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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내가 되고 싶었던 것은
고정욱 지음 / 샘터사 / 2025년 4월
평점 :

***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읽은 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어린 시절 옆집에 소아마비에 걸려 중증 장애인이 된 삼촌이 살았었다. 세상을 잘 모르던 아이들의 놀림거리가 되기도 하고, 어른들은 자신들보다 모자란다고 깔끔하게 무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가장 가까이에 살던 우리 가족은 다 안다. 그 삼촌이 당시 우리가 알던 그 어떤 사람보다 머리가 비상하고 똑똑했다는 것을. 오늘의 책인 #샘터 에서 출간한 #에세이 #고정욱 작가의 #어릴적내가되고싶었던것은 을 읽으며 그 삼촌과의 추억을 떠올릴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샘터에서 출간한 따뜻한 신간 고정욱의 『어릴 적 내가 되고 싶었던 것은』에서는 총 다섯 가지 카테고리로 작가가 평소에 겪은 일들과 생각을 바탕으로 쓰인 생활 에세이이다. 키워드에 따라 나, 사랑, 책, 용기, 소명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총 46개의 에피소드가 실려 있다. 제목만 보면 꽤 동화적인 느낌이 나지만 내용은 확실하게 어른을 위한 책이다. 모진 세상의 바람에 길을 잃은 어른, 자식을 키우는 데 옳다고 믿었던 것에 흔들림이 생긴 부모, 꿈은 있지만 용기가 없어 포기하는 성인들을 위한 내용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책의 처음은 세계적으로 가장 잘 알려진 장애인을 언급하며 시작한다. 나는 장애인이 아닌 데라는 마음이 자리 잡기도 전에 작가가 이끄는 대로 끌려가다가 보면 급변하는 세상에서 누구나 안고 살아가는 동일한 공포를 마주하게 된다. 바로 쓸모없는 사람이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저자의 경우는 자신이 소아마비를 겪으며 가진 중증 장애에 대한 허들에 걸려 느낀 케이스이지만 이는 중력에 의해 지면에 발을 붙이고 사는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느끼고 있는 공포감이다.
보통 이런 경우 꼭 쓸모가 있어야 존재의 이유가 될까?라는 질문으로 결론을 내며 듣기 좋은 말로 다독이며 끝나는 경우가 많지만 작가는 오히려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간다. 타인이 정해 놓은 기준이 아닌 자신만의 기준을 맞춰야 한다고. 그 첫 번째 방법으로는 내가 정말 하고 싶었던 것, 내가 정말 바라는 것을 남의 것과 혼동하지 않는 것이라고 한다. 좋은 대학, 대기업이 아닌 나만의 것. 그러나 보통 성인이 되고 나면 스스로 이런 기준에서 벗어나려고 해도 잘되지 않는 경우가 태반이다.
어쩌겠는가? 사회가 센티미터 자를 들고 들이대는데 나 혼자 부피를 재는 저울을 들고 설치는 게 옳지 않아 보이는 것을. 이런 상황이 지속되다가 보면 스스로의 존재 가치에 의심을 품게 되고, 삶의 경로를 잃어버리게 된다. 내가 가야 할 곳은 제주도인데 사회는 내비게이션을 일괄적으로 서울이라고 규정해 놓았으니 말이다. 이때 작가는 작은 방법을 알려 준다. 가장 순수했던 마음으로 가졌던 어릴 적 내가 되고 싶었던 것에 중점을 맞추라고. 그러면 이런 질문을 던질지도 모른다.
그는 이미 현재 활동하는 작가 중에서 가장 많은 책을 펴냈고, 가장 많은 독자의 사랑을 받았고, 연간 300회의 강연을 다니며 2025년 아스트리드 린드그렌(말괄량이 삐삐 작가) 추모상 후보에 올랐으니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거 아니냐고. 사실, 그가 길지 않은 지면에 소개한 그의 일생은 결과만 가지고 재단하기에 미안할 정도로 난관이 많았다. 다만 그는 갖은 힘을 다해 그것을 넘었기에 현재에 도달할 수 있었다는 것을 책장이 넘어가면서 독자 스스로 깨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처음에 목차를 보고 가장 인상 깊을 것 같은 파트가 책일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했다. 그러나 마지막 장을 읽고 책을 덮고 나니 의외로 네 번째 파트인 용기가 가장 기억에 남았다. 아마 이 파트가 직업에 관련된 이야기였고, 또한 꿈은 가졌지만 선뜻 실행으로 옮기지 못하는 자신을 투영할 수 있기에 더 기억에 남은 듯하다. 처음에 의사가 되고 싶었지만 애초에 의대에 진학조차 하지 못한 저자는 국문학과를 나와 대학 강단에 섰으며 이후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소설가가 되었다.
점차 문학작품의 자리가 좁아지면서 어쩌다 한 번 써 본 동화가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이제는 까칠한 재석이라는 책 제목을 온 국민이 알 정도로 유명한 동화 작가가 되었다. 그러나 그의 여정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리얼리즘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작가가 트렌드에 맞춰 판타지로 넘어가야만 했던 시기에 심리적 벽을 허물면서 했던 고심을 활자로 보고 있었지만 바로 옆에서 자괴감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환영이 보일 정도로 생생하게 독자에게 다가온다.
우리는 인공지능이 앞으로 인간의 직업을 모두 대체하여 설자리가 없을 것이라는 두려움을 항상 그림자처럼 달고 산다. 이런 점에 대하여 6.25가 끝나고 폐허가 된 도시에서 태어나 최첨단의 시대를 걸어온 작가는 말한다. 이런 상황에서도 인간은 경쟁력을 가지고 있으며 탄력성과 유연성은 두 발로 걷는 지능인에게 가장 절대적인 무기라고. 과거에 있던 연탄장수가 사라질 때 우리는 그들의 밥그릇을 걱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은 살아남았고, 그의 자식들도 사회에 무사히 정착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면서.
그가 겪은 수많은 일 속에서 스스로 느낀 점을 독자에게 들려주는데 그 과정에서 부끄러움을 느끼기도 하고, 막연함을 느끼게 하는 부분도 있다. 바로 장애인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인데 개인적으로 딱히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나누어 생각지 않고 살아서인지 몰랐던 부분을 상당히 많이 알 수 있었다. 제일 이해가 안 되는 사람은 장애인 주차 공간에 차를 대는 사람이었다. 누구나 주차 공간이 없을 때 비어있는 이곳의 유혹에 흔들리지 않은 사람은 없었겠지만 기본 에티켓은 지키면서 살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샘터에서 출간한 신간 에세이 고정욱 작가의 『어릴 적 내가 되고 싶었던 것은』은 장애인에 대한 이해를 돕는 내용도 있지만 핵심은 결핍을 안고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다. 스스로의 심연을 투영하는 과정에서 내 안에 있는 나만의 무게추와 타인의 것이 아닌 진정한 나만의 기준을 찾아 사람마다 기준이 다른 행복을 찾는 이야기이다. 모든 공기가 정체됨을 느끼는 순간에 작가는작은 바람이 되어줄 그의 목소리를 지금 전한다. 이제 정체된 당신의 공기를 살짝 움직여볼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