람의 호기심을 참지 못하게 하는 작품으로 마무리한다. 그를 보면 종종 미켈란젤로가 떠오르는데, 이는 그가 조각을 새기는 것이 아니라, 꺼내는 작업이라 말하기 때문이다. 미켈란젤로가 돌 속에 이미 존재하는 형상을 해방시키듯 미모 역시 원석 안에 잠든 존재를 드러내는 데 집중한다. 그의 조각은 창작이라기보다 구출이며 존재의 기록이다.
이 작품의 묘미는 미모의 회상이 현대에 이어지고 있다는 데 있다. 그는 분명 그의 피에타에 큰 비밀을 숨겨 놓았다. 이것을 보는 사람은 묘한 감정에 사로잡혀 결국 수도원은 피에타를 숨겨 놓는다. 그 비밀을 파헤치기 위해 각국의 석학들이 찾아오지만 작중에서는 여전히 발견하지 못한 것으로 그려진다. 다만, 미모의 죽기 전 마지막 회상을 통하여 인간의 눈으로는 절대로 알 수 없다는 것을 독자는 깨닫게 되며 그 이유와 비밀에 전율을 일으키게 된다. 덕분에 마지막 책장을 덮은 후 여운에서 쉽게 벗어날 수 없는 특징이 있다.
장바티스트 앙드레아의 그녀를 지키다는 우정을 넘어선 연대, 존재를 위한 몸부림, 구조적 폭력에 대한 저항을 조각이라는 예술 언어로 풀어낸 작품이다. 시대가 꺾은 존재를 예술이 어떻게 복원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결국 그는 너무 순순히 인간을 따랐기에 멸종한 도도새를 살린 조각가로 남는다. 그 방법이 상당히 충격적이지만, 어느 누구도 그의 방식에 반기를 들 수 없는 방식으로. 이 책은 아름답지만 존재를 증명할 때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를 우리에게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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