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뉴어리의 푸른 문
앨릭스 E. 해로우 지음, 노진선 옮김 / 밝은세상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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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감당하기 어려운 현실에 부딪칠 때 우리는 이런 난관이 없고, 나를 모르는 전혀 모르는 다른 곳에서 시작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그것이 창백한 푸른 점 위의 다른 곳이든, 차원이 다른 세계이든, 전혀 상상조차 해 보지 못한 별이든. 이런 우리의 소망을 대리 만족시켜줄 수 있는 도서가 새롭게 출간되어 냉큼 가지고 왔다. 바로 앨릭스 E. 해로우 작가가 쓴 재뉴어리의 푸른 문이다. 그럼 이 더위를 피해 책의 문을 열고 우리도 모험을 떠나보자.



앨릭스 E. 해로우는 미국 켄터키 출신이며 대학에서 부교수로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역사를 가르쳤다. 단편 소설 A Witch's Guide to Escape: A Practical Compendium of Portal Fantasies(우리 말로 하면 탈출을 위한 마녀의 안내서: 포털 판타지의 실용적인 개요 정도가 될 것 같다)로 휴고상을 수상했다. 오늘 소개할 재뉴어리의 푸른 문은 휴고상, 네뷸러 상, 로커상, 월드판타지상 최종 후보작이었으며 아마존 에디터가 뽑은 최고의 판타지 소설에 당당하게 뽑혔다. 짧게 요약하자면 이런저런 곳에서 인정받고 상도 받을 뻔한 작품이라는 것.



작중 주인공은 줄리언(아빠), 애들레이드(엄마), 재뉴어리(나), 새뮤엘, 제인, 로커, 헤브마이어, 일베인, 그리고 강아지 배드이다. 물론 다른 사람들도 나오지만 비중이 높지 않아서 여기에서는 언급하지 않겠다. 스토리 초반에는 이게 무슨 말이지? 하면서 읽는 곳이 꽤 많다. 이유는 시공간의 변화가 자주 일어나서이다. 시간적으로는 1866년부터 1911년까지의 이야기이다. 이렇듯 45년의 이야기가 왔다 갔다 하는데 그 이유를 알지 못한 초반에는 진짜 정신을 잘 차리고 읽어야 한다.



책의 줄거리를 간략하게 살펴보자면 세상에는 균열이 있는 곳이 있으며 그런 균열을 찾는 방법으로는 신화나 전설이라는 이야기를 따라가는 것이다. 이것을 처음 발견한 이는 로커 씨였으며 다음이 줄리언과 애들레이드이다. 심지어 줄리언과 애들레이드는 서로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들이 문을 통해 만나 결혼까지 한 놀라운 케이스이다. 이들 사이에서 태어난 재뉴어리. 이름을 두 영역을 모두 주관하는 제이너스(야누스)로 붙여주려고 하였지만 제인과 발음이 비슷하다는 이유로 그 신의 어머니 이름을 붙여주었다고 한다.(헤카테가 야누스의 엄마인데 이 부분은 좀 이해가 안 간다.)



"나 같은 남자들은 자신의 고통 말고는 보이는 게 없다.

눈은 내면으로 향하고, 상처받은 마음을 보는 데 사로잡힌다.

그래서 나는 문이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을

오랫동안 알아차리지 못했다.

혹은 누군가가 문을 없애고 다닌다고 말해야 더 정확하리라."

-p.343


그러나 방랑벽이 있던 애들레이드는 아이를 낳고 한 세계에 갇혀 있는 것을 우울하게 생각했고 이를 덜어주기 위하여 줄리언은 아기와 아내를 데리고 문을 넘는다. 언제나 별다른 이상 없이 넘어가던 문이었는데 갑작스럽게 무엇인가에 걸려 줄리언과 아기는 넘어오고 아내는 넘어오지 못하는 사고가 발생한다. 이들을 고 유물 수집상인 로커 씨가 발견하고 구해준다. 아기는 로커 씨의 집에서 유모가 돌보며 줄리언에게는 고고학자라는 타이틀을 씌워 로커 씨의 수집을 돕는 동시에 아내를 찾기 위한 모험이 시작된다. 그러나 모험을 하던 중 자신이 다녀온 곳에 이상한 사건과 사고가 계속 발생하면서 문이 사라지고 있는 것을 감지한 줄리언. 과연 누가, 왜 문을 없애고 있을까?



모든 것이 언제나처럼 순조롭던 어느 날 재뉴어리는 로커 씨로부터 아빠의 사망 소식을 듣게 되고, 아빠로부터 일만 개의 문이라는 제목이 적힌 책을 선물받는다. 이때부터 로커 씨도 헤브마이어도 일베인도 모두 적이 되어 재뉴어리를 공격하기 시작하는데 과연 우리의 주인공은 이 책만으로 어떻게 이들의 손에서 자신의 친구들인 제인과 새무엘 그리고 배드를 지켜낼 것인지, 무슨 방법으로 사라진 아빠와 엄마의 행방을 알 수 있게 되는지 이제부터 모험이 시작된다.



어떤 모험 이야기는 앞에서부터 서사가 착착 진행되어 작가가 이끄는 대로 독자가 편안하게 따라간다. 그러나 어떤 이야기는 헨젤과 그레텔처럼 이야기 전체의 단서만 열심히 뿌려 독자로 하여금 스스로 이야기를 구성하면서 자신을 따라오게 만들기도 한다. 재뉴어리의 푸른 문은 확실하게 후자에 속한다. 1/3 가까이를 읽는 동안 등장인물들을 연결하는 것조차 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절반이 넘어서면서 자신의 추측과 스토리가 맞는지를 확인하는 희열을 느끼면서 책에 몰입할 수 있다. 이제 대략 이해가 간다며 편한 마음으로 읽기 시작하면 마지막에 작가가 엄청나게 뒤통수를 한 번 쳐준다. 개인적으로 이 마지막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잘 알겠지만 모든 힘이 다 그렇듯이

글을 써서 마법을 부리려면 대가를 치러야 한다.

글은 글을 쓰는 사람에게서 생명력을 끌어내기 때문에

글의 힘은 글을 담는 그릇 역할을 하는

인간의 능력에 따라 제한된다."

- p.204


도서의 내용은 판타지이지만, 이것을 현실로 가지고 오면 철학적으로 변하는 신기함도 갖춘 소설이다. 문을 만들어서 통과할 때마다 그에 상응하는 무엇인가를 대가로 치러야 하는 것, 굳이 다른 세계로 나아가지 않고 정체된 삶을 살아도 큰 문제가 없다는 점 등이 그 이유이다. 작품 속에서의 문은 세계와 세계를 이어주는 역할을 하지만 우리의 일상에서의 문은 더 나은 삶, 더 성장하는 인생을 위한 하나의 도전해야 할 목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장마의 시작이다. 덥고 습하여 올라가는 짜증지수를 시원한 바닷가를 배경으로 한 재뉴어리의 푸른 문으로 풀어보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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