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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스님의 말과 글 - 삶을 채우는 시간, 지혜의 필사책
법정 지음 / 샘터사 / 2025년 4월
평점 :

***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은 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에세이, 법정 스님의 말과 글은 스님의 생전 육성 강연과 원고 중 핵심 문장을 간추려 엮은 책이다. 나, 관계, 자연, 삶과 죽음, 무소유, 삶의 지혜, 종교, 책, 여유까지 총 9가지 주제로 구성되어 있다. 문장은 어렵지 않고 길지도 않다. 단정하지만, 사유는 깊다. 그는 모든 것을 외부가 아닌 내면에서 바라보았고 그 깊은 곳의 울림을 모아 절제된 언어 속에 감정과 사유, 결단을 함께 담았다. 그런 그의 가르침 가운데 필사에 적합한 핵심 문장 138개를 뽑아 좌측에는 문장을, 우측에는 필사 노트를 배치했다.
각 장의 주제는 삶의 한 국면, 곤란함을 겪는 찰나를 담고 있다. 그 안의 문장들은 그의 말과 독자의 마음이 조용히 마주 앉을 수 있도록 배치되어 있다. 단순하게 그의 가르침을 그대로 따르게 하기 위한 내용이 아니다. 그의 말에 자기 생각을 얹어 삶의 철학을 만들어가도록 길잡이가 되어 준다. 좌우를 살필 겨를 없이 육체와 영혼이 따로 움직이는 현대인에게, 영혼이 따라올 여유를 건넨다. 그 여유는 텅 빈 마음을 채울 틈이 된다. 이 책은 138일 동안의 필사 노트를 통해 마음을 돌보는 마음 챙김 시간을 선물한다
138일의 필사 노트, 마음 챙김 시간을 누릴 수 있는 에세이 법정 스님의 말과 글을 읽고 필사하면서 가장 많이 느끼는 것은 고요함이다. 긴 문장이 아니라 그의 일반 철학과같이 무소유 즉 비워냄을 고스란히 겪은 문장은 오히려 더 많은 이야기를 건넸다. 법정 스님의 글에는 강한 주장도, 이념도 없다. 그저 한 사람의 시선과 침묵 그리고 사유 속 깨달음이 있을 뿐인데 그 속에서 나는 지금 잘 살고 있는가라는 성찰의 물음이 반복해서 떠올리게 된다. 요란스러운 말보다 성찰을 통한 평온한 삶이 먼저인 글이었다.
스님이 남긴 문장들은 짧고 단아하다. 그러나 그 단아함은 누군가를 향한 꾸짖음과 탓함으로 인한 죄책감 전달이 아니라 스스로 삶의 철학을 재건하라는 말처럼 들린다. 흔히 말하는 강요하는 투의 자기 계발서와 달라 많은 사람이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하루 한 페이지씩 필사를 하다 보면 눈에 띄게 필사 속도가 느려진다. 욕심에 의한 날뛰는 욕망이 줄고 삶의 본질에 대한 궁금증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스스로 고요한 사람이 되어감을 느낀다. 이 책은 읽고 쓰는 독자를 조용하게 만들고 스스로의 중심을 찾게 한다.
또한 너무나 많음은 없는 것과 같다는 선인의 말을 떠올리게 하는 부분도 많았다. 우리는 1초도 쉴 틈 없이 세상이 건네는 소리 속에 갇혀 있다. 그러나 정작 꼭 들어야 하는 것은 듣지 못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는 전형적인 너무 많기에 진정한 것은 없는 것을 정확하게 표현한 말이다. 비워내고 멈추면 비로소 들리는 소리, 보이는 것들, 느껴지는 것들이 인간에게 소중하다는 것은 누구나 안다. 도태되지 않기 위하여 비워내지 못하고 멈추지 못할 뿐. 이 책은 좋은 글귀로 마음을 움직이기도 하지만 이런 여유를 가지게 한다.
이 책을 필사하면서 글쓰기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문장은 무엇을 말하는가 보다 무엇을 남기는가가 중요하다는 것을 그는 말이 아니라 글로 보여주었다. 스님의 글은 읽고 나면 단순하게 감동의 여운이 오래 남는 게 아니라 살아온 지난날, 앞으로 걸어야 하는 미래에 대한 고민의 흔적이 길게 남는다. 말을 줄인 만큼 생각은 깊어지고 침묵의 울림은 강해진다. 그는 하늘의 별이 되어서 직접 이런 진리를 전수한다. 덕분에 쓰는 이의 태도까지 배우게 만드는 도서였다.
글이란 결국 삶의 일부다. 법정 스님이 직접 살아온 방식이 그대로 문장에 녹아 있다. 굳이 삶을 설명하지 않아도 글에서 그 삶이 보인다. 고요하게, 검소하게, 그리고 자유롭게. 독자는 이런 그의 글을 보고 따라 쓰면서 스스로 얼마나 소란스럽고 필요하지 않은 욕심이 많으며 이런 것들로 인해 얼마나 많은 자유를 스스로 박탈하고 있었음을 깨닫게 된다. 고요한 새벽에 그의 글을 한 글자씩 새기다 보면 자신을 속박하고 불행하게 만든 가장 큰 원인은 세상이 아니라 스스로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이 책은 독자에게 어떤 실천을 강요하지 않는다. 조용히 읽고 쓰되 오래 남는다. 스님의 말과 글은 독자 각자의 자리에서 다시 울리며 저마다의 방식으로 해석되고 확장된다. 삶의 진리는 말하지만 실천의 방향은 각자의 몫이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 모든 문장에 대한 경계심이 모두 사라진다. 세상에는 말과 글에 관한 책이 무더기로 쏟아진다. 그러나 그는 말한다. 말도 나의 말이어야 한다고. 타인의 말과 글에 자신을 맞춰 목적 지향형 삶을 사는 현대인에게 그는 요란하지 않은 말로 일침을 가한다.
138일의 필사 노트, 마음 챙김 시간을 누릴 수 있는 에세이, 법정 스님의 말과 글은 가르침이 아니라‘함께 걸음이다. 누군가에게 교훈을 주기 위해 쓴 글이 아니라 한 생의 단면을 따라가며 독자가 스스로의 방향을 찾게 돕는 책이다. 거부감을 느끼지 않게 하는 하나의 문장이 삶의 방향을 바꾸기도 한다. 셰이크 통 속과 같은 요란한 삶을 살면서 나를 잃어버린 것 같다고 느끼는 분이라면 필사를 하면서 눈물을 흘릴 수도 있다. 슬퍼서, 감동스러워서가 아니라 나를 찾을 길을 발견한 기쁨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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