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의 기억
티나 바예스 지음, 김정하 옮김 / 삐삐북스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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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들이 암보다 더 두려워하는 병은 단연코 치매나 알츠하이머 등의 사랑하는 사람은 물론 자신까지 머릿속에서 사라져 가는 기억을 잃는 병이다. 최소한의 인간의 존엄성조차 지킬 여력이 없고, 최종적으로 가족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지게 만드는 병. 티나 바예스의 나무의 기억은 알츠하이머에 걸린 할아버지가 우리 집에 살면서 일어나는 일을 열 살짜리 소년의 눈으로 묘사한 책이다. 온 가족이 모여 사는 모습과 맞벌이하는 부부로 인하여 한국인이 보기에도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아 심리적으로 공감되는 부분이 많으리라 생각한다.


<티나 바예스 작가 소개>



작가이면서 번역가이자 편집자이다. 카탈루냐어로 된 단편소설을 소개하는 웹사이트인 「유리 종이」의 공동 운영자이며 어린이 청소년 문학 팟캐스트를 진행하고 있다. 성인을 위한 작품으로 『라발의 비행기』와 2013년에 메르세 로도레다 소설 문학상을 수상한 『독주 한 잔과 가장 긴 훈계』 그리고 『바르셀로나에 온 비둘기 선생님』이 있다. 『나무의 기억』은 2017년 아나그라마 문학상을 수상했으며 곧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어 20여 개 언어로 번역되었다.


"좋아해도 되나요?"

"그럼, 물론이지."

"그런데 엄마 아빠는 왜 좋아하지 않아요?"

"우리는 생각을 좀 정리해야 하거든."

아빠가 엄마 손을 꼭 잡으면서 대답했다.

아빠 엄마가 방을 나가고 나서 나는 영어 숙제를 끝냈다. 

그런데 보통 때의 내 글씨체가 아니었다.

평소보다 작았다.

-p.21



스페인 소설 티나 바예스의 나무의 기억은 다른 지역에 사는 조부모님이 주인공인 잔의 집으로 거주지를 옮기면서 시작된다. 할아버지는 치매에 걸리셨고, 할머니 혼자서 돌보기에 벅찼기 때문에 집을 합치게 된다. 아빠는 대학교수이며 엄마는 초등학교 선생님이다. 시계공이셨던 할아버지의 이름은 조안이며 잔은 조안에서 O가 빠져 있다. 처음에 어른들은 잔에게 할아버지의 상태를 말하지 않고 비밀에 부친다. 그래서 발생하는 침묵에 아이는 점점 눈치며 함께 침묵에 빠져들게 된다.



아빠는 우리가 강해져야 하고 

할아버지가 원하는 일을 해야 한다고 했다.

그래야 나중에 우리의 마음도 좋을 거라고 했다.

'나중에'라는 말을 나는 못 들은 척했다.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은 척했다.

-p.127



이들은 각자의 역할이 정해져 있었는데 부모님은 밖에서 일하는 역할, 할아버지는 잔의 하교를 도우며 할머니는 집안일을 도맡아 하신다. 매일 등하교를 하면서 나무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해주시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변해 간다. 딱히 잔은 이를 눈치채지 못했는데 어느 날 하굣길에 매일 들고 오시던 간식을 깜빡하고 오시고 점점 기억을 잃는 바람에 잔도 할아버지의 상태를 알아차리게 된다. 이 사실을 알게 되면서 잔은 할아버지를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하고 부모님도, 할머니도 마찬가지이다.


​​

우리는 할아버지가 기억을 잊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모든 준비를 다 해놓았다.

-p.127



물론 이들도 조안의 행동으로 인하여 화도 나고 짜증도 나지만 모두 병 때문이며 병이 잘못하는 것이라고 하면서 서로를 다독이고 보듬어 준다. 책장이 넘어가는 내도록 지금은 흔적도 남지 않은 할아버지의 버드나무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이야기가 꽤 슬프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것이 우리의 삶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 책의 소재가 나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 마지막까지 읽고 나면 주제가 나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미 너에게 모든 것을 이야기했을 수도 있겠구나."

나에게 더는 이야기해 주고 싶지 않고 

더는 대화할 게 없다는 말이 아니라, 

할아버지 이야기를 내가 모두 기억해서 

기쁘다는 말이라는 걸 이해하는 데 

시간이 좀 걸렸다.

-p.144


처음에는 이야기가 너무 따뜻하게 흘러가서 이 가족들에게 들이닥친 일에 대하여 잠깐씩 잊으면서 책을 읽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열 살의 자그마한 소년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마음이 먹먹해지게 된다. 엄마 아빠가 할아버지의 상태가 심각해진 것을 알아차리게 하지 못하도록 노력하는 것과 스스로 기억을 잃어가고 있다는 것을 느끼지 못하도록 하는 자그마한 말과 행동들로 독자들로 하여금 저절로 연로하신 자신의 아버지나 어머니를 떠올리며 눈시울을 적시게 만든다.


"할아버지가 나무라고 생각했다.

버드나무는 번개로 상처를 입었다.

그리고 나무도, 그루터기도 남아 있지 않게 되면

나도 할아버지를 그리려고 

내 손가락을 초록색 분필로 물들일 것이다."

-p.219


내도록 나무의 기억이라고 하여 어린 시절 조안의 소중한 나무와 나무로부터 얻는 지혜 혹은 할아버지와의 추억으로만 생각했다. 하지만 마지막까지 읽다가 보면 그 의미는 가족이며 나의 뿌리이며 사랑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치매를 말할 때 흔히 유전적으로 몇 퍼센트, 생활 습관에 따라 몇 퍼센트라고 하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절반의 확률이다. 걸리느냐 걸리지 않느냐. 이것이 지금 우리의 현실이다. 이런 현실로 인하여 이 책은 세상의 모든 부모님과 자녀가 읽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나무의기억 #티나바예스 #삐삐북스 #김정하 


*** 출판사에서 도서 협찬을 받아 읽은 후 개인의 주관적인 견해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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