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한 가능성의 우주들 - 다중우주의 비밀을 양자역학으로 파헤치다
로라 머시니-호턴 지음, 박초월 옮김 / 동녘사이언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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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이 된 후 물리학과는 담을 쌓고 살았다. 그래서 필수 교양 도서로 알려진 코스모스를 작년에서야 읽게 되었다. 당시의 느낌을 말하자면 10평짜리 공간에 살다가 1000평 공간에 간 느낌이랄까? 이후 의도적으로 상식을 늘리기 위하여 양자 역학과 천체 물리 관련 책을 읽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의무적으로 선택했지만 상상력의 무한성과 지식의 축적에 만족감을 느껴 이제는 의식하지 않아도 매달 관련 서적에 시간과 열정을 쏟고 있다. 이번 달 그 대상은 로라 머시나-호턴의 무한한 가능성의 우주들이다.


표지에 다중우주의 비밀을 양자역학으로 파헤친다고 되어 있어 기대감이 꽤 높았다. 하지만 막상 책을 폈을 때 느낌은 기존의 과학 관련 서적과는 느낌이 좀 달랐다. 사실, 학교 다닐 때 접한 물리학을 제외하고는 긴 시간 동안 과학과 담을 쌓고 살았기에 기초 지식이 많이 부족한 편이다. 그래서 물리학 관련 도서를 볼 때 시간이 꽤 걸리는 편이었다. 하지만, 무한한 가능성의 우주들은 도입부의 내용부터 예시까지 꽤 친근한 부분이 많아 짧은 상상력으로도 책의 전반적인 내용을 이해하기 쉬워 책장이 훅훅 넘어갔다.


예를 들자면 엔트로피와 미시 상태의 수를 대부분의 책은 그들만이 사용하는 고급스러운 언어로 오차 없이 설명하려고 하는 편이었다. 하지만 저자는 이를 아주 간단하게 옷장 속에 있는 정리된 옷을 마구잡이로 헤집어 놓는 아이의 예를 들었다. 처음에 정돈되어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아이의 행위로 인하여 옷장은 점점 더 난장판이 되어 간다. 이것이 엔트로피이다. 그리고 아이가 헤집어 놓을 수 있는 방법의 수를 미시 상태의 수라고 한다. 아마 이 예시만 보더라도 책이 얼마나 쉽게 쓰였는지 감이 올 것이다. 


​글 중간중간에 저자의 어린 시절 이야기가 나온다. 작가는 어린 시절 유럽의 북한이라고 불리는 알바니아에서 태어나 자랐다. 어떤 이유를 붙이든 반란이라는 말을 붙이면 바로 처형이 가능한 곳. 이런 곳에서 작가의 아버지는 두 번이나 끌려가서 유배를 다녀왔는데 이 처분은 매우 다행스럽고 관대한 처분이라고 말한다. 이후 미국에서 제공하는 장학금을 받고 미국의 대학으로 유학을 가 그곳에서 자리를 잡고 계속 연구하게 된 케이스이다. 이런 어린 시절 덕분에 자신은 더 열심히 연구에 임할 수 있었다고. 그래서 어떤 의미로는 자전적 전기 같기도 하고, 어떤 면에서는 자기 계발서 같은 느낌도 난다.


​책의 전반적인 내용은 과학계 전반에 오랫동안 단일 우주가 정설로 잡혀 있었지만 각종 증거를 통하여 다중 우주론이 이제는 대세를 잡게 되었고, 이를 위하여 저자가 어떤 노력을 하였는지에 대한 내용이다. 때로는 혼자서, 때로는 동료와 그리고 때로는 반대쪽을 증명하기 위한 실험에서의 결과로 인하여 자신의 이론이 맞는다는 것을 확인해 나간다. 이 과정이 이론에 불과하긴 하지만, 꽤 과학적 근거가 탄탄하여 읽는 내도록 그동안 이해하지 못하고 넘어갔던 부분까지 꼼꼼하게 챙길 수 있었다. 특히 끈 이론을 설명하며 11차원의 존재를 확인하는 실험은 상상했던 결과와 너무 달라서 짜릿하기까지 했다.


​"진리는 세 단계를 거친다. 처음에는 조롱을 받고, 다음에는 격렬한 반대에 직면하다가, 결국 자명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 무한한 가능성의 우주들 p.304 아르투어 쇼펜하우어의 말


하지만, 계속 읽다가 보면 또 다른 것이 보인다. 휴 에버렛 3세의 이야기가 나오면서 이것이 명확하게 보이기 시작한다. 휴 에버렛은 천체 물리학자로 처음으로 양자역학을 우주에 직접 적용함으로써 다중 세계로 이루어진 복잡하고 기괴한 스페이스를 예측했다. 이를 우리는 평행우주라고 부른다. 하지만, 주류의 과학자들과의 마찰로 휴 에버렛의 역작이 담긴 논문은 대부분 삭제된 상태로 제출되었고 이에 따른 상심으로 휴 에버렛은 완전히 물리학계를 떠나게 된다. 물론 세월이 지난 후 그의 이론이 더 타당하다는 결론이 나서 타인이 삭제된 논문을 모두 복원시켜 발표했으나 그는 돌아오지 않았다고 한다.


​이쯤이면 하나의 세계를 주장하던 주류에 있는 과학자들이 궁금할 것이다. 아마 들으면 깜짝 놀랄 정도로 거물들이다. 아인슈타인, 보어, 더 거슬러 올라가면 플라톤, 뉴턴, 이후로는 스티븐 호킹까지. 심지어 고양이 실험으로 양자역학을 증명한 슈뢰딩거까지도 단일 세계를 주장하고 있었다. 여기에 과학계의 루키가 너희들의 의견은 모두 틀려!라며 도전장을 내민 것이다. 계란으로 바위를 쳐도 이들의 대결보다는 유리하지 않았을까? 이후 많은 연구자들이 주류에게 도전장 내미는 것을 매우 어려워하였다고 한다. 


​주류들이 단일 세계를 고집한 이유는 두 가지인데 바로 과학의 특성인 단순성과 예측 가능성이다. 주류들은 이것을 증명하기 위하여 볼츠만 상수, 상대성 이론, 열역학 제2법칙, 인플레이션 등 수많은 이론을 만들고 끌어온다. 그러나 이들이 하는 것을 한 마디로 말하자면 설명이 되지 않는 부분은 설명이 되는 듯하게 맞춰서 넣고, 설명이 되는 부분만 엄청나게 강조한 것이다. 그렇다고 이것이 잘못되었다는 얘기는 아니다. 이런 노력 덕분에 저자는 다중 우주의 이론을 정립할 수 있었다고 하니 말이다.  여기에 저자가 도전장을 내민 것이다. 그것도 차곡차곡 증거를 모아서. 


조금 재미있는 것은 저자의 지도 교수는 단일 세계를 주장하는 대표적인 사람인 로저 펜로즈였다. 이것으로 인해 저자는 꽤 고민을 한 것 같은데 마지막에 보면 스티븐 호킹과 로저 펜로즈마저 말년에는 다중 우주론으로 모두 돌아섰다. 물론, 이것을 설명하는 방법론은 조금씩 다르지만 말이다. 마지막 챕터에 스승과 둘이 늦은 밤에 식당에서 둘이 토론하는 장면을 보면서 즐거워하는 저자를 보면서 뭔가 해피 엔딩 같은 느낌이 들어서 나까지 미소를 지을 정도였다. 아마도 그만큼 마음고생이 심했던 탓이었겠지만.


​에필로그에 서는 그동안 천체물리학의 역사를 말할 때 절대로 빠지지 않는 수많은 사람들 이야기가 나온다. 신기한 것은 후대의 사람들이 이렇게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 다중 우주론을 기원전 400년 경에 이미 주장한 사람이 있었다는 것이다. 우리도 한 번쯤은 들어보았을 그리스의 철학자 데모크리토스이다. 그리고 기원전 3세기 경의 에피쿠로스는 현재 양자역학의 기본인 불확정성의 원리를 추론했다고 한다. 물론 에피쿠로스는 인간의 자유 의지를 인정하기 위하여 말한 것이지만 원리는 같은 것. 


밤 하늘을 바라보며 그 위에 박힌 보석들을 보며 경이로움을 느끼지 않은 인류의 시대는 없었다. 고대부터. 이들은 밤 하늘의 별을 보며 점성술과 항해술을 익혔다. 이후 자연 과학적 지동설과 천동설을 두고 싸웠으며 시간이 흐르면서 고전 물리학과 양자 물리학이 싸우게 되었다. 그리고 이제는 여기에서 더 확장하여 단일이냐 다중이냐를 두고 또 대결을 벌이고 있다. 과연 인간이 자신의 근원을 찾기 위한 노력의 결말이 어떻게 될지 언제나 궁금해진다.


무한한 가능성의 우주들은 교양 과학 책이다. 즉, 일반인이 충분히 읽을 수 있을 정도로 쉽게 쓰였다는 것. 심지어 상상력의 한계를 느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돕기 위하여 이론에 대한 삽화도 꽤 많이 삽입되어 있다. 개인적으로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보다 훨씬 쉽게 읽었다. 양자역학이 무엇인지 궁금하긴 하지만, 선뜻 엄두가 나지 않는 사람이라면 첫걸음을 내딛기 좋은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인류의 기원과 미래가 궁금하다면 도전해 보시길 추천한다.


#무한한가능성의우주들 #로라머시나호턴 #동녘사이언스


*** 출판사에서 도서 협찬을 받아 읽은 후 개인의 주관적인 견해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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