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하는 미술관 - 그림 속 잠들어 있던 역사를 깨우다
김선지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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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여러 인문학 자료들을 보면서 점점 더 명화가 전하는 함축적인 대화를 풀어내는 것에 점점 더 관심을 가지게 된다. 그래서 단순하게 명화에 대한 객관적인 설명만 있는 도서보다는 그 이면에  얽힌 이야기를 풀어주는 책을 좋아한다. 처음에는 단순하게 조금 더 알고 싶다는 지식 욕구로 시작했는데 이제는 역사, 문화, 정치, 경제 등이 어떤 식으로 녹아 있으며 그동안 배웠던 내용들을 그림 한점으로 통합하여 조금 더 거시적으로 보고 싶은 마음이 커서 더 공부를 한다. 오늘은 이런 욕구를 그동안 읽었던 관련 도서들과 조금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는 알에이치코리아에서 오늘 출간한 김선지 작가의 사유하는 미술관을 소개하려고 한다.


사유하는 미술관을 통하여 김선지 작가를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예술 관련 학과를 전공했으리라는 예상과 달리 이화여대에서 역사를, 동 대학원에서 미술사와 현대미술을 공부했다. 한국천문연구원 웹진에서 게재한 명화 속 별자리 이야기를 계기로 남편인 천문학자 김현구 박사와 함께 예술과 천문학을 콜라보 하여 그림 속 천문학을 출간했다. 그 외에 싸우는 여성들의 미술사, 그림 속 별자리 신화, 뜻밖의 미술관 등이 있다. 좀 더 빨리 알았더라면 아마 김선지 작가의 책 전부를 읽었을 텐데 이제서야 알게 되어 아쉬웠다. 


알에이치코리아에서 출간한 김선지 작가의 사유하는 미술관은 총 여섯 개의 챕터, 각 챕터 당 다섯 가지 즉, 30가지 명화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단순한 스캔들보다는 철저하게 역사적 관점으로 접근하였다는 것이 특징이다. 특히 그동안에 봤던 도서들과 겹치지 않는 스토리로 구성되어 있어 지루함보다는 새로움에 더욱 집중력을 가질 수 있었다. 내용도 각종 신화에서부터 시작하여 동화 속 내용, 중세를 거쳐 근대에 이르기까지 정치·경제·문화적 사안까지 매우 다양하여 그 흥미로움이 배가되었다.



게다가 한 스토리마다 관련 명화 여러 점을 연결하여 설명하여 점으로 이루어진 앎이 아니라 하나의 큰 그림으로 그려지는 지식 습득으로 연결되었다. 게다가 명화 작품 한 개를 그대로 설명한 것도 있지만 내용이 복잡한 미켈란젤로의 천지 창조 같은 경우에는 작품에 확대경을 들이댄 것처럼 여러 부분으로 나누어 설명하였다. 각 인물들을 나누어 누구인지, 왜 등장했는지 등 함축적인 의미까지 세세한 분석은 개인 큐레이터를 옆에 둔 느낌까지 주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작품을 보는 눈이 생각보다 많이 잘못되어 있음을 느낀 것이 이번 도서를 읽으면서 가장 뜻깊었다. 예를 들자면 하렘을 우리는 흔히 성적으로 문란함을 뜻하는 의미로 알고 있지만 사실은 꽤 엄격한 황후들이 살던 곳이며 치열한 정치와 외교가 이루어진 곳을 뜻하였다. 심지어 여기에 엄청나게 많은 왕의 여자가 살고 있다고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 왕에게는 네 명의 아내만 허용되었다. 다만, 이 황후를 보필하는 여자들이 있었으며 이들이 아니면 이곳은 가족만 드나들 수 있었다. 그러나 서구인의 눈으로 본 오스만 문화에 대한 편견은 각종 예술 작품에 드러났으며 하렘을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있는 의미로 변질시켰다. 이를 역사적으로 표현하면 왜곡된 관점의 오리엔탈리즘이라고 한다.



"산업 혁명 시대의 대기 오염이 없었다면 터너와 모네의 그림은 탄생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들이 현대 추상화로 가는 첫 단추를 끼웠다는 것을 생각할 때 산업 혁명이 미술사에 가지는 의미는 자못 크다. 

……(중략) 

연구자들은 대기 오염이 증가함에 따라 두 화가의 그림 속 하늘도 더 흐려졌다는 점을 발견했다."

- p.357~359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우리에게 빛의 화가로 알려진 모네의 이야기였다. 나는 그동안 모네의 작품에 대한 아름다움, 그가 그린 작품의 배경지, 그의 일생 등에 대한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것이 산업혁명의 산물이라는 것은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이 작품들의 흐릿한 부분은 스모그 현상으로 알려졌다. 이 스모그 현상은 날씨 즉, 햇빛의 강도에 따라 빛이 만들어내는 다채로운 색상에 모네는 넋을 잃었으며 이를 수 백 점이나 그렸다고 한다.



"모네는 무엇보다도 안개가 계절에 따라 혹은 하루 동안 시시각각 런던을 변화시키는 모습에 매혹되었다. 그는 비 오는 날, 안개로 뒤덮인 날, 밝고 화창한 날 등 변화무쌍한 날씨의 대기 효과를 섬세하게 표현하는 그림을 그렸다."

-p.359


그는 이 스모그 현상을 매우 좋아하여 런던을 방문했을 때 맑고 화창하여 안개가 사라졌을 때 매우 실망했다. 심지어 아내에게 안개가 하나도 없다며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하였으며 안개가 없었다면 런던은 아름답지 않았을 거라고까지 말하기도 하였다. 이렇게 산업혁명이 진행됨에 따라 런던은 대기 오며, 수질 오염이 심각한 상태였는데 이 대기 오염을 두고 완두콩 수프 안개라고 불렀다. 다르게 보자면 우리가 아는 모네는 대기 오염을 표현하기 위하여 빛을 연구한 것이 오늘날 빛의 화가라는 명성을 얻게 한 것이다.


지금이라면 이런 현상을 두고 아름답다고 붓을 들 화가가 얼마나 있을까? 환경 캠페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면 사진으로도 접근하지 않을 것 같다. 그 외에 19세기 초에 사각형 소나 축구공 형태의 돼지를 그린 배경, 셀카의 시초를 알려진 카스틸리오네 백작 부인, 매춘부로 황후가 되어 여성의 인권 신장을 위하여 사법 개혁을 한 테오도라, 나폴레옹을 정치적으로 선전하는 기법이 현재까지 이어져 온 것 등등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인물들과 그 이면의 이야기들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다.


"때로 그림 한  점은 천 마디의 말을 한다."

-p.56


게다가 공부하면 할수록 과거의 화가는 단순하게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아니라 지금의 영상을 작품 한 점에 고정하기 위하여 치밀하게 계산된 연출가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스쳐 지나가는 인물, 건축, 사물, 자연물 하나까지도 의미를 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움까지 갖추고 있었으니 말이다.  알에이치코리아에서 출간한 김선지 작가의 사유하는 미술관은 인간의 근본 욕구인 앎을 채우고 싶은 사람에게 꽤 도움이 되는 책이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역사는 수능에 나오지 않는 과목이기에 공부할 필요가 없다고 말하는 부모, 역사는 지루한 과거의 이야기로만 치부하는 학생들이 꼭 접해보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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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에서 도서 협찬을 받아 읽은 후 개인의 주관적인 견해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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